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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매일 말씀일기

2024.2.3.토 (주의말씀) 하나님의 타이밍, 습관의 힘

by diane +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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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온종일 공부와 발명에만 매진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공수하고 연구하느라 시간이 항상 부족했던 청년이었지만 우연히 교회에서 본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죠. 용기를 내 고백하고 싶었지만 교회에서 많은 이들과 교재하며 봉사하느라 바빴던 여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죠. 내성적이었던 이 청년이 생각해낸 궁여지책은 모스 부호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방법의 모스 부호였지만 청년은 눈 앞에 나타날때마다 동전을 두들겨 모스부호로 사랑을 고백했죠. 몇주동안 청년은 변함없이 여인을 향해 동전으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자신이 보낸 것과 똑같은 신호가 들려왔어요. 청년에게 마찬가지로 관심이 있던 여인이 청년이 보내는 소리를 듣고 모스 부호라는 걸 알아내 신호를 보낸 것인데요. 발명왕으로 불리는 에디슨이 아내 메리를 만났을 때 일화라고 해요.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다면 아무리 작은 신호라도 놓치지 않기 마련이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신호를 작은 신호라도 그 모든 신호를 놓치지 않고 반응하는 우리들 되길 소망합니다.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되소서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시편145:1
시편 145장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쥐 실험을 했답니다. 독 안에 쥐를 넣고 빛을 완전히 차단을 했더니 그랬더니 3분 만에 죽더라. 똑같은 독 안에 이번에는 쥐를 넣고 햇빛을 비치게 했더니 36시간을 살더라. 절망한 것은 죽음 반대로 희망 소망은 생명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유명한 말을 했어요.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넘어선 신앙이다. 희망은 신앙에서 온다.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앙하면 소망의 하나님을 신앙하므로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희망과 참된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아브람에게 이삭에게 요셉에게 주셨듯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꿈과 희망.
사도행전 2장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내가 내 영을 물 붓듯 부어주리라. 성령을 부어주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세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꿈과 환상과 예언과 비전과 내일에 대한 서막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는 거에요.
조지 버워 선교사님은 나는 저녁에 잠들때 꿈을 꾸며 잠들고 아침에 눈 뜰 때 꿈을 꾸면서 일어난다. 저녁에 잠들 때 주님과 함께 꿈을 꾸면서 잔다 아침에 눈 뜰 때 주님과 함께 꿈을 꾸면서 눈을 뜨고. 소망의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과 함께 꿈을 꾸면서 자기도 하고 깨기도 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우리 함께 꿈을 꾸는 희망이 넘치는 인생을 되시길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꿈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창세기 50장 요셉이 세상을 뜨게 될때 요셉은 죽음 앞에서 가나안 땅 꿈을 꿉니다. 요셉은 자손들과 이스라엘 백성 지도자들한테 유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다. 그때 내 유골도 꼭 함께 가져다가 장사해다오. 요셉은 가나안땅 꿈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가나안 땅은 하늘 나라 천국을 가리켜요. 요단강은 죽음을 가리키는 요단강 너머 저 가나안땅 하늘나라 저 영생의 나라 완전한 나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는 순간에도 꿈을 꾸는거에요. 소망이 넘치는 저 영광의 땅. 죽음도 슬픔도 애통함도 곡하는 것도 없는. 그래서 우리 모두 꿈을 꿔야 합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에도 운명하는 순간에도 꿈을 꿔야 합니다. 천군천사들이 나를 받들어줄 것을 천사들이 제 옆에 다가와가지고 수고했어 나그네 인생길 수고했어 주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셔 천사들이 받들어가지고. 누가 16장 나사로가 죽을 때 천사들이 그 영혼을 받들어갔다 했어요.
누가복음 16장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이 소리가 천국 가게 되면 주님이 두팔 벌려 우리를 영접해 주실거예요. 내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어서 오너라. 나와 함께 평생 동행했지. 나와 함께 일어서라.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천국 저 영광의 세계 나와 함께 가자. 천국 얼마나 넓고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내가 너를 구경시켜주마. 나와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자.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 꿈의 하나님 예수님은 소망의 주님 성령님도 꿈을 주시는 하나님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함께 손에 손을 붙들고 아브라함처럼.
아브라함도 꿈쟁이고 요셉도 꿈쟁이고 다윗도 꿈쟁이고 모세도 이삭도 바울도 꿈쟁이 우리도 하나님처럼 꿈쟁이가 됩시다. 꿈쟁이 주님과 동행하면서 희망 꿈 소망을 가지고 상황은 어떻든 간에 꿈을 꾸면서 우리 흥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봄을 맞이하고 우리 인생을 살고 우리 복된 꿈 행복한 꿈 복 받는 꿈 천국의 꿈을 꾸셔서 복된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 우리 꿈을 놓치지 맙시다. 주님과 함께 사소한 거부터 시작해서 원대한 꿈을 꿔지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1.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2.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3.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길 못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4.주의 자비롭고 화평한 얼굴 모든 천사도 반기며
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천지가 화답하도다
5.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뿐일세


요한일5:14~15
요한일서 5장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주님안에서 믿음의 담대함으로 말씀으로 굳게서 담대함으로 우리의 상황을 주님께 아뢰며 천국의 소망을 올려드릴 수 있길 믿음으로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 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천국 위로 받겠네


시편132:1~135:14

시편 132장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18.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시편 133장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4장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편 135장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5.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광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보다 높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데서 다 행하셨도다
12.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13.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리로다



1년에 12달이 있고 매달 마다 31일이 있는 달은 큰 달 30일이 있는 달은 작은 날 그리고 2월은 평년일 때 28일 그리고 4년마다 윤년일 때 29일이 된다는 것 우리는 초등학교 때 다 배웠습니다. 올해는 2월 29일까지 있는 윤년입니다. 그리고 같은 한 달인데 큰 달이 있고 작은 달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반면 주먹을 쥐어서 큰 달과 작은 달을 간단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다행스럽기까지 했었습니다. 이달이 크면 저달이 작습니다. 그게 1년에의 시간이지요. 매번 큰 달이 오지 않고요. 그렇다고 매번 작은 달만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이번에 이익을 보면 다음엔 손해를 보기도 하고 이번에 좋은 일이 있으면 다음에 굳은 일을 만나기도 하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게 세상이고 그게 우리들의 삶이죠. 이 달이 크면 저 달이 작다는 평범한 속담 하나를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여유를 배우고 지금 힘들면 다음은 좋아질 거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 그리스도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 하셨으니
기쁨으로  경배하고 찬양하리 나의 친구
내 맘속에 늘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네
오 놀라운 나의 친구


하나님의 타이밍

로11:33
로마서 11장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캐나다 소도시에 개척교회를 서른 곳이나 넘게 세운 헨리 블랙허비 목사님은 어느 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자연 봉사로 캐나다 시골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곳 워니팩에는 50만 명이나 살고 있지만 아직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뜨겁습니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이 모임에 갈 수가 없게 되었는데요. 혹시 목사님이 대신 맡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워니팩은 블랙허비 목사님의 교회로부터 무려 800 키로 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라는 말에 목사님은 기도 끝에 결국 순종했습니다. 800km나 떨어진 곳에 매주 한 번씩 가서 말씀을 전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종의 시간 시간은 분명한 하나님의 타이밍이었습니다. 위니팩에 세워진 교회는 이후 주변에 다른 도시들의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고 블랙허비 목사님의 아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첫사역을 시작한 교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순종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음을 믿고 기도함으로 주시는 마음이라면은 무슨 일이든 순종 하시기 바랍니다. 복되고 형통합니다 아멘.
주님 주님께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시는 순종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하소서.
요즘 하나님이 주시는 순종의 마음이 있다면 부담이 되더라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습관의 힘

느헤미야5:1~6 14~18
오늘 우리가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또 생각해보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그런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 딸이 지방선거 때 아빠한테 물어봤다고 합니다 아빠 아빠는 이번에 교육감으로 누구를 어느 분을 찍을 거예요 그랬더니 아빠가 대답했나 봐요 나는 지금 어느 어느 분 아무래도 생각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딸이 또 아빠한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분 그 어르신 공약이 뭐냐고 그랬더니 이것저것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여러 가지 중의 하나는 이렇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시험을 아닌 것 같다고 근데 딸이 참고로 초등학교 사학년이라고 합니다 애가 이런 아이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자기 어떤 주장 자기 의견이
생각하는것 생가하는 힘도 어쩌면 습관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볼수있을것 같습니다.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습관이죠. 남의 이야기를 우리가 평소에 귀담아 듣는 것도 훈련이고 또 어떻게 보면 습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모 사케르라고 하는 표현이 있고요 또 호모사 케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조르주 아담벤의  책입니다. 이 사람의 어떤 글 속에 책 속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신의 법에 영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인간의 법정 밖으로 내쫓긴 그런 존재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뭐 어떻게 보면 그 삶은 인간적 관점에서 보나 신의 관점에서 보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그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그런 어떤 관점 그런 개념으로 보면 전혀 다른 그런 생각일수 있겠죠. 잉여인간이라는 표현도 나머지 찌꺼기 남아도는 버려진 사람 쓰레기 같은 사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그만큼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그 시선도 습관일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거나 나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결국에는 그만큼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구걸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그 사람이 등장하죠. 베드로의 요한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그 아름다운 성 문 앞에 있는 사람에게 꽂히게 됩니다. 늘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저들의 시선이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부터 개인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경험한 이후부터 언젠가부터 저들의 시선이 그런 사람들에게 꽂히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그게 소명을 받는 것이라고 우리는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명을 받았기에 과거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내 눈에 밟히기 시작하고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꾸만 눈에 그 사람들이 밟히게 되고 이러한 모습들이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이 베드로와 또 요한의 삶 속에서 사도행전 3장 말씀을 배경으로 볼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눈에 밟히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자기 안에 있는 것도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그리스를 만난 이후에 그런 경험을 하고 있고 또 그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면서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걷는.
은과 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베드로는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그분이 세상에 구세주라는 것 자기 안에 있는 보물 예수를 알 수 있다는 것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도구임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나의 이웃을 이웃으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일이 너무 앞서서 결국 그 일 때문에 다른 것은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계보다 일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처럼 사람들을 불평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속에서 저들을 참고 또 들어 줍니다. 그는 아주 계획적이었습니다. 아주 꼼꼼했습니다. 이를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 섬세한 모습을 느헤미야서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오늘 느헤미야서 5장에서 보게 될 내용도 사실 그런 부분입니다. 짜증내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저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저들의 필요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관심을 보이는 그런 느헤미야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내 눈이 열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런 사람들 호모사케르 잉여인간 버려진 사람들 소개된 사람들이 우리의 눈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를 만난 이후로 우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보여야겠죠. 남들에게는 안 보여도 우리에게는 보여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또 교회로 부르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 5장
1.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2. 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전당 잡히고 이 흉년을 위하여 곡식을 얻자 하고
4. 혹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느헤미야가 헤미에서 5장1절 부터 먼저 6 절까지만 보시겠는데요 이 이후에 이 상황을 보고 느 헤미야는 분노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리더들을 모읍니다 또 관료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귀족들을 모아서 저들을 나무라는 내용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단순히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바꿔 갈 수 있을까. 그것을 계획하고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느헤미야의 모습을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을 음식이 바닥났다고 말하죠.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자들이 없는자들것을 빼앗고 착취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먹을것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중에는 자기 자식을 부잣집에 종으로 팔아야되는 이런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고요. 어떤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농지마저 저당 잡히고 당장 먹을 식량을 빌려야만 되는 이런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만큼 무뎌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무감각해진 것에 대해서 느헤미야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카셀르사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칼럼니스트 평론가인데요. 동정심의 피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인터넷 텔레비전에서 여러가지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노출되어있으면서 우리가 결국에는 동정심에 피곤을 느끼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 악을 바라보고 또 그 악에 대해서 분노하는 분노심의 피곤까지도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거짓 속임수 불의 부정부패를 경험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는거에요. 결국 잘못된 도덕적 행위를 보고도 지나쳐 버리는 겁니다. 의로운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 양심이 마비되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가운데 지금 있어요.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5장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의 심정을 요약해주는 이 표현이 쉬운 성경에는 여러분이 하는 일은 옳지 않소 이 다섯 마디가 전부입니다. 개혁 성경을 보니까 이렇게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다  영어 성경을 보니까 whar are you foing its not right.

느헤미야 5장
14.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부터 삼십 이년까지 십 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14절 이후에 그에게서 이런 어떤 거룩한 분노를 우리는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분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했습니다. 그대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가져 갑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죄까지 그 집안의 죄까지 가족의 죄까지 하나님 앞에 먼저 털어놓습니다. 그는 정직했어요. 교회도 이따금씩 욕먹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정직하지않기 때문에. 욕먹는 그런 순간들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봤어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100점을 받았어요. 이 친구도 깜짝 놀란 겁니다. 시험지를 보니까 선생님이 실수를 하신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이 친구는 굉장히 정직했어요. 선생님께 가져갔습니다. 나중에 그걸 집에 가져가서 엄마한테 설명해줬더니 엄마한테 뒤지게 혼났다고 합니다. 그걸 뭐하러 선생님한테 말하냐. 그 엄마가 우리 교회 집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정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 제 아내가 한번은 자동차를 부품을 고쳐야 해서 계산을 잘못해서 6만원을 결재되어 이상하다 싶어 다시 그걸 카센터에 가져갔는데 6만원을 더 받아야되는데 안받은 거에요. 그걸 얘기해주는데 저는 왜 그 얘기를 하냐고 가만히 있으면 되지. 그래서 아내가 한 가지 질문을 던지 는데 목사 맞어? 제가 그날 새롭게 거듭나는 날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정직했어요. 돈이 없으면 못 사는 게 아닙니다. 가난한 거죠. 바르게 살지 못하고 어쩌면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가난한 것입니다. 반대로 돈이 있으면 부자지 잘 사는 건 아닙니다.

느헤미야 5장
16.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 오십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느헤미야는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했어요. 부지런했습니다 솔선수범했습니다. 또 남의 아픔을 알고 배려할 줄 알았죠. 이웃을 살필 줄 알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을 이 본문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거든요. 위로할 줄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려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되겠죠. 사람에 대한 관심은 관심을 갖는 대상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또 궁금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관심의 대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같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어려운 일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 고민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떤 해결책을 정답을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것이 상대방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위로와 회복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뭐 심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위치에 문제가 아닐까싶습니라. 예수님은 우리로부터 먼 곳에 계시면서 잘 될 거야 괜찮아 힘내 이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로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우리 아픔과 우리의 슬픔에 동참하시는 분이거든요. 우리가 연약한 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고 싶다면 눈물과 아픔의 자리로 옮길 때 그 일이 가능합니다. 그 사람에게 나의 자리로 옮겨오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먼저 그 자리로 가야만 되겠죠. 아픔의 자리로 슬픔의 자리로 가는 겁니다.

교회 집사님께서 모친상을 당하시며 소그룹에 기도 요청을 보냅니다. 소그룹 집사님이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에 어머님이 많이 많이 아프시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병원에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정말 오랫동안 그 자리에 계시면서 어머님과 얘기해주고 웃게 하고 퇴원하시면 다시는 입원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시고 한참 동안 어머님을 너무나 기쁘게 행복하게 물론 기도도해 주셨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같이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님 발이 또 통통 부었는데 발 사진을 찍어서 그 속으로 가족들에게 톡으로 사진을 보내 주면서 어머님을 위해서 우리 같이 기도하자고 그 집사님이 저를 제가 병원에 그때 찾아가니까 그 얘기를 해주시는 겁니다. 장례식장에서 그런 분이시라 우리 소그룹 리더가 이런 사람입니다. 막 자랑스러워하시면서 저에게 계속해서 자랑하시는거있죠.

느헤미야는 남의 아픔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픔의 자리 슬픔의 자리로 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라.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살펴 봐야 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관심을 갖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는 관심의 총량이 모든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관심을 갖게 되면 이전에 관심을 갖던 것들부터는 멀어지게 되는거죠. 내 눈에 어려운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웃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과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 될수도 있는거죠. 관심을 갖는 것이 위로의 시작이라면 지금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한 가지 방법은 나의 기도 제목을 우리의 기도 제목을 살피는 겁니다. 그 기도 제목 속에 나의 어떤 소원들만 들어 있는지 아니면 정말 다른 사람의 상황 필요를 놓고 내가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또 한 가지 방법은 나의 지갑을 살피는 것이 되겠죠. 지금 내가 어떤 일에 지갑을 여는지 확인해 보면 나의 관심 알 수 있습니다. 외모에 관심이 많으면 외모를 가꾸는 일에 뭐 먹는데 관심이 있으면 먹는데 돈을 쓰고 투자하겠죠. 우리의 기도의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연약한 이들의 포함되어 있다면 또 우리의 물질이 연약한 자들에게로 흘러간다면 이미 여러분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는 시작된 겁니다.

제가 저희 아버님도 여기 계시지만 어릴 때 이름에 대한 상처가 좀 있었어요. 물론 이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뭐 성경 이름이죠. 목회자 아들이기도 하고 여기다가 이름이 막 너무 홀리한 거죠. 형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게 부담인 거예요.  게다가 우리 동네 어느 못된 형이 있었는데 놀리고 별명을 지어줘서 또셉이 또한이. 싫었어요 너무 너무 싫어서 어릴 때부터 이름에 대한 그런 상처가 좀 있었거든요. 원래 사실 저희는 이름에 대한 상처가 좀 있는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형이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는 종자 돌림을 쓰거든요 그런데 사내아이를 낳는데 종자가 들어간 이름을 저야 하는데 그러니까 더 이상 아무리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도 없어요. 하루는 기도하고 무상하다가 환상적인 이름이 떠올랐어요. 성경적이죠 종자가 있죠 순종이라고. 저희 아버님도 너무 좋아하시고 형도 너무 좋아하고 그런데 갑자기 어머님이 미국 분이신데 아주 진지하게 저희 형은 너무 좋았는데요 걔가 어떻게 순종이냐 잡종이지 이러시는거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저희 형이 상처를 받았는지 여지껏 어머님이랑 대화를 거의 안 해요. 근데 어차피 이런 상처가 저희들에게 있었어요. 좀 평범한 이름 중에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런 저의 생각을 제가 고쳐먹기로 합니다. 한번은 좋은 생각 잡지에서 이런 문구를 제가 읽게 되면서 제 이름에 대한 생각을. 짧은 문장인데요 여러분 눈에는 과연 이 문장 속에서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지 확인해 보세요. 비보이 춤은 한 동작을 익히는 데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릴 만큼 인내심을 요한다.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들어 왔나요? 취미인가요? 동작인가요? 저에게는 요 한다. 요한다라는 단어가 없으면 이 문장이 완성이 안 돼요. 마무리가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이 저의 마음속에 작은 감동을 주시는 것 같았어요. 마무리를 잘하자. 끝까지 잘하자. 무슨 일을 해도 완성도 있게 하자. 성실하게 하자. 문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어 처럼 쓸모 있는 존재 답게 살자.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여러분 에겐 그닥 영향과 없는 내용이겠지만 저에게는 은혜의 물결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 것 있죠. 집요한 중요한 필요한 고요한 부요한 주요한 이런 생각들을 좀 더 발전시키면서 자판에서 제 이름을 김요한 빨리 치면은 뭐가 나오냐면 이런 단어가 나옵니다. 기묘한. 그래서 제가 기묘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까 기이하다 신기하다 혹은 놀랍다 이런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분이 잠깐 업 됐다가 그것까지 괜찮았는데 그리고는 저의 형 이름에 대해서 제가 잠깐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요셉 이란 말이 들어간 단어나 문장은 우리말에 존재하지 않아요. 갑자기 저의 존재감이 업 되는 느낌이 드는 거 있죠. 아 그만큼 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구나.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답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데 더 중요한 건 여러분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그런데요. 우리의 이름을 불러 줄 상대가 우리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 줄 가족이 친구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여러분의 이름을 아신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세요.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찾을 때 그 분께 나아갈 때 그 분께 기도할 때 내가 누군지 아세요. 우리의 필요를 아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자리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힘들 때 우리가 슬플 때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를 그 자리에서 우리 위로자 되시는 그 분께서 우리를 일으켜 주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야 아무개야 네 상황 네 어려움 네 아픔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널 도와줄께 이제 같이 일어서자 우리 주변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 호모사케르 그 잉여인간 그 버려진 사람 잊혀진 사람 소외된 사람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같이 저들을 세워주고 위로해주지 않을래. 그런 삶의 자리로 그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저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우리 주변을 또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그런 도구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런 도구로 오늘도 그런 그릇으로 쓰시고 싶어 하거든요. 그분의 그 부르심에 그 콜링에 그 초대에 순반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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