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순교
7명의 헬라파 집사들의 활약
복음 전도 사역을 얼마나 잘 감당하는지
스데반 집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전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논쟁이 생겼는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산해드린 공회에 재판으로 고발을 했습니다. 공정하게 하지않고 처음부터 초대교회를 박해하려는 목적으로 거짓 증인 가짜 증인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말을 다 인용을 했습니다.
이때 스데반이 변론을 해서 자신들의 위선과 악행을 지적하자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기에 이릅니다. 불법재판입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기세를 몰아서 초대교회를 박해하고 견딜수가 없어서 교인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모든 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고 사마리아와 유대땅 이방 땅으로 흩어지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왜?
1.스데반의 책망을 들은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려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회개하고 자복해야되는데 이들은 도리어 분노의 감정을 쏟아 놓았습니다.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다 도리어 증오를 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것을 보았다.
스데반이 왜 하늘을 바라보았을까요? 하늘의 재판관을 바라본, 이땅의 부정한 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뢰의 표시로 하늘을 바라본 것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성 밖으로 끌고 갔습니다. 돌을 던져 죽입니다.
이 죽음의 자리에서 스데반은 두가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순간 무릎을 꿇고 기도한
1.자신의 영혼을 주 예수께 맡기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영혼을 맡겼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보니까 예수님이 우편에 서 계셨다 했습니다.
왜 서 계시나? 스데반의 영혼을 받으시려고
스데반을 영접하려고 예수님이 서 계신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돌이 날라옵니다. 기도를 하는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하늘을 우러러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합니다.
2.유대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지지마소서
예수님처럼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스데반도 이 순간에도 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순간에 굳이 이 기도를 할수있는 이 기도를 드린
이해할수없는 놀라운일이 아닐수없습니다.
왜?
평상시에 성령에 충만하고 늘 칭찬받는 믿음의 일꾼이었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도 성령 충만하여 죽을수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죽어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환난과 시련을 당할때 더욱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아니면 더욱 원망하고 분노하고 이를 갈고 이렇게 살아가고있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큰 화를 당해도 하늘 나라의 소망을 기뻐할수있습니까? 악한자들을 위해 축복기도, 용서할수있습니까?
신앙의 진짜냐 가짜냐는 위기 상황 속에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위기 앞에 서게 되면 적나라하게 우리의 본래 모습을 수준을 드러냅니다.
스데반처럼 늘 성령 충만하기를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의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축언합니다. 스데반처럼 위기를 당해서 그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더 빛을 발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선교사적 의미
근데 왜 스데반은 죽어야했나요?
2장 베드로 설교때는 죄악을 지적했을때는 마음에 찔려 회개의 길을 선택했는데
스데반의 설교에서는 마음이 찔려 스데반을 죽여버렸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의 비판의 공격의 강도가 더 높았던것 유대 지도자들을 더 강하게 책망하고 그 이유는 자신의 목숨보다 복음을 전하는것이 더 중요했기에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 죽을지라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이 일어날것을 그가 확신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12:24
요한복음 12장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스데반은 자신이 주음으로서 더 많은 열매를 맺기위해서 죽음의 길을 선택했던 것
세계 복음의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것입니다.
사탄은 스데반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일을 멈추려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더 열매를 맺으려고 했던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교회 박해를 향한 방아쇠였습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너무 큰 폭력앞에서 또 다른 생존 방법을 찾아야했습니다. 사도들 빼고는 다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자기가 살던 디아스포라 지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이방인 선교의 시작
땅끝까지 이르러 이방인을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것입니다.
3.사도바울의 등장
사울 청년
예수님은 또 다른 위대한 복음의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실패하는것 같아도 결코 실패할수가 훼방을 받을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오히려 악인들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능력있게 이루어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신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너무 절망하거나 슬퍼하거나 낙심하지말기를 바랍니다. 걱정하지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이미 충성된 일꾼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축언합니다. 도리어 내가 한알의 밀알이 되어서 내가 썩으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더 유능한 일꾼을 예비하시고 더 능력있게 퍼져나감을 믿으시길 축언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마지막 장면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가짜 증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데 돌 던지는 사람들이 옷을 벗었는데 그 옷을 보관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스데반의 원수로 등장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그 죽음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됩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으면서 자신을 돌로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 모습을보고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굳이 무릎을 꿇고 굳이 하늘을 쳐다보는 그 모습. 그는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의 사기극으로 알고있었지만 충격을 받은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메섹으로 갈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때 마음속에 음성이 들려옵니다 정말 그때 예수님이 부활했구나 스데반의 그 모습 그말 그 목소리 그것이 진짜였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를 부르시는데 스데반의 그 죽음이 진짜였구나
그 진리가 내게도 임하였구나 음성이 들렸기 때문에 그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사울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사도바울이 됩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때 스데반이 돌로 맞은것처럼 그도 돌로 맞아 쓰러져
그 돌을 맞을때 자기 눈앞에서 돌에 맞아 죽어간 스데반의 모습이 떠오르지않았겠어요.
우리도 매일 성령 충만해지길 간구해야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의미 박해의 의미 우리의 삶의 무의미성 이런것들을 극복할수가 있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스레반의 순교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수있을까요? 그의 죽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슨 보석을 찾을수있을까요?
죽음은 참으로 허무한 억울한 죽음으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엉터리 재판에 억울한 돌로 맞아 죽는 죽음에 무슨 위대함이 있겠습니까. 비참한 가련한 초라한 모습 밖에 발견할수없는 복음을 위한다는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을 위한다는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과연 그 곳에 살아계십니까. 교회도 누구도 그를 위하여 애도하지않았어요. 할수도 없는 장례도 지르지않고 그냥 썪었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그냥 썪는것이지 영화롭게 썪는건 없어요. 보상 칭찬 영광 없어 오직 수치밖에 없어요.
한 알의 밀이 썪어 단 한 생명이라도 구할수있다면 그 죽음은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데 한 영혼을 구할수가 있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 23세 안수를 받고 중국선교사로 상하이로 선교를 가며 아내와 함께 아내가 중국 도착하자마자 죽음으로 마음이 상하여 선교사를 그만두고 그냥 일반직장의 통역사가 된
27세가 되던해 병인양요 직후 평양을 향해 대동강으로 입국합니다
최초의 선교사
박충건에게 성경책은 줍니다.
이영대라는 조카가 이 책을 읽고
평양 장대헌 교회
전도는 한사람이 한사람에게 하는것
킴볼 주일학교 교사 무리 라는 신발닦이 어린이에게 전도한
우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무신론자가 50%넘었어요.
초대교회의 박해의 상황과 다르지않은
참된 진리를 알아야합니다
이세상의 불의한 법정에서 하늘의 법정을 바라보며
이 무의미를 이겨내야합니다. 하나님은 무의미한 죽음처럼 보이는 그 비참한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생명을 예비해주셨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삶 가운데 하나님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한명이 믿음으로 한명이 믿는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썪는다는 이것이 무의미한것이 아니라 가장 의미있는 일임을 말씀대로 살아가는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임을 성령충만하여 살아가는것이 가장의미있는 일이고 존재의 본질이고 목적임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언합니다.
2023.9.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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