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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본심 예레미야애가 3:25~33

by diane + 202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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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예레미야애가 3장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의 마음 잘 파악하면서 살고 계신가요? 지금 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이렇게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나한테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실까? 이렇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시길래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 여러분 잘 알고 계신가요?

기도 많이 하고 또 교회도 꽤 오래 다니고 또 금요 예배 이렇게 나올 정도로 믿음이 깊고 뜨거워요. 그런데도 하나님 마음 잘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알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떤 상황이 끝나거나 일이 끝나면 그래서 그런가 보다라고 정도밖에 아는게 우리의 신앙의 단면인 것 같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대요.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도 힘들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는 얼마나 더 힘들까요?
그런데 하나님 마음 아는 게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딱 하나밖에 없거든요.

우리는 내 삶에 일어나는 일로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파악할 때가 있어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은 날 떠나셨어', 근심이 생기면 '벌주시는 건가?' 반대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날 축복하셨나 봐', 성공했어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마음도 부정적일 거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마음도 긍정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삶의 현상으로 하나님을 해석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 중심이에요, 나 중심이에요?
하나님 중심같이 보이지만 내 삶으로 하나님을 해석하고 있으니까 나 중심적인 거죠. 내가 중심이 돼서 하나님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거예요.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내 믿음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마음은 딱 하나입니다. 이 단 하나의 마음으로 내 삶을 해석해야 그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정확하게 드러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일들이에요.

하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천하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대요.
왜 오셨을까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 있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성경 구절에 '사랑'이라는 마음 말고 나오는 다른 마음이 없어요.

왜 오셨을까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셨대요. 그리고 죽으셨대요.
왜 죽으셨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죽으셨어요. 그리고 다시 사셨대요.
왜 다시 사셨을까요? 이것도 사랑 때문에, 우리와 늘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해서 다시 사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 뜻의 전부입니다. 날 사랑하신다는 것밖에 없어요.
다른 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다 오해예요. 이 땅에 오신 것도, 죽으신 것도, 다시 사신 것도 나와 늘 함께하기 위해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겁니다.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 31절을 보면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할 것임이요."
이 말씀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않으신대요. 언제까지요?
영원히. 영원히 버리지 않는대요.

이 '버리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다른 뜻을 보면 '내팽개치다', '밀어버리다'라는 뜻이에요. 밀면 넘어지잖아요. 내가 넘어지는 게 하나님의 진짜 의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33절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내가 고생하고 내가 힘들고 내가 근심하는 게 본심이 아니래요.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물론 사랑한다는 것으로 삶이 다 해석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때가 그래요.

그런데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 알 수는 없지만 이해 안 돼도 이 상황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견디고 버틸 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오는 거예요.

그러면 본심이 아니시라면서 왜 넘어지게 하시고 근심하게 하실까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라는 거예요.

아이가 두 발로 서기 전까지는 2,000번 정도 넘어져야 된대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그 다리에 힘이 생기거든요. 하나님은 일어서는 법을 알게 하시려고 근심하게도 하세요.

이걸 배우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작은 일에도 늘 넘어지는 거예요. 늘 흔들리고 휘청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29절을 보면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대어볼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여기에서 티끌은 땅의 흙을 말하는데요. 입이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라는 거예요. 이상하죠.

넘어졌어요. 넘어졌는데 더 몸을 땅에 숙이래요. 입이 흙에 닿을 정도로 숙이래요. 더 엎드리라는 거예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방법은 하나님께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더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거예요. 힘들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겁니다. 마음이 넘어질 때가 있어요.

소망과 기쁨과 행복으로 마음이 온전히 서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절망과 아픔과 불안에 걸려서 내 마음이 넘어질 때가 있어요. 상황이 넘어질 때가 있어요. 잘되고 성공하고 상황이 잘 서 있어야 되는데 실패와 안 됨에 걸려서 넘어질 때가 있어요. 계획이 무너질 때가 있고 목표했던 것들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뭘 해야 되는가?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예요. 이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25절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로다."

하나님의 때를 겸손하게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26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힘든 일이 생길수록 더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다시 일어나는 방법이다라는 겁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맡기고 또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릴 때 하나님의 선하심과 구원하심으로 넘어졌던 삶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요, 내가 더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내가 더 하나님을 의지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힘든 일이 생긴 이유는 힘들라는 게 아니에요. 넘어지셨다는 건 넘어지라는 게 아니에요. 약하다면 약하게 살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더 함께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매달리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 뜻의 전부예요.

왜냐,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삶을 주고 싶으시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이거든요. 많이 갖고 더 잘되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것을 이루고 많은 것을 소유한 것보다, 화려한 것보다 작지만 약하지만 흔들리지만 가진 게 없지만 그럼에도,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면서 살아가는 삶, 이게 하나님 보시기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거예요. 이게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늘 다가오고 계시고 함께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요. 그런데 믿는 사람이 힘든 일을 겪기도 하고요, 힘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안 믿는 사람도 힘들 때가 있고 안 힘들 때가 있어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있고요,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근데 기도를 안 해도 건강한 사람이 있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있죠.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우린 마치 신앙생활을 이것이 믿음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믿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이렇게만 보면 우리가 늘 겪고 살아가지 않아요. 그렇죠?


물론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은 우리가 잘살고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성공하고 잘되는 건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최대 관심사일 뿐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뭘까요? 잘되든 잘 안 되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많은 것을 갖고 있든 적게 갖고 있든, 우리가 광야에 살든 가나안에 살든, 푸른 초장에 살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살든, 폭풍우 속에 살든 순풍을 살든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늘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예요. 이게 하나님의 진짜 본심이에요. 아멘.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하나님의 그 본심과 같은 마음, 마음에 합한 자일까요?
좋은 일, 잘된 일이 있다면 감사로 나아가고요. 안 좋은 일, 잘 안 된 일이 있으면 의지함과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모든 상황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진짜 본심이에요.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을 전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던 배를 탑니다. 그때 폭풍이 와서 요나가 탄 배가 어려움을 만났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이 화가 나서 요나에게 힘든 일을 주셨구나'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진짜 뜻이 뭐였죠?
하나님은 그 폭풍을 통해서 요나가 다시 돌아오라는 거였어요. 이게 하나님의 진짜 뜻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어요. 하나님의 본심대로 됐어요. 그게 가장 좋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삶을 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어요. 들어갔습니다. 근데 거기 땅에 있는 사람들의 믿고 있던 이방 종교에 물들어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그리고 결국 멸망당하고 포로가 됐어요. 망했어요.

망하라고 망한 걸까요?
다시 돌아오라는 거예요.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가장 좋은 삶을 살라는 거예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렴돼요. 우리가 겪는 힘든 일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더 가까이 오라는 거예요. "너에게 아픔이 있는 건 아프게 살라는 게 아니야. 그것으로 더 나를 생각하라는 거야.
나를 더 떠올리라는 거야. 더 나를 의지하라는 거야. 날 의지하고 나와 함께하는 게 가장 좋은 삶이야. 너에게 힘든 일이 있고 넘어지는 일이 있는 건 내 본심이 아니야. 나에게 더 겸손해지고 더 기도하라는 거야."
이게 하나님의 본심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실 때 제자들은 다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그 무기력한 죽으심만 봤던 거예요. 그 현상만 봤던 거예요.
'예수님이 무기력하신 분이구나. 예수님 힘이 없는 분이구나. 우리가 이렇게 믿고 따랐던 그 시간들이 정말 허무하게 느껴지는구나, 의미가 없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힘이 없으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어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하나님을 해석하면 안 돼요. 현상에 속으면 안 돼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던 거예요. 죽음은 죽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일어난 일이었던 거예요.
약해서 죽으신 게 아니라 사랑이 강해서 죽으셨던 거예요. 아멘.
죄로 멀어지는 나와 같이 살기 위해서 죽으셨던 거예요. 죽으심을 통한 사랑, 날 향한 구원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어요.

우리가 힘들어서 기도하면요, 기도 들으시면서 하나님은요, 뭘 하고 계시냐면 하나님 자꾸 딴생각하세요.

우리가 힘들어서 "하나님 죽겠어요, 살려 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얘기하면 기도하면 하나님 뭐 하고 계신지 아세요? 하나님 자꾸 딴생각하세요.

그 힘든 일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지금의 믿음의 흔들림 때문에 자책하는 날 보면서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 된 모습을 생각하고 계세요.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 딴생각하셨어요. 부활한 나사로를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됐습니다.

성전에서 구걸하던 못 걷는 자를 보시고 걷고 뛰며 찬양하는 모습을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됐습니다. 홍해를 보시고 사람들이 "홍해가 앞에 있고 이집트 군사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하나님 딴생각하셨어요.
홍해가 갈라지고 홍해를 건너는 생각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됐습니다.

나병이라는 피부 썩는 병에 걸린 나아만을 보시고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변하는 그 모습을 생각하셨어요.

 
작은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시면서 하나님 어떤 딴생각을 하고 계셨을까요?
"예수님, 여기는 먹을 것이 없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좀 구해 올까요?"
그때 예수님은 딴생각하셨어요. "그걸 나에게 갖고 와라." 그리고 5,000명이 배불리 먹는 생각을 하셨고 그 생각대로 됐어요.

나사로는 부활했고, 걷지 못한 자는 걷게 됐고, 홍해는 갈라졌고, 나아만은 어린아이의 살같이 됐습니다.

모두 그들 눈에 보이던 현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대로 됐어요. 하나님의 본심대로 됐어요. 죄 많은 날을 보시고 하나님은 생명을 버릴만큼 귀한 자라고 보고 계세요. 삶의 무게로 지치고 넘어진 날 보면서 "내가 일으킬 자, 그래서 내 사랑을 더욱 경험할 자"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우리가 힘들어서 고생하고 어려워 어렵고 좌절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 능력과 내 계획을 통해서 내 자녀로 더 온전해질 자"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기실 때 그것을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은혜와 소망도 함께 주십니다.

요나에게 큰 폭풍을 던지셨지만 다른 손으로는 큰 물고기를 같이 던지셨어요. 한 손으로는 근심거리를 던지시지만 다른 손으로 은혜와 소망을 던지세요. 어려움이 크다면 은혜는 더 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와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라고 하세요.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 의지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법을 배우라고 하세요. 이게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에요.

그래서 실패와 상처와 아픔과 좋지 않은 상황이 있을 때 이렇게 하나님의 진짜 본심을 알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어려움으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고 상황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열매를 맺게 하실 거예요.

며칠 전에 저랑 꽤 가까우신 어떤 분이 암이 재발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작년에 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까지도 다 끝냈거든요.
근데 이제 암이 다시 재발된 거예요. 그 암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서 살았거든요. 믿음이 생겼고 하나님을 영접했어요.

참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게 많은 상황이죠. "하나님, 이게 맞나요? 잘못된 거 아닌가요?" 하나님...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도 참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하나님, 내가 이런 일들을 겪고 어떻게 말씀을 전할까요?"
그런데 삶이 무너지고 무너져서 의지할 건 하나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삶, 힘이 다 빠지고 빠져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삶이 가장 온전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게 소망이에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봤을 때 나는 늘 뒤처지고 좀 안 된 것 같고 내 삶이 좀 잘못된 것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께 겸손하다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삶은 잘못된 것 같고 느린 것 같고 뒤처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삶을 보시면서 "가장 완전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게 소망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대로 하나님의 본심대로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 10장 16절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하나님이 근심하셨대요. 우리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근심하셨대요. 우리가 힘들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시면서 근심하셨대요. 이게 하나님의 본심이에요.
"너의 아픔을 나에게 다 맡겨라. 나에게 다 고하거라. 내가 대신 근심해 줄게. 내가 대신 방법을 찾아줄게. 내가 대신 능력을 보여 줄게. 네가 할 일은 근심이 아니라 그 근심 때문에 날 더 의지하는 거야. 날 더 매달... 나에게 더 매달리는 거야. 나에게 더 기도하고 날 더 사랑하고 나와 더 함께하는 거야. 너의 죄를 대신했던 내가 너의 근심도 대신해 줄 거야. 너의 죽음과 아픔도 대신했던 내가 너의 근심을 대신해 줄게. 대신 근심함으로 갈 길을 찾아주고 은혜를 부어 줄 거야."

고린도후서 6장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러분,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어떤 상황 중에서도 나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날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것, 이게 하나님의 진짜 마음입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나와 가까워지는 것만 원하시는, 그래서 죽기까지 하셨고 다시 부활하시기까지 한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심대로 살아가셔서 하나님이 중심 된 삶을 이루시는, 그래서 모든 근심거리들이 다 하나님께 맡겨짐으로 사라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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