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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준비됐다는 신호 누가복음 13:18~24

by diane + 202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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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다는 신호
누가복음 13장
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22. 예수께서 각성 각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이 비유하시는데 되게 복이 듬은 장면이 나와요. 예수님의 복이 듬은 장면 뭐냐면 고심하세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말해 줘야 될까?
누가복음 13장
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고심하고 계세요.
아니 예수님이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정확하게 아시고 단번에 한마디로도 설명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심이 많았어요.

예수님이 어떻게 말해야 되지? 이렇게 하시니까 사람들은 아마 예수님 입만 보고 있었을 거예요.
드디어 예수님이 우리가 정말 관심 있어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를 하실까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까? 어떤 소망의 말씀을 하실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꿈꾸던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는데요.
지금 그 시점에는 로마의 압재로부터 고난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 다윗과 같은 강한 리더가 와서 우리를 구원하고 로마를 쓸어버리고 다시 옛 영광을 찾자 하나님께 우리만 선택받은 민족이야 이렇게 살아야 되는 민족이 아니야. 그때가 다시 올 거야. 이게 유대인들의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걸 기대하면서 살아가던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이 드디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니까?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올까? 어떻게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고 어떻게 영광을 얻게 하실까?
정확하게 알려 주실 거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심지어 오늘 말씀 전에 예수님이 회당장과의 논쟁에서 말싸움으로 이기는 장면을 사람들이 봤어요.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라는 것을 트집 잡아서 어떻게 안식일에 일할 수 있냐라고 예수님한테 막 따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위선자들아 너네는 안식일에 소랑 나귀랑 물이로 이동하지 않냐. 너네도 일하면서 나는 내 자녀를 살린 거야. 너네랑 똑같은 거야. 너네는 되고 나는 안 돼. 이런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그 논쟁에서 완전히 이겼거든요. 아무도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통쾌하게 말로 촌철산인으로 이기신 예수님이니까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잘 설명하실까?

누가복음 13장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아라고 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어이가 없었겠죠. 고작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 한 알이라고요? 하나님 나라면 막 금으로 된 왕궁 보석으로 막 만들어진 그 광장 뭐 천사로 이루어진 군대 막 나와야 될 것 같은데 겨자씨 백알도 아니고 한알이래요.

차라리 식물로 비유하실 거면 구약에도 하나님 나라가 백향목이라고 비유되거든요. 한 3~40m까지 자라요 되게 커요.
근데 겨자씨 나무는 나무도 아니고 풀인데 한 많이 자라야 2~3m 정도 그리고 흔한 식물이에요 정말 실망했을 겁니다. 나무로 하실 거면 백향목 정도 나와야 될 텐데 이렇게 실망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설명하십니다.

이번에도 고심하세요.
누가복음 13장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하나님의 나라를 또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이 기대했겠죠. 아 이번에 좀 다를 거야.
누가복음 13장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누룩이? 우리나라로 따지면 메주 같은 거예요. 굳이 따지면 누룩이요. 냄새나는  누룩은 빵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들어 있는 반죽인데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메주야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면 세상을 뒤집을 왕과 군대 막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났을 텐데 고작 겨자씨 한일 누룩 조금, 그리고 뭐 특별한 설명도 없어요.

겨자 씨가 자라는 거야. 누룩이 빵만드는 거야. 그냥 자연스러운 얘기. 뭐 특별한 얘기도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라니까.

이해하기 힘들었겠죠?
예수님 우리가 얼마나 기도했는데 누룩이라뇨 겨자씨라뇨?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분이라서 내 기도 제목 진짜 하나님한테는 손바닥 뒤집듯이 아무것도 아닐 텐데 고작 이거요.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대했고 얼마나 간절하게 소망했는데 고작 이거 주신다고요? 실망할 때가 많아요.

예수님이 겨자씨와 누룩으로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신 이유는 이 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성장한다는 거예요 자란다라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자라고 누룩은 가루를 부풀게 해요. 지금 모습에 멈춰 있지 않고 성장하고 변화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사용하심에는 꼭 들어가는 과정이 있는데 준비시키심과 다듬으심이라는 그 성장의 과정을 하나님은 생략하지 않고 우리를 사용하세요. 이게 꼭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쓰임 맞는 사람들은 다 즉시 전력들이 아니었어요. 다 약하고 부족하고 낮은 자들이었는데 하나님 계획에 합당한 모습이 되기 위해서 능력과 믿음이 준비되는 성장의 시간들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목자로 살면서 리더로 성장했고 다윗도 40년을 준비하고 왕이 됐어요. 바울은 회심이라는 도약을 경험하고 사도로 쓰임받았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생활하고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서 성장한 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르시기 전이든 부르신 후든 다 성장의 경험을 하고 쓰신 거예요.

왜? 성장의 사람들을 사용하실까요? 하나님은 누구를 쓰실 때 믿음을 보시거든요. 믿음을 확인하시거든요. 계획을 이룰 사람, 기도를 이루어 줄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실 사람, 다 믿음 보시고 구분하시는데 이 믿음이 성장을 통해서 확인되거든요. 그 과정 자체가 믿음이에요.

믿음이 없으면 이 성경의 과정에 참여하지도 않아요. 그냥 나가 떨어집니다. 안 한다고 합니다.
길고 외롭고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떠나지 않고 인내하는 믿음이 없으면 성장의 과정을 버틸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려고 할 때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틈틈히 성장의 시간들을 추가하세요.

그러면 성장을 건너뛰고 쓰임받는 경우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왜 있을까요? 그 사람이 능력이 많고 할 수 있는게 많아서 즉시 전력감이어서 바로 쓰시는게 아니라 성경을 보면요, 믿음 없는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를 성장의 과정 없이 사용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왕이시라서 믿음이 있든 없든 다 주관하시고 다 사용하시고 다 사랑하시거든요.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쓰임 받아요. 그런데 믿음이 없으니까 성장의 과정이 없겠죠. 그러면 그 모습 그대로 쓰임받게 되는 거겠죠.

모세가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좀 탈출시킬테니까 이렇게 좀 놔주라고 풀어 주라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바로 왕의 그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셨어요. 바로 왕의 완악함을 사용하셨어요. 변화시키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완악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안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위험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는데 사용하셨어요. 바로는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완약한 그대로 쓰임받았어요. 아스르 민족은 탐욕과 무자비함을 하나님께 쓰임받아서 변화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서 알려 주셨어요.

너네 나 의지하지 않으면 아스르에 의해서 너네 망하게 될 거야 이것으로 사용하셨어요. 하나님은 모두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는가 아닌가는 믿음의 차이점이 아닙니다. 다 사용하시기 때문에 그러면 믿는 이유가 없게도 느껴져요.

하나님이 믿음이 있든 없든 다 사용하시니까 근데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장한 모습으로 쓰시는 믿음의 사람과 그대로의 모습으로 쓰시는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는 결과를 보게 되는 도구인가 아니면 결과를 못 보게 되는 도구인가에 차이점이 있어요. 하나님이 이루실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되고 참여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가 아니면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중간에만 사용하고 마는 어떤 일로 자신이 쓰임받았는지 자각도 못하는 어떤 일에 내 삶이 놓여 있는지 모른 채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일의 결과를 참여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도구로 쓰임받는가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제가 뉴욕을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갔었는데 뉴욕의 특징이 뭐냐면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가지고 인도에 임시로 철굴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거기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올라가서 수리도 하기도 하고 그걸로 보행자들을 이렇게 보호해 주기도 해요. 되게 불편해요. 인도마다 그게 있어서 그 막 피해서 가야 되고 막 막기도 하고 그래요.이 사람들이 그 공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데 수리가 너무 늦대요. 우리나라랑 다르대요. 왜 공사가 끝나길 바라냐면 여러분 공사가 마무리되면 그 인공 철굴 구조물은 해체되고 어디 갔는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건 사라지게 돼요.

쓰임받긴 하지만 근데 그 수류에 쓰게 된 뭐 벽돌이라든지 철근이라든지 타일이라든지 그건 건물과 계속 같이 있게 돼요. 그 완성품과 같이 있게 돼요. 이게 믿음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쓰임받음의 차이예요.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튼튼하고 강하고 능력이 많아도 그냥 수단으로서만 쓰임받게 되지만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성장시키셔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의 본래 목적대로 살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에 쓰임 받았는가 언제까지 쓰임 받았는가 진짜 중요한 거예요.

결과까지 보았는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까지 보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이루심까지 경험했는가?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이루심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쓰임받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책임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사는 거예요. 이게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이에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병에 걸리고 뭐 돈 없이 가난하게 사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나로서 못 사는게 진짜 비극이에요.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놓친 채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 단순한 수단으로만 쓰임받는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라는 어떤 존재적 비극에 늘 놓여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니까 내 진짜 삶을 못 찾은 거죠.

우리는 많은 걸 이루고 성공하고 어떤 행복을 찾으면 시련을 하면 그게 내 삶이라고 확신하는데 그게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삶이라면 그 확신의 크기만큼 인생에 느끼는 한계와 존재적 그 비극이 더해질 뿐이에요.

확신하는만큼 이게 내 삶이야. 근데 거기 하나님의 쓰임받음이 없다면 내 본 모습을 찾아서 살라고 나를 지으셨고 이게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근데 사람은 스스로 내 진짜 삶을 살 수가 없고 하나님과 관계됐을 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게 됐을 때 찾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진짜 삶을 찾아야 하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게 우리의 인생의 책임이에요. 이게 우리의 목적의 전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어떤 성장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실까요?
하나님의 큰 그릇에 맞는 큰 그릇이 되라고 하나님이 가장 먼저 뭐 하시냐면 우리를 작아지게 하세요.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풀인데 예수님은 오늘 나무라고 하셨거든요. 풀인데 새들이 깃들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굉장히 작은 씨로부터 시작돼요.

오늘 말씀에 누룩이 부풀게 하는 가루가 서마리예요. 서마리면 한 20km 정도 돼요. 근데 이걸 부풀게 하는 누룩은 딱 1%면 돼요. 200g 정도 한 줌이면 됩니다. 작은 양으로 가루에 전부를 부풀게 해요.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시려고 지금 작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자신감이 작아지고 자아가 작아 가지고 가능성이 작아질 때가 있어요. 소망이 컸어요. 기쁨이 컸어요. 가능성이 컸어요.

근데 그게 점점 줄어들 때가 있어요. 그때 하나님 만날 때예요. 하나님은 늘 틈으로 들 들어오시거든요.

근데 내 삶의 가능성이 막 부풀어 오르고 평안과 자아가 너무 크면 틈이 없으면 하나님이 들어오실 틈이 없어요. 그게 작아져야 작아진 틈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그 작아진 것들을 하나님이 채우시거든요 작아질수록 들어올 수 있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자신감을 대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아가 내 본래 자아가 되게 하고요. 하나님의 힘이 내성이 되게 해요. 이게 하나님이 작은 자를 찾으시는 이유예요. 작아질수록 커지는게 있어요. 내 자아가 작아지면 하나님 자녀라는 정체성이 커지고 내 능력이 작아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드러나게 됩니다.

큰 배가 방향을 바꾸려면 오래 걸린대요. 근데 작은 배가 방향을 바꾸려면 핸들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금방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찾으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하신 곳으로 하나님이 뜻하신 모습으로 바로 바뀌게 돼서 하나님이 쓰시기 굉장히 좋거든요.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다듬어 주시는 방법이 또 있습니다 우리를 작아지게도 하시지만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점은 시간이 걸린다는게 있어요. 누룩이 반죽에 들어가면 바로 못 푸는게 아니라 시간이 걸립니다 겨자씨도 완전히 자라서 열매도 맺고 새도 깃들려면 시간이 걸려요 하나님은 정확하게 쓰시는 때를 맞추기 위해서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게 하십니다 기다리게 하세요 제일 궁금한 거 있죠 언제까지일까?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실까?

여러분 기다림의 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통해서 성장하게도 하시는데 가장 큰 성장이 뭐냐면 기다리는 것 자체예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거기에 뭐 고난이 있고 뭐 평안이 있고 뭐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죠. 그걸 통해서 내가 성장하기도 하는데 가장 큰 성장이 뭐냐면 기다리는 거 자체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그때를 다 맡기고 나 끝까지 기다릴게요라고 결정하잖아요. 이미 다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기다리기로 하잖아요. 바로 때를 당기실 때가 있어요. 이미 성장이 다 끝난 거늘로 보시는 거예요. 기다리기로 한 걸 신호로 때를 시작하시니까. 느슨했던 때가 당겨질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때를 언제 당기시냐면 내가 기다리기로 작정할 때부터 때를 당기시기 시작하세요. 그래서 기다리기로 빨리 해야 돼요

겨자는 10월쯤에 씨를 심어요. 가을에. 그리고 4월쯤에 열매가 맺어요. 반년이에요. 누룩은 저녁에 넣고 아침까지 기다려요. 반나절이에요. 1년이 아니라 반년 한나절이 아니라 반나절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조급할 때 겁이 납니다.
오래 기다려야 되겠지. 이 조급함 두려움이 끝까지 채워져야 되겠지. 그래야 끝나겠지 그런데 기다리기로 하면 그 믿음을 신호로 하나님이 시작하셔서 때를 당겨 주셔서 생각보다 빨리 끝날 때가 있어요.

왜냐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곧 끝날 거니까 끝까지 버티라는 거예요. 어디 가지 말고 끝까지 버티고 하나님만 떠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성경에서 정해 시간들이 1년이 아니라 반년 또 한나절이 아니라 반나절 이것처럼 정해진 시간들의 반절이 나올 때에 의미가 있어요.

다니엘서 고난의 시간이 7년이라는 완전수의 반절인 3년 반이라고 나오거든요.
한 때 두 때 셋 때 반이 나오거든요. 무슨 뜻이냐면 이게 고난은 7년이 아니라 3년 반이야 완전수는 영원한 거예요.

그니까 고난이 영원하지 않아 기한이 있어라는 의미예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낮이 12시간인 것처럼 사명의 기회 믿음의 기회에는 기한이 있다.

그래서 그 기한이 낮이 끝나기 전에 그 기회를 잡아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반절로 줄어든 시간을 뭘 말하냐면 기다림에도 기한이 있고 기회에도 기한이 있다라는 거예요. 기다림고 끝날 거야 그리고 기회도 끝날 수도 있어 영원하지 않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해야 되는 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하는 거예요. 고난에는 기한이 있으니까. 그걸 믿고 하나님 기다릴게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하나가 있어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기로 하는 거예요. 기회가 기한이 있으니까 빨리 기다리기로 해야 돼요. 기다리지 않고 상황이 되면 기다려 볼게요.
좀 평안해지면 기다려 볼게요가 아니라 지금 당장 기다리기로 하는 거예요. 이 기회가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돼요.

그러면 영원할 것 같던 기다림의 시간을 당겨서 끝내 주신다는 거예요.
기다리기로 한 믿음은 이미 성장한 믿음이니까 그런데 누룩이 숙성되는 반나절에는 꼭 밤의 시간이 들어가고요. 겨자가 익어가는 반년에는 꼭 겨울의 시간이 들어가요 기다리다 보면 우리가 밤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 겨울처럼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시간들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실 때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의 겨울은요 비가 내리던 우기예요.

그 추운 겨울에 뭐가 내렸냐면 그 씨가 열매 맺을 수 있는 그 양분을 얻을 수 있는 비가 내리는 시기였어요.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들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기다림의 시간이 그리고 누룩의 밤은 누룩과 가루가 완전히 하나로 화학적인 연합을 하는 시간이거든요. 하나가 되는 시간이거든요.

우리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되냐면?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과 완전히 화학적으로 연합하는 시간이 돼야 돼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하나가 되는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그게 진짜 내 삶이거든요. 그것 그렇게 살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신 거거든요. 그게 우리의 책임이거든요. 그 시간으로 우리가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하게 하시는 거예요. 작아지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셔서

여러분 우리는 커지려고 할까요? 작아지려고 할까요? 우리는 지금 기다리려고 할까요? 아니면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작아져야 되고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만 해요.

그러면 이렇게 성장하게 하셔서 어떻게 쓰시려는 걸까요? 우리의 삶의 목적 우리가 이 삶을 찾는게 우리의 책임인데 그 목적이 어디까지일까요?
겨자 씨가 이제 열매 맺는 자라서 열매 맺는 일을 합니다. 근데 열매 맺는 일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 말씀 보면 새가 기뜬데요.

그니까 새가 날개짓하다가 쉬려야 할 곳이 있으면 겨자씨 나무에 와서 쉬게 되고 햇빛도 피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말씀에 누룩이 가루 세 말이라고 나오거든요. 세 말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먹을 양이 아니에요. 20kg면 한 150명 정도 먹이는 정도의 양이 거의 빠리바게트 하나째인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이거는 파티를 열대 정도에 잔치를 열대 이 정도 빵을 만드는 거거든요. 나 혼자 먹지 않고 잔치를 버려서 가난한 자들 군핍한 자들을 먹이는 데까지 쓰라는 거예요.

그니까 내가 자라서 뭘 하냐면 내가 먹을 열매만 맺게 되는게 아니라 풍성해져서 쉼이 필요한 자들을 쉬게 해라. 내가 풍성해지면 내가 풍성해져서 혼자 먹는게 아니라 혼자 먹을 수도 없고 그 많아지게 하신 그 하나님의 풍성함을 가난하고 쉼이 필요하고 군핍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데까지가 너희의 책임이다라는 거예요.

이것을 꿈꿔야 부풀어오게 하시고 이것을 꿈꿔야 잘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거기까지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진짜 삶의 목적이고 여기까지가 하나님이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지점이라는 거예요.

내가 준비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오고 있다는 걸 어떻게 우리가 알 수가 있을까요?
내가 작아지고 있다면 준비되고 있다는 거예요.

내 자아가 작아지고 내 기회가 작아지는 거 같고 가능성과 계획과 자존감들이 작아지는 것 같다면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면서 준비됐다고 하십니다. 힘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질 때가 아니라 내가 작아져서 하나님이 크게 보인다면 준비되고 있는 중이에요.

오늘 말씀에 구원의 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된 자가 어떤 자냐면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래요. 작아진 자래요. 작아진 자가 준비된 자라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자 내 자아가 작아지고 하나님 자녀라는 자아가 커져야만 합니다.

나의 힘과 내 계획이 작아지고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계획이 커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작은 자가 되어서 크게 쓰임받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면 준비됐다고 하세요. 언제인지 몰라도 하나님 보이지 않아도 기다리기로 했어요. 저 기다릴게요 그러면 그 믿음을 신호로 준비가 다 됐구나라며 1년이 아니라 반 년 만에 겨자가 열매를 맺듯 한나절이 아니라 반나절만의 누룩이 부풀어 오르듯 우리의 때를 당겨 주십니다.

왜 준비가 다 된 걸로 보셨으니까. 다 성장했구나 때가 다 됐구나.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면? 내가 작아졌는가? 하나님 앞에 작은 자로서 있는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언제인지 모르게 하셔도 내가 기다리려고 하고 있는가를 보면 하나님은 준비됐다고 하세요? 하나님은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데 내 모습 그대로는 사용하지 않으세요. 성장시키신 후에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성장시키신 후에 하나님 뜻에 합당할만큼 자라게 하신 후에 사용하세요.

자라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으로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잘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잘 버텨내고 잘 기다려야만 해요.

하나님의 보시기에 준비됐다는 신호가 또 하나가 있는데
하나님이 풍성하게 하시는 것들을 소망하고
그렇게 풍성하게 하시는 것들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누군가를,
나만 살게 하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고,
그것으로 나만 쉬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쉬게 하고 섬겨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면 하나님이 준비가 다 끝났다면서 준비하신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십니다.

누룩으로 빵이 되게 하시고 씨가 열매로 맺게 변하게 하실 거예요.

여러분 지금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말씀에 누룩을 가루에 넣다라는 헬라어 원어는 숨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겨자씨는 땅속에 심겨졌고 누룩은 가루에 숨겨졌어요 안 보여요.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 눈에는 보입니다.

다가짐과 기다림의 시간이 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게 되고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할 때 하나님은 보고 계세요. 아무도 안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내가 다 봤다 너의 겸손함과 너의 기다림을 내가 다 확인했다 다 준비가 됐구나 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자짐과 기다림의 시간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단순한 도구로 쓰임받는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영광에까지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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