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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허무의 숲에서 길 찾기 전도서 9:7~12 주일말씀

by diane + 2026.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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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의 숲에서 길 찾기
전도서 9장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찌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찌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12.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와 명예 그리고 지혜의 꼭대기에 올라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생토록 거대한 성전을 짓고 궁전을 지었으며 거대한 성을 쌓고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며 즐겼습니다. 그의 방에는 금은 보화가 가득했고 권력은 하늘을 찔렀고 부근과 첩을 천명이나 둔 쾌락을 그는 즐겼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성공의 꼭짓점에 도달했던 사람입니다. 이제 그가 백발이 성한 노년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일기를 썼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해벨
이런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연기 안개 증기 숨 공화함 텅빈 모든 것이 안개 같다 모든 것이 연기 같다

오늘날의 용어로 다르게 번역을 하면, 삶의 우연성, 통제 불가능성, 예측 불가능,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모호성 일시성 상황의 가변성 부조리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술취한 운전자 때문에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돌아온 결과는 불명예입니다. 사랑을 주었는데 돌아온 것은 배반입니다. 정의를 원했는데 불의가 판을 칩니다. 열심히 수고해서 회사를 키워 놓았는데 다음에 등장한 경영인들이 회사를 파산하게 만들고 직원들이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자인 cs 루이스는 인생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에게 속삭이기 위해 존재한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최고로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전부는 아니다. 그거를 가장 좋은 것이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상처도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고 더 악착같이 모으려고 애쓰고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막상 정상에 올라간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은 영원한 만족이 아니라 완전히 텅 비어버린 공허함과 마음의 상처뿐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또 자기 최면을 또 겁니다. 이제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더 많은 실적을 쌓아가자. 끝없는 바벨탑을 쌓기의 열중입니다.

전도서의 저자인 전도자는 인생의 모든 수고와 쾌락과 지혜와 부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이 헛된 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허무한 일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자의 성공의 정상에서 우리는 성공의 정상에서 곧바로 허무의 골짜기로 떨어지게 되고 허무의 골짜기에서 허무의 숲을 지나가며 허무의 숲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허무의 숲을 헤매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끝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에게 받는 상처입니다.

허무의 숲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는가? 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는가?

또 인생의 바닥에서 우리는 질문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가? 여러분이 뒤를 돌아볼 때 나는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왜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함을 느낄까? 왜 그렇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왜 이 고생을 하고 했는가?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왔는데 남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깊은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전도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전통적으로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이 지혜자, 이 전도자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한 사람 솔로몬 왕에 머물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 많은 인물들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 이 시대에 이 전도자는 바로 인생의 무게와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솔로몬이 아닌 내 이름이 그 자리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상처는 뭐라고 했습니까? 허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지혜를 쌓고 수고하고 부를 일구고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는데 돌아오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은 헛된것 뿐이었습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아무리 지혜를 쌓아도 아무리 군대를 키워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패배하는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근심과 슬픔뿐일 때 우리는 영혼의 깊은 상처를 얻습니다. 열심히 살아봐야 소용 없는 거잖아. 착하게 살아봐야 소용 없는 거잖아. 더군다나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야 한다는 허무함, 이것이 솔로몬이 또 많은 지혜자들이 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진 상처입니다.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야 한다는 허무함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허무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전도자의 상처는 어디서 시작되고 무엇으로 그가 아파했을까요?
전도서 2장 17절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내가 사는 것을 미워했다는 거야. 사는 것이 나를 배반하고 내게 사기를 치니까. 생활, 삶, 사는 것, 라이프를 미워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성공을 해 본 사람이 더 깊은 절망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질만큼 가져보고 누릴만큼 누려본 사람이 아 이게 다가 아니구나.

cs 루이스의 말처럼 가장 좋은 것을 가져본 사람이 이것이 전부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된다는 거죠.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내가 살아가면 살수록 계속 속고 살아가고 사기를 당하고 살아가고 허무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상처를 입습니다. 매일의 삶이 상처받는 삶입니다.

러시아의 문학가 알렉산더르 푸시킨 그의 대표적인 시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시는 그가 6년 유배되어 있을 때 쓴 시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내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이며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푸시킨이 32살에 결혼을 했는데 신부의 나이는 19살이었어요. 그런데 이 19살의 신부는 나탈리아 곤차로바라는 이름으로 당대의 최고의 미인이었어요. 사교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어요. 심지어는 왕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왕의 모든 파티에 꼭이 나탈리아를 초대를 했어요. 프랑스 귀족 출신인 러시아 황실 근위대 장교가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은 당테스라는 장교였습니다. 유부녀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아에게 이 장교는 노골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부녀와 공개 연애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당태스와 나탈리아를 둘러싼 온갖 스캔들과 소문이 날마다 날마다 신종 뉴스가 되고 그리고이 푸시키는 조롱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푸시키는 참다 못해 당태스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결투하면서 당태스가 먼저 방아세를 당겨서 푸시킨의 복부를 명중시켰습니다. 복부의 총알을 맞은 푸시킨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안간힘을 다해 버티면서 이제 당태스를 조준하고 총을 쏘았습니다 맞긴 맞았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부상만 얻었습니다 복부의 총화를 명중시킨이 푸시킨은 당시 의학으로는 도저히 살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 이틀을 앓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마지막 유원을 그 서제에 꽂힌 서제에 꽂힌 수천권의 책들을 향하여 바라보며 안녕 나의 친구들 이렇게 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이때 37살 37세 러시아의 대문에 허무한 죽음의 장면인 것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자기는 이걸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시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시였습니다 아내의 불른과 스캔들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당태스를 죽이고 싶은 분노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충분히 그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200년이 지난 오늘날 저의 입장에서 우리의 입장에서 그 러시아의 푸시킨을 바라볼 때 그 푸시킨의 위대한 문학성과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천재 같은 그런 엄청난 문학적 업적을 이룬 그 사람에게 아내 불륜이라든지 끝까지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내가 불륜 하라면 하라죠 장교에게 권총 대결을 하다니 이길 수가 있는 싸움입니까? 너무 아까운 거죠. 너무 어리석은 거죠 너무 허무한 인생이죠.
대문호라는 명예도 수천권이 주는 책의 책이 주는 지혜도 그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깊은 상처와 허무 속에서 전도자는 완전히 주저 앉아 버렸을까요? 그런 허무의 바닥을 치고 내려간 그 허무의 바닥에서 놀라운 진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가 인생의 중요한 것으로 추구하고 높이 있고 번쩍번쩍 빛나는 것들은 다 허무한 것일 뿐이고 상처를 주는 것들이고 그러나 반면에 무가치하고 흘려버렸고 쳐다도 안 보았던 그것들 중에 소중한 가치가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전도자는 말합니다.
전도서 3장 12절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기뻐하며 살아라 기쁘게 살아라 선하게 살아 착하게 살아라


전도서 9장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찌니라


날마다의 일상이 너를 속이고 사기를 칠지라도 우울하고 우중충하게 살지 말고 밝은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집에 가듯이 기쁘게 좋은 옷을 입고 머리를 단장하게 하고 최신 모드로 가꾸고 향수도 바르고 생활을 밝게 해라
이게 허무를 이기는 길이다.

전도서 3장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거창한 성공이나 영원할 것 같은 높이 쌓아 놓은 업적 여기서 의미를 찾지 말고 그거 다 허무한 일이고 덜 허무한 것.

우리의 평범한 일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보아라 선물은 뭡니까 좋은 거 귀한 거 은혜로 받는 것 어떤 것이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밥기 갈증이 날 때 마시는 물 한모음 내게 맡겨진 일터에서 하루 종일 땀흘리고 일하는 그리고 그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정직한 수고의 보람
이것이 큰 선물이라는
9장 9절
전도서 9장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날 헛된 날 모든 날이 헛되다
모든 날이 헛될지라도 그 헛된 날을 살아가는 그 순간에도 즐거워할 일은 반드시 있습니다.

어디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구시에서 제일 비싼 레스토랑 그곳에 가서 호사스럽게 그중에서도 또 제일 비싼 메뉴를 시켜 가지고 폼 잡으면서 탁 앉아 그런 날이 소용이 없다는 거죠.

그저 아내와 알콩달콩 알콩달콩 즐겁게 살라는 거예요. 행복을 헛된데서 찾으려고 하는 그 눈이 헛된 거예요. 그 시도가 헛된 거예요. 이 세상은 다 헛되다 그래서 아직 다 헛되진 않아요. 아직 지옥은 아니에요. 지옥은 모든 것이 정말로 헛되지만 아직 지옥은 아니에요.

그래서 다 헛된 것 같아도 곳곳에 행복한 일이 숨어 있는 거예요. 보물 찾기 하나님이 소소한 보물을 숨겨 놨어요.
보물을 찾기 위해서 5천만 원짜리 상금을 줍니다 이런 거 없어요 그냥 뭐 비누 한 조각 티슈 한 상자
그래도 마냥 즐거운 거예요.
어디든지 보물이 꽂혀 있어요 잘 보면 있어요.
그리고 보물은 몫이 있어요. 보물 찾기 위해서 그 주체자들은 사람을 계산해 사람이 50명인데 보물 두 개 꽂아 놓고서 찾아라 그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1인당 다섯 개면 평균하면 얼마를 할까 다 몫을 정해 놓고 몫을 배분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보물을 숨겨 놨어요.

그래서 자기의 몫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해요. 에이 뭐 보물이 있겠어. 당신들 가서 찾아 하나도 못 찾는 거예요.

그러나 찾는 사람은 열 개 20개까지 찾아 자기 몫을 포기하지 말아라. 이 세상에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아무리 찾아도 없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보이는 이 세상에서 가만히 있으면 행복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말이에요. 자기 몫을 반드시 찾아내야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이것들은 대단한 영웅남이 아니죠. 허무의 칼날에 찔린 우리의 영혼 우리의 삶이, 이 우리의 영혼을 소독하고 어루만져 주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상처 입은 영혼에 회복되는 첫 번째 장소는 거룩한 비전이 성취되는 그런 곳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일상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그 자리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자리가 회복의 자리인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 그리고 현재라는 이 시간 현재라는 시간의 선물 이것을 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헛됩니다. 역설적으로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지금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을 반드시 잡아야 되고 지금 내가 잡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이 지금 내 손에 잡힌 소박한 일상을 내가 누릴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묵시이자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말합니다. 부와 명예를 쫓을 필요가 없다. 아집을 내려놓아라. 우리가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고 그 결과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평범한 일상을 가장 거룩하고 가치 있게 붙잡으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는 행복을 붙잡아야 돼요. 잡을 수 없는 저 멀리 100km에 떨어진 그 행복이 아니라 지금 50cm 안에 있는이 행복을 잡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전도서는 혼자 일하면서 만족을 찾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일하라는 거예요.
전도서 4장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사람이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사람이 힘을 모으면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허무의 실마리를 이렇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허무의 극복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게 그냥 잘될 거야라는 그저 싸구려 낙관론이 아닙니다. 인생은 안개처럼 덧없고 부조리하다. 모든 날은 허무하다. 그렇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늘 주신 일상의 빵과 친구들을 기뻐하는 것 인생의 동반자들을 기뻐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온전한 삶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전도자는 이 모든 허무와 상처의 훈련을 끝내고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건내는 그 결론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인생의 모든 부조리와 수수께끼를 탐구한 끝에 도달한 최종적인 결론 이렇게 명백하게 선포합니다.
전도서 12장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일의 결국 앞에서 말한 일의 결론까지 하나님이 다 듣고 다 보셨어요. 인생은 바람과 같고 잡을 수 없고 세상은 허무로 가득차 있고 우리 가슴에는 상처와 흉터와 이런 것들이 남아 있고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허무의 숲을 헤매고 있고 그 가운데서 의미 있게 붙잡아야 될 단 하나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극복한다고 해서 그 상처가 아예 없던 것처럼 지어지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아픔의 자리에서 우리의 시선을 땅의 헛됨에서 하늘의 하나님께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는 하늘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을 우리가 인정할 때 허무는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기한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때와 기한이 나에게 타이밍이 뭔가 어그러져 어긋나서 내가 온전한 축복을 다 누리지 못함도 믿습니다. 이해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형통하는 부조리도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실망하고 실패할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내가 이 인간이 억울하니까 이 세상의 죄인들을 내가 다 심판해야 되겠다. 내가 못 받은게 있으니까. 인생을 통하여서 내가 이것을 마지막이 일정까지 이론까지 다 받아야 되겠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맡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을 맡기라는 거예요. 허무한 인생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맡기라는 거 14절
전도서 12장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허무로 시작한 허무로 시작한 이 전도서가 맨 마지막 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을 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행위, 일부의 행위가 아니고 모든 행위를,
모든 은밀한 일을 이건 뭘 뜻하죠?
마지막 절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 단어가 심판으로 끝나잖아요.
근데 이 심판이 뭐냐?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행위의 모든 행위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인들이 저지른 모든 음모와 비밀스럽게 저질렀던 모든 불리와 죄악과 이것들을 하나님이 이것들을 가지고 심판한다는 거예요.

계시록의 말씀과 같아요. 계시록에 하나님이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산더미 같이 책을 쌓아 놓고 증거물을 제시하면서 심판하시는 모든 숨겨진 일들 모든 부조리한 일들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허무한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허무한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다는 거 그것을 심판하시겠다는 거예요.

세상에 모든 불리를 당할지라도 이제는 억울한 일이 없어요. 부패를 당할지라도 억울한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이제 이 순간조차 내게 허무를 준 그 순간조차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온갖 불의와 죄악과 부조리를 예수님이 다 겪으셨어요. 인간이 져야 될 십자가를 그 순간을 예수님이 다 짊어지셨어요. 죄 불의 가운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미래를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원인을 심어놓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면 인풋과 아웃풋을 우리가 계산하려고 하면 허무에 빠집니다. 내가 세상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되고 오만에서 벗어나야 되고 내가 수고해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허무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어요. 주님이 보고 계시니까.

우리가 주님이 보고 계시는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일 때문에 파락 떨고 분노하고 정죄하고 그리고 살아가는 거예요. 억울할 일 없어요. 잠시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빈틈 없이 심판해 주신다고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요. 그러면서 왜 안 믿는 것처럼 죄 유혹에 빠져 들어가십니까?

아무리 수고했는데 헛된 그런 수고가 있습니까? 배반을 당했습니까? 내가 수고한 것은 아깝지 않은데 이것이 너무 허무한 것이 아까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까? 아픔 때문에 주지 않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다 소용 없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내가 정직하게 살아온 내가 잘못이지. 뭔가 베풀려고 했던 내가 잘못이지. 이렇게 억울한 생각이 듭니까?

그 허무의 바닥에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밥한끼의 은혜 물한컵의 은혜 그리고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는 아내 자녀들.

상처는 우리를 무너뜨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처는 오히려 세상에 헛되고 헛된 허무의 바벨탑을 내려놓고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허무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참된 평안과 소박한 기쁨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함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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