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가 주는 교훈
사사1:1~10
사사기 1장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7.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사사 선비사 스승사 선비나 스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
오늘 본문 사사기 말씀 앞에는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에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마음의 부담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셔서
여호수아 1장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면서 여호수아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시고 또 이러면서 이제 여호수아가 쭉 전개됩니다.
오늘 사사의 말씀은 가나안 정복의 영웅인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즉 사사들이 통치하는 시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사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사는 한자로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선비 사(士)', '스승 사(師)'. 선비나 스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 그게 사사입니다.
왕이 없던 시대에 국가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사사들을 세우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셨는데, 사사기 내용을 알고 있으신다면 주로 그 문제라는 것은 국가 간의 전쟁 문제 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까 한자로 풀이한 이 사사라는 뜻과 성경 내용 속에 등장하는 사사의 이미지를 연결하기는 조금 쉽지가 않습니다.
성경 연구가들은 사사 시대를 왕이 없던 시대,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살아가던 무정부 시대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사 시대가 혼란한 시대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결단,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과거 농업 사회 속에서는 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3,000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공업 사회 속에서는 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300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 시대에는 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30년을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디지털 시대에는 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3년을 버틸 수 없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바른 믿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사사 시대가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시대가 사사 시대처럼 어쩌면 혼돈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 지도자가 있으나 국민을 통합하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좌우 분열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가지며 살아야 할까' 하는 것을 이 사사기를 통한 본문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지도자 부재의 시대
오늘 사사기 1장 1절 상반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에 의해서 지도를 받아왔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사사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사사 시대는 새로운 시대라고 했는데 생각을 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을 하며 살아갑니다. 광야의 생활은 유목 생활입니다.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동하고 돌아다니는 시대입니다. 이때는 사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왕권이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소속된 공동체의 리더가 있으면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유목 사회가 아니라 농경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농경 사회는 식습관도 바뀌게 되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에 지도자가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더 큰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며 살아갈 것에 대한 요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참된 왕은 누구냐?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 것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하냐? 사사기 21장 25절 말씀은 사사기 전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자신들의 참된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지 않았던 시대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 문화에 빠지게 됩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미 농경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농경 문화에서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 필요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는 구름을 주관해서 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 문화에 빠질까 당부했던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7장 1절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길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절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 철저하게 그들을 진멸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 문화에 젖을까 봐, 그들의 타락한 문화와 우상 숭배를 배울까 봐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진멸하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견고하게 붙들고 살아야 되는데,
여호수아 1장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죽었지만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말씀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고 우리의 소망이 되는 줄을 믿습니다.
지도자가 죽었다 해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기에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낙망할 필요가 없게 되는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고 통솔해 주었습니다. 이 두 지도자가 죽은 후에 아직 후계자가 세움받지 못한 그런 상황입니다. 사방에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큰 전쟁은 끝났지만 국지적인 전쟁은 남아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도 내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당장 농사를 지어서 해결해야 되는 상황 속에 먹는 것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 바라보라, 하나님 바라보라."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하게 하시는데,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방황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깨우쳐 주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40년 광야 생활을 통과하는 과정 속에 깨우쳐 주셨던 메시지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오늘 지도자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이끌고 계시다'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 신앙의 자세임을 잊지 맙시다.
2. 유다 지파가 행하는 태도
유다 지파의 태도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사기 1장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비록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그들이 위급하고 혼란할 때에 모여서 회의부터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즉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이들은 기도부터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맙시다. 공동체를 운영할 때 조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직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왕으로 모시며 살아야 된다... 사사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왕이 없는 시대에 진정한 왕이 누구냐, 하나님이 왕이라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냐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며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면 그분께 모든 걸 맡기고 살아갑니다. 혼란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갈 때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그분께 매달려 간구하고 기도하는 그것이 더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것은 사사 시대를 혼돈의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사기 말씀이 시작하는 1절에는 그래도 그들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라며 여호와께 여쭈어 기도하는 그 모습은 아직 남아 있구나, 희망은 살아 있구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습관을 따라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시고 함께 생활하시는 가운데 제자들이 깨달았던 것은, 자신들도 과거에 기도했지만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은 자신들이 기도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를 전혀 안 했던 제자들이 아닌데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한 것은 '우리의 기도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구나, 바뀌어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하루 세 번 습관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이 회복되고 진정 기도다운 기도가 회복되어야겠구나 하는 것을 자각했을 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기도다운 기도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면서 간절함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답답할 때 부르짖고 간구하는 기도가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혼자 기도하지만 위급할 때는 우리가 연합으로 기도하고, 그 기도가 살아 있을 때, 상달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물론 사사기 1장에 이들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는 하지만 기도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내용을 보면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라며 다들 전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싸우려는 자가 없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연약한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을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또한 위로가 되는 줄 믿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께 여쭈고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2절
이렇게 응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 누가 먼저 올라갈까를 하나님께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가리키면서 유다 지파가 앞장서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사실 따져보면 유다 지파는 늘 그런 일에 앞장서 왔던 지파였습니다. 광야 행군을 할 때도 유다 지파는 언제나 앞장섰고, 요단강을 건너갈 때도,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 들판을 건널 때도, 추운 밤에도 더운 낮에도 유다 지파는 늘 앞장서 왔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파였습니다.
바로 이런 유다 지파를 향하여 하나님은 너희 지파가 앞장서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렇게 신앙에 앞장서는 유다 지파를 하나님은 많이 축복하셨고, 그 유다 지파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중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고 갈렙이 유다 지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실 때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이 일 감당할 만한 사람', 검증된 사람을 사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일도 있습니다만, 준비된 자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봅니다. 뒷걸음질 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기뻐하는 게 아닙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신앙의 사람, 능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적극적인 말을 하고 앞장서 헌신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던 갈렙, 그 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험한 산지 헤브론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면서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 그래서 갈렙과 유다 지파가 올라가서 그 땅을 정복합니다. 그 헤브론이 바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수도가 되었지 않습니까.
우리 앞에 험한 산지가 있습니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듭니까?
두려워하지 맙시다. "앞장서라, 네가 앞장서라." 헌신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우리가 먼저 앞장서고, 도전 앞에서 주를 바라보며 매달려 간구하고 기도할 때 그 산이 평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앞장서라" 이 말씀은 영광의 자리, 유익을 얻는 자리에 앞장서라는 말씀이 아니고, 고난과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는 자리에 "네가 선봉에 서 줄 수 없겠느냐"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유다가 선봉부대에 서서 가장 먼저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 지파를 축복하시는데, 그런데 이 명령을 받았던 유다 지파가 했던 행동은 어떠한가?
사사기 1장 3절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먼저 가서 싸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이야기하기를 "같이 가자, 같이 싸우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시므온 지파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지파였느냐? 아닙니다. 연약한 지파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 지파는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바라보며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면 승리가 보장될 텐데, 왜 연약한 시므온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었던 기업의 땅을 보면, 유다 지파 기업의 땅 안에 시므온 지파의 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다 지파가 싸우는 데 있어서 결국 시므온 지파와 연합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자신들 혼자서도 사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 시므온에게 "우리 같이 가자" 하며 부탁을 하는 것은 참 탁월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싸워주면, 나중에 시므온 지파가 싸움을 할 때 도움을 줄 명분을 벌써 쌓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약한 시므온 지파가 돕는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같이 가자." 자기들의 힘만 가지고 갑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너희가 우리를 도와주면 다음에 너희가 전쟁할 때 우리가 도와줄게" 하는 이 태도,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이 태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법칙은 혼자 잘난 독불장군이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지체들을 배려하면서 "우리 같이 일하자, 같이 하자" 이렇게 해서 함께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들의 말에 경청하고 세워지는 공동체가 믿음의 공동체요, 교회 공동체입니다.
옛날 몽골 제국을 세운 징기스칸이 죽을 무렵, 어마어마한 땅을 차지해 놓고 다섯 아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막대기 두 개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막대기 하나씩 꺾어 보라" 했을 때 아들들이 쉽게 꺾었습니다. 그러나 그 막대기 다섯 개를 모아서 "한꺼번에 꺾어 보라" 했을 때는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다섯 형제가 흩어지면 누구한테든 꺾이겠지만, 다섯 형제가 뭉친다면 아무도 너희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사기 1장 3절 말씀처럼 함께 같이 싸우는 것,
이렇게 함으로써
사사기 1장 4절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물리쳐야 했던 아도니베섹 왕은 시시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이방 임금 70명을 물리치고 70개 부족 국가를 정복했던 힘 있는 왕입니다. 이런 아도니베섹을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함께 올라가서 물리치는 일을 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믿음 안에서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믿음의 날개를 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때때로 우리에게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연약한 지체라도 배제하지 마시고 "주님의 일을 할 때는 함께 같이 하자, 우리 함께 가자" 그렇게 하면서 아름답게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참 사사를 의지하는 삶
마지막 세 번째는 참 사사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사기를 읽다 보면 일관된 사이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러다가 이방 나라들이 쳐들어와 어려움을 겪고, 견디다 못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조금 편안해지면 또 죄에 빠지는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런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
"우리가 고통 가운데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 입력이 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는 하는데, 그들의 회개가 기계적인 회개로 바뀌게 됩니다. 그들의 삶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이 기계적으로 입력되어 습관화되어 버릴 때, 신앙의 타성이 젖어버립니다.
연속되는 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새로운 사사를 세우셨지만, 사사들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임무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런 사사들의 반복 속에 우리 가슴속에는 '완전한 사사는 없을까? 참된 사사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정한, 참되고 완전한 사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해서 왕정 시대를 살아봤지만, 역사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완전한 왕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왕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다윗왕마저도 온전하지 못하고 허물과 죄가 있었습니다.
이런 왕들의 통치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진정한 왕은 없을까?' 하고 기다리게 되는데,
성경은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땅에는 온전한 지도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 가운데 그분의 통치, 그분의 다스림, 그분의 온전하심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하고 기다리며 나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세워진 지도자로 인해 너무 열받거나 하지 마시고, 우리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지혜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나는 하루하루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지혜자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꼭 필요한 것 한 가지에 딱 집중해서 해야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삽니까?"
"아니, 사는 것 자체가 그리 쉽습니까? 직장 다녀야죠, 전화 받아야죠, 친구 만나야죠, 독서 해야죠, 쇼핑해야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한 가지에 어떻게 집중합니까?"
지혜자가 말합니다. 자신도 옛날에는 여러 가지 일로 너무 분주하고 복잡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어느 날 주님께서 자신에게 가르쳐 주신 지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감동으로 주셨던 그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는 일, 그 한 가지 일만 좀 잘하면 안 되겠니?"
분주했던 자신에게 도전이 되었던 그 말씀이 삶에 엄청난 도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다른 것은 부족해도 우리의 참 사사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한 가지 일은 잘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혼돈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먼저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일에 더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지체들,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지체들을 외면하지 마시고,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연약한 우리들도 서로 살펴보면서 "함께 같이 우리 동역하자"라며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나가는 공동체 의식을 잊지 맙시다.
참된 사사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사 시대의 혼돈의 시대, 하지만 이 사사기를 시작할 때 이들은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하며 아직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는 기도가 살아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기도가 살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게 하시며, 정말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에 견고하게 설 수 있는 저희가 되게 주님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달리하거나 때로는 연약해 보이는 지체라 할지라도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공동체 의식을 잊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참된 사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신앙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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