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
요한복음 5장
1. 그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https://youtu.be/UYetmuUbX8U?si=DrjVcoxsd3kQ8ddf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고자극인지 아세요?
엄청난 강렬한 사랑 엄청난 은혜잖아요.
우리의 익숙함과 무뎌짐이란게 얼마나 허망하고 죄된것인지 그것조차도 무뎌져요.
하나님 뭐 더 특별한 거 없어요?
어색함이 계속 우리한테 유지되어야만 하는데 그래서 늘 은혜를 받는 상태가 되어야 되는데
어떻게 그 익숙함과 무뎌짐에서 벗어날수가 있을까요?
38년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을때의 상태를 바라보면
우리의 익숙함을 벗어날수 있는 방법을 찾을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이 사람은 38년동안 패배자였어요.
요한복음 5장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늘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면서 한숨 쉴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현실인걸 알겠죠. 예수님 저 못 들어가요.
현실인걸 아는데도 못 벗어나요. 이게 유일한 소망이었어요. 이거밖에 없어요.
이거 붙잡아봐야 안된다는거 알고는 있는데 이게 유일한 소망이라는 얘기는 절망이다는 얘기에요. 소망이 없단 얘기죠.
가족도 떠났고 친구도 없는 거에요. 그리고 내 주변에 다 경쟁자에요.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앞서나갈 사람들이에요.
이 베데스다에
누군가 도와줄법한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철저하게 외로운 상태.
성전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데 못들어가요. 몸이 부정해서 병이 나아야 들어갈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하나님 만나고 싶어도 못들어갑니다.
건강도 가족도 하나님도 떠난것 같은 상태 모든것이 밑바닥인 상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왔어요.
하나님이 찾아간거에요. 어색한 일이 일어난 거에요.
요한복음 5장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보기만 하셨는데 다 아셨데요. 필요를 채워 주셨어요.
이 어색한 만남이 그를 새롭게 만들었어요. 치유했어요.
예수님의 찾아오심과 예수님의 이 말씀하심이 이사람에게 익숙하지 않고 어색했던 이유는 이 사람이 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요. 밑바닥의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일이 일어난 거에요.
누가 은혜를 받느냐?
하나님의 도우심과 행하심이 당연한게 아니라 은혜라고 느낄수 있는 상태에 있는 자가 은혜를 받아요. 그리고 그 상태는 약해진 상태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했고 익숙했던 것들이 다 어색한 것들이었어요.
걷는거 너무나 어색하죠.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이 너무 어색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같은 부정한 사람에게 찾아오시는게 너무나 어색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5장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자극이 없는 이 말씀이 그 사람에게는 높은 고자극의 은혜였어요. 그러니까 은혜를 많이 받았죠. 걷게될 만큼.
그러면 문제가 있어요. 일부러 약해질순 없잖아요. 일부러 실패하고 무너질순 없잖아요. 일부러 상처받을순 없잖아요.
상태를 태도가 대신할수 있어요. 약함의 상태와 동일한 태도를.
겸손이에요. 약해짐은 낮아짐이 대신할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다 아는 이야기라고 여겨지는것 겸손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겸손해지면 모든게 다 은혜고 모든게 다 새롭고 모든게 다 감사해요.
안 겸손하면 하나님이 해주실게 없으니까 기도도 안해요 내가 할거니까. 그리고 내가 한거니까 감사도 안해요. 겸손하지 않으니까 고자극이 필요해요.
그런데 자극을 높일게 아니라 내가 낮아지면 되는 거에요.
어떻게 겸손해질까요?
약함은 상태 수동적이에요.
겸손은 태도에요 능동적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겸손하기 위해서 집중하고 노력해야 돼요.
행복해질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겸손해지려고해야 겸손해지는 거에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겸손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춰야 돼요. 그래야 모든 자극에 민감해지고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겸손해야 믿음이 흔들리지않고 무뎌지지않아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으로 큰 은혜를 받게 되고 그 은혜로 나의 어려움을 이기게 돼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
흐름
우리의 생각이 하나의 생각에만 멈춰있다면 죽은 생각과 똑같습니다.
내 믿음이 더 좋은 믿음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 하나의 믿음에서 내가 이렇게 믿었으니까 이 믿음에만 고여있다면 죽은 믿음이랑 똑같아요.
골로새서 1장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가 죄와 욕심의 자리에 머물러있어서 너무 익숙해서 죽어가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옮기셨대요. 흐르게 하셨대요.
그래서 생명을 얻어서 살게 하셨어요. 이게 하나님이 하신일이에요.
익숙함은 우리를 한 곳에 머무르게 해요. 익숙하게 살면 소망도 죽고 기쁨도 죽고 용기도 죽어요. 믿음도 죽습니다. 흘러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멈춤 없이 흘러가야 돼요.
멈추지않고 흘러가려면 높낮이가 필요해요. 하나님보다 낮아져야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와요. 낮아질수록 낙차가 클수록 물이 빠르고 강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폭포처럼 더 빠르게 임하고 그 은혜로 우리의 삶이 새로워져요.
걸으라는 어색한 말에 순종했더니 그 낙차로 인해서 은혜가 바로 흘러 왔고 죽어가던 삶이 새로운 삶이 됐습니다.
말씀과 인도하심이 내 생각과 다를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내 계획이 익숙하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색해요. 그래서 거부해요. 익숙함에 머물러 있으려고만 합니다.
요한복음 5장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익숙함에 머물러있어야 돼.
익숙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고 말씀을 따라야만 합니다.
내 생각 내 계획 그 익숙했던 거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어색할지라도 안 맞는것 같아도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 엄청나게 어색한 말씀에 순종했던 그 사람 처럼 우리도 말씀 대로 살아야 겸손하게 그 말씀을 따라가야 모든것에서 엄청난 고자극의 은혜를 받을수 있고 살아날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보시기에 걸을수 있고 걸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익숙한 시선으로 날 바라볼때가 있습니다.
나의 한계 난 이거밖에 못해.
하나님께 우리는 일어나 걸을수있는 승리할수 있는 이룰수 있는 잘할수 있는 자에요.
하나님은 그 중간을 겸손으로 채우라고 하십니다.
지금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보는 시선으로 될수 있다는 거에요.
겸손해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삶 하나님이 보시는 삶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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