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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라 말라기 4:1~6

by diane + 2026.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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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라
말라기 4:1~6
말라기 4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마인드 컨트롤
사람이 할수있는 생각 이상으로는 할수 없기에

지난 2024년에 파리 올림픽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공기 소총 10m 그 종목에서 32년 만에 금메달을 딴 그 선수가 반효진, 반효진 선수의 랩탑 노트북 왼쪽 맨 위에다가 포스트 하나를 딱 붙여 놨는데 거기에 써져 있는 문구가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다" 이렇게 딱 쓰여 있어요.
그때 당시 인터뷰에서 금메달 따기 1년 전에 극심한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친구가 저 조금만 그 헬로키티 그 포스트에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다라고 쓴 거예요. 그 친구가 자기 노트북에다가 딱 붙여줬대요. 그래서 항상 이제 연습을 하면 그 랩탑을 볼 때마다 저 문구를 보는 거예요. 어차피이 세계 짱은 나다. 그렇게 1년 후에 금메달을 땄다는 거예요.


당시 프랑스 올림픽에서 동메달 두 개를 일단 탁구 선수 신유빈 선수라고 있는데 그 선수도 경기 중에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합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말고. 이런 얘기를 혼자서 계속 되내어요. 지금 그 신유빈 선수를 포함한 한 복식조가 지금 세계 랭킹 1위인데 최근에도 어디에서 금메달을 따서 왔어요. 우승을 했어요. 그러니까 계속적으로 자기 암시를 해요.

 
근데 운동 선수들이 자기 암시하는 것은 굉장히 대중적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자주 나타나요. 물론 속으로 하기도 하고 실제로 스스로 혼잣 말을 하기도 하고 합니다만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계속적으로 합니다.

이게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던게,

2016년 브라질 리 올림픽에서 펜싱 박상영 선수가 세계 랭킹 3위 헝가리 선수와 맞붙었을 때 마지막 금메달 결정전이에요. 10대 14로지고 있어요. 10대 14로지고 있어요. 한 점 내주면 자기는 은메달로 만족을 해야 되는 아주 정말 벼랑 끝에 몰린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 선수의 혼잣 말이 당시에 굉장히 화제가 됐어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 말을 계속적으로 입 모양이 너무 분명하게 카메라에 잡혀서 그게 당시 화제가가 됐어요. 결과가 10대 14로지고 있다가 5점을 내리따서 금메달을 땄죠.
그때 당시에도 자기 암시의 효과나 어떤 능력들이 당시에도 많이 이슈화가 됐어요.

이런게 우연일까요? 우연이 아니에요. 끊임없는 자기 암시 자기 스스로의 자기 생각을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서 계속 나는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거 할 때 이제 1인칭을 많이 사용해서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이 하는데 이게 결코 우연이 아니죠.

왜냐하면 여러분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워요. 자기가 생 생각하는 것만큼까지 도달하는게 거의 한계고 그 이상으로 뛰어넘는 경우는 거의 안 나타나요.

무엇이든 이뤄내어 무엇이든 이뤄내는 강한 마음 책을 쓴 저자가 스포츠 심리학자 노엘 불익이라는 사람인데이 사람이이 책에서 어떤 데이터를 제공을 해요. 선수들마다 운동을 시작해서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의 그 시간이 있대요. 그 시간이 각 선수들마다 거의 정해져 있다는 거죠.

이 심리학자가 어떻게 했냐면 이제 그런 선수들을 불러다가 자기 대화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자기 암시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죠.

그렇게 가르치고 나서 운동을 시켰더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냐면 처음 운동을 시작해서 탈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18% 늘렸다는 거예요.  내가 100까지 할 수 있는데 120까지 할 수 있다. 이거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건 기록에 또 그 승리에 굉장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암시 자기 생각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내 삶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하는 거죠.

그래서 생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실 생각을 만들어내는게 우리의 마음인데 우리의 마음에서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내는가

여러분의 학교 성적, 여러분의 미래, 또 여러분의 어떤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생각에 한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봐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들이 그 어떤 본래의 힘대로 발휘가 안 되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여러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설정한 한계에 부딪혀서 더 이상 발전을 못 한다는 거 이거 상당히 무서운 거거든요.

근데 여기서 더 무서운게 뭐냐면 내가 왜 여기서 이걸 못 얻어낼까 내가 왜 이거를 극복하지 못할까 하는 그 이유를 자꾸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거예요. 그거를 어떤 세상 탓으로 찾기도 하고 어떤 부모님이나 남탓을 하기도 하고 이러면서 사실은 자기가 자기 생각에 갇혀서 더 이상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데 그거를 캐치를 못 하면 평생 남탓하다가 세상을 원망하다가 그렇게 끝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우리가 오늘 말라기 말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갇혀 있었던 생각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어요.

말라기라는 뜻 자체가 나의 선지자 나의 특사 이런 뜻인데,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사를 파견하셨어요. 이유가 뭐냐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되는가?

말라기 1장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 사랑해 지금까지 사랑해 왔고 또 계속 사랑할 거야 내가 너를 사랑했다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이 뭐냐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뭐죠? 언제요? 어떻게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거예요.
 
여러분 누가 내가 너 사랑해 내가 너 아껴 하는데, 언제? 네가 언제 그랬어? 이러는건, 뭐 하자는 거예요? 싸우자는 거죠. 한 판 붙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그랬더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말이 어떻해요? 언제요? 잘 모르겠는데요 안 느껴지는데요 이렇게 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이스라엘 백성 했네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이 배경을 좀 알면 여러분이 하나님 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설지 몰라요.
말라기는 포로에서 기환한 다음에 쓰여진 거예요. 바벨론에 의해서 남유다가 멸망을 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바벨론이 멸망하면서 성경의 메대바사 그러니깐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연합군이 바벨론을 격파를 하고 이제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섰어요. 데 메디아는 페르시아에 이렇게 통합이 되고 흡수가 되고 그래서 이제 페르시아가 당시 고대근동을 다스리는 시대가 왔어요.

이때 고레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라 그들은 나를 위하여 성전을 지일 거다

그래서 고레스 왕이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이 진짜 꿈 같은 날이 온 거예요.
진짜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뭔가 하나님께서 드디어 일하기 시작하셨다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지

그래서 이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스룹바벨을 통해서 1차 기환이 에스라를 통해서 2차 기환이 니에미야를 통해서 이제 3차 기환이 이루어지잖아요.

스룹바벨를 통해서 1차 기관이 일어나자마자 그들이 맨 먼저 했던 거는 성전을 다시 재건하는 거잖아요. 성전은 열심히 재건을 나름대로 열심히 힘든 상황에서 척박한 상황에서 하는데 고레스 왕이 죽고 그다음 아닥타스 왕이 들어섰을 때 그 왕이이 성전 건축을 중단시켜요. 그래서 18년이나 중단이 돼요. 거의 20년 가까이 중단이 되다가

이후에 학계 스가랴 이런 선지자들이 동료를 하죠. 너희 집만 꾸이고 너희 집만 어 편하는 것이 오르냐? 이 성전을 건축해라 이러면서 막 지금 영광은 나중 영광과 비할 수 없이 나중 영광이 더 클 것이다 뭐 이런 식의 말씀을 막 하면서 이렇게 막 세워가도록 하죠.
그래서 드디어 이제 성전이 완공이 됩니다.

이후에 니헤미야를 통해서 성벽도 만들어지고 성전과 성벽 그러니까 굉장히 이제 외형이 갖춰지죠. 근데 외형이 갖춰진 다음에 사실은 그 이상의 발전이 더딘 거예요. 그렇게 외형이 갖춰졌으면 다시 어떤 독립된 나라로서의 이스 이스라엘이 서고 그 가운데 뭔가 다시 풍요가 찾아오고 뭐 이래야 되는데 경제적으로는 끊임없이 가난하고 그 안에서 또 끊임없는이 빈부의 격차와 안력들이 계속 있고 정치적으로는 뭐 페르시아의 속국도 아니고 그냥 페르샤인 지방 취급을 받고 이런 시간이 이렇게 길어지다 보니까 점점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생각이 갇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거는 여기까지신가 보다 주님의 사랑은 여기까진가 보다 도대체 이와 같은 이 나라의 처참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점점점 한계를 갇기 시작하면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했을 때 언제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런 지경까지 와 버린 거예요. 현실에 매몰되는 거죠 어려움에 매물되는 거예요.

계속적으로이 어려움에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이 꿈과 희망 비정과 목표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그냥 지금 현재를 어떻게 하면 살아낼 것인가? 이제 이런 생각으로 이렇게 갇치게 되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말라기에 보면 이런 질문들이 많이 나와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아까 우리가 읽었잖아요 1장 2절에 또 말라기 2장에 보면 이런 질문도예요.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때문에 괴롭다 그랬더니 주님이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이러고 또 이렇게도 말해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그래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또 3장에가 보면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너희가 지금 나를 대적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요 우리가 언제 주님을 대적했어요

이런 모든 질문들은 굉장히 삶이 팍팍하고 생각대로 빨리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문제 해결이 빨리 안 되니까 생겨난 이런 질문들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니까 자연스럽게 이어진 그다음 결과가 뭐냐면 예배가 부실해지는 거예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니까 예배가 부실해지기 시작을 했어요.

말라기 1장 8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 재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 들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 너를 받아 주겠느냐


그러니까 예배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눈먼 거 가지고 드리고 저는 거 가지고 드리고 병든 것 가지고 드려요.  

7절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그들이 뭐라고 말한대요 이렇게 눈먼 희생제불 저는 거 병든 거 이러고 들려 하나님께 드려놓고 주님이 너 재단 더럽히고 있다 왜 재물을 그런 거 가져오냐 이렇게 지적을 하니까 뭐라 그래요? 우리가 어떻게 했는데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언제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이 강극이 얼마나 멀어지는지 몰라요. 그 하나님은 내 사랑했다 언제요 잘 모르겠는데요 너 왜 그렇게 제사를 드여서 제단을 더럽히냐 우리가 어떻게 했길래요

그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은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는 할 수 있는 거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만 아니 이거 말고 어떻게 더해 이만큼했으면 됐지 뭘 더하라는 거예요 이런 거죠. 그니까 제가 봤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병든 거 막 저는 거 막 이런 거 드리면서 아 이거는 하나님께이 제대로 된 제사가 아니야 제대로 예배를 드리는게 아니야라고 모르고 있는게 아니라 제가 봤을 때는 다 알고 있어요. 이들이 자기들의 예배가 결코 거룩하지 않고 결코 하나님 받음직함하지 않고 뭔가 잘못된 예배 제단을 더럽히는 예배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근데 이들이 나름대로 한계에 다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걸 지적하면 배째라 배째라 이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거 내가 다 하고 있는데 이렇게 이제 하나님께 반응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해요
10절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차라리 성전문을 닫아라 차라리 예배를 드리지 마라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거죠.

여러분 사랑을 부정했어요 예배가 부실해져요 그다음에 나타나는게 뭔지 아세요? 헌신이 사라지기 시작해요. 헌신의 부제가 사랑에 대한 부정, 예배에 대한 부실, 헌신에 대한 부제로 이어져요. 누구에게서 제일 먼저 나타나냐면 백성들이 아니라 제사장들에게서 제일 먼저 나타나요.

말라기 2장 1~2절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지금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 지적하는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거예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제사장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어떻게 해야 돼요? 마음에 둬야 돼요. 마음에 두고 그걸로 씨름하고 그걸로 몸부림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연결하는 삶을 살아야 되고 그래서 그거를 백성들이 보고 따를 수 있도록 하는 리더 역할을 해 줘야 되는데 마음에 두질 않아요.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마음에 두지도 않고 그대로 살지도 않고 그건 헌신이 사라져요.

이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2장 3절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고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그 재물을 바칠 때 그 재물의 지저분한 것들 창자를 포함해서 이런 것들을 이제 다 제거하게 돼 있어요. 거기에 아주 지저분한 그니까 동물도 죽을 때는 이제 배설을 하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들이 많죠. 그걸 얼굴에 쳐버르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셔요.

그 하나님께서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느껴져야 돼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분노에 전혀 호응하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맞서고 있고 우리가 언제 그랬어요 막 이런 식으로 막 맞서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러분 이것은 다 생각으로부터 온 거예요. 생각으로부터

사람이 하루를 살면 과학자들 말이 한 6만 개에서 8만 개의 생각이 왔다 간대요. 우리의 머릿속에 숫자가 어마어마하죠.

또 다른 캐나다 어느 연구팀에서 혈류를 카메라로 찍어서 좀 더 유의미한 생각들 그러니까 생각의 머리에 머물러서 그 생각이 혈류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의 영향을 끼치는 생각은 몇 개인가를 조사를 했더니 약 6천개쯤 된대요.

그니까 우리의 생각은 생 어마어마하게 많이 여러분의 뇌를 왔다 갔다 해요. 그리고 그게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미치죠.

우리가 모든 생각을 다 깊게 하진 않아요, 그 머릿속에 싹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도 있는 반면에 어떤 생각은 내 머릿속과 마음이 오랫동안 남아서 나를 기쁘 기쁘게도 하고 나를 괴롭게도 해요. 성경은 그거를 묵상이라고 불러요. 묵상 되내는 거예요. 읖조리고 되내이고 반복해서 계속 생각하는 거죠.

생각이 이렇게 오면 우리는 그냥 흘려 보내도 되는 생각이 있고 남겨서 오랫동안 생각해야 되는 것이 있는데 이거를 잘 선택하는게 중요해요.

그니까 어떤 사람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염쇄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고 더 심하게는 살인적인 생각 이런 것들을 계속 묵상을 해요.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를 힘들게 하고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근데 어떤 사람들은 좋은 생각 또 하나님의 말씀 이런 것들을 이제 머릿속에 다 들어오면 그거를 오랫동안 묵상을 하는

우리는 때로는 이런 이거를 선택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이런 것들을 밀어낼 생각은 밀어낼 필요가 있거든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하셨어요. 기계로 만들지 않고 우리를 생각하도록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현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귀한이 시작됐을 때 뭔가 새로운 일이 뭔가 놀라운 일이 뭔가이 풍요로움이 이제 과거에 다윗의 영광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왔을 텐데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 현실 속에서 자꾸 그 힘든 현실만 자꾸 보는 거예요. 거기에 당연히 왜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없겠어요. 생각하는 다 시기가 있고 하나님의 뜻에 어떤이 시점이 있고 다 다른데 우리의 시점과 다르잖아요. 그러면 좀 이렇게 좀 서운할 수 있죠. 좀 빨리 좀 해 주시고 좀 이럴 때는 이렇게도 좀 해 주시고 나 같으면 내가 하나님이라 그렇게 안 할 텐데 막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자꾸 자기 현실에 그 생각에 자꾸 매몰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거예요.

또 백성들에게 생긴 현상이 뭐냐면 자꾸 이방인들과 결혼을 하는 거예요.
2장 10절부터 17절에 나오는데 계속 이방인들과 결혼을 해요. 그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더니 이게 답이 안 나와요. 답이 앞이 안 보여요. 이대로 살았다가는 그래서 국제 결혼을 자꾸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국제 결혼을 통해서 어떤 경제적인 이익을 얻거나 또는 정식적인 이익을 얻거나 이제 이런 것들을 자꾸 추구하게 되는 건데 하나님이 당연히 금하시는 거죠.


말라기 3장 8절 말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의 10분의 1을 주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니까 사실은 열 개를 주셨으면 열 개가 다 하나님이 주신 거고 다 하나님 거죠. 내가 일했지만 내가 수고했지만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내가 수고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과 모든 상황을 다 허락을 해 주셨고 그러니까이 모든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이거 다 하나님 겁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최대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최소를 요구하세요.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면 주님은 열 개를 다받쳤다고 여겨 주시고뿐만 아니라 10분의 9를 남아 있는 10분의 9를 축복하세요. 더한 것으로 주시고 이게 십일조잖아요.

근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냐면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예배가 부실해졌고 헌신이 부실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이 예물도 드리지 않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삶이 힘드니까 자기 삶이 척박하고 자기가 먹고 사는데 고민이 많고 이러니까 안 들리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이 여기에 대해서 이걸 지적을 하세요. 너희가 지금 도둑질 하고 있다. 사실 이거는 하나의 예를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가 너희의 지금 헌신이 부제하고 있고 너희가 끊임없이 나에게서 그렇게 멀어지고 있고 이거를 하나의 어떤 예로 드는 건데 그 예에 대해서 주님이 아주 강력하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9절과 10절에 보면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온 나라예요. 한두 명이 한게 아니에요. 어떤 전반적인 흐름이었던 거예요. 당시 신앙의 전반적인 흐름이에요. 그래서 저주를 이미 받았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해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싸울 것이 없도록 붙지 아니하나보라

마땅히 드려야 할 헌신을 하나님께 드려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채우지 않는지를 봐라 넘치도록 채울 것이다.

여러분,이 말라기에 나타나는 이런 어떤 백성들의 흐름을 보면 딱이 세 단어로 딱 정리가 돼요.
사랑을 부정하니까 예배가 부실해지고 헌신이 부제하는 거예요. 부정과 부실과 부제  이 세 단어로 딱 정리가 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상황이 이러했다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답을 하십니다. 이 하나하나에 다 답을 하시는데 설명을 하시고 말하자면 변론과 변증을 하세요.

먼저 첫 번째로 주님께서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거 특별히 가장 모든 것의 시작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부정에 대해서는 딱 이렇게 말씀하세요.  
2절 3절을 다시 한번 좀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다 그 여기에 대해서 주님 말씀하세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들에게 넘겼느니라

여러분이 말씀을 딱 읽고 어디에 꽂혀야 되냐면 야곱을 사랑했다에 꽂혀야 돼요.

여기에 이거를 딱 읽고 어 에서는 왜 미워 미워하셨지 여기에 꽂히면 아 이게 안 풀어져요. 설명이 안 돼요.

그 성경을 읽을 때 어디에 꽂혀야 되는지가 중요한데 여기서에 꽂혀야 되는 건 뭐냐면 야곱을 사랑했다요. 야곱은 장자도 아니에요. 그리고 특별히 그가 신실했냐 아니에요. 그가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했냐 아니에요. 그럼 그가 정직했냐 아니에요. 그는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창세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혼란을 겪어요.

왜 야곱을 선택하셨을까? 야곱이 사고 치고 벧엘로 도망가다가 바딴 아람에 가는 길에 벧엘로에 머물잖아요. 주님이 나타났어요. 기도도 안 했어요.
그냥 자기 잘 곳이 없으니까 그냥 맨바닥에다가 돌 하나 갖다가 배고 자려고 했는데 그 꿈에 주님이 나타나세요. 하나님 찾아오세요. 사닥다리 왔다 갔다 오르락 내려락 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는 걸 보여 주세요. 거기로 가요. 봤던 사람이가 가지고 그 삼촌에게 또 사기를 당하잖아요. 그래서 레아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혼을 억쩔 수 없이 하고 라엘하고 결혼을 하고 14년을 거기서 죽고 생활하고 또 이어서 6년을 또 해 가지고 20년을 거기서 죽고 생활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야곱에게 어마어마하게 부어 주세요.

야곱이 하나님을 특별히 더 찾거나 특별히 신설하거나 정직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야곱은 사실은 평생 비겁했고 평생 부정직했고 그의 이름대로 남의 발꿈치나 잡는 사기꾼처럼 살았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를 버리지 않아요. 끝까지 끌고 가요. 끝까지 사랑해요. 끝까지 복을 베풀어요. 결국에 믿음의 조상이 되게 만들어요. 이게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했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삶이 힘들고 이렇게 고통스럽고 우리는 인생의이 현실에 매몰돼 가지고 여기서 숨도 못시겠는데 어떻게 주님은 나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딱 하시는 말씀이 이거예요. 내가 너를 선택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구한다 내가 너를 새롭게 할 거다 아멘. 주님께서 떠나지 않겠다라는 거예요. 떠나지 않겠다. 주님께서이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하시는 거예요.

선택했다는 건 뭐냐면 약해도 부족해도 어리석어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코 버리지 않는다. 약하면 강하게 만들고 부족하면 채우시고 어리석으면 지혜를 주셔서 내가 너로 하나님 백성 되게 할 것이다 아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도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이렇게 앉아 있으면 다 되느냐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가만히 있게 두진 않으세요.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만드시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만드시고 그 뜻대로 살도록 만드시죠.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이끄세요.

근데 이때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 있는데
이사야서 40장 31절에 보면
새힘을 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앞에 뭐가 있냐면 여호와를 악망하는 자는 이게 붙어 있어요. 여호와를 악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 올라감 갖고 다른 박질하고 걸어가도 곤비하지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악망해라 악망해라.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위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라 드려라 우리가 말씀하세요.

야고보서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러분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어디에 둬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둬야 되겠어요?
우리의 시선이 자꾸 현실을 보고 현실 속에서 부정을 찾고 부실하게 되고 부제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점차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멀어지게 돼 있어요. 그거를 죄라고 해요.

우리가 특별히 누구에게 잘못을 하고 내가 뭐 특별히 누구한테 뭔가 해를 끼치지 않아도 주님과 멀어지는 거 자체가 죄 때문이에요. 그 죄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쳐서 주님의 손이 짧지도 않고 주님의 능력이 약하지도 않은데 우리와 하나님 사회를 갈라 놓는 그 무엇이에요.

그게 결국에는 어디서부터 오냐면 생각으로부터 오는 거예요. 나의 생각 나의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때때마다 우리의 삶에 내 마음이 뭔가 하나님을 향해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오고 현실에 전반적으로 내 마음이 내 삶이 자꾸 억눌려 가지고 뭔가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때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나 같은 자를 위하여 기꺼이 내 주시고 그 아들은 나 같은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 그 고통을 당하시고 이거는 이해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명백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랑이잖아요. 그 우리가 이거를 봐야죠.

모든게 다 부정될 수 있고 모든게 다 내 눈 앞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원망스럽고 불평이 튀어나오고
내 진짜 오늘 이거 해결 안 되면 나 주님 떠납니다 내 인생에 내가 주님께 얼마나 내가 많은 헌신과 최선을 다했습니까 근데 주님 이거 이거 지금 몇 년째인데 이거 아직도 해결 안 해 주시고 나 오늘 이거 예배드리고 이거 문제 해결 안 되면 난 주님 떠날 겁니다
이런 섭섭한 마음이 막 마음에 들 때도 결코 부인할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그 사실.. 우리 예수님이 날 위해 죽었다 그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다 하나님 나를 선택하셨다 성령님을 통하여 지금도 나와 동행하시고 내 안에 내주하시고 내 인생을 이끌고 계신다
이건 무엇으로도 부정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이 생각 속에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두 번째와 연결이 돼요. 예수님께서 그 주님과 멀어지고 있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부정하고 예배가 부실해지고 헌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세요.
3장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내 사자를 보낸다는 건 세례 요한을 의미하고 언약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해요. 언약을 다시 세우실 분. 내가 너희에게 메시아를 보낸다 구원자를 보낸다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거다 하는 말씀을이 말씀에서 주시는 거예요. 메시아로 인한 영원한 소망이 너희에게 있다

그 예수께서 3절에 이 일을 하신대요. 3장 3절에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며 금과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깨끗하게 하신대요. 깨끗하게 더러운 자들을 깨끗하게 죄에서 구원하신다
사람의 모든 불행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애통의 모든 시작점이 다 죄인데이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신다 하는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지막 결론 부분에 공의로운 태양 빛을 너희에게 비추겠다
말라기 4장 1절에 보니까 먼저 심판을 말씀하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이를 것이다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다

끊임없이 악인들에게 고난받고 고통받고 아픔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위로가 될 것이고 또 악한 자들에게는 경고가 될 것이고

그러면서 이제 4장 2절을 주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내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공의로운 해를 비추겠다 치료의 광선을 비추겠다 아멘.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 같이 자유롭게 뛰어 놀 것이다.

현실을 바라볼 때 그 현실 속에서 부정적이고 또 부실해질 만한 수많은 이유와 부제해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근데 거기에서 벗어나야 돼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랑을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예배가 부실해지면서 헌신이 부제하게 됐어요.

현대 사회는 어떨까? 현대 사회는 저는 현대 사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포기가 일상화됐다고 생각해요. 포기가 일상화되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이제 이런 뉴스가 떴는데 이제 이런 내용이에요. 청년 81%가 노력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응답을 했어요. 물론이 배경은 이제 서울입니다. 서울 인근 수도권

또 월세 100만 원 내면 통장이 아니라 텅장이 된대요. 그래서 부모 찬스 없는 나는 믿을 거라곤 레버리지밖에 없다 이제 이런 기사가 최근에 떴어요.

이 두 기사는 이런 내용입니다. 인천에 사는 28살 청년이 있는데 이 청년이 대학 졸업하고 또 공부도 취업도 열심히 해 가지고 취업 준비도 열심히 해서 서초동에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어느 마케팅 회사에 입사를 했어요 괜찮게 한 거 아니에요?  열심히 했어요. 그래 가지고 이제 딱이 28살에 좋은 회사에 딱 들어가서 이제 일을 시작을 하면서 나름대로 꿈을 가셨죠. 이제 결혼도 하고 또 이제 집도 마련을 해야지

처음에는 인천에서이 서울을 왔다 갔다 했어요. 왕복 4시간 두시간 가고 두시간 오고 가고 그 여러분 생각해 봐요 8시 반에 출근이에요. 그럼 몇 시에 출발해야 돼요? 6시 반에 출발해야 되죠. 6시 반에 출발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돼요? 남자들은 6시면 충분히 가능해요. 근데 여성들은 훨씬 많이 걸리죠, 그죠?

그래서 아니이 청년이 무슨 어 목사도 아닌데 매일 5시 반에 일어나야 돼요.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가지고 출근을 해요. 근데 퇴근에 예를 들어 6시라고 해 봐요 퇴근을 하면 바로 출발해서 집에 오잖아요 8시예요. 길 막힐까요 안 막힐까요 8시 넘겠죠. 그때 저녁을 먹어요.

근데 여러분 사회 생활이 그렇게 되나요 선배가 오늘 뭐 같이 밥 한끼 먹자 그러면 밥 먹어야 되고 회식한다 그러면 회식해야 되고 그러면 예를 들어 10시에 맞췄어요 회식이 그럼 어떻게 해요 집에 가면 12시고 씻고 자면 1시고 뭐 딱 4시간 자고 또 일어나 가지고 급하게 와야 돼요. 그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1년쯤 하다가 너무 힘들어 가지고 아후 안 되겠다 자취해야지 근데 서초동 근처에 집을 구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내리고 내려와 가지고 사당동에 한 원룸을 잡았대요. 원룸을 잡아 가지고 거기에 전세는 또 못 해 왜요 전세 사기가 얼마나 기승을 부르는 그 극성인지

그래서 그건 못 하고 그래서 월세를 했는데 월세가 얼마 100만 원 350을 받는데 100만 원 나가고 그리고 자기 고정 비용 나가면 그것도 100만 원 그럼 150 남는데 결혼하려고 그러면 연애도 해야 되죠 데이트 해야 되잖아요. 그리고 밥만 먹어요 커피

그러니까 이 친구가 한 달에 50을 남기기가 힘 저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3년을 딱 일했어요. 3년 열심히 쉬지도 않고 열심히 3년 딱 일하고 통장에 1,500만 원 모은 거예요.

근데 그 3년 동안에 집값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니까 서울에서 집은 못 구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청년이 81%나 된다 하는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이제 KB 금융하고 조선일보하고 2030 청년들 인식 조사를 했는데 그들이 이렇게 응답을 했어요.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한 사회다 76.2%
이들에게 있어서 딱 두 가지 방법이 있대요. 이 서울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부모님 찬스.. 부모님이 부자이시거나 돈을대 주실 수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두 번째는 레버리지가 그 지렛대 이런 뜻이래요. 그래서 예를 들어 제가 100만 원 가지고 있으면 100만 원 투자하잖아요 그러면 그 투자 회사에서 100만 원 빌려 줘요. 그래서 2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수익이 나는 100만 원밖에 안 냈는데 수익을 두 배로 얻을 수 있는 거죠. 문제는 뭐냐면 손실이 나면 그 손해가 두 배가 되는게 문제예요. 이게 레버리지래요. 그래서 한 탕을 해 한 탕

근데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기사가 계속 나오거든요. 요즘에 뭐 좋은 기사보다 안 좋은 기사가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레버리지는 하지 마세요. 투자하는 건 좋은데,  

이런 상황이 우리 젊은 세대 특별히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어려운 현실이건 맞아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야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이제 이러시는데 물론 맞는데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내야만 하는 현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어느 정도 이해를 해 줘야 공감도 할 수 있고 소통도 할 수 있어요.

근데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자꾸 뭔가를 포기하는게 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너무 안타깝다 포기하는 것

요즘 뭐 옛날 얘기지만 3포 뭐 5포 7포 이런 거 얘기 많았잖아요. 3포는 뭐 결혼 뭐 출산 연애 포기하고 거기다 두 개 더하면 내집 마련 포기하고 인간관계 포기하고 거기에 한 두 개 더하면 뭐예요?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근데 N포가 나오돼요. 그래서 수많은 것들이 뒤에 달려 가지고 포기 포기 포기 포기 포기 포기

물론 어떠한 걸 얻기 위해서 얼마간 절제하고 참고는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위해서 이 올인하기 위해서 나의 어떤 능력과 어떤 실력과 업무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잠깐 동안이 친구들과 좀 벽을 쌓거나 또는 어떤 공부를 위해서 어떤 고시를 위해서 잠깐 동안 인간관계를 잠깐 동안 이렇게 좀 닫거나 이런 것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삶에 여러 가지 현실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 가지고 마땅히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거 거기에 생각이 갇혀 버리는 거 전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너무 대중적으로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어른들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그 끊임없이 이와 이와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이게 뿌리를 뿌리를 타고 타고 타고 들어가면 사실은 생각인데 어떤 생각이냐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생각이에요.

인생은 때로는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져요. 저 여기 있는 거 보세요. 예상치 못하는 일이 벌어져.  인생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그리고 여러분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분들이 많아요.
사람은 사람의 인생은 생각보다 예상대로만 흘러가진 않아요. 때로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것들이 때로는 찾아오기도 하는 거죠.

 
성경의 말씀은 명백한 거 같아요.
너는 나를 위해 헌신해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제 개인의 행복은 어떻게 되나요, 주님? 네 개인의 행복은 내가 책임지겠다. 아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 그거를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의 삶을 우리 개인의 인생을 우리의 모든 순간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거 같아요. 아멘.
 
한국 교회가 지금 쇠퇴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경기 고속도로에서 천안 분기점 근처에 4톤 화물차 한 대가 이렇게 비틀비틀거리더니 도로 중간에 넘어갔어요. 전복이 된 거죠. 다른 차들은 그 차를 피해서 가기 바빠요.그런데 한 1톤짜리 트럭이 그 옆을 지나가다가 앞에 세웠어요.  그 쓰러진 차에 운전자 구하려고 막 달려오는 거예요. 그게 CCTV에 다 잡혔어요. 막 달려와 가지고이 차문을 열고 그 사람 막 끄집어내려고 막 하는 그 와중에 뒤에서 16톤 컨테이너 차가 그냥 받아버렸어요. 그래서 그 두 분이 다 거기서 돌아가셨고 그리고 그 16톤 운전하신 그 컨테이너 운전자도 많이 다쳤어요.
 
구하려다가 본인도 못 구하고 남도 못 구했어요. 그리고 이제 돌아가신 분인데 그분의 부인이 장례식장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100번도 더 생각해 봤지만 그 시간에 그 장소를 또 지나쳤어도 그 사람은 절대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100번 생각해 봤는데 내 남편은 또 똑같은 일이 있으면 자기 목숨 걸고 그 사람 구하려고 할 사람이라고 그게 내 남편이다"
 
세상 살기 쉽지 않잖아요. 현실은 다르거든요.
내가 뭔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고 내가 뭔가 주의 뜻대로 뭔가 순종하려고 할 때 이게 쉽지 않거든요. 인생이 녹록지가 않잖아요.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꿈꾸라고 하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데 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너의 꿈과 비전을 둬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당장 지금 내 현실 나 먹고 살기도 힘들고 지금 바쁘고 그런데 하나님의 그 원대한 꿈을 어떻게 꾸겠어요?
 
저희 교인들이든 우리 목사님은 또는 우리 자녀들이 우리 아빠는 또 똑같은 그런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교회와 또 지역 사회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위해서 또 그렇게 할 사람이다, 실패를 하고 그것 때문에 고초를 겪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해도 저분은 또 똑같이 할 뿐이다. 혹 실패자로 남아도 혹 열매가 부족해도 저분은 또 저렇게 할 사람입니다. 이런 평가 듣는 목회자 돼야 되지 않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험한 세상에, 이 험한 풍파에 바르게 서려면 우리에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내가 하는이 일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이 확신이 있으면?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내 가정에 또 불신 가족이나 또는 내 직장에 또 여러 가지의 고초들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거나 하는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사랑을 붙들 수만 있으면 버텨낼 힘과 지혜와 또 풍요로움이 있지 않을까.
 

말라기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시기를,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떠한 손해가 예상이 되고 어떤 어려움이 예상이 돼도,
그게 주의 말씀이고 주의 뜻이고 그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헌신하여 공의로운 해가 비치는 치료의 광선이 발하는 갇힌 곳에서 자유롭게 나와 뛰어놀수 있는, 그와 같은 놀라운 은총을 다 누리는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 신앙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인생은 때로는 쉽지 않습니다. 또 사회적 배경에서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존재하죠. 이때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돼요.
혹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예배가 부실해지고 헌신하지 않는 그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우친 삶을 혹 살았다면 이 시간 다시 한번 회개하면서 하나님 내가 확신하게 해달라고,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 안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는 그런 내 신앙이 되고 있음을, 그런 신앙의 길을 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연약함들을 내려놓고 하나님 주님을 굳게 붙들도록, 그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그의 뜻을 구하며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더 수고하고 애쓰며 더 힘차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는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하나님은 나의 개인의 행복을 책임지시는 그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그런 말씀의 성취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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