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삶의 능력입니다
창세기 35:1~5
창세기 35장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기서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이 공식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곤경에서 회복시키신 후에 그에게 갑질로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여기 곤경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사로잡힘 묶임 포로됨의 의미에요. 회복시켰다라고 하는 말은 묶인 것을 풀어 주셔서 원래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갑절로 부어주시는 복을 묶임을 풀어놓으시고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묶임 사로잡힘이 풀어지는 것이 우리에겐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런 느낌은 왜 생길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은 바람부는 곳입니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바람이 이 세상에 붑니까?
그래서 이 부는 바람을 상대하느라고 나도 모르게 우리는 옷깃을 고쳐 메는 것처럼 우린 생각도 묶어 버리고 마음도 묶어 버리고 저 사람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바람 때문에 우리는 그 관계도 묶어 버린 이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온 세상에는 이 바람이 부는 곳인데 이 바람을 피하여 어디에 우리가 숨어들 것이며 이 세상에 바람이 잦아들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요. 세상은 바람 부는 현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을 세상에 부는 바람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세상에 불어오는 그 바람을 내가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그 세상 바람을 통과할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헤쳐나가고 싶고 그 험한 세파를 뚫고 나가고 싶은데 그 바람을 헤쳐나갈 능력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죠.
이런 우리를 향해서 성경속 믿음의 사람 야곱은 우리에게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도 그랬다. 내 인생에도 참으로 많은 종류의 바람이. 견딜 수 없는 세상의 칼바람이. 내 인생에 시도때도 없이 불어쳤다.
그런데 나는 그 세상에 부는 바람을 벧엘에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예배를 통하여서 그 세상에 부는 바람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나는 얻게 되었다. 예배가 삶의 능력이더라 이것을 야곱은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뭐길래? 예배가 나의 삶에 능력이 될 수 있는가?
첫째로 예배는 내 삶에 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야곱의 인생을 쭉 따라가다 보면 많은 바람들을 야곱이 만나는데
그 세상의 바람 앞에 야곱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벧엘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벧엘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벧엘에서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그의 삶에 묶인 매듭들은 풀려졌고 그 삶의 매듭들이 풀려지니까 야곱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복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 현장들을 같이 들여다볼텐데
야곱의 인생에 첫 번째 등장한 벧엘은 창세기 28장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아야 될 장자의 축복을 자신의 모략으로 야곱이 찬탈하지요. 그리고 형 에서가 칼을 들고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생존을 위해 도망을 치는데 그 도망 길에 한 들판에서 야곱은 밤을 만나고 거기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을 만나게 돼요. 그 하나님을 만나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불안과 두려움에 흔들리던 야곱의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고 야곱의 흔들리던 삶이 중심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정합니다.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을 만나니까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 삶에 안정된 균형을 잡게 되는구나. 그래서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정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또 한 번 하나님을 예배하게 돼요.
창세기 28장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 두려움은 지금 야곱이 가지고 있던 그 두려움과는 다른 두려움이에요.
하나님의 의미하심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가지는 긴장감 입니다.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돌을 베고 잤습니다.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서럽고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돌을 베고 잤는데 일어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을 예배 했다.
이때의 이 기름은 여행자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기름으로 양식을 바꿔서 사기도 하고 상처난 곳에 바르기도 하고 비상용 약으로 삼았던 거죠.
하나님을 만나자 그 기름을 붓고 제사를 지냅니다. 내가 의지할 것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내 삶을 평안과 안정의 자리로 이끌 것은 기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뭘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내 삶에 균형추가 되는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표시 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직진합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서 야곱은 또 다른 세상의 칼바람을 만납니다.
외삼촌은 자기집으로 피신하여 들어온 조카를 속이고 조카는 그 집에 들어가 삼촌을 속이면서 서로가 누가 잘 속이느냐 속임 배틀을 하면서 야곱은 외삼촌의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야곱은 삼촌과 그 삼촌의 자식들 간의 갈등과 다툼에 휘말리게 됩니다.
야곱의 삶은 또 불안정해졌습니다. 안정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내가 속인 것을 내어 놓을까? 아니면 이 속인 것을 가지고 도망을 갈까? 이 집에 그저 머물러 있을까?
여러 번민과 갈등을 느끼고 있을 그 때에 어김없이 하나님이 또 등장하십니다.
창세기 31장
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뭔가를 기억시키죠.
그러자 야곱은 그 갈등하고 다툼에 휘말리는 자리를 벗어나게 되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방향을 잡은 것이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 가는 길에 뜻밖에 에서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에서의 죽이려고 칼날을 피하여 화해를 하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이 되어졌다는 것이지요. 벧엘이 이런 곳입니다. 예배가 이런 것입니다.
그 후에 야곱은 세겜 땅에 가서 거주하게 되는데 거기서 또 인생의 세상 바람을 만납니다.
거기서 자기의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땅 주장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 바람 앞에 야곱은 또다시 흔들립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혼인을 합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 시몬과 레위가 이 사실을 알고 세겜 족속에게 보복합니다.
인간의 계획은 세상 바람을 잠재울수 없었어요. 더큰 폭풍이 야곱을 향해서 몰아 칩니다.
그때 세겜 사람들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야곱의 가문을 멸하려 공격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등장하세요. 또 벧엘을 말씀합니다. 또 거기서 제사 지낼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공식은 진리는 똑같았습니다.
창세기 35장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의 인생의 바람이 불어칠때마다 비틀거리고 흔들거릴때마다 벧엘을 언급하시고 제사를 가르치십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그 흔들리던 삶에 중심을 잡게 됩니다.
벧엘에서의 예배는 흔들리는 인생의 균형추다. 예배는 세상 바람에서 우리로 하여금 중심을 잡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신앙과 이 세상 사이에서 비틀거릴 때 나도 모르게 신앙으로 돌렸다가 세상으로 쏠렸다 내 삶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할 때 예배는 우리에게 중심을 잡게 만들어줍니다.
예배에 이런 의미에서 목숨을 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내 삶의 원동력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면 이리 비틀거리고 저리 비틀거리고 신앙과 불신앙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추적해 보면 결코 야곱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틀 그렸다가 중심을 잡고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나고 그러던 야곱의 인생이 저 끝자락에서는 엄청나게 달라져요.
자식들을 품어 안고 그 족속을 품어 안고 하염없이 축복하다 하염없이 그들에게 신앙을 쏟아 붓는 멋진 영감님으로 회생의 마침표 찍습니다.
어떻게 야곱은 이렇게 비틀거렸지만 중심을 잡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그 인생을 그렇게 멋있게 최후의 승리자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삶의 원동력이 예배 였습니다.
창세기 28장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더라 그 말은 우리의 예배를 열심히 받아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고 있다는 표현이에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표현하고 있는 거죠.
이것은 예배의 체험입니다.
창세기 28장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만족과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야곱이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죠.
처량한 도망자 불안에 사로잡힌 도망자가 예배를 경험하고 나니까 꿈을 꾸는자 희망을 가진 자 내일을 기대하는 자 서글픈 인생이 아니라 활력을 가진 인생으로 야곱의 삶이 바뀌어지고 맙니다.
창세기 29장
1.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이 야곱의 뒷모습은 절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이 아니에요.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기다리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34장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야곱의 아들들이 세 남자들을 죽였어요. 그것이 바람을 잠재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 더 큰 바람이 불어 옵니다.
창세기 35장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하매
야곱이 벌떡 일어나서 그리고 가족들을 향해 말하면서 일어나라 벧엘로 가자
하나님이 야곱에게 기억되는 벧엘 입니다. 잊고 살았던 하나님이 벧엘을 떠올리자 예배를 떠올리자 그 하나님이 지금 소환되고 있는 거지요.
하나님은 살아계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 그때도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도우셨지. 그 하나님은 벧엘에서 예배하는 나를 지금도 도우실 수 있어. 그래서 가족들을 일깨워 세웁니다. 가자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세기 35장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벧엘에서 제사를 향하여 길을 떠나니까 사면 골이 두려워 뜹니다.
예배가 삶의 원동력이 맞단 말이죠.
세번째 예배는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에 고비 고비마다 나타나셔서 야곱아 벧엘이다 야곱아 벧엘로 가야 돼 거기서 제사 해야 돼라고 일러주지 않습니까.
일어나라 벧엘로 가라. 거기서 제사를 지내라.
그럴때 야곱의 반응?
창세기 35장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예배하는 사람이었어요. 야곱은 위태로울 때마다 그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섰던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 했지만 여전히 이방 신상을 품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불신앙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현 주소요 어쩌면 우리의 현 주소 일지도 모릅니다. 야곱이 벧엘를 떠올리자 제사를 생각하자 자신의 위치를 안 거지.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아는 거지.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된거죠.
그리고 이어지는
창세기 35장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지금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굉장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겁니다.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을 텐데 굳이 상수리나무 아래 묻느냐? 굳이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길을 떠났다.
상수리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혼흠하고 매흠했던 요즘 말로 쉽게 바꾸면 집창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영적으로도 신앙인이 아니었어요. 이방 신상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어요. 신앙인인 것 같은데 신앙인이 아니었어요. 윤리적으로 육신적으로도 이들은 자신들의 향락과 쾌락을 위해 살았어요. 신앙인인데 신앙인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드러나느냐?
벧엘로 올라가니까 예배를 붙잡으니까 이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보게 되고 자신의 위치를 보게 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내 인생에 나침반입니다.
예배가 내 삶의 나침반이다.
내가 예배에 실패하면 우린 자신을 몰라요. 내가 지금 누군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를 몰라요.
예배에 실패하면 방향을 모릅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게 이게 옳은 일인지 옳은 일인지 틀린 길인지 몰라요. 헤맬수 밖에 없어요.
예배는 나를 위한 나침반이요. 예배는 내 삶의 삶에 원동력이요.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예배자다운 예배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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