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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말씀

나사로 요한복음 12:12

by diane + 202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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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
요한12:11
요한복음 12장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가정은 한 사람의 평생이 머무는 곳이 바로 가 정입니다. 가정에서 태어나고 가정에서 성장하고 그리고 그 인생의 마지막 죽음도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떠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가정은 한 사람의 인생의 울타리입니다. 이 속에서 희노애락이 다 존재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굉장히 소중한 것입니다.

가정은 한 사람의 인생의 울타리가 될 뿐만 아니라 또 가정은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가정에서 벌거벗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꾸밈이 필요 없고 가정에서는 가식도 또 체면도 필요가 없지요. 가정에서 모든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의 허물도 다 토해낼수 있는 곳 그 가정에서는 마음껏 울수 있습니다. 내 허물도 수치도 다 내어놓고 함께 울어줄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이세상을 살면서 가장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우리의 삶 전부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지요. 내 인생의 시간을 다 써도 아깝지 않고 내가 가진 소유를 다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내 수고를 계산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직장이나 다른 일터에서는 우리가 조금 더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에 대한 우리가 수당도 요구하고 어떻게 하든지 퇴근 시간이 잘 지켜지기를 요구하고 계산적으로 살지만 가정 만큼은 그런 모든 또 인간의 이해타산이 사라져버리는 곳이 가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우리의 인생에 무한한 가치를 가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족에게 서로에게 바라는 이 소망이, 그 바램이 나사로에게 다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 나사로
굉장히 감격하고 우리가 불러야 될 이름 그리고 감탄하면서 기억해야 될 그 인물이 바로 나사로 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감사의 잔치요 축하의 잔치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예수에 의해서 다시 살림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감격 때문에 잔치를.
요한복음 12장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그래서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잔치를 벌이는 거죠.
요한복음 12장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그래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았다고 하는것 때문에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잔치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마땅히 이 잔치의 기쁨이 예수께 드려져야 되고 이 잔치가 예수께 감사하는 의미의 잔치 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잔치의 장면이 1절에서 9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잔치의 장면에서는 나사로는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사로는 언제 등장을 하느냐?
요한복음 12장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나사로의 등장은 이 잔치와 별개로 이 잔치의 후기에 등장을 해요.  
나사로도 나사로까지 나사로 때문에 이 장면에서 나사로를 주목하려 합니다.

어떤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가? 이 나사로를 통하여 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첫째로 여기서 표현되어지고 있는 이 나사로는 어떤 인물인가? 나사로는 매력 있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사람들이 잔칫집에 왜 왔느냐? 나사로를 보기 위해.
원래부터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나사로는 비호감적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 잔치가 일어난 그 현장이 어디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동일한 사건인데
이게 도대체 누구의 집에서 이 잔치가 베풀어졌을까? 이것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를 만났을 때 이미 이들에겐 부모가 없는 가족으로 우리가 만났어요. 그리고 지금 이 잔치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은 누구인가? 나사로의 아버지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 시몬이 나사로의 아버지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거죠.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예수를 영접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사로는 병들어 죽었고 예수에 의해 나사로는 다시 살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나사로의 집안 어떤 가문이에요?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호감있고 관심이 있고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그런 가문 가정이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싶어하는 가정일까요? 이 당시 문화적 환경은 나병은 천형으로 여겨지던 때였어요. 그래 사람들이 거주하는 그 동네 한복판에서 이들은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호감이 갈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람들이 그 나사로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집니다 그 나사로에 대하여서 궁금함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나사로를 보고 싶어합니다. 나사로 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로 지금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나사로에 대한 호감도를 상승시키게 만든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매력이 있는 사람, 비호감적인 존재였으나 사람들의 호감을 가지는 존재, 이 나사로는 예수로 인해서 팔자가 고쳐진 매력남이었던 것이죠.

우리도 원래 매력없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도 원래 죽은자였어요. 갖다 버려야되는 존잰데 그 인생이 호감있는 인생으로 바뀌었던 거죠.

에베소서 2장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가 어떤 존재였느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더러운 존재였고 냄새 나는 존재였고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우리들이 얻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다시 산자가 되었어요. 우리도 원래 죽은 자였는데
에베소서 2장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러면 우리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이유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 존재, 사람들에게 매력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매력은 남을 호리는 것과는 달라요.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우리의 가족들이 엄마가 보고 싶어,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 우리가 세상을 떠나버린 후에도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면서 아버지가 보고 싶어,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자식을 보면서도 내 자식이지만 참 예쁘다 내 자식이지만 참 멋지다 참 착하다 참 대견하다 참 훌륭하다 보고 싶다 그런 자식이 돼야 되지 않겠어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 모두가 이런 매력 있는 나사로가 여러분 가정에서 이 교회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사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둘째로 나사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사로는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다는 걸 보면 나사로 아닌 또 누구도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지요.
요한복음 11장
53. 이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예수와 나사로는 한 편이다. 예수와 나사로는 한통속이다. 예수를 죽여야 돼. 그런데 보니까 나 사로도 죽여야 돼. 나사로는 예수와 동급으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나사로는 예수와 동급으로 지금 확실하게 인식이 되고 있는 거죠.

세상은 나사로를 보고 예수와 똑같이 죽여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나사로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최고의 영광이요 최고의 자랑입니다. 왜냐하면 허물지고 추한 나를 예수와 동등하게 인식해주고 있으니까. 예수께 속한자로.
요한일서 3장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게 되어있어요. 예수와 한편 먹은 사람들을. 왜냐하면 그들과 가치관이 다르고 그들과 삶의 방식이 다르고 삶의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삶의 목적과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와 한 편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이건 그리스도인에겐 최고의 칭찬이오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한다 탈곡 한다.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분해 내는 거죠.
세상은 탈곡 장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환란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 죽여야 돼 그런데 나사로도 죽여야 돼. 현상적으로는 무서운 이야기고 현상적으로는 정말 불행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리도인의 입장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시각에서는 네가 나하고 한편이구나. 세상이 너와 내가 한편 먹었다고 인정할 만큼 너는 진짜구나.

원래 그리스도인 크리스천라고 하는 말은 조롱하는 말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에요. 크리스티아누스라고 하는 말은 크리스토 그리스도라고 하는 말과 양의 새끼 짐승의 새끼라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예요. 그래서 크리스티아누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죠. 저 사람은 예수새끼야, 저 사람은 예수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이야, 저 사람은 예수를 쏙 빼닮은 사람이야,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저 사람은 진짜 리얼 크리스천이야 진짜 예수쟁이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조롱하면서 말하지만 그들은 놀리려고 말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기면서 말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칭찬이 없고 이것만큼 영광스러움이 없는 거죠.

나사로는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
도대체 정체성이 뭔지 예수 믿는 사람인지 예수 안 믿는 사람인지 세상 사람인지 천국사람인치,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인생 잘 못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가짜가 지금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다 가짜 하나씩은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귀걸이는 가짜를 해도 괜찮고 옷도 가짜를 입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만큼은 가짜가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두려워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고 살죠. 그래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교회에서는 예수 편먹고 교회 밖에 나가면 세상 하고 한편 먹는 것이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재주요  기술이요 비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 5장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이 땅에서의 모든 환란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천국에서 상급으로 바뀌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나사로가 되어야 돼요. 우리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진짜 그리스인이야. 우리의 자식들이 우리를 보면서 우리 부모만큼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아. 이럴 수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그래 니가 나보다 낫다. 애비는 가짜로 살았는데 이는 진짜 믿음의 사람이 맞구나. 우리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나사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사로는 닮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요한복음 12장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왜 나사로 때문에 예수를 믿었을까요?
나도 나사로처럼 살고 싶어. 그러니까 나사로는 지금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이 땅을 우리가 살면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두 종류의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요. 선한 영향을 끼치든지 악한 영향력을 끼치든지 어느 하나의 영향력은 반드시 끼치며 삽니다.
반드시 냄새를 피우게 되어 있어요. 악한 냄새를 비우거나 선한 냄새를 피우거나 반드시 우리는 이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닮고 싶어합니다.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흉내 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함께 하기 싫어하죠.

우리가 이 땅을 살다 가면 우리가 남긴 살아간 우리 인생의 발자국이 이런 영향력으로 분명히 남게 돼요. 누군가 나를 닮고 싶어 한다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따라 하고 싶어 한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나에게 영향을 받고 그 인생이 새로워진다고 하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모여있으면 반드시 이런 두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는 편을 짜고 말을 하고 모사스러운 그런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그 모임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이런 인물이 반드시 있죠.

여러분 주변에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한번 가정주일에 우리를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사로 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나를 담고 싶어 하는가?
이런 이야기 가끔 듣지요. 훗날 자식들이 잘 돼가지고도 그 부모를 이야기할 때 우리 아버지는 일자무식의 농부였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우리 아버지의 그 영향력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어요. 누가 그 아이들을 욕합니까? 누가 그 애비를 무시하다고 말합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가족이 어떤 사람 되기를 원합니까? 나사로 처럼 닮고 싶은 사람 이런 영향력이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떠난 다음에 남아 있는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 형님 때문에 내가 인간됐어 내 동생 때문에 내가 그래도 우리 집 안의 체면을 살리고 있어 이런 소리 들어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 엄마는 자식 밥 한번 제대로 차려주는 적이 없고 늘 자기 손에 매니큐어 바르고 머리에 뽕 넣고 밖으로 돌아다니고 춤추러 다니고 그랬다면 그 어마이는 실패한 어머니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손톱에 한 번 칠하는 걸 못 봤고 우리 어머니는 제대로 된 티셔츠 바지 한 벌 없었지만 우리 어머니는 우리가 닮고 싶은 모델이었어. 그러면 그 어머니는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매력 있는 사람,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는 사람,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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