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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실천의 현장 출애굽기 15:22~27

by diane + 2026.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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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현장
출15:22~27

출애굽기 15장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 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 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죠. 그리고 이들을 하나님이 인도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들을 이끌어 주시면서 홍해를 만나자 그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광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출애굽을 시켰고 하나님이 건널 수 없는 홍해까지 건너게 하셨고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친히 이들을 홍해로 돌려 인도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온 그 길이 어떻게 사흘을 가도록 물을 얻지 못합니까? 그래서 이들이 애에서서 물을 찾아나서 물을 우물을 하나 찾았는데 그 우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는 쓴물의 우물 마라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이끌어 주셨는데 왜 이런 일이 그들 앞에 일어나야 합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그 원망도 우리가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상식적으로 보면 이 원망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원망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또 마라가 필요했다면 여러분 이건 이해가 되시는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이들이 하나님의 기적은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기적은 알았지만 기적의 하나님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 원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지금 이런 마라에 이르게 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금 여기 데려다 놓았다는 것은 이해가 또 되시는지

그래서 광야는 어떤 곳인가?
광야는 시험의 현장입니다.

이 마라의 선물을 만난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표현은 광야를 사흘길을 걸었다라고 하는, 이 사흘이라는이 단어와 그리고 쓴물인 마라를 만났다라고 하는, 마라라고 하는 단어예요. 사흘과 마라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물없는 광야에서 사흘길은 여자와 어린애들도 그 행진에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각하면 공포의 시간이고 두려움의 시간입니다 광야를지나 하루를 지나는데 아이들은 목이 마르다고 엄마에게 물을 달라고 해요. 그러자 그 어머니는 그 목이 말라 싱을 아이를 달리면서 여보 물이 필요해. 남편에게 물을 요구했을 것이고 남편은 그래 물이 없어 지금 사흘길을 왔는데도 대단히 혼란스러운 그런 상황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다가 우물을 하나 만났습니다 그것이 써서 먹지 못하는 아무 의미가 없는 우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흘이라고 하는 시간은 이들이 물을 찾기 위해 열심으로 노력한 시간이고 이 사흘이라고 하는 표현은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던 최선의 시간이었다는 것이 이 사흘이라는 표현이고

그리고 마라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 형용사예요 쓰다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광야의 사흘과 마라의 이 쓴물은 광야를 지나는 길에는 답이 아니더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광야를 지나는데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이 이들을 이 사흘길을 지나고 마라의 쓴물 앞에 데려다 놓으면서 하나님이 내신 문제가 뭐냐? 너희는이 광야를 지나면서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니를 묻고 있는 겁니다.이 광야를 지나면서 너희들은 광야를 지나가는데 너희들이 그 생존의 방법이 무엇이겠니를 그들에게 묻는 것이에요.

근데 이들이 붙들었던 것은 그들의 열심이고 이들이 붙들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이고 이들이 붙들었던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체점은 그건 답이 아니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놀라운 사실 하나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넜을때 이들은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라고 그렇게 찬양했던 그들이 이제 본격적인 광야의 삶이 시작되는 수로 광야에 들어와 마라의 쓴물 앞에 이를 때까지 이들은 단 한 번도 여호와를 기억하고 여호와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써서 마치지 못하는 마라를 만나자 이들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러짖었더니


이 광야의 마라는 어떤 의미입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이 지금 답을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나를 찾아야 돼. 내 손을 붙들어야 돼. 그래야 광야를 살 수 있어. 이 답을 찾도록 하나님이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 놓고 있는 것이지요.

25절 말씀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모세가 여호와께 부러짖었더니
여기서 이제 여호와라는 단어가 등장을 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르치사
이들이 여호와를 찾자 이들이 여호와의 손을 잡자 그다음은 그 여호와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아멘.

그러니까 마라의 쓴물은 하나님을 잊고 사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잡지 않고 그들의 힘과 그들의 노력과 그들의 경험과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열정만으로 그 광야를 살려고 했던 자들에게 그건 답이 아니야 오답인 것을 하나님이 체점하시면서 그 답은 여호와를 손을 잡는 거야 라고 답을 가르쳐 주시는 시험의 현장이라는 거죠.


그럼 이들이 찾는 그 여호와 이들이 손을 잡은 그 여호와는 진정한 답이 되었는가?
하나님은 정말 정답일까요?
25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러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저는이 표현이 너무 좋아요
모세가 하나님의 손을 잡았더니 그다음은 그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거죠.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할렐루야 아멘.

마시지 못하는 쓴물 사흘길을 찾아도 여름 마실 물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물 하나를 찾아 이제는 됐다라고 했지만 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호와를 손잡자 그 여호와께서 그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아멘. 답은 여호와가 맞았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정답이 맞았습니다.

마라의 쓴물이 여호와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죠.

여러분 광야는 어떤 곳인가? 광야는 우리의 답이 오답이라는 것을 알도록 시험하는 시험의 현장이요. 광야는 여호와를 손잡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시험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니까 모세가 그 나무를 쓴물에 던져서 그 물이 달아졌다 그렇게 말하죠.

그럼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나무를 좀 주목해 봐야 합니다.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그들이 원망하던 그 장소 그들이 다불어지 못한 그 쓴물 마라의 우물 곁에 늘 거기 있던 나무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그 나무를 지시하니까 모세는 그 나무를 볼 수 있었고 모세가 그 나무를 취하여 물에 던질 수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가?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이 원망하는 현장에도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 하나님이 해답임에도 불구하고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주인이신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하나님을 손잡지 않았던 거죠.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들과 항상 그들 곁에 있었던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들은 쓴물 앞에서 그들이 취할 아무런 방법도 능력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과 함께 있는 그 하나님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그 하나님이 답인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 하나님과 손잡기는 그냥 그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던 거죠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시험을 쳐야 했습니다.

혹시 광야에 서 있습니까? 혹시 마라를 만났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몸부림을 쳐도 왜 해답 해결이 안 돼 아니 이제 됐다 싶어서 된 줄 알았는데 왜 이게 또 무용지물이야 이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마라 곁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우리가 깨달아야 우리는 광야를 제대로 지나갈 수 있는 거지요. 주님의 손을 잡는 것이 해답인 것을 깨닫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둘째로 광야는 어떤 곳인가? 광야는 순종의 현장입니다

마라의 쓴물을 하나님이 단물로 바꿔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해결이 됐어요 이제 상황 끝 됐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꿔 주신 이후에 뜬금 없이 흐름에 맞지 않는 말씀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러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런데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윤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세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문제가 해결이 됐습니다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제 쓴물이 단물되어서 물 해결이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자 그들과 함께 거기서 율례와 법도를 재정하십니다 그러시고
26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아멘

거기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도를 재정하시고 그들에게 내 법을 지켜라 라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그 26절을 다시 보면
이 하나님의 법이 머리에 취관할 정도입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의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애굽에서 자유를 얻게 되어 나와 이제는 해방이 되어서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광야에 들어오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으로 올가 맵니다. 그냥 순종해라 이래도 우리가 힘들 텐데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보기에 의를 행하고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왜 이렇게 하시는가?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새로운 질서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애굽의 통치를 받아 살아왔지만 그래서 애굽의 질서를 쫓아 살았지만 이제는 애굽과 완전히 결별한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살아야 함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요구한다 새로운 질서를 따라라 그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였습니다.
이것이 광야를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야 되는 순종의 현장이 바로 광야입니다.

제가 늘 강조한 것이 구원은 완성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씀을 늘 드렸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이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이제 시작된 거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질서가 다른 질서로 바뀐 거예요.

지금까지는 세상의 법을 따라 살았어요 애굽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았어요.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아멘.
이걸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산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는 이야기예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이 세운 하나님의 질서를 따른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살아야 될 당연한 삶입니다

그래서 늘 반복적으로 기억하도록 늘 자주 쓴 표현이 또 하나, 신앙생활은 앎이 아니고 삶이다.

그래서 오늘이 말씀의 제목이 광야는 앎의 현장이 아니고 삶이 삶을 실천해야 되는 실천의 현장이라는 거.

그런데 이 순종은요 기준이 있습니다. 기준.
성경이 말하는 순종의 기준은 내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세상도 순종을 요구하죠.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면 대한민국의 법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잖아요. 이건 하지 마라 이렇게 하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이렇게 하면 감옥 가고 이렇게 저렇게 우리에게 다 순종을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애굽에서도 순종을 요구했어요.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에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의 순종의 요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과 학대를 위한 순종이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순종의 요구는 좀 달라요. 이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위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있어요
26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의로워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보기에 옳아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보기에 합당해야 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순종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순종은 나하고 안 맞는게 많아요 그래서 신앙의 순종은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참 많아요 그래서 신앙의 순종은 우리가 순종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아요 기준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려졌던 찰스 스펄전 목사는 최고의 설교는 순종을 가르치는 설교다 그랬어요 최고의 수설교는 성도들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설교가 최고의 설교다 그랬어요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어요
최고의 성도는 순종을 실천하는 성도이다 순종하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야는 이렇게 시험받고 그 시험에 답을 써내야 되는 그 실천의 현장이고 광야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되는 현장이고

셋째로 이 광야는 축복의 현장입니다
아멘

그럼 광야는 늘 시험만 치면 얼마나 힘들어요. 이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철저하게 순종만 해야 된대요. 근데 여기서 끝이라면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26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의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이걸 지금 무엇과 대조를 하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지금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겠다. 지금 하나님은 애굽 사람과 하나님의 법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을 구분짓고 있습니다. 여기서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 모든 병을 고치신다 이렇게 너무 쉽게가 버리지 말고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너희에게는 내가 내리지 않겠다. 우리와 저들을 구분짓고 계세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 구분짓고 계시는 거죠. 광야를 똑같이 우리가 지나가고 있지만 이런 광야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이 광야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좀 또 신학적으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도 일반 은총은 누리고 살아요.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봄여름 가울 겨울이 있고 공기를 마시고 일반 은총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 있는 거죠.

이것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멘

그러니까 애굽에서의 순종은 학대를 위한 순종이었다 그랬죠. 이 하나님이 요구하는이 순종은 이런 복을 위한 순종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이 광야에서는 우리가 이복을 사모하면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당연합니다 당연해요.
교회 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순종이란 말에 특별히 두드러기가 일어난 사람들이 있어요  순종하면 알러지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늘 저항적이고 늘 반항적이고 그런 신앙의 삶을 사는 분들이 있어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근데 복을 못 누립니다 복을 못 누립니다 우리의 신앙의 세계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그런 단어들 중에 하나가 순종 아닙니까 순종.

그러시고 난 다음 애굽 사람들과 너희를 내가 다르게 대한다고 하신 이후에 본문에 끝자락에 27절에 엘림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물 없는 광야와 엘림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둘과 종료나무 이런 거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곁에 장막을 치니라
아멘

지금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엇 때문에이 사단이 났습니까 물입니다 물 물 물 물 물 그랬는데 세상에이 마라에서 엘림까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예요 그런데 거기 물샘 열둘이 성경에는 12라는 숫자 7이라는 숫자 3이라는 숫자는 늘 만수를 뜻해요 12는 만수 중에 만수지요 물샘 열둘이 있더라 품하실 수 있는 그 엘림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아멘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 이건 뭐 더 이상의 원함이 없는 것을 말하죠 아멘 그들이 그곳에서 장막을 쳤다 아멘 이것이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입니다 아멘.

이 엘림은 하나님이 이렇게 보여 주는 겁니다.
내가 다 준비해 놓았는데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 곁에서 너희들을 인도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내 손도 안 잡고
너희들이 할 것은 내 통치를 받고 새로운 질서를 따르면 돼 아멘. 너희들의 필요는 내가 준비하는 거야 아멘. 이걸 보여 주는 거죠.

그리고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찾아 누리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를 지나면서도 어떤 사람은 늘 원망하고 늘 불평하고 늘 죽겠다고 하고 늘 헐떡거리는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여기서도 엘림을 캐내고 저기서도 엘림을 캐내고 저기서도 엘림을 캐내는 광야가 보물 찾기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으로 광야를 걸어 하나님의 복을 찾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 준비해 놓은 엘림의 복을 누리며 광야의 길을 걷는 지혜로운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 속을 살피시시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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