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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지혜의 말씀

마가복음 강해 마가5:35~43

by diane +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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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5:35~43
마가복음 5장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 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 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 을 주라 하시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그 최후의 절망이 뭡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삼켜버리죠. 죽음은 인간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줍니다. 인간의 학식도 덕망도 죽음의 슬픔은 이겨낼 수 없습니다. 죽음이 슬픈 것은 죽은자나 살아있는 자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무력을 실감나게 합니다. 죽음 앞에 있는 인간은 속수무책 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비애가 있습니다.

죽음이 슬픈 것은 또한 그것이 모든 것을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죽은자와 살아있는 자와 모든 관계를 단절 시키죠. 부모 형제와 관계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시킵니다. 죽음은 모든 희망과 가능성을 단절시킵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단절시키고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단절시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모든 것들에 어 정말이 끝을 보여주고 있으며 슬픔의 극치를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 이 말씀이 바로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죽음의 문제를 주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버나움 동네에서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 난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자마자 달려가서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 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가는 길에 앞서 열두 해를 혈류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에 치유 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혈류증 여인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가던 길을 잠시 지체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 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말씀에 이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마가복음 5장
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
야이로는 무척이나 초조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급박한 시점에 주님은 지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체되는 동안 야이로가 몹시 초조하기는 했지만 그 여인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또 말씀을 들으면서 야이로는 믿음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회당장의 딸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장의 집에서는 사람을 보내 딸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제 예수님이 오셔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고 희망이 사라졌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가까이에서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얼굴을 돌리시면서 이렇게 말씀 합니다.
마가복음 5장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회당장은 주님을 찾아왔을 때 주님께서 자기 딸을 고치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금방 눈앞에서 열두 해된 혈류증 환자가 온전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의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딸이 살아난다면 몰라도 이미 죽었다면 주님은 어찌할수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우리가 역경을 만났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면 낙심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세상의 말은 대립적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달려갑니다.

이제 당신의 딸은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소녀의 죽음을 두고 사람들이 요란을 떨며 고 오가는 사람들이 심히 통곡을 합니다. 이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5장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 보고 비웃습니다.
마가복음 5장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 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우리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세상의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입니까?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하여도 오직 주님의 말씀만 믿고 따라야합니다. 믿음은 결코 현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현실 너머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신앙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신앙은 과학적 지식을 초월합니다.

주님께서는 애곡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어 보내신 후에 그 손에 부모와 세제자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마가복음 5장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 나라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삶, 생명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일어날수 없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5장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마가복음 5장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 을 주라 하시니라

주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자신의 신성을 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신성을 불신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리셨습니다.

주님은 꼭 필요한 다섯 사람에게만 자신의 메시아되심을 게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녀가 다시 살아나서 밖으로 나가면 주님이 그녀를 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가 6장 1절 이하에 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안다는 것 때문에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에 뿌리가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더 이상 어떤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알아도 제대로 알면 좋은데 잘못 알고 있으면 좋은 것들을 다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 때문에 교만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나사렛 예수라 하는데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생애 34년을 사셨을 동안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3년을 빼고는 30년을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6장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제자들과 함께 떠나시는 것을 볼 때 사적인 방문이 아닌 공적인 목적을 위한 방문이셨습니다.
제자들을 대동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을 위해서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 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회당에 모인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지혜와 그 속에서 나오는 경이적인 능력을 목도하고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예수님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목수에 불과한 주제에 여인의 아들에 불과한 주제에 우리 앞에서 지혜와 권능을 행하다니 인정할 수 없어 라는 식으로 폄하하면서 그런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주님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 이 사람입니다. 아주 낮춰서 부르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말 속에는 그들의 마음이 들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 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보수가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나사렛에 돌아온 예수님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이 말 안에는 예수님을 무시하는 비아냥 거림이 섞여 있었습니다. 목수라는 말 속에는 목수 주제에 다소 비아냥 거리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 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 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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