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44~50
요한복음 12장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 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외침
66권 39을 구약이라고 부르고 27권을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신약성경 중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성경은 복음이라고 하는 동일한 단어가 붙여져 있습니다.
왜 이 네 개의 성경에만 유일하게 복음이라고 하는 것을 붙여놓았는가? 그래서 이 네 권의 성경을 우리는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이 복음이 성경은 기쁜 소식이죠. 이 복음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신약성경이 쓰여진이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유앙겔리온은 유 기쁜 앙겔리온 소식,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단어가 합져서 유앙겔리온 기쁨의 소식입니다.
4권의 성경을 복음서라고 부르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소개하는것이 사복음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고 예수님이 친히 행하셨던 여러 기적의 행위들과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설교하신 내용들이 사복음서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복음서라고 불러요.
예수가 복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기쁨의 소식이고 예수가 오셨다고 하는 것이 가장 복된 소리다 그런 의미입니다.
원래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전쟁터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올때 가장 먼저 승전보를 가지고 와서 우리가 이겼다라고 하면 함께 유앙겔리온
이것보다도 기쁜 소식이 있느냐 우리가 승리했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쓰여졌던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의 설교의 내용입니다.
사복음서에도 크게 두 부분으로 좀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개인을 향하여 가르치거나 제자들을 향하여 가르치거나 소그룹으로 가르치신 가르침의 내용이 있고 전체 회중들 대중을 향하여서 가르치신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대중들을 향해서 설교하신 대중적 설교입니다. 이 대중적 설교임과 동시에 이것은 예수님이 생애 마지막으로 많은 회중들을 향하여 하셨던 설교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거나 설교를 하실 때 또 하나의 특징이 있지요.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거나 그들에게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해라고 하는 강조를 할 때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러노니라고 하는 표현을 쓰셨어요.
또 하나 그들에게 예수님은 가장 절박한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이건 너희들이 반드시 마음에 담고 기억해야 돼라고 하실때는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외쳐 이르시되 시작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굉장히 말씀을 절박한 마음으로 또 절실하게 그들에게 반드시 들어야만 될 내용으로 지금 말씀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외치다라고 하는 이 단어는 크락조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그냥 큰소리를 이야기하는 걸 조금 더 뛰어넘어요. 있는 힘을 다해서 다시 말하면 사력을 다해서 피 토하듯이 쏟아 붓는 그 외침을 크락조라는 단어를 쓰고 있거든요. 주님은 지금 생애 마지막 설교를 또 그 대중들을 향하여서 아주 사력을 다해서 지금 외치고 있는 그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불과 며칠 뒤에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그 예수님의 생애에 마지막 한 조각을 지금 남겨 놓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음은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를 알고 더 구원받게 하려고 하는 절박한 마음이 주님에게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달리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못 알아듣습니다. 못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깨닫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고 그렇게 많은 가르침들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는데 이들은 귀를 막아버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요한복음 12장
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여기서 그들은 종교에 열심하는 종교인들입니다.
밤낮없이 교회와서 사는 사람, 기도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 바리새인들 종교인들 그들도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하고 가슴 답답한 마음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설계하고 있는가를 알아들을 아실 수 있겠죠.
무슨 내용의 말씀을 하셨는가.
요한복음 12장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믿음에 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믿음에 관한 말씀을 하면서 예수님이 자기를 표현하는, 자기 주어가, 이 본문 중에 21번이나 등장을 합니다.
이 말씀은 나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믿으려면 나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지려면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된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려면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예수를 가르침을 예수의 외침을 들어야 받아들여야 예수님의 생각이 뭔지 뜻이 뭔지 이해할 수 있고 예수를 믿고 따라갈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가?
그 첫째는 나와 성부 하나님, 하나님은 동일체 다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이 설명하세요.
그 가슴 답답하게 계속 자기들 생각, 자기 주장하는 이런 완고한 자에게 예수님이 외친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이에요.
요한복음 12장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예수께서 사력을 다해 있는 힘을 다모아 절박함으로 외치시기를 나를 믿는자는 나를 믿는 게 아니고 보내신 이를 믿는 거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내가 곧 하나님이야.
요한복음 12장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성부 하나님 그분을 보는거야
나는 하나님이야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지요.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나와 아버지 성자와 성부는 본질적으로 동일체다 같다라고 하는 말씀을 지금 선포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은 누구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는 존재로 드러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이야기죠.
이 말씀을 주님은 그들에게 외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나와 아버지는 같다라고 말씀을 하셨죠.
그럴 때 그 다음
요한복음 10장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그들은 통 못 알아듣고 있는 겁니다. 알아들으려고도 하지도 않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의 생각대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이 주장만 하고 있는 거지요.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했던 이 무서운 말씀을 예수님은 불과 며칠 뒤에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야 하는 그 상황에서도 또 이 말씀을 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리는 타협할 수 없고 진리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바뀌어질 수 없고 진리는 사람의 안위와 감정에 의해서 포기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은 이것이 진리라는 거죠.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문제는
여러분 이 말씀에 믿어집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 쟤죄 때문에 돌아가셨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고 이건 다 이해돼요 다 믿어요 그런데 인간은 인간이지 인간이 어떻게 신일수 있어?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은 없습니까?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신앙은 불가능합니다. 신앙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린 그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여기서 끝이 나는 게 아니고 계속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14장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오래 있었냐 안 있었냐 교회를 오래 다녔냐 안 다녔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말귀를 알아들어야 된다는 거죠.
요한복음 14장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거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과 나는 본질적으로 동일체 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씀을 하세요.
이 말씀 때문에 돌 맞아 죽을 뻔한데 계속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삶의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십사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이쯤 되면 아 논리적으로 그런가 보다
이 정도 이해를 할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12절
요한복음 14장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해놓고
지금 나는 또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은 아버지 계시는 것이 저기 아버지가 있고 여기 있는 곳에 내가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요한복음 14장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기도하는 예수님이 계시고 내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아버지가 또 계신데 이 말씀의 의미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독립적 개체로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게 하나가 아니잖아?
그럼에도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는 이 말씀은 독립적 개체로 존재하나 본질이 동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능이 동일하다 영광이 동일하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우리는하나님을 한 분 두 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 세 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성부 부 성자 성령으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나 본질이 동일하니까 영광이 동일하고 권능이 동일하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이 사실을 반드시 믿어야 나를 제대로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간 예수만 믿으면 무슨 구원이 있으며 인간 예수가 너희를 위해 뭘 해줄 수 있겠느냐는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고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성을 가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의 이 신성과 인성 때문에 많은 이단들이 생기게 된거죠. 이걸 주님이 피 끓는 외침으로 이걸 믿어야 된다고 외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의 외침에 두 번째는 예수님 자신이 빛의 본체라는 겁니다. 빛의 본체.
제가 빛의 본체라고 말하지 그냥 빛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빛은 그 빛을 바라는 본체가 있어요.
요한복음 12장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 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나는 빛이다 내가 빛으로 왔느냐 어둠에 거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래서 난 빛으로 왔다라고 말씀을 하시죠.
여기 예수님이 정의하는 게 예수님은 빛이요 세상은 어둠이라는 거예요. 세상이 빛이신 예수를 모르니까 어둠 속에서 붙들려 있는 거예요.
이들은 어둠이 전부인 줄 압니다. 거기서 행복을 꿈꾸고 거기서 그대로 평화를 꿈꾸고 거기서 삶에 구원을 꿈꾸면서 허덕거리고 몸부림을 치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몸부림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는 빛이다. 나륾믿으면 너희는 빛의 자녀가 되어서 빛에 거하게 된다. 빛에 거하게 되면 가는 곳이 어딘지를 알게 된다. 빛은 너희를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영생으로 인도한다.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둠에 붙들려 있는 너희들 빛의 본체인 나를 믿어야 돼라고 주님이 지금 절규 하듯이 설교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누구예요? 구원자죠.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것은 빛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어둠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러 왔어요. 예수를 붙잡으면 빛 가운데 거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고 예수만 따라갈래
예수가 빛의 본체인 걸 알면 우리는 예수에게 찰싹 붙어서 살게 되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빛의 본체이심을 믿는 그런 확신이 있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예수믜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이 외침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며 게시하는가?
생명의 주체라고 소개해요.
46.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님께서 내가 빛으로 와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한다라고 하는 이 표현이 심판을 면할수 있도록 구원 받게 하신다는 이야기. 심판은 죽음이요 구원은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2장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영생이라는 거죠. 결국 예수님은 내가 생명이다. 내가 생명을 준다.
요한복음 11장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내가 생명이다 내가 생명의 주체다 내가 생명을 준다는 것 이건 네가 믿느냐 그런 이야기예요. 예수님은 그저 내가 무언가 필요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했고 필요 하나를 채워주는 정도가 아니고 내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체자.
이 땅에는 많은 종교라고 불리워지는 종교 집단들이 많지요. 그 종교에는 믿는 그들이 믿는 믿음의 대상이 신적인 존재도 있고 그들 스스로 인간이 교주가 된 그런 집단들이 많이 있죠. 그런데 그 어느 종교도 그 어떤 교주도 그 어떤 믿음의 대상자도 생명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성탄절이 있어요. 성탄절은 예수님 태어나신 날이죠. 근데 기독교에는 부활절도 있어요.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것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생명을 줄 수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깊은 생각의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우리의 삶의 유익이 되는 그런 가르침들은 얼마든지 줄 수 있겠죠. 그러나 생명은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체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실 수 있기에 구원자가 되시는 겁니다.
사복음서에 영생이라는 단어가 31번 나와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만 19번이 나옵니다. 요한 복믐은 영생복음이에요.
내가 생명을 준다 예수님이 이걸 믿어야 된다고 주님이 외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예수님의 외침대로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의 주체이심을 믿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생명의 주체가 예수님이라면 우리의 주인은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나의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명령하실 수 있는 그 자격이 뭐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주신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 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니까.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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