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오른쪽 아래턱 이가 아파 치과에 갔습니다. 속으로 얼마 전에 받은 신경 치료를 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받아보니 통증에 진짜 원인은 사랑니였습니다. 사랑니를 뽑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 사람은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고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증상을 인식합니다. 그 증상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당신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전문가인 그 분은 그 증상이 어디서 귀인한 것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은 문제가 시작된 바로 그 순간을 아시고 그것을 해결할 답도 갖고 계십니다. 당신 안에서 질문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유일하게 내뱉을 수 있는 기도가 절망의 한숨 뿐일지라도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분께 당신의 증상을 아뢰고 그 분이 진단을 내리시기를 그리고 치료 책을 처방해 주시기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내 신음을 들으시고 아버지의 해결책을 보여주소서.
과거에 얽매이기를 그만 두십시오. 은혜는 내게 현재의 삶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래를 보장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자고 싶지만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다시 힘을 냅니다. 오늘도 함께 하셔서 나를 지키고 보호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일하심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불평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생각하며 애쓰는 모든 마음이 과시욕으로 변하지 않게 하시고 아버지를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열매가 넘치게 하소서. 언제나 처음처럼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그 사랑이 너무 익숙해 감동이 사라졌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아버지의 사랑을 처음 받는 사람처럼 감동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역대상 16장
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1.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 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이 정성을 받으소서
2. 주 날 위해 보배로운 피 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 천한 몸 이 생명을 왜 아끼랴
3. 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없건만
나 주 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4. 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사
주 예수의 은혜로써 인치시고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으소서
5. 주 날 위해 그 귀하신 몸 버리사
이 내 몸을 피 값으로 사셨으니
내 평생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
고후13:5
고린도후서 13장
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합시다. 주님을 믿는 그 믿음 안에 살아가면서 오늘도 주님의 자녀로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시기 소망합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예수 예수 믿는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건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의 모든 사람과 함께하 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하루 동안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 마다 또 우리의 모든 길마다 함께 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모든 순간마다 어떤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세상이 줄수 없는 참된 평강을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만 붙잡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이 땅에 평강을 끼치는 하루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하늘이 열리는 기도
요한1:45~51
요한복음 1장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온 우주가 지구를 향해서 내려앉으면 무슨 수로 살아 올 수 있겠느냐
근데 이 속담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적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 헤어날 길이 있으니까 절망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이야기죠.
하나님 믿는 신앙인은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 하늘 문을 미리 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늘 문을 열어 놓으면 하늘이 무너질 일도 없거니와 하늘이 무너지는 극박한 상황이 온다고 해도 염려할 것이었기 때문이죠.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 뭘까요?
그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할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기도할때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겁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다나엘을 통해 하늘을 여는 기도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주목하시죠.
나다나엘 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어요. 무화과나무는 커다란 잎새가 무성하여서 유다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그런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 랍비들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율법을 교육하거나 묵상하기를 즐겨했다는거죠.
그런데 나나나엘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곳에 예수님께 먼저 부르심을 입었던 친구 빌립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일로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공생회 초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나사렛이라고 하는 말에 나다나엘의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나다나엘은 메시아라면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을 예수님의 출생지요 고향 땅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나사렛 같은 촌동네에서는 메시아가 날수없다 그렇게 생각을 한겁니다.
근데 빌립은 일단 한번 와보라고 권하면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다라고 하는 거죠. 빌립이 나다니엘을 데리고 오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이죠. 칭찬을 들은 나다나엘이 묻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죠.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때 보았노라. 무슨 뜻일까요?
나다나엘이 묵상하고 기도하던 무화과나무 근처에는 예수님이 가신적이 없으시거든요.
나다나엘을 만나러 그곳으로 간 사람은 빌립이며 예수님은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요 또 나다나엘이 어떤 사람이라는것까지 알고 계셨을까요?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연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도는 통하는것이죠.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하늘의 문이 열려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관계가 그대로 통할 수 있다라고 한 겁니다.
나다나엘이 무릎을 꿇었을 때 나다나엘만 하나님과 통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니죠. 예수님께서도 열린 하늘 문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통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하늘의 문을 통해서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라고 하는 거죠. 공간적으로 예수님이 계신 곳과 나다나엘이 있던 무화과나무 아래는 분명히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통하고 계셨던 예수님은 공간을 초월해서 기도로 하나님과 통하던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주목하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면 어김없이 하나님의 눈길은 바로 그것을 주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꼭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새벽에 내가 기도할 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사실을 꼭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이 쏟아지는 자리입니다. 주목하고 계시다라고 하는 것은 방관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이거든요.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그 눈길은 구경하는 눈길이 아닙니다. 내가 저 아이를 사랑하는데 무엇을 해줄까라고 하는 생각으로 부모는 그 자식을 바라보죠. 혹여라도 위험할 때는 몸을 던져서라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라본다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눈길도 마찬가지죠. 우리를 주목하실때 할일없이 바라보시는것이 아닙니다. 그 눈길은 사랑의 눈길 능력의 눈길이오 보호의 눈길이오 약속의 눈길입니다. 무엇이든 주고자 하시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눈길이죠. 그러니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런 눈길을 듬뿍 내려받는 믿음의 시간들이죠. 이런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내가 초라해질 때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주목하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나 상처 입어 괴로울 때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없고요. 또 사람의 위로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에도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내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는 위로와 능력의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신다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늘을 여는 기도는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라고 하는 겁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보시는 것에 놀랐지요. 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아시는 것이 놀랐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제야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시는것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말이죠. 이 고백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받을 은혜를 말씀해주시는데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이것이 기도로 시작되어 예수님과 만난 나다나엘이 받을 은혜였다라는 겁니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과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것과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가 받을 약속의 은혜 였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나다나엘에게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앞에 즐겨 기도의 무릎을 꿇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성경에 하늘이 열린 것을 본 사람이 있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후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도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돌베게를 하고 처량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죠. 그런데 꿈속에서 하늘이 열린 문을 보게 되었죠. 땅에서부터 올라간 사닥다리가 하늘에까지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죠.
창세기 28장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저는 야곱의 하나님께 받았던 이 축복의 말씀은 묵상할 때마다 이 축복이야말로 완벽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번창하게 될것이다. 내가 어디든지 너와 동행하며 지켜주고 이끌어주시겠다.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 축복에 더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 이 새벽에 이런 약속의 음성을 들을수있는 복된 주인공이 될수있기를 바랍니다. 이때부터 야곱의 삶은 크게 변화되었죠. 역사의 주체가 되고 축복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는 겁니다. 야곱을 막아설 대적이 없게 되었죠. 도망자가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가축을 많이 거느리는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에게 머물게 한다는 것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하죠.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습니다. 기도는 호응을 치는 것이 아니죠. 기도는 바위를 부수는 불방망이 보다 강력합니다. 기도로 이기지 못할 것이 없고요. 기도로 열리지 않을 문이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길이 나를 주목하시고요. 또 가로막은 역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 모든 역경을 넘어설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통하는 역사가 시작합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까?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않습니까. 기도하면 사소한 문제까지 여미시고 싸메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열린 문을 통해서 주어지리라 믿습니다.
혹여라도 앞길이 분명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습니까? 속상해하지 마세요. 기도로 하늘을 여는 믿음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책임져 주시고 놀랍게 변좌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나다나엘이 기도하던 은총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갈수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대를 가지고 위를 바라볼수있길 바랍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손에 이끌려 주님을 만났지만 이 새벽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서 주님을 배울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시간이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겠네 새 생명 주인 주를 찬송하겠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시편144:3~
시편 144장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13.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찐대
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145장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4.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6.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 하심을 선포하리이다
7.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새달 2월도 오늘이 벌써 8일 그리고 내일부터는 설 연휴가 시작, 왠지 마음이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새해 새것 신선하고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힘이 있는거 같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것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2024년 1월 1일에 세운 계획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일수록 음력 설을 더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시작하는 새 해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며 주님이 주신 은혜에 믿음을 더해 새롭게 축복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교만의 뿔
요한16:24
요한복음 16장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카를로스 대제로 알려진 프랑크왕국의 샤를 마르니에게는 열두 명의 용맹한 기사단이 있었습니다. 열두기사단 중 한 명인 로랑드 부비옹 생 시리어 장군이 하루는 무어인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이민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거센 적군의 저항의 생시르 장군은 매우 불리한 전황에 처했고 급기야 포위까지 당 했습니다. 이런 일을 대비해 카를로스 대제는 기사단에게 뿔 나팔을 하나씩 하사했습니다. 뿔 나팔을 불기만 하면 근처에 있는 다른 병사들은 열두 명의 기사단을 구하기 위해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생시르 장군은 끝까지 뿔나팔을 불지 않고 무어인들에게 포위 당한 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열두 기사단인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수는 없던 체면 때문이었습니다. 그 체면 때문에 아끼던 병사들이 적의 창 칼에 쓰러지고 급기야 자신도 목 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생시르 장군은 끝까지 체면 때문에 뿔나팔을 불지 않아 언제든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왕의 나팔을 부르지 않았던 것은 체면이 아닌 교만의 문제였습니다.
생시르 장군처럼 우리도 주님의 도움을 외면하고 우리의 힘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아끼지 않고 모든 좋은 것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 우리 삶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기꺼이 맡겨 드리십시오. 복 되고 형통합니다. 아멘.
주님 전능하신 주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교만한 성도가 되지 않게 하소서.
요즘 어려운 일이 있다면 해결해주시는 주님께 시간을 내서 간구하시죠.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예수가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창12:1~2
창세기 12장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믿음과 비전의 능력
민13:25~33
민수기 13장
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장 정탐꾼들의 이야기입니다. 열두 명의 그런데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10명의 정탐꾼 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을 원하지 않았고 앙큼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원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불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려움과 원망과 불평이 전염성이 강합니다. 열 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두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비롭게 되어 악평과 원망과 불평이 훨씬 더 전염성이 강한 것을 보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이스라 민족을 선도하죠.
민수기 14장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원망하면서 애굽 땅을 생각합니다. 가나안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민수기 14장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하나님은 가나안땅으로 가길 원하는데 그들은 애굽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비전을 상실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그들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정탐꾼은 꿈을 꾸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꿈을 꾸었고 가나안 땅에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0명의 정탐꾼과 두 명의 정탐꾼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를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0명의 정탐꾼을 따라가지 말고 토인비가 말했던 것처럼 창조적 소수자 역사를 새롭게 만들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을 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로 비전이 없으면 어리석게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헬렌 켈러는 삼종고의 고통을 받던 사람이죠. 한번은 물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녀는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이다. 눈을 뜨고도 비전이 없다면 꿈이 없다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비전에 관해서 많이 설교한 존 맥스웰 목사님이 있습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의 메시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비젼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비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비젼이 없으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로 비젼이 없으면 방자히 행합니다.
잠언 29장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무례하게 행한다 또는 무질서하게 행한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절 받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겠다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꿈 비젼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가 그렇게 유혹을 했어도 요셉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도망갔습니다.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젼이 있었기 때문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우리 자녀들에게 분명한 꿈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비젼을 갖게 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분명한 비젼을 갖게 되면 놀라운 정체성을 갖게 되고 그리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 와도 꿈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물리치고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비젼을 꼭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비젼이 없으면 우유부단한 삶을 살게 됩니다.
비젼이란 뚜렷한 목표를 의미합니다. 소원하는 거 있죠 분명한 목표가 있죠 그게 비젼입니다.
물어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 해 드릴까요?
어떤 성도님은 당황하며 우물쭈물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님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이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위해 기도 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분명한 소원이 있는 겁니다. 분명한 꿈이 있는 겁니다. 분명한 꿈을 가지고 기록해놓고 매일매일 기도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기도해 드릴까요? 물으면 즉각적으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경제적으로 얼마나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십니까? 또 건강은 얼마나 더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분명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비젼이 없으면 아주 우유부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셋째 비젼이 없으면 문제를 극대화시키게 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봐야 되는데 10명의 정담꾼을 보십시오. 비젼을 잊어버리니까 문제를 과장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크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인이고 자기는 메뚜기 같다. 비젼이 있으면 문제는 극소화시키고 기회를 극대화시킵니다. 지도자가 누구일까요? 지도자는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하든지 극소화시키고 기회를 극대화시키는 사람이 지도자인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젼이 담겨 있고 이 문제 속에는 놀랍게 성장할 수 있는 놀라운 잠재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문제가 오면 두려웠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좋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없으면 기적도 없는 겁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통해서 놀라운 잠재력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홍해라는 문제 앞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했더니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없었으면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심으로 물이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게 다 문제 때문에 일어난 기적인 것입니다.
문제가 없으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 때문에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 의지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젼이 없게 되면 문제를 자꾸 과장합니다. 그리고 비젼이 없는 사람은 자꾸 어려운 것만 얘기합니다. 없는 것만 얘기합니다. 결핍 의식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두 명의 정탐꾼이 비슷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 땅이 아름답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집착하고 방자히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하고 결국에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젼은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보는 것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보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고 보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우리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벌써 다르지 않습니까.
민수기 13장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들의 언어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확신에 찬 언어입니다. 승리의 언어입니다. 능히 이기리라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갈렙의 언어는 하나님으로 충만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말 속에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의 언어 속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게 분명한 차이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았던 것은 거인들을 보았고 견고한 성읍을 보았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달라진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비전이 뭘까요?
첫째로 비전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냥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은 가리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보게하신 다음에 그다음에 취하게 하십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갈렙은 85세가 되었을 때 45년 전에 보았던 그 헤브론 땅 가나안 땅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보았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꿈을 갖는 사람들은 비젼을 갖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삶의 태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나이가 젊어도 꿈이 없으면 비젼이 없으면 언어가 부정적이고 삶이 방자하고 뭔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보세요 자꾸 하나님이 보여 주시잖아요. 먼저 보여 주시잖아요. 먼저 보게하시잖아요. 본 다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보이는 땅을 주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먼저 보는 게 중요해요. 봐야 해요.
창세기 15장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늘에 별을 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놀라운 비전이 나중에 이루어지잖아요.
출애굽할때 이스라엘 백성이 300백만명으로 보고있어요. 장정만 60만 명이었으니까 300만 명이라면 정말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알같이 땅에 티끌 같이 많은 백성들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로 비젼은 믿음으로 말하는 능력입니다.
우리 언어가 우리 미래를 창조합니다. 우리 미래를 바꾸는 가장 좋은 글은 언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악평하는 언어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건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셨다 하더라도 곧 빼앗아가실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만 주십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실험해보세요. 여러분이 정말 싫어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가. 주셨어도 곧 빼앗아 가십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한 것들을 우리가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해야 합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십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절대로 원하지 않으면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축복을 약속해 놓았어도 여러분이 원치 아니하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안 주십니다. 좋아해야 주시는 겁니다. 원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언어가 다르잖아요. 저 들은 거인들이여 우리는 메뚜기라고 말하는 열 명의 정탐꾼과 두 명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언어가 다릅니다.
민수기 14장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을 한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본다고 다 믿는 게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도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과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셋 째로 비젼은 집중하는 언어입니다.
한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애굽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가나안땅에 집중을 했던 것입니다. 집중이 성취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이루기 위해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비젼은 본 것을 성취하는 능력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본것을 성취하게 하시고 본곳에 들어가게 하시고 본것을 갖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다윗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보는걸 잘 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리키는 걸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보게 하시고 그 다음에 취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보는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비젼을 통해 구속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젼은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입니다. 비전은 멀리 보는 안목이지요. 비전은 영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안목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난한 땅을 들어가게 했을까요? 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애굽도 아닙니다. 바벨론도 아닙니다. 꼭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땅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유대에 가나안 땅 예루살렘 베들레헴에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을 취해야만 했습니다. 이게 구속의 영원의 시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놀라운 구원의 역사 구속의 드라마를 위해서 가나안 땅은 차지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벨론도 애굽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비젼은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비젼이 있으면 하나가 될수 있습니다. 비젼이 없으면 가정도 깨어집니다. 관계도 깨어집니다. 교회도 비전이 없으면 분열하게 됩니다. 서로 싸움박질 하게 됩니다. 비전이 없으면 분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크고 아름다운 비젼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 없이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할때 비젼을 이룰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비젼은 우리 힘으로 안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셔야 큰 비젼을 이룰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기도를 해야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를 향해서 새로운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의 비젼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함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올 한해 우리가 가진 꿈과 비젼들이 다 이루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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