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있다면
마태 7:21~26
마태복음 7장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중심으로부터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척 하지 마십시오.
악은 필사적으로 피하십시오 선은 필사적으로 붙드십시오.
깊이 사랑하는 좋은 친구들이 되십시오.
기꺼이 서로를 위한 조언이 되어 주십시오.
근데 오늘은 이 모든 말씀들의 종합편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시작하기에 이 한 절 한 절 로마서12장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 속에 실천하기에는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오늘부터 여러분은 저와 같이 우리가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로마서장의 말씀은 아니고 오늘 종합편이기 때문에 오늘 마태복음 7장21절 이하의 말씀
예수님의 관심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생각할 때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쩌면 많아요 수두룩합니다. 세상에도 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지혜가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런 성격의 지혜와는 조금 다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특별히 그 지혜가 언제 드러나느냐?
위기를 만날 때 어려움을 만날 때 환란을 만나게 될 때 그 순간에 그 위기에 처한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지혜로운 사람 지혜롭지 않은 사람 차이가 드러난다는 이야기죠.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듣는것은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이 말씀을 우리가 좀 더 깊이 읽으면 거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이야기죠. 그치면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듣고 행하는 것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듣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렇죠.
한국 교회의 위기를 우리가 잠시 생각해본다면?
여러 가지 어떤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대표적인 이유는 어쩌면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이 사모하는 마음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 마음은 그 스피릿은 우리 교회 안에 정말 많이 있어요. 모든 교회들 안에. 문제는 듣는 것에서 멈추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듣는 것을 너무 너무 사모하기 때문에 듣는 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행하는 쪽 실천하는 쪽에 약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교회에 대한 정의를 우리가 생각해봐도 가르칠 교 모일 회 이렇게 정의를 하고 교회를 이해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에 좀 더 어떤 깊이가 있는 그 말씀에 거기에 이렇게 꽂히기 쉬운 겁니다.
듣고 행해야 되는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듣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내 생활속에서 내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죠.
사람들이 결국 찾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것 암기하는 것 암송하는 거 외우는 것 그 외에도 받아 적는 거 좋아하고요. 깨닫는 거 좋아하고요. 나쁜 건 아니에요. 필요합니다. 중요하죠.
하지만 거기에서 멈춘다면 듣는 것도 의미가 소용이 없겠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어떤 사역이나 그분의 어떤 삶을 우리가 그 복음서를 통해서 살펴 보더라도 예수님은 기적도 행하셨지만 이적도 행하셨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게 크고 대단한 일들만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의 패턴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주 작은 부분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실천에 옮기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 시대의 가장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은 여성들이었고 또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찾아가서 저를 세워주는 격려하는 저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기도하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성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부들을 찾아가서 저들을 위해서 정말 지친 저희들의 어떤 삶 속에서 지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저들을 위해서 아침을 식사를 직접 요리해주고 만들어주는 나누는 그러한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그 외에도 병든 사람들 아픈 사람들 찾아가서 고쳐주고 위로하고 기도해주는 안아주는 그러한 사역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말씀을 잘 많이 암기하고 외우고 기도 열심히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뭐 대표 기도 잘하고 여기에 예수님의 꿈이나 예수님의 어떤 계획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보면은 깊이 있는 걸 정말 찾아요. 깊이 있는 말씀 살아 있는 말씀을 하는 교회들. 좋은 말씀 들어야 돼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면 거기에서 멈춘다면 아무런 의미가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살아내는 것 한 절만이라도 한 절만이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온맘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있는 그 삶의 자리에서 온맘다해서 나의 이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인가요? 아니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 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이라고 하고 그래서 믿음생활이라고 하죠. 나의 신앙과 믿음이 생활로 삶으로 특히나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가슴 아픈 이야기
우리나라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한국 문화의 토양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믿음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죠. 우리나라에 어떤 유교나 불교나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어떻게 보면 정말 이 겉모습 껍데기는 기독교인인데 알맹이는 혼합주의에요. 교회에 다니면서도 점이나 사주 길흉화복을 점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점쟁이들에게 물어보면 그 분들의 고객의 3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점보러 가는 대신에 용한 권사님이나 전도사님께 가서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 이유는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표현하거든요.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주신다.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실제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떤가 말이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꼭 외우고 다니면서 철저히 외우고 다니면서 우리의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샤머니즘의 이해어는 미래의 길흉화복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선지자들의 이해어는 현재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구체적인 혹은 역사적인 혹은 개인적인 상황 속에서 때로는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고요 또 때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삶에 우리 인격의 구체적인 변화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길흉화복을 선지자들이 말하는 경우는 성경 속에서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될까요?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일하실수 있다. 지금 내가 그 분을 만날 수 있다.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보혈의 능력으로 변화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저와 여러분의 초점이 맞춰져야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인격의 변화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모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절 만이라도 실천하기 위해서 말이죠.
기독교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만 자유한 가운데 철저히 의식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또 묵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의지를 만들고 의지는 행동을 낳습니다. 생각이 반복되면 감정을 낳기 마련이죠.
그래서 우리말 중에 이런 말을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 어떤 좀 못된 사람을 만나고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네. 생각하면 할수록 반복하면 할수록 못돼먹었네 괘씸하네. 생각이 거기에 머무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러나 의지적으로 우리가 감정을 누르면 감정은 폭발해버리고 말이죠.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생각을 나의 생각을 돌리는 겁니다. 바꾸는 겁니다. 생각은 그대로 두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정기적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면 생각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됩니다. 묵상을 하면 의식 차원에서 되씹고 그 말씀을 생각될 수 있게 돼요. 그러면 감정이 생기겠죠. 하나님과 관련된 감정이 내 안에도 나에게도 조금씩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처럼 느끼게 되면 나도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싶어집니다. 그분을 닮아가고 싶어집니다. 그분을 흉내내고 싶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묵상의 결과는 순종으로 이어지고 순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원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그냥 더 깊이 있는 말씀 더 조금 더 깨닫고 조금 더 조금 더 외우고 조금 더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듣고 행하는 사람 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역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타난다는 거에요. 사람들이 가치관이 바뀌고 생활패턴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관계가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는 것을 목격할수 있다는 거에요.
변화는 말씀 한 구절이라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때 변화와 역사와 기적이 나타나게 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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