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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지혜의 말씀

하나님의 때는 언제인가

by diane +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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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는 언제인가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초등학교를 친구를 만났다면 우연일까 필연일까?
시계를 봤는데 11시 11분 11초 인거에요. 우연일까 필연일까?
원하던 곳에 취업이 떨어졌어요. 우연처럼 한번 떨어진 걸까 그건 나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
내 이름, 내 가족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리의 삶은 우연으로 이뤄졌을까 필연으로 이뤄졌을까?
볼 펜을 사면 언제 잉크를 다 쓸지, 종이 비행기를 날리면 언제 떨어질지 몰라요.
우리의 삶은 필연보다는 우연으로 더 많이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해두잖아요. 계속해서 뭔가를 하려고 정해놓는데, 정해놓는 거 중요하지만
정해놨다고 하더라도 아주 사소한 우연하나로 그 정교한 필연들 내가 계획해둔 것들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게 우리 삶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라 뭔가 정해놓고 뭔가를 필연적으로 이루려고 하더라도 사소한 우연으로 무너지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이런 생각합니다. 그게 내 필연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나에게 주어진게 아닌가봐. 이건 하나님 뜻이 아닌가봐. 필연적으로 주어졌다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우연이라는 걸 기억해야 해요. 정해진게 없어요.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 승승장구했던 삶인데 갑자기 나병이 걸립니다. 나병이라는 우연이 그의 필연을 계획을 다 무너뜨립니다.
그때 나아만은 군인답게 우연과의 싸움을 시작해요. 부인의 하인이 엘리사라는 사람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듣고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과 재물 다 들고 음과 금과 의복을 들고 나아가요. 결국엔 우연처럼 찾아온 나병을 고침받게 돼요.
그런데 그가 동원했던 인맥과 재물이 아니었어요. 엘리사를 만나 요단강에 물을 일곱번 담그라해요. 그리고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나았어요. 단지 이것만 했을 뿐이에요.
 
우리가 나아만이 되어서 요단강에 물을 일곱번 담근다고 생각해 볼까요?
온 몸이 썪고 염증이 걸려있는데 요단강에 풍덩 몸을 담가봅니다. 아무 변화가 없어요.
두번째 담가봤어요. 뭔가 발가락 부터 낫는 신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낫지 않아요. 일곱번째 담그자 그의 몸이 완벽하게 변해버렸어요. 
 
그가 이 우연처럼 찾아온 나병을 나을 수 있었던건 기다렸던 거에요. 기다림. 
아무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때까지 잘 기다릴 수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연을 이기고 필연을 세울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아무 변화가 없어도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거에요.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고 배에 들어갑니다. 근데 7일 동안 비가 안 와요. 3일째 4일째 아무 이상 없었고 7일째 비가 쏟아집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돌고 있었어요. 7일 동안 돌면 그게 무너질 거래요. 5일째 벽에 금이라도 가면 좋겠지만 아무 변화 없었어요. 7일째 여리고성이 무너졌어요.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갔어요. 물은 빈곳을 다 채운 후에 흘러가요. 하나님의 때가 다 차야 은혜가 흘러 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돼요.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는게 나병을 고치는 특정한 치료법이었을까요?
그게 아니죠. 하나님은 내가 취했던 내가 생각했던 모든 방법들 최고라고 생각했던 모든 인맥들 모든 재물들 모든 생각과 계획들을 다 버리고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대로 행하는 모습을 그 믿음을 끝까지 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거에요.
 
마을 버스 듬성듬성 오는데 그 버스를 기다려본적이 없어요. 오는 시간표를 알고 있거든요. 천천히 시간되서 나가면 버스가 와요.
 
하나님의 때도 알면 좋겠어요. 그럼 기다리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내가 하고싶은 거 하다가 그때되서 준비하면 얼마나 평안하고 좋을 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안 알려주세요.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세요. 
왜냐하면 믿음은 기다림이거든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거든요. 근데 믿음은 기다림이에요. 기다려야 되는 거에요.
 
때를 다 알면 믿음이 필요가 없죠. 믿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고싶어 하세요.
 
예수님의 기적은 크게 세가지인데, 병을 고치는 거, 자연을 다스리는 거, 귀신을 내쫓는거, 이렇게 기적은 여러개 인데,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말씀 하나로 하세요. 일어나 걸어라. 바다야 잠잠하여라. 귀신아 나오라 말씀으로 하셨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오병이어 기적? 죽은 자도 살리시는 나사로의 부활사건? 
십자가 입니다. 오천명을 먹여살리신 이야기이고 나사로는 한명 살리신 일인데 십자가의 일로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러면 십자가의 사건도 여전히 말씀으로 하셨을까요?
빌라도가 질문합니다. 그런데 침묵하시고 아무 말씀도 아니하셨데요.
그 침묵이 가장 큰 기적을 만드셨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 할 때가 있어요. 그때 하나님 한테 말하죠 기도하죠. 하나님 언제까지 해요? 하나님 빨리해주세요. 
그런데 우리는 그 침묵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 침묵이 가장 큰 기적을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되고 그 침묵을 기다릴줄 알아야 돼요.
 
우리가 기도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기도라는 버튼으로 간주 점프 누르는 거에요. 하나님 언제까지 해요?
하나님 빨리 해주세요. 못기다리겠어요. 그런데 간주도 있고 전주도 있어야 음악이 완성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그런 모습하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모습을 더욱더 완전하게 다스려주시려고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해지라는 것, 하나님은 절대 늦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않으세요. 
우리는 믿고 맡기고 기다릴 뿐입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될까요?
잘 기다리는 법은 안 기다리는 거에요.
 
그 기다림의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그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에요.
우리가 우리의 오늘을 어떻게 보내죠?
내일에 대한 걱정과 조급함과 기다리는 시간으로 모든 오늘을 소비할 때가 있잖아요. 더 준비해야 되고 더 연습해야 되고 더 걱정해야 되고 더 조급하느라. 오늘 누려야할 행복이 있고 오늘 누려야할 은혜가 있고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그거 다 놓쳐버리고 오늘의 일상을 내일의 이상에 다 뺏겨 버려요. 그거 하다가 오늘을 끝내요. 다 소비해버려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 이루어지는 그때만 먼저 가셔서 거기에만 계신게 아니잖아요. 지금 내 상황 일상 하루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잖아요. 그때만 의미 있는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오늘 내 삶도 의미가 있고 오늘 내 삶도 은혜가 있고 지금 이때도 모든 때가 다 의미 있는 거에요. 오늘 하나님이 함께 있는 거에요. 
 
한 커플이 마라톤 대회에 나갔는데 남자친구가 정해인 사진을 등에 붙여 놓고 여자 친구 앞에서 뛰었데요. 여자친구가 자기 앞에 있는 정해인 사진을 보면서 순간순간 은헤를 받으며 뛰었을 뿐인데 완주했다는 거에요.
 
우리가 내 일이 언제 이루어지지 내 목표를 바라보면 금방 지쳐요. 결승선만 바라봤다면 금방 지쳤겠죠. 오늘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같이 보내면 잘 기다릴수가 있는거에요. 기다리지 마세요. 그 기다리는 시간을 은혜로 채우세요. 오늘의 온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다 보면 그 두려움이 찾아올 틈이 느껴질 틈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기다리는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보내야만 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다리오 왕이 나 말고 다른 신 섬기면 내가 사자굴에 던지겠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이 제일 먼저 알았을 거에요. 왜냐면 다니엘은 왕 다음으로 높은 총리 였거든요. 그러면 하나님 섬기는 일을 멈췄을까요? 집에가서 전에 하던대로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데요. 반복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던져졌어요. 사자굴에 던져졌어요. 무의미해보이지 않아요? 반복되는 믿음으로 변화가 없었어요. 그러면 다니엘이 죽었을까요? 살았어요. 다리오 왕이 네가 항상 섬기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해요. 항상 섬기던 하나님. 
 
반복적으로 믿고 반복적으로 순종하고 반복적으로 기도했던 그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거야.
다니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미 하셨다는 거에요.
언제요? 반복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데도 계속해서 기도하고 쉼 없이 섬기고 포기하지 않고 믿었을 그때 이미 하나님이 다 계획해 놓으셨다는 거에요.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지만 반복해서 드리는 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믿었던 그 고백들, 헌신들, 순종들, 하나님은 다 잊지않고 모으고 계세요. 모으셨다가 가장 좋은 때에 미리 가보셔서 길을 찾으시고 방법을 찾으셔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미 그러시기로 작정하셨어요. 언제? 우리가 아무 변화없는데도 나아만처럼 끝까지 일곱번 몸을 담그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이미 방법을 찾으신다는 겁니다. 
 
맹인들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그래요. 근데 예수님은 잠깐 멈추세요. 바로 고쳐주시지 않으세요.
잠깐 멈추시고 믿음을 물어보십니다. 고쳐짐을 믿느냐? 믿음대로 될지라.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데려옵니다. 예수님이 바로 고쳐주지 않으세요. 잠깐 멈추세요. 너에게 믿음이 있느냐? 있습니다.
 
잠깐 하나님이 멈추실때가 있어요. 우연처럼 어려움이 찾아와서 잠깐 멈춰야 될 때가 있어요.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너에게 믿음이 있느냐? 계속해서 나를 섬기고 기도하고 나와 같이 살수있는 믿음이 있느냐? 하나님 믿습니다.
 
잠깐 멈추실 때는 완전하게 주신다는 거에요. 그때 우리가 여전히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에게 믿음이 있습니다. 기다림의 믿음이 있습니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같이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에요.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모두 다 완전합니다.
 
그러면 그 완전하신 일이 어디에 드러나요?
내 삶에 드러나잖아요.
그럼 내 삶은 완전한가요? 완전하지 않죠.
완전하면 늘 성공해야 되잖아요. 완전하면 실패하지 않아야 되잖아요. 완전하면 시험보는 대로 다 합격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이 완전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결과 값이 내 삶입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별로 완전해 보이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이때 우리는 내 탓을 해요. 내가 뭔가 잘못이 있나? 내가 뭔가 죄가 있나?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을 해요. 하나님이 완전하시지 않으신건 아닌가? 둘다 아니에요!
 
하나님의 완전함은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완전하신 일, 완전하신 때.
완전하신 일은 완전하신 때에 이루어져요. 우리의 삶이 아직 완전하다고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이시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것 같은 이유는 완전하신 때가 있기 그래요. 그때가 될때까지 완전한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에요.
 
우리는 뭘해야 될까요?
믿음 갖는 거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믿음, 기다리는 거에요. 
일곱번이면 일곱번 그 완전한 때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거에요. 네번이면 네번, 사십일이면 사십일, 사십년이면 사십년, 모든 때가 다 기다리는 거에요. 기다리는 시간 으로 보내는 거에요. 하나님 함께 하는 시간으로.
 
그러면 그 완전한 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나병이 고쳐지는 것에서 그 은혜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업이 장군으로 많은 전쟁을 경험했을까요. 그러면 나병이 걸리기 전 피부는 수많은 흉터로 상처로 가득했겠죠. 그가 원했던 삶은 그때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성경은 어린아이의 살처럼 변했더라. 
그가 이루고 싶었던 필연은 상처와 흉터가 많았던 예전 그 살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아만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계획과 필연은 어린아이의 살처럼 변하는 더 좋은 필연이었어요. 
 
내 계획보다 내가 세웠던 필연보다 더 좋은 계획을 나아만은 기다림의 믿음을 통해서 성취했던 거에요.
 
볼펜 잉크를 언제 다 쓸지 모르지만 언젠간 다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은 필연이에요.
비행기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지만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필연이에요. 

나아만에게 찾아온 그 나병은 우연이지만 그 나병을 고쳐주신다라는 것은 필연이에요.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움이라는 우연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어려움을 하나님이 극복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신다는 것은 필연입니다. 우리에게 난관이 찾아 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이끄셔서 그 난관을 통해 선한 계획을 이뤄주신다는 것은 필연이에요. 
 
삶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답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우연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연약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원망하면서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그 우연처럼 찾아오는 일들에 늘 지고 우리의 필연들 계획들은 우연들에 휩쓸려서 살아갈수 밖에 없겠지만 그 우연과도 같은 일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잘 기다린다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계획고 그 필연들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내 운명이되고 내 사명이 되고 내 필연이 되는 일로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잘 기다리세요. 잘 기다리는 것은 안 기다리는 거에요. 
오늘도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있어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그 은혜를 누리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계획을 필연으로 만드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3ORj1Bc5Qc0?si=5_AGghMHXooPj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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