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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은혜 두배 받기 사도행전 11장 27~30절

by diane + 202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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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두배 받기

사도행전 11장 27~30

오래된 미래

본을 받아야 하는 과거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본보기가 과거에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한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

교회에서는 이 오래된 미래를 태초의 때를 말하기도 하고 초대 교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태초와 초대 교회 말과 때가 달라서 그렇지 같은 말이에요. 같은 개념이에요.  

초대 교회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 사역이 이루어졌어요. 재창조에요. 창조의 때가 다시 일어난겁니다.

죄의 자녀로 살다가 하나님의 자녀로 재창조됐습니다. 어둠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어요.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보는 자녀로 재창조됐어요. 욕심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할 수 있게 됏어요. 창조 때로 회복하게 된거에요.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재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와 초대 교회는 같은 개념이에요. 그리고 이게 우리의 오래된 미래에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우리가 배워야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고 우리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아무리 행복하시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으실 거에요. 가장 행복하고 빛나던 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좋았던 것들을 다시 느끼고 싶다라고 하는 시절이 있을 겁니다.

컴퓨터로 작업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를 많이하는데 그때 되돌아가기 키가 있어요. 그걸 누르면 실수를 되돌리게 됩니다.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어요.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 못 들면 유턴을 찾죠. 되돌아가서 다시 제대로 가기 위해서.

운동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운동을 하다가 잘못된 자세를 잡으면 다시 해야 돼요. 다시 처음의 자세를 잡고 다시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안 다치고. 운동의 효과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어요.

 

우리는 다 되돌아갈 곳이 있어요. 다시 제대로 해야 되니까. 돌아가야 되는 곳이 있습니다.

어느때로 돌아가야 될까요?

가장 찬란한 때로 돌아가면 될까요?

가장 건강한 때로? 가장 돈이 많은때로?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시 태초의 상태를 되돌리셨어요. 제대로 되지 않은 세상을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그때로 돌아가야 돼요.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돼요.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초대 교회의 이야기가 잘 들어있는 성경이 사도행전이죠.

우리는 사도행전을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제자들과 성도들이 담대하게 성령에 매여서 생명까지도 걸면서 말씀을 전하는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이게 사도행전에 대한 우리가 가진 이미지에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그런데 이렇게 알고 있다는 건 사도행전의 반만 아는 겁니다. 사도행전에 또 다른 모습이 있어요.

 

아가보 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성령을 받아서 큰 흉년이 들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주된 사도행전의 이미지에요. 성령 충만. 

 

그런데 흉년이 들고나서 성령을 받은 자들이 한게, 돈을 모아요. 각자 형편에 따라서 많은 자는 많이 내고 적은 자는 적게 내서 유대에 사는 성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줬어요.

이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됐던 안디옥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게 우리가 본을 받아야 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사랑함으로 받았음을 성령 받았음을 드러내는 거에요. 성령 받은 자들은 그것을 억지로 한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됐어요. 성령을 받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 성령을 받은자 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요. 온유해지고 자비로워지고 미움이 없고 관대해지고 인내하고 기다리게 되고 포용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온유와 자비와 인내와 사랑과 포용 

본래 누구의 모습이죠? 예수님의 모습이잖아요.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서 태초의 때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게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처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건이 나오죠. 120명의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고 3000명이나 전도합니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도 좋아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행전에 대한 주된 이미지에요. 

성령충만 전도를 많이한다. 복음을 전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바로 나옵니다. 

서로의 소유를 나눠가져요. 서로 기쁨으로 모여요. 사랑을 나눕니다. 내가 더 갖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성령을 받으니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바뀐 거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니까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도행전 2장이고요.

 

사도행전 3장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서 구굴하던 불쌍한 못 걷는 자를 도와줍니다. 고쳐줬어요. 걷게 했어요.

 

사도행전 4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성령이 충만해진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요. 전도한 거에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도 돼요.

 

그런데 다음이야이가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제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가난한 자가 없었데요.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기준이 바뀌었어요.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기준이 바뀌어서 남을 위해서 내 것을 주고 서로 사랑하는게 거리낌 없게 되었어요. 당연한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처럼 사랑하는게 당연한게 되는 거에요. 

 

사도행전 5자에서 내가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렸던 아나니아는 벌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6장과 7장에는 스데반 이야기가 나오죠.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행전 이미지에요.

 

그런데 죽기 직전에 스데반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시고 용서하소서. 죽는 중에도 사랑을 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말씀도 전했지만 복음도 전했지만 아픈 자들을 도와줬어요. 

사도행전 9장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다가 죽은 도르가는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서 다시 살아납니다.

사도행전 10장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면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자였어요. 

그리고 오늘 말씀 11장

성령의 능력으로, 그 능력으로 남보다 더 위에 설수 있고 더 많이 가질 수 잇고 더 편해질 수 있는데 세상에서 부러워할 만한 것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증거함과 동시에 사랑을 행했습니다.

왜 성령의 능력으로 더 높아지고 더 소유하는게 아니라 사랑을 했냐면 두가지에요.

성령을 받으면 사랑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성령의 능력은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할 때 역사하거든요. 

그러니까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밖에 할게 없었던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전해야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니까.

 

물론 성령의 능력이 내 형편을 더 나아지게 하고 내 길을 평탄하게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해 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을 위한 삶일 때에 한정이고요. 거의 대부분은.

순수하게 내 욕심만을 위한 것일때는 경험되기가 어렵죠.

성령의 능력은 말씀을 전할 때와 사랑을 전할 때 비로소 발현되기 때문에 가장 강하게 발현되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한 거고요. 사랑을 전하는 일 밖에 할게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그와 똑같은 크기로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이 계명대로 살았고요. 태초의 때를 회복했고 그 제자들은 그렇게 초대 교회를 완성했습니다.

 

예수님이 사신대로 살았고 하신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그렇게 회복한 겁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심판 당하는 장면에서 하나님이 너네 계속 그렇게 하면 심판 받을 거야. 라고 계속해서 선지자나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을 전해주시는데 심판 받는 이유는 너네가 나를 믿지 않아서야 라고 하지 않으세요. 

너네가 나를 믿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와 객을 섬겨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욕심을 부리고 너네가 그 위에 서려고 했고 더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야. 날 사랑하지 않음과 나처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네는 심판 당하는 거야 라고 같은 비율로 말씀하세요. 

 

심판을 당한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과 하나님처럼 사랑하지 않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반절 짜리 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사랑해야 돼요. 이해해야 돼요. 수용해야 돼요. 미움을 거둬야 돼요. 용서해야 돼요. 도와줘야 돼요. 섬겨야 돼요. 겸손해져야 돼요. 낮아져야 돼요.

 

반절 짜리 믿음이면 은혜는 어떨까요?

은혜도 반절만큼만 받을 수 밖에 없겠죠. 믿음의 지경이 그만큼이면 은혜도 반절 밖에 못 받을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듯 하나님처럼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은혜를 두 배를 받는 거에요.

그동안 받았던 것보다 두배를 받는 거에요.

하나님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은혜를 받기 때문에.

왜 하나님 처럼 사랑하라고 할까요?

하나님처럼 사랑하면 거기에 은혜가 있기 때문에.

손해 당하는게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주고 싶어서 사랑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이게 더 큰 은혜를 받는 방법입니다.

 

사랑을 행할 때 거기에 우리가 받을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신 만큼의 사랑을 받았어요.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행함으로 사랑을 줌으로 은혜를 더 많인 받는 자들, 그래서 초대 교회 모습, 태초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가장 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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