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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3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다
노인의 미래는 과거다 책의 한 문장-
1.노인의 삶은 과거의 연속이다.
노인의 삶이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노년기에 겪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나 행동은 과거의 삶이 투영된 결과다.
2.노인은 미래에 대한 이상도 과거 지향적 모델에서 추구한다.
많은 경험 자료 과거를 성찰하고 소중한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겠죠.
그러면 노년의 삶이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과거의 삶의 연속이고 미래에 대한 이상을 과거의 모델에서 추구한다 정리해보니
이것은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을 경험해가면서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형성해가면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것이죠.
삶의 질 정체성의 형성 다 과거가 없이 어떻게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수 있습니까?
노인은 살아온 날이 많으니 당연히 더 많은 과거의 경험을 가졌고 더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이 적을수록 과거의 경험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죠. 같은 사건도 언제 겪느냐 어떤 처지에 겪느냐에 따라서 영향이 달라져요.
우리는 자기의 사건에 붙잡히죠. 누구든지 과거에 메여있죠.
사실은 이런 판단 생각 욕구에 붙잡히는것이 고통이고 죄성이고 사람을 얽매는 거에요. 가두는 거에요. 어떤 생각이나 욕구에 붙잡히면 또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는 거에요.
창세기 3장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먹고싶은 욕구 지혜를 얻는데 도움이 될것 같고
탐스럽다 가 문제. 몹시 바란다 갈망한다 이것을 기뻐했다 이런 의미에요. 탐을내 반드시 그 욕망을 포기하지않고 끊어내지 못하는것.
이것이 죄가 되는 거에요.
끝까지 관철하고자하는 의지, 반드시 따먹겠다는 의지, 이것이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욕망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내 욕망을 따르느냐?
이것이 죄의 근본적인 문제에요. 죄에요.
선악과를 놓고 말씀에 순종할것인가? 탐욕에 순종할것인가?
나의 결정 속에 선과 악이 존재하는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무수한 선악과가 있어요.
수많은 것을 놓고 우리는 내 뜻을 따를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것인가?
하루에도 무수한 선악과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거에요. 그때마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 스스로가 결정해야되는 거에요.
내 욕망 내 결정 내 선택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은가? 이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거에요.
아모스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메섹으로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들에게 짐이있어요. 그들의 우상이었던 짐을 지고 포로로 잡혀가요.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간다는 거에요.
우상에 붙잡힌 사람의 모습.
사람의 완고함 경직성이 문제가 될수 있는 거에요.
20년전에 사업을 물려준 아버지의 조언
아들은 다방면으로 검토를 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는데 20년전과 지금이 너무나 바뀐.
과거에 집착을 한다면 오늘날의 사업을 해볼수 없는거죠.
우리가하나님 밖에 의지할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가 붙잡힌 우상은 무엇인가?
자기 경험 자기 욕구 의지 우리는 이런것들에 사로잡혀 있진 않은가?
또다른
노년의 지혜는 다른 장점을 줍니다.
돌고 도는 세상 일 속에서 지혜의 길을 찾아 냅니다. 세상 만사가 돌고 도는 허무한 일인데 그 속에 어떤 과욕이나 탐욕에 빠지지않게 하면서 자꾸 허무하게 보이는 그속에서도 또 행복과 보람을 찾아내는 지혜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리고의 삭개오 세리장
부자였지만 외롭고 우울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그를 죄인으로 여기고 미워하기에.
그는 미리 예수님 지나가는길에 미리 가서 뽕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를 기다렸습니다.
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고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삭개오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 삭개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아 들였습니다.
삭개오는 회개하고 부당하게 취한것을 네배나 갚겠다고 예수님의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말씀하시고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선포하셨습니다.
누가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겠다 결심한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섰습니다.
탐욕의 길에서 떠나 말씀의 길로 돌이켰습니다.
삭개오와 같이 잃어버린 자들 멸망한자들 죽은자들 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찾아오셨어요.
더럽고 죄많고 추하고 인간의 삶가운데 깨끗하고 성결한 주님이 오셨어요.
여전도사님의 특수 전도
집장촌에서 윤락녀 전도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죽은자 멸망하자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왔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준비하셨어요.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
하나님은 인간과 사귀기 위해 영원한 공존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삭개오를 보고 이름을 부르고 먼저 부르고 찾아오신 예수님
먼처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에 거하여야겠다 찾아오신
사랑하면 함께 합니다. 사랑하면. 새로운 메세지를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다들 천하게 여기는 새리와 창기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정결을 유지하는 것은 그런 더러운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것이 거룩한 삶, 경건이라 생각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잘믿는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는 것.
저주하기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을 알려주는것 이것이 구원에 이르게하는 복음인것입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 하고자하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웃착취에서 이웃사랑으로>
예수님은 소외되고 천대받고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함께 임하셨어요?
삭개오와 함께 하시고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삭개오도 그들에게 나눠주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돌이켰어요.
<치유가 무엇인가?>
치유는 욕망을 포기하는거에요.
죄에 빠진 사람 스스로 나오질 못합니다. 밖에서 꺼내줘야 됩니다.
나의 도움은 어디서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여호와의 도움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이 무엇인가?>
죄인 = 죄 + 사람
구원은 죄와 사람 끊어서 죄와 사람을 분리시키는
모두 삭개오에게 적대감을 표현했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관심을 표현했습니다.
한 영혼에 대한 따스한 보살핌을 보여주었어요. 시선이 언어가 달랐어요.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을 예수님이 가졌어요.
여기에서 구원의 능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중독은 습관에 붙잡힌 사람에게 그 습관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거에요.
구원은 죄와 동행하는 것을 끊어버리고 죄와 동행하지 않는 거에요.
삭개오는 죄와 동행하는 삶의 지점들을 알았어요. 삶의 어떤 지점에서 죄가 시작되는가? 그 죄악된 포인트.
재물의 축적 방법에 내가 문제가 있구나.
자기의 재물을 모으는 방법을 하나님의 율법에 맞게 고쳤던 것입니다.
과거 새리로 할수 있었던 방법들 다 포기하고
그 재물이 하나님의 축복이냐 부정의 산물이냐 죄악의 결과냐 여기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야.
죄의 노예 쾌락의 노예 권력의 노예가 되어있어도 이제 해방 받은 사람이야.
사람은 살리고 죄는 떨어버리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분리된 사람 이제는 죄인이 아니고 사람이에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의 자녀요. 축복의 자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탐욕의 올무>
악에 잡혀있는 집착하고 붙잡고 있음으로 인해서 악에게 붙잡혀진 존재가 되는 거에요.
죽음에 이르게 되는거죠.
그러나 죽음에 이르렀을지라도 더 좋은것이 나타나면
성도들의 복음 제시가 필요합니다. 먼저 믿은 성도들의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맛있는 과일을 보여주듯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어야 되는 거에요.
그 아름다운 삶이 나타나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사람을 구원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더 좋은것을 가지려고 욕망의 바나나를 놓아 버리듯이 가진것을 놓듯이
삭개오는 더 나은 예수님의 삶의 모델을 따르기 위해 과거의 삶의 모습을 다 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서 죄를 놓아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공격성 고집 미움 탐욕 이기심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우리에게 오시는 예후님만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의 새로운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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