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는 기도
요한1:45~51
요한복음 1장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온 우주가 지구를 향해서 내려앉으면 무슨 수로 살아 올 수 있겠느냐
근데 이 속담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적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 헤어날 길이 있으니까 절망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이야기죠.
하나님 믿는 신앙인은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 하늘 문을 미리 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늘 문을 열어 놓으면 하늘이 무너질 일도 없거니와 하늘이 무너지는 극박한 상황이 온다고 해도 염려할 것이었기 때문이죠.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 뭘까요?
그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할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기도할때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겁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다나엘을 통해 하늘을 여는 기도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주목하시죠.
나다나엘 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어요. 무화과나무는 커다란 잎새가 무성하여서 유다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그런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 랍비들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율법을 교육하거나 묵상하기를 즐겨했다는거죠.
그런데 나나나엘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곳에 예수님께 먼저 부르심을 입었던 친구 빌립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일로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공생회 초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나사렛이라고 하는 말에 나다나엘의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나다나엘은 메시아라면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을 예수님의 출생지요 고향 땅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나사렛 같은 촌동네에서는 메시아가 날수없다 그렇게 생각을 한겁니다.
근데 빌립은 일단 한번 와보라고 권하면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다라고 하는 거죠. 빌립이 나다니엘을 데리고 오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이죠.
칭찬을 들은 나다나엘이 묻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죠.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때 보았노라. 무슨 뜻일까요?
나다나엘이 묵상하고 기도하던 무화과나무 근처에는 예수님이 가신적이 없으시거든요.
나다나엘을 만나러 그곳으로 간 사람은 빌립이며 예수님은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요 또 나다나엘이 어떤 사람이라는것까지 알고 계셨을까요?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연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도는 통하는것이죠.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하늘의 문이 열려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관계가 그대로 통할 수 있다라고 한 겁니다.
나다나엘이 무릎을 꿇었을 때 나다나엘만 하나님과 통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니죠. 예수님께서도 열린 하늘 문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통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하늘의 문을 통해서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라고 하는 거죠. 공간적으로 예수님이 계신 곳과 나다나엘이 있던 무화과나무 아래는 분명히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통하고 계셨던 예수님은 공간을 초월해서 기도로 하나님과 통하던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주목하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면 어김없이 하나님의 눈길은 바로 그것을 주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꼭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새벽에 내가 기도할 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사실을 꼭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이 쏟아지는 자리입니다. 주목하고 계시다라고 하는 것은 방관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이거든요.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그 눈길은 구경하는 눈길이 아닙니다. 내가 저 아이를 사랑하는데 무엇을 해줄까라고 하는 생각으로 부모는 그 자식을 바라보죠. 혹여라도 위험할 때는 몸을 던져서라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라본다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눈길도 마찬가지죠. 우리를 주목하실때 할일없이 바라보시는것이 아닙니다. 그 눈길은 사랑의 눈길 능력의 눈길이오 보호의 눈길이오 약속의 눈길입니다. 무엇이든 주고자 하시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눈길이죠. 그러니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런 눈길을 듬뿍 내려받는 믿음의 시간들이죠. 이런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내가 초라해질 때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주목하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나 상처 입어 괴로울 때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없고요. 또 사람의 위로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에도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내가 무릎을 꿇으면 하나는 위로와 능력의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신다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늘을 여는 기도는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라고 하는 겁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보시는 것에 놀랐지요. 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아시는 것이 놀랐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제야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시는것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말이죠.
이 고백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받을 은혜를 말씀해주시는데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이것이 기도로 시작되어 예수님과 만난 나다나엘이 받을 은혜였다라는 겁니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과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것과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가 받을 약속의 은혜 였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나다나엘에게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앞에 즐겨 기도의 무릎을 꿇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성경에 하늘이 열린 것을 본 사람이 있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후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도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돌베게를 하고 처량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죠. 그런데 꿈속에서 하늘이 열린 문을 보게 되었죠. 땅에서부터 올라간 사닥다리가 하늘에까지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죠.
창세기 28장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저는 야곱의 하나님께 받았던 이 축복의 말씀은 묵상할 때마다 이 축복이야말로 완벽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번창하게 될것이다. 내가 어디든지 너와 동행하며 지켜주고 이끌어주시겠다.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 축복에 더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 이 새벽에 이런 약속의 음성을 들을수있는 복된 주인공이 될수있기를 바랍니다. 이때부터 야곱의 삶은 크게 변화되었죠. 역사의 주체가 되고 축복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는 겁니다. 야곱을 막아설 대적이 없게 되었죠. 도망자가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가축을 많이 거느리는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에게 머물게 한다는 것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하죠.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습니다. 기도는 호응을 치는 것이 아니죠. 기도는 바위를 부수는 불방망이 보다 강력합니다. 기도로 이기지 못할 것이 없고요. 기도로 열리지 않을 문이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길이 나를 주목하시고요. 또 가로막은 역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 모든 역경을 넘어설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통하는 역사가 시작합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까?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않습니까. 기도하면 사소한 문제까지 여미시고 싸메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열린 문을 통해서 주어지리라 믿습니다.
혹여라도 앞길이 분명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습니까? 속상해하지 마세요. 기도로 하늘을 여는 믿음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책임져 주시고 놀랍게 변화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나다나엘이 기도하던 은총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갈수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대를 가지고 위를 바라볼수있길 바랍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손에 이끌려 주님을 만났지만 이 새벽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서 주님을 배울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시간이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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