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회복과 개인의 회복
시편 147장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 뜨리시는도다
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8.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11.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를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의 깊은 상처는 그 마음의 상처는 남에게도 보이지 않고 또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잘 몰라 우리의 가슴 속에 그냥 덮어 둘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큰 상처일지라도 어찌할 바를 몰라 황급히 우리 마음의 어두운 창고 속에 성급하게 던져 버리고 문을 닫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마음, 괴로운 감정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이 상처가 단순한 개인의 일이 아니고 만약에 역사적인 재앙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런 상처라면 더 무겁게 개인 개인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47편은 무너졌던 예루살렘이 다시 세워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를 잃었습니다. 집을 잃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종이 되어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여기에 두 가지 회복이 나타납니다.
첫째 회복은 예루살렘의 회복, 곧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또 하나는 상심한 사람의 회복, 영혼의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벽을 다시 세우시지만 성벽만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다시 세우십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사람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또 역으로 사람의 마음이 회복이 되면 공동체도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몇 가지 교훈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감추어 둔 내면의 상처는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를 우리가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그냥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쓴 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을 더럽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쓴 뿌리는 뭘 얘기할까요? 식물을 얘기하죠. 식물의 뿌리가 있으니까 독이 있는, 독이 있는 이 뿌리 그리고 열매, 독이 있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간단하게 얘기하면 독초라는 거죠, 독초. 이 독초의 독이 나와서 나와 또 내 이웃 사람들에게 퍼지지 않게 하라,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는 언젠가는 쓴 뿌리가 된다, 독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시편 147장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사람의 마음을 상심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상처를 줘요.
여기서 상심한 자라는 뜻은 이 말 그대로 상한 마음이죠.
원어의 뜻을 분석해 보면 그저 상심했다고 하는 것은 조금 슬프다, 괴롭다 이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부서진 마음을 얘기합니다.
여러분 그릇을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떨어뜨린다고 할 때, 일부러 이렇게 탁 던지는 게 아니라 그냥 들고 있던 것 딱 떨어뜨렸는데 어떤 그릇은 아예 그냥 박살이 나잖아요. 그리고 박살이 날 때 떨어질 때 그 소리조차도 딱 이런 소리 나면서 그릇이 어떻게 그 가루가 되는지 수백 조각이 나는 그런 그릇이 있어요. 우리의 마음이 이런 그릇처럼 그냥 딱 부서져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서 어떻게 다시 붙일 길이 없고 어떻게 다시 뭐 어떻게 할 길이 없는 완전히 부서진 마음, 이런 마음을 오늘 본문에 상심한 자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상처가 생긴다는 거죠. 그 상처는 고통이요, 아픔이요, 괴로움이요, 근심이요, 슬픔이요, 걱정이요,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더 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마음의 병은 그렇지 않아요. 세월이 약이야가 아닌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는 세상의 법칙과 달라요. 치료받지 못한 상심한 마음, 치료받지 못한 상처,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억눌린 분노의 모습으로, 타인을 향한 공격성의 모습으로, 깊은 열등감의 모습으로 한마디로 독초가 되어 쓴 뿌리로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 독초가 잔뜩 자라요. 우리의 영혼의 밭에 가득 이 독초가 밭이 되어 자라요.
어떻게 될까요? 영혼의 밭은 황폐해지는 거죠.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외적인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의 아픔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고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생기는 영혼의 절망이다." 하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덮어만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방치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를 삼키고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며 내 주변의 가족과 모든 환경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번째, 하나님은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시편 147장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그래서 그냥 상심한 자들, 상처받은 자들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하나님은 다시 당신의 백성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회복의 첫 번째 조건은 모아지는 거예요.
죄의 특성은 뭡니까?
흩어 버리는 거죠. 에덴동산에서 죄가 들어오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갈등 관계, 서로 책임 전가가 일어나서 또 부부가 갈라지게 됩니다.
형제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면서 형제가 갈라지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을 보면 언어가 나뉘고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불러 모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아 주셨습니다.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닙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다." 하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공동체를 다시 하나로 묶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통하여 사람을 모으십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상처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 의견이 다른 사람, 성격이 다른 사람, 이렇게 흩어졌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숯불에서 숯 하나를 끄집어내면 금방은 계속 잘 탈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냥 꺼져 버립니다. 그런데 다 식어 버린 숯도 지금 활활 타고 있는 그 숯불 가운데 집어넣으면 이 숯불도 같이 불이 붙어서 타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힘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나만 하나님 잘 믿으면 되지, 나는 혼자 예배드린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날에 인터넷으로 또 예배를 드립니다. 인터넷으로 드리면 예배가 나름 또 편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이 팬데믹이나 전염병이 퍼졌을 때나, 또 건강의 문제가 있을 때나, 또 먼 곳으로 출타를 했다거나, 또 기타 출석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개인적인 심각한 질병이 있다든지 입원을 했다든지 그럴 때 외에는 교회 예배를 함께 몸으로 함께 드리는 것,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믿도록 부르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함께 믿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셨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용서하고, 함께 다시 일어서는 공동체를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내게 주는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가 있죠.
그런데 내가 힘들 때 한 성도가 나를 위로해 줄 때 그 위로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거죠.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고 나를 도와주는 그분의 손길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내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회복이라는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 누가 잘했느냐 잘잘못을 밝혀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그냥 다시 모이는 것, 그냥 하나가 되는 것,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우리 가족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요?
가족의 부부가 멀어졌다면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됩니다. 부모가 자녀가 멀어졌다면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됩니다. 관계가 멀어졌다면 회복의 첫걸음은 다시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있어야 돼요. 피하는 것이 아니에요. 갈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흩어진 자를 모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상처 입은 영혼을 고치십니다. 아멘.
시편 147장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가만히 두면 우리의 상심, 상처는 더 커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상심한 자?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자.
그리고 여기에 상처는? 하나님이 이 다친 부분이죠.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만 여전히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실패해서 온 상처가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받은 고통이 있습니다. 부부에서 생긴 상처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상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처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47장
4.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놀라운 연결입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싸매신다고 하면서 별들의 수요를 세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별들의 수요를 다 세시고 그 수많은 별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다 불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별이 뭘까요?
갑자기 앞에 상처, 상심한 마음 해놓고 갑자기 별이 등장해요. 이 별은 우리를 말합니다. 별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별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 별은 우리 각자를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별들의 수요를 세시고 그 모든 별들의 이름대로 부르시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 각자를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상처, 상처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가족이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가 내 마음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은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과거처럼 돌아간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지워 준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상처, 우리의 고통, 어떻게 지우겠어요? 없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더 성숙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더 발전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처가 있었지만 그 상처를 통하여 인생을 더 깊게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게 하십니다.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 눈물의 의미를 압니다. 실패해 본 사람이 실패의 두려움을 압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 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있고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상처가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한 권사님이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아주 괴로워했어요. 유난히 힘들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권사님이 찾아가서 한마디 합니다. "내가 과보다. 너보다 내가 20년은 먼저 홀로 됐다." 이 한마디 했어요. 그랬더니 그 우울증에 그렇게 깊게 빠져 있던 이 홀로 된 권사님이 그다음 주부터 교회를 나와서 웃음을 회복하고 교제를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자신의 책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치유자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거예요. 우리는 치유를 하려면 자기가 건강해야 되고 자기가 무언가 능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치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치유자는 스스로 상처 입고 고통당하는 그 사람이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주를 향하도록 지으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주 안에서 쉬기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사람으로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돈으로도 채울 수 없고, 명예로도 채울 수 없고, 성공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 그 자리, 그 깊은 자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입니다. 그때 우리 인생은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아픔이 있습니까? 결핍이 있습니까? 그 아픔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결핍이 있습니까?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상처가 있습니까? 실패했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 상심한 자를 뭐 한다 그랬어요? 고치신다고 말했어요.
상처 입은 자를 하나님은 내치지 않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상처 입은 자를 싸매어 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난 내 마음, 우리의 마음, 이것을 우리는 누구에게 내어놓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네 번째 교훈은,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시고 친히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서 수고했다 하는 것은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한 거예요. 자기 힘으로 일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피곤해진 상태, 이게 수고한 상태. 무거운 짐 진 자는 무거운 짐은 어떤 짐을 얘기하느냐, 남에 의해서 내게 강제로 지워진 중압감, 강제로 짐을지고 고생하는 것, 부담 갖고 있는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가장으로서의 그 무게, 경영주로서 책임을 져야 되는 그 무거운 짐의 무게,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져야 되는 무게, 또 때로는 독재의 강압 가운데 고통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로마의 지배 밑에서 고생을 당하고 이런 것을 짐이라고 오늘 본문에 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내가 자발적으로 일하다가 지쳤던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짐을 지고 고난의 짐을 지고 내가 가다가 지쳤던지, 그 어떤 짐이든지 간에 어떤 짐이든지 간에 불문하고 내게로 오라 우리를 불러 주시는 예수님의 초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내 상처를 치료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오라 이러지 않으셨어요. 깨어지고 지치고 쓰러지고 무릎이 까졌을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오라고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미국의 상담과 찰스 알렌 목사님이 있어요. 한 내담자가 찾아왔습니다.
깊은 우울증과 배신감으로, 증오심으로 그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 마음은 완전히 깨어져 조각이 났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십자가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님, 하나님은 깨어진 것들을 가장 아름답게 쓰시는 전공자이십니다. 깨어진 곡식이 빵이 되어 생명을 살리고 깨어진 향유 옥합이 온 집안에 향기를 바라듯, 하나님은 당신의 깨어진 마음의 조각을 모아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다섯 번째 교훈은, 십자가 앞에서 상처를 쏟아 놓을 때 참된 치유가 시작이 됩니다.
내 치유의 시작은 내 상처를 주님 앞에 다 내어놓는 것입니다. 상처를 내어놓을 때 주님이 그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
싸매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내 상처를 못 내놓는 이유가 뭡니까?
치유를 받기는커녕 더 고통스러워지고 더 남의 가십거리가 되고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내 상처를 주님 앞에 내어놓지를 못하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의 상처를 내어놓으면 싸매어 주십니다.
싸맨다는 게 뭡니까?
여러분 의사가 환자의 다친 부위를 세심하게 깨끗하게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또 무균 상태의 거즈를 바르고 해서 붙여서 드레싱을 잘해 주는 거예요. 정성스럽게 묶어 주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를 비웃지 않으세요. 거칠게 다루지 않으세요.
"너 그렇게 살다가 이런 꼴 당할 줄을 내가 알았다. 왜 그렇게 성령을 통해서 들려주는 음성을 듣지 않고 사사건건 반항하면서 그렇게 살았냐? 꼴좋다."
절대 이러지를 않으세요.
내 힘으로는 이 상처와 이 고통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님, 내가 이런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기름을 바르시고 당신의 보혈의 은총을 다시 덧입혀서 드레싱을 하셔서 우리를 치료해 주고 싸매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섯 번째,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공동체와 영혼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시편 147장
10.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11.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하는 그 기준이 달라요.
세상 사람들은 정치인 좋아하고, 부자 좋아하고, 힘센 사람 좋아하고, 성공한 사람 좋아하고, 번듯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고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말은 군사력의 상징이죠. 튼튼한 다리는 군인의 힘을 상징하죠. 하나님은 돈이 많다고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뛰어나다고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감동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가 회복이 되려면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되고 참된 교제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함께 연주를 합니다.
바이올린 현악기도 있고, 첼로도 있고, 플루트, 트럼펫도 있습니다. 타악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기준으로 음악을 하기를 원한다면 음악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기준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의 기준음에 모든 악기가 다 맞춰서 조율이 되어야 그다음부터 연주를 하면 화음이 나오는 것이지, 조율도 되지 않고 모든 악기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 교회, 가정, 국가, 각자가 자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 정당이 딴나라에 사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사회는 분열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 가족이 대화를 해도 다른 인종을 만나는 것처럼 대화를 한다면, 부모와 자식 간에 그 대화가 외국어 대화하듯이 그렇게 소통이 된다면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왜 저 사람은 나와 같지 않은가?
왜 저 사람은 사사건건 내 생각하고 반대인가?
그렇습니다. 기준이 나에게 있으면, 기준이 또 너에게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내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 당신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당신과 나는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 문학가 C.S. 루이스는 "사람들이 공통된 대상을 함께 바라볼 때 우정이 깊어진다." 말합니다. 공통된 대상을 함께 바라볼 때 우정이 생기는 거예요. 공동체가,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가장 강한 힘은 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147편은 말합니다.
시편 147장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은혜와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며 그를 찬양할지어다.
찬양은 고백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오늘 시편 147편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십니다. 공동체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상한 마음을 고쳐 주십니다. 한 영혼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우리의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관계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영혼과 가정과 교회와 이 국가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공동체와 역사를 새롭게 하시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상심한 영혼들을 새롭게 고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바이블 > 지혜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나라 시편144:15 (0) | 2026.08.26 |
|---|---|
| 사랑이 만든 쇼핑백 야고보서 3장 13절 (0) | 2026.08.25 |
|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에스겔 37:1~6 (0) | 2026.08.24 |
|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라 데전3:3 (0) | 2026.08.24 |
|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에베2:10 빌립 1:6 9 10 (0) | 2026.08.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