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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말씀

발 씻음과 발 씻김 요한복음 13:6~11

by diane +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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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씻음과 발 씻김

요한13:6~11

요한복음 13장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이태리 밀라노에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찌에 성당에는 세로 4m60 크기의 거대한 벽화 한 점이 걸려져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만찬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만찬이었지만 이 만찬은 유월절 만찬이었습니다. 늘 절기에 따라 실행되어진 그런 만찬, 이 최후의 만찬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 13장의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최후의 만찬으로 지금 나누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만찬을 나누시는 중에 주님이 갑자기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이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3장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베드로가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제 발을 씻으실 수 있습니까? 충분히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만나도 그렇지 않았겠어요.

그때 주님은
요한복음 13장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지금 발을 씻는 것이 단순히 그냥 단순히 발을 씻어주는 이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이 발 씻음의 의미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후에는 이 발 씻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네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주 누님이 말씀하세요.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을 살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이 발씻음의 내용을 우리가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식사 습관, 관습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몸을 한 45° 정도 비스듬히 누인 채 무엇인가에 기대고 몸을 대어서 식사를 하는 그런 식사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샌들을 신고 다닙니다. 그런 모습으로 식사를 함께 해야 합니다. 식사의 관습 중에 반드시 지켜야할것이 손과 발을 닦는 것입니다. 음식을 손으로 빵을 뜯어 먹고 또 그 먼지라는 발로 서로의 발 들이 엉키고 서로를 마주 보는 이런 상황에서 식사를 나누어야 되니까 반드시 발을 닦아야 돼요.

그래서 손님을 집에 초청하게 되면 주인을 물을 준비해야되고 초청한 사람들의 발을 닦아주는것이 식사의 관습 중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앉았는데 그 누구도 발을 씻은 사람이 없고 발을 씻어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들 스스로도 발씻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 우리가 첫 번째 성경에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를 얻을 수가 있어요.
누가복음 22장이 만찬을 나누는 장면인데
누가복음 22장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주님은 이 만찬을 굉장히 이 관심을 두신 거였죠.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먹기를 아주 간절하게 원했어요.
그런데 그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히죠. 내가 고난받는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사건을 그 제자들에게 언급을 하면서 내가 이제 죽음이 코앞에 왔기에 너희들과 다시 이런 식탁을 나눌 수 없어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이 마지막이야. 나는 그래서 이것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라고 하는 것이 최후의 만찬의 그 분위기였습니다.

주님은 심각하게 그 만찬의 자리를 대하고 그 자리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여기서 이들의 관심이 무엇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돌아가심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할수 없는 그 마지막 만찬에 또 이들은 깊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들은 자신들의 육체에 욕심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육체의 욕망에 절정을 이룬 제자가 갸롯유다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4.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지금 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제자 중 하나 갸롯유다는 어떻게 하면 예수를 쉽게 그들에게 넘겨줄까? 어떻게 하면 그 약속된 은 삼십을 내가 그대로 집어삼킬 수 있을까? 오직 자신의 육체의 욕망에 대한 관심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발씻는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

만찬믜 자리에 둘레 앉은 이들은 육체가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육체만 더러워져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들은 정신도 영혼도 드러워져 있었습니다. 신앙인이 하지 말아야 될 더럽혀짐 제자가 갖지 말아야 될 더럽혀짐이 이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더러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씻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식사를 하다 말고 너희가 씻어야 되는 존재들이야 하는ㅁ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보다 먼저 너희들이 너희들의 더럽혀진 것을 봐야 되고 그 더럽혀진 것을 인식해야 되고 그 더럽혀진 것을 씻어야 돼라고 하는 것이 발 씻음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때 그들이 지금 우리들이 아닙니까? 현대 교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발씻음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오늘 우리가 청하여 있는 우리의 상황일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공생의 첫 일성은 회개였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4장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를 먼저 말씀하셨이요. 더럽혀진 것을 더럽혀진 것으로 봐야되고 더럽혀진 상태를 인식하고 씻어내야 천국을 맞이할수 있다.

회개가 뭐냐? 회개가 자기를 살펴 보는 것이고 더러워진 발을 보는 것입니다. 더러워진 것을 애통해하는 것이요.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일체의 종교적인 활동은 생명력을 상실합니다.

둘째 이 발 씻음은 자신을 살피는 자기 살핌 일 뿐만 아니라 누림의 수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니까 베드로가 절대로 못 씻습니다. 어떻게 제자의 발을 선생님이 씻습니까 그러죠.
요한복음 13장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상관이라는 말은 네로스 한부분 할당된 한 몫 그러니까 신체의 한 일부, 지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이 씻어져야 주님의 지체일수 있다. 이것은 발 씻음의 단순한 관습 단순히 청결을 뛰어넘는 중요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요한복음 13장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그던데 주님은
요한복음 13장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다는 아니니라 갸롯 유다를 투고 하는 말이에요.
이미 목욕했다 이 말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목욕의 의미는 근본적인 죄의 씻음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너희들은 이미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너희들은 죄씻음을 받았다 구원을 얻었다라는 이야기지요.

근데 이것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예수의 피 외에 다른 것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예레미야 2장
22.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인간의 어떤 행위와 인간의 어떤 노력과 인간의 어떤 수단으로는 죄를 씻어낼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너희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발씻음은 목욕으로 인해 청결해지고 거룩해진 이것에 지속적인 유지와 관리가 바로 발 씻음입니다. 그러니까 목욕을 할 필요 없어 그런데 너희가 목욕 한자 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너희들은 발을 씻어야 해. 이것을 주님은 상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발씻음의 예수 그리스도가 본체인데 그 그리스도의 한 부분 지체가 된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절대 필요라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체에 절대 필요라고 하면 이 발씻음은 곧 지체가 본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이 신앙 생활에 커다란 깨달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발씻음은 성도에게 당연한 행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누리고 천국을 누리고 하나님을 누리는 이 누림의 절대적인 수단이 바로 발 씻음입니다.

왜 천국이 오는데 왜 회개해야 되느냐?
회개하지 아니하면 오는 천국이 나와 상관이 없어요.

이 발씻음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요한일서 1장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발씻음은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자백이라고 하는 말은 인정과 쏫아냄 이 고백이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백한다는 말은 내가 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백하는 것이죠.
요한일서 1장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목욕의 경험이 없는 자는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인 걸 몰라요. 목욕을 하고 나면 깨끗함을 알기 때문에 뭔가 묻으면 이게 더럽다는 걸 아는데 목욕을 하여 씻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더러워져도 더러워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양심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고 화인 맞은 불에 지져졌기 때문에 양심이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라하죠. 신앙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활동을 하고 있어도 발씻음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목욕의 경험이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갸롯유다를 두고 목욕의 경험이 없는이라고 말하잖아요. 이미 너희는 목욕하여 다 깨끗한데 다는 아니다.
기억해야 될것은 회개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절대로 라는 것을 꺾어버립니다.
요한복음 13장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회개라고 하는것은 하나님 앞에 나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변명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로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인간적인 표현을 쓰면 고집이 센 거는 회개 아니요. 회개는 하나님 항복하는것 인정하는것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는 그래도 해요.
그러니까 어떤 일이 생기느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주고도 나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데 우리가 회개를 이런 식으로 합니다. 얼마나 뻔뻔하고 얼마나 당당한지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5장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 말은 이 자신의 발을 씻어야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예배를 누릴수 있다. 예배를 통하여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맛볼 수 있다는 거죠.

발씻음을 양말로 가려두면 그러면 그 예배가 예배로 우리에게 경험되어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

셋째로 이 발씻음의 또 하나의 의미는 또 다른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이유가 제자들이 발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도 발을 씻어 줬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이 그들의 발을 씻어준 것을 보고 그들도 다른 이의 발을 씻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었어요.
요한복음 13장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장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발을 씻어준 것처럼 우리도  누구의 발을 씻어줘야합니다. 그것이 죄의 해개요  깨달음이요 용서요 사함이요 사람과의 화해라고 한다면 누군가의 발을 씻어준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겁니다. 누군가를 발씻음의 자리로 초대한다는 거에요.  

누가 어른입니까? 누가 신앙이 선명한 사람입니까?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 입니까?
다른 이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
절대로 그렇게 못해. 그게 어린 사람이고 그게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설교는 내가 씻어야 될 발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과 내가 씻어줘야 될 그 누구의 발이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깨달아야 예배는 성공합니다. 이 설교를 듣는 순간 그래 그 사람은 내가 발을 씻어줘야 되는구나.
남편 일 수 있을 아내일 수 있어요 부모일 수 있고 자식일 수 있어요. 교회 안에 성도 간의 관계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내 발을 씻는 것은 하나님과 나를 화평 하게 하는 것이요. 내가 누구의 발을 씻기는 것은 나와 그를 화평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 이 말을 오늘 말씀에 빗대면 발씻는 자는 복이 있다.

그 복이 어떤 복일까요?
하나님을 누리는 복 천국을 누리는 복입니다.

여러분 설교를 잘 들은 것으로 끝나지 말고 발 씻음을 해야 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성도들이 발씻음을 실천하는 한 주간 될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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