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연장의 기도
열하20:1~7
열왕기하 20장
스위스 의사 토르니예
인생에는 사계절이 있다. 태어나서 20살까지 인생의 봄으로 보고 40살까지는 인생의 여름이고 60세까지는 인생의 가을이고 그때 부터 죽을때까지 인생의 겨울이라.
우리 인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연의 세계처럼 그렇게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춥고 삭막한 인생의 겨울이 꼭 가을 뒤에만 오는것은 아니라 언제든지 올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와서는 절망과 아픔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을때가 있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만날 때마다 꼭 기억해야 될 진리는 절망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 누구도 절망을 겪지 않고 인생을 살수없고 절망을 피해갈수도 없고 언제든지 커다란 산처럼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절망은 없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단 하나님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죠. 하나님 안에서 절망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고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망은 앞모습만 보일 뿐 그 뒷모습은 없습니다. 앞에서는 엄청난 절망이라도 싸워 이기고 나면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거죠.
절망의 큰 산앞에 눌려있는 사람 히스기야, 병이 들어 병상에 눕게되었습니다. 이사야가 찾아와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이 병이 절망이 되더라는 겁니다. 히스기야의 절망이 찾아온 것이죠. 이길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큰 장벽 앞에 서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이러하듯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분명히 극복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절망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마가복음 9장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앞에 절망이 왔을 때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큰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시간에 절망 앞에 선 분들이 있다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 무엇을 주시든지
히스기야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힘을 내고 다시 소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뜻을 돌이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자녀가 절망에 기도하면 그냥 두지 아니 하시고 그 뜻을 돌이켜 응답하는 분이죠.
히스기야는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 채 이르기전에 불러 말씀하시죠.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뜻이라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돌이키시는 분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죽음을 삶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돌리키며 문제를 디딤돌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죠.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고 잘났어도 기회가 주어지지않으면 자신의 꿈을 펼칠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내가 아무리 그 자리에 앉고싶어도 큰 일을 하고싶어도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백성을 다스릴수 있는 기회를 연장해주셨어요.
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곧 죽어야 될 사람에게 무려 15년의 시간을 연장시켜 기회를 주셨다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면 절망 속에서 기회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절망의 바구니에 축복의 선물을 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뜻을 돌이키시는 것만이 아니죠. 기회를 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에 더해서 확실한 축복의 약속을 주시고 우리의 그릇을 넘치게 하신다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돌리심으로 15년을 더 산다고 해도 매번 앗수르의 횡포에 시달림을 당하면 생명이 연장된 의미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예 그것까지 함께 약속해 주시는 것이죠.
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히스기야가 병상에서 기도한 내용에 앗수르까지 처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이 연장된 것이 의미가 있게 하시려고 앗수르까지 이참에 손대어 주시겠다 약속하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세밀하신 분이시죠. 철망 앞에서 오히려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돌이키시고 기회를 주시며 거기에 더하여 축복의 약속까지 담아 주시는 분이다라고 하는 것을 꼭 믿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였습니다. 사람은 절망의 감정에 휩싸이기 쉽죠. 사용선고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들었으니 다 포기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이니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 볼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반문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고생하다 죽어야 되느냐 억울해하지 않죠. 또 이사야에게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벽을 향하여 자신의 낯을 돌리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기 시작했죠. 사람을 보지 않았다는 얘기죠. 심지어 하나님의 선지자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문제나 절망을 바라보지않고 코 앞에 닥친 죽음도 생각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면서 응답해준 겁니다. 내가 하나님만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주목하시죠. 그러니 기도에 무릎 꿇을 때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히스기야의 기도는 진심이 담긴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이죠.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담겨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통곡 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도에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 된다라고 말이죠.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거짓이 없어야 됩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부끄러운 부끄러운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없는 대로 내 모습 그대로 벌거벗은 심정으로 기도해야 된다라고 말씀이죠. 그 진실함이 하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이 시간 진실한 마음으로 한의 만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인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답한 마음 그대로 울고 싶은 마음 그대로 아버지 앞에 아뢸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이 안고있는 절망의 바구니에 기회와 축복의 약속을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믿음의 기대를 갖고 항상 살아갈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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