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리 찬양하리 주께 영광 돌리어라
우리 주 죄사하셨네
마태복음 6장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의 나라를 가장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 모든 영역에 적용된 명령이며 이 명령의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해요. 나중에 할게요. 좀 기다려주시면 안 되나요. 그러나 이 말씀에 온 삶을 던진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십시오. 그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구함으로 가능해집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한 절도 놓치지 말고 집요하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고 물으십시오. 창조 세계를 보거나 시련을 당할 때 그리고 오는 당신에게 사랑하라고 보내 주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끊질기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당신은 마음과 뜻 힘을 다해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는 일은 평생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주님 나는 지금 지치고 나태해졌습니다. 그러나 네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더 열심히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나를 도우소서.
저 겟세마네 기도를 늘 기억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의 은혜로 날 인도하소서
나는 사랑을 위해 계획되고 창조되었기에 나의 모든 판단과 열망과 생각과 말과 행동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나를 붙드네 나를 붙드네 사랑하는 나의 주
우리 구주 아니면 서지 못하네 나의 사랑 식을때에 주 날 붙드네
십자가 십자가
오늘 믿고서 내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나를 잊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모든 순간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성전이라 하셨으니 성전답게 거룩하기 원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예수님. 내 안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쫓아주소서. 돈은 필요하지만 돈을 목적으로 살지 않게 하소서. 돈이 아닌 아버지께서 주인이신 온전한 성전되게 하소서. 자신의 편리와 사리사욕을 따라 성전을 더럽힌 자들처럼 오늘 나의 편리 때문에 신앙을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 고난을 감수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나를 내려놓는 하루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빌립보서 4장
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십자가를 질수있나 주가 물어보실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 받은 강도를 그가 회개하였을때 낙원 허락받았다 걱정 근심 너를 둘러 덮을 때 주께 네영 맡기겠나 최후승리 믿으며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누23:43
누가복음 23장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이죠. 진실로 회개한 자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그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를 구원하시려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귀한 하루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 참혹한 십자가에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흘린 피
날 구원하셨네
창조의 주 구원의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과 육의 생명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에게 허락하신 하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값지게 사용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오늘도 저희들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주셔서 최상의 판단과 결정되게 하옵소서. 모든 일을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할 수 있는 은혜와 복이 큰 강을 이루게 하셔서 가정과 이웃과 사회와 열방에 전해지게 하시고 나누어지게 하옵소서. 오늘 저희들의 모든 언행을 통해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끝까지 함께 했던 여인들
마태27:50~56 28:1~10
마태복음 27장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태복음 28장
1.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는 보물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현장에 있었고 마리아는 행동을 통해서 믿음을 증명했던 사람들이다라고 볼 수가 있죠.
우리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공수표를 날렸던 베드로를 기억합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인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베드로는 새벽이 오기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떠났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에 베드로가 없었죠. 그의 결심은 입술에만 머물렀고 헌신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디에 있었는지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드로는 그 시간에 자기가 있어야 될 자리 없었다라는 거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것이 헌신입니다. 그러니까 왜 들어오는 분명히 현실을 약속했죠.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베드로는 없었다라는 겁니다. 그것으로 베드로의 헌신은 거짓이 되고 말았다라고 하는 거죠.
헌신은?
헌신은 주님과 함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 함께 머물고 가시는 곳으로 함께 가고 하시는 일을 함께하는 것이 헌신의 기초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교육하고 훈련시켰을까요. 밤에는 가정으로 돌아가게 했다가 낮에만 소집해서 교육을 하고 특별한 때에만 잠시 합숙하면서 했어도 됐을텐데 예수님은 가정을 버리게 하시면서까지 3년 동안 함께 먹고 자고 행동하게 하셨던 그 이유가 뭘까요?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식은 넣을수있겠지만 헌신은 훈련시킬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을 함께하는 교육과 훈련의 방식을 택하셨죠. 헌신은 쉽게 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신하기로 결단했다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부터 배울 수 있어야겠죠. 기도의 시간이 즐거워야 됩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또 말씀을 듣고 배우는 시간이 즐거워야 되죠. 주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 이곳에 계신다면 어디를 즐겨찾으실까 생각하면서 나도 그곳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아픔을 싸매주고 어려운 이들을 도우고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던질수있는 그 믿음의 마음들이 우리에게 있어야한다 는 거죠.
두 번째는 헌신은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3년이나 헌신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에 있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에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연약했던 여인들이 함께 했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들의 이름이 56절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였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 외에도 많은 여인들이 쫓아 왔지만 핵심의 인물은 이 세 명의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서 만신창이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던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능력의 말씀으로 치유를 받은 후부터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삶을 여전히 살고 있었을 것이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버릴 수 없었다라는 겁니다.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의 어머니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를 말씀하고 있죠. 이 여인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집을 초대교회 성도들의 집회 장소로 드려졌던 여인입니다. 사도행전의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의 획을 긋는 아주 중요한 성령 강림의 사건인데 그 기적의 역사가 바로 이 여인의 집에서 일어났다라고 하는 거죠.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근데 여인들은 강합니다. 지금 이 여인들은 당시에는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었던 시대의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들보다 약한 존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시대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주님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여인의 마음은 골고다에서 끝나지 않고 마태28장
죽음을 부활로 받는 자리에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자리에 심판을 영생으로 돌려놓는 순간에 바로 이 여인들이 선봉에 섰다라는 겁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것 이것이 바로 헌신이다 라고 하는겁니다.
세 번째로는 헌신은 은혜로 가는 필수 과정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할 수 있을 만합니다.
무덤으로 갔던 여인들은 천사를 만나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부활하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만나 뵙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죠. 그리고 주님의 말을 붙잡고 경배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헌신은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그 그릇의 크기 만큼 믿음의 성도들은 은혜를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던 여인들은 그 헌신의 그릇에 벅차도록 은혜를 누렸습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여인들의 헌신을 통해 나타났던 놀라운 주님의 능력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헌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 헌신이고 그 헌신은 은혜로 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우리가 늘 삶 가운데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내 삶 가운데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마음속에 담고 그 일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행하며 살아갈 때 내 인생의 삶이 그리스도의 생각지 않은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 귀한 사람들이 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수있는 복있는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헌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님만 나의 보배 삼겠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 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이사야7:10~8:8
이사야 7장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23.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이사야 8장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 하소서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 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 하소서 이전에 나를 인도 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준령 만날 때에 도우소서 밤지나고 저 밝을때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오늘이 고난주간 세족 목요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며 섬김의 도리를 가르쳐주신 날이지요. 요한복음 13장 15절에 이름 말씀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생애는 온통 본을 보이는 삶이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 섬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고 생각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세족 목요일 기도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나의 모든 행동이 본이 되고 그것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이 시간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로우신 주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세상 고비 모든 영화
오 갈보리 오 갈보리 주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보배로우신 나의 주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줄 알고 븨디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마음을 버리네
못박힌 손발 보오니 큰 사랑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아멘
나의 관객은 누구인가
로14:8
로마서 14장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바흐 호프는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코메디 공연을 한 배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유흥업소에서 싸구려 소재로 소비되던 코미디를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코미디로 탈바꿈시키는 사람으로는 코미디의 창 시자로 불립니다. 바흐 호프는 30년 이상의 전성기를 누렸고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호프처럼 미국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 사람은 없었기에 역사상 최고의 미국인을 뽑는 투표에서도 그는 언제나 상위권에 들 정도로 미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은 호프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계속해서 코미디 쇼를 진행했습니다. 10년 20년도 아닌 무료 50년 동안 쉬지않고 공연한 바흐 호프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혹시 이제 좀 쉴 계획은 없으십니까. 전망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시면며 낚시를 즐기 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 질문에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낚시를 며번이나 가도 물고기들은 박수를 쳐주지 않더군요. 저는 관객의 박수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호프를 통해 많은 미국인이 즐거움을 얻었지만 호프 역시 그 박수로 인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누구를 향해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세상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의 기쁨과 인정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복되고 형통합니다 아멘.
주님 사람이 아닌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목표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왠말인가 날 위하여
왠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박히셨으니 왠일인가 왜 그랬나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와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거기 너 있었는가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때 오 떨려 그 일로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나무 위에 달릴때 오 떨려 그 일로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무덤에서 나올때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그때에
믿게 하려함이라
요한11:7~16
요한복음 11장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이라는 글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들판에 있는 풀꽃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면서 눈길을 하나 주지 않는 풀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것처럼 사람들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나 그 풀꽃도 오래 들여다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쁘다는 거죠. 별것 아닌것 같아보여도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의미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쉽게 그냥 교회 다니는 것 정도로 생각해버리면 신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내가 살아가는 내 삶에 별로 의미가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하지요. 그래서 예상스럽게 던져놓다가 우리 어떤 내 삶에 아주 위기가 찾아오거나 중대한 시간이 찾아오게 되면 우리는 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둘춰보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에겐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이라고 하는 것 그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래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것이 그렇게 쉽고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에 눈이 뜨여지고 믿음이 이해가 되고 믿음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신앙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교회도 마친가지죠. 그저 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세요 그런 하나의 종교 집단처럼 쉽게 생각을 해버릴수 있어요. 교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주의 깊게 살피면 교회를 오래 보면 교회가 사랑스러워집니다. 얼마나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깨닫게 되어 집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잎니다. 66권 한권의 책 별로 읽어도 재미도 없는 책 읽어봐도 내용도 그렇게 잘 이해가 쉽지 않은 책 그래서 나와는 의미가 없고 상관이 없는 책으로 치부할수있지만 오래 깊이 보면 그 속에 믿음이 보이고 그 속에 영생이 담겨져 있고 그 속에 영원한 이 구원의 삶이 성경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돼요.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되는지도 알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구원에 비결이 믿음이 왜 필요하며 믿음이 무엇인지 믿어야할 이유와 목적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럼 예수님이 믿게 하려 하셨던 그 믿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믿음의 의미와 성격은 무언가? 이것을 오늘 배우려합니다.
첫째는 믿음은 앎. 믿음은 아는 것이다. 예수를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게 하려 하신다라고 말씀할 때 그들이 예수를 아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셨어요.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이 그리고 죽은 나사로의 남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대표적으로 등장을 하고 있지요. 이들을 주목해서 보면 이들이 예수를 잘 모르고있어요.
먼저 제자들을 좀 우리가 살펴봐야 될 텐데 제자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라 나서서 예수를 위해 그의 인생을 걸어 버린 자들 예수께 올인한 자들이 제자들. 예수와 함께 예수님이 행했던 이사역들을 행하고 있는자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잘 몰라요.
요한복음 11장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께서 지금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나사로는 잠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서 깨우면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네요 하는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예수님께는 죽은 거나 자는 거라 일반인 그 의미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데
제자들은 예수가 죽은자를 잠든 것처럼 깨울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예수님께서 죽었으니까 가자 내가 다시 살릴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죽은 것이 자는 것과 같은 거야 내게는 이 말씀을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이건 이제 비아냥거림입니다. 예수님 그 말씀을 하시니까 다른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여기서 살리러 가자고 하는데 죽으러 가자고하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8절 때문에 그렇죠.
지금 상황이 주변 상황이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이런 상황이니까.
근데 이건 제자들만 이런 것은 아닌 마리아 마르다도.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시종일관 동일한 겁니다.
죽은 게 아니라 자는 거야 내가 깨우면 되는거야 아니 진짜장담에 아니야 죽었어 내 말은 죽었는데도 그랬더니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도 예수님이 지금 죽은 자를 살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거죠.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있지 않습니까? 진짠가 봐. 주님이 그럴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지금 무덤 앞에 와서 돌 문을 열으라고 하니까 진짜 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데 그런데?
주님 벌써 나흘이 되어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의 부활의 능력도 몰랐고
또 그들을 향해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몰랐고 예수님은 미래에만 죽은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믿음이 작동되면 예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거죠. 지금도 도움이 되고 지금 내 문제에 개입하시면 예수님께서 죽은자를 살리듯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지금 모르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를 잘 모르는 이런 모름에서 믿음을 논할수 있습니까? 예술을 이렇게 잘 모르는데 여기에서 믿음을 말할 수 있느냐?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를 아는 이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지금 사건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겁니다.
믿음이란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데 지금 믿음을 논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될 이유는?
호세아 4장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은?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성도가 무너지는 이유? 성도가 믿음의 삶에서 실패하는 이유? 하나님을 아는지식, 하나님에 대한 앎이 없으면 그래서
호세아 6장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아야 믿음의 삶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알아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현 주소는 지금 어디입니까? 예수를 아는 믿음을 가지는 데까지 자라갑시다. 어떻게? 예수를 알 수 있느냐?
로마서 10장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듣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믿음은 예수를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믿음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에요.
따름이라는 것은 의존 명사입니다. 절대 의존을 오직 그것 뿐 그 이상도 아닌 그 이하도 아닌 오직 그거. 이것도 저것도 할수있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거지.
절대 의존 일 뿐만 아니라 이 절대 의존인 이 따름은 전적수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내가 뭘 보태지도 않고 내가 뭘 빼지도 않는 그 자체 그대로를 전적으로 전부다 수용 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예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바로 믿음.
그러니까 이따름의 다른 말은 신뢰 입니다. 신뢰의 또 다른 말은 믿음입니다. 여기 제자들과 예수님이 사랑했던 이 자매들의 현재를 보십시오.
요한복음 11장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이틀을 더 유한데도 생각이 있으실 것이고 이틀을 더 유한데도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또 가자 하니 가자 하는데도 무슨 목적과 뜻과 계획이 있을거야 하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이 제자들의 반응,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주님 지금은 갈 때가 아니요 몰라요 돌들고 쳐 죽이려하는데
자기들의 생각과 판단을 주님의 말씀보다 앞에 세우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따를수가 없는 거에요.
14절 15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주님의 말씀 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도 자기들의 판단, 자기들의 생각으로 끌려가고 있는 겁니다.
따름과 끌려감의 차이를 아십니까?
따르는 것은 전적으로 수용하는것 그리고 자발적이에요. 끌려가는 것은 억지수용이고 마지못해 지금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따라가는 자들에겐 기쁨이 있고 기대가 있고 근데 끌려가는 자에게는 불만이 있고 불평이 있고 마지 못한 표현들만 남게 되는것이죠.
자매들도 마르다와 마리아 이들도 예수님이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사랑했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들도 지금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거죠.
이들은 예술을 믿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요한복음 11장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너는 나를 따라오면 기쁨을 얻는데
이런 제자들 이런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를 따름으로 그래서 수용과 실행 절대적인 신뢰를 가진 그런 믿음으로 주님이 성장시키려고 믿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믿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할 때 도대체 어떤 믿음을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 소통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주님과의 소통을 말합니다. 신앙은 신과 인간이 소통합니다. 신과 인간의 그 소통의 수단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요한복음 11장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지금 이게 통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말은 주고 받고 있는데
요한복음 11장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그 의미가 전달되고 깨달아지고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이죠. 이런 제자들을 주님은 소통이 되게 하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심이라 하고 아버지가 이 사건을 펼치고 있는 거예요.
자매들도 마찬가지죠 마르다와 마리아도 예수님께서 죽을 병이 아니다 이러니까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나사로 죽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현장에 오셔서
요한복음 11장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5전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이런 시대 나는 부하 리오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삼겠고 죽음의 현장에 와서 내가 부활이 고 내가 생명이다 말미있는 자는 죽어도 산다 참기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듣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가르치는 겁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를 소통시키는 거에요.
에덴동산에 비극이 왜 왔나? 소통 불통 때문에 소통이 안돼서 그래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이렇게 만드셨어요.
창세기 2장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장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여럿이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마라 왜 그래야 되는거 하면 니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
그러면 이 동산에 온갖 보기 좋은 나무들과 먹기 좋은 그런 과목들을 못 먹잖아. 그러니까 저거는 먹지 마라고 말씀을 했어요. 하나님이 아까워서 그랬을까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아까워서 먹지 말라고 했을까요? 이의미는? 그 좋은 보기에 좋은 아름다운 그거 보고 즐기고 거기에 온갖 먹기 좋은 그 과목들의 과실을 따 먹고 누리도록 하기 위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먹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담과 하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소통이 잘 안된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넘어집니다.
창세기 3장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니까 뱀이 말을 던져도 거기 쉽게 넘어가고 미혹 받습니다. 그러자
창세기 3장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한데 사실은 그 나무 외에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들이 보암직한 나무들 먹음직한 나무들이었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하필 그걸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본 것이에요.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이렇게 쉽게 무너지고 넘어져 버리고 미혹 받고 맙니다. 그래서 따 먹습니다. 그랬더니 고통이 왔어요.
창세기 3장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통에 점철된 삶을 살다가 결국은 그 고통에 심년인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소통이 안되면 고통뿐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안 살면 이 땅에서는 고통 뿐입니다. 살아도 그 끝은 죽음이요 살아도 그 삶은 힘듬과 고생 뿐입니다. 하나님과 소통되는 믿음의 삶을 가져야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누림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 힘듬의 과정에서 하늘로부터 은혜가 주어지고 그 고통스러운 그 길을 가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주어지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그 길을 갈 때 하늘로부터 답이 주어지고 이게 믿음이에요. 믿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소통을 가져다 줍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지금 하나님과 소통되는 믿음 인가요? 아니면 자기 만족인가요? 나 믿는다 믿으니까 잘 될 거야 자기 최면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온전한 소통입니까?
교회 봉사가 하나님과의 소통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기만족입니까? 우리 믿음은 따라가는 겁니까? 아니면 끌려가는 겁니까?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우리의 믿음을 오래 동안 깊이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127:1~5
선포하면서 인정하고 범사에 모든 우리 일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그런 강한 교훈을 담고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127장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지은 이 건축물에 거하실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할 수가 없다. 대신에 하나님은 온 우주에 편만하시지만 이곳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이기에 이 이름을 둔 곳을 향하여 올라와 기도하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 달라는 그런 낙성식의 간청이 있어요. 그래서 이후에 이사야서 말씀에서도 있고요. 예수님도 인용하셨는데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을 예배 보러 가거나 사람 만나러 가거나 사업을 하러 가는 것보다도 제일 먼저 기도하러 올라가는 집이어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면 기도부터 하고 기도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끌어가야 한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집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기를 바랍니다.
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왜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을까?
예나 지금이나 웰빙 좋은 삶 질 높은 삶 행복한 삶중의 하나가 숙면이에요. 깊은 잠. 요즘 사람들 만나보면 잠을 설칩니다.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면 염려와 걱정이 가득할 때. 그런데 오늘 말씀은 집을 짓는 자도 하나님이 세우심을 기억하라. 집을 지키는 자도 하나님이 지키심을 기억하라.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이유는 재물을 남보다 더 많이 모으려고 하는 그런 부지런을 떨지만 그러나 너희가 수고하는 것이 헛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라. 이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그 심령 속에 잠 푹 잘수 있도록 내가 너와 함께 지켜주마. 내가 너와 함께해. 그러한 평안의 복음을 주심으로 우리는 숙면할수 있다.
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특별히 이 땅에 지금 자녀들이 태어나지 않으니까 그로 인한 지금 특별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고 정책도 마련하려고 애 쓰고 있고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해답이 보이지 않는데,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어요.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라, 이것은 우리의 기업이 아니고 우리 자식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존재들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때가 되면 다시 생육의 부흥을 주실 거라 그렇게 믿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원해도 가질 수 없는 불임도 많은데 이것 조차도 집을 세우고 지키듯이 일의 모든 수고의 열매가 우리에게 돌아오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자녀 생산도 하나님의 복이다.
창세기 1장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이 일을 해결해 주실 언젠가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면 문을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흔들릴 때가 참 많아서 내 힘 내 생각으로는 무너질수 있었던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견고한 집과 견고한 인생이 되리라 믿습니다.
빌립보서 4장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사야 55장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다. 인정하고 주님과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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