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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하나님이 잊지 못하는 믿음 마태복음 9장 14~22절

by diane + 2026.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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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잊지 못하는 믿음
마태복음 9장 14~22절
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우리가 드린 예배 중에서 하나님이 제일 기억하시는 예배가 되게 간절했던 예배 되게 뜨겁게 드렸던 예배일까요?
드렸던 기도 중에서 하나님이 정말 기억하시는 기도는 뭘까요?

그때 너 그때 드렸던 예배 있잖아 그거 최고의 예배였어. 그때 나한테 기도했던 거 있잖아 나 영원히 못 잊어. 이렇게 하시는 기도 그런 예배 그런 믿음 뭘까요? 간절했던 기도일까요? 아니면 오래 했던 기도일까요? 아니면 하나님 뜻에 딱 맞는 기도 그런 예배였을까요?

프로야구 최고 홈런 기록이 이승엽에 56개래요. 이 기록이 깨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죠.
이승엽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나오면 깨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절대 깨지지 않는 기록이 있는데 82년에 한국 프로하고 최초의 홈런 이만수의 기록은 깨질 수가 없어요. 최초의 기록이니까.

명랑이란 영화가 1700만 명이 봤대요. 최다 기록이래요. 이 기록이 또 깨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실미도라는 영화는 한국 최초로 천만 영화래요. 이 기록은 누구도 못 뺏어요. 최초는 잊치지 않아요. 최초는 이깁니다.

사람이 평생 쓰게 될 성품의 특징이 아기 때에 일로 결정된대요. 그때의 최초의 기억이 엄청 강렬한 거예요. 평생 갈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때를 기억하시지만 처음의 것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 2절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처음 난게 다 하나님 거래요. 하나님은 처음의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양의 첫 새끼를 재물로 드렸어요.

오늘 말씀에 혈루증이라는 피가 멈추지 않는 병에 걸린 어 여인이 낫게 되는데 보통 예수님은 만지시거나 말씀을 하셔서 병이 낫게 해 주시는데 오늘 완전히 다른 방법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9장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예수님의 옷을 만져서 나았어요. 이게 성경에 보면 안 나와요 이런 얘기가 최초로 나오는 얘기예요. 여기에서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믿은게 아닙니다. 최초의 것을 한 거예요. 아무도 하지 않는 거 그랬더니
26절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이 사건이 예수님이 혈루증을 낫게 해 주시고 나서 죽은 12살 소년들을 살리시는 사건과 함께 온 땅에 소문이 났대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고침받는데$이 방법을 따라해요.

마태복음 14장 36절
예수의 옷자락에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혈루증 여인의이 최초의 믿음이 계속 기억되고 있고 그것을 따라하고 있고 그것을 했더니 낫게 됐어요. 그 소원이 거기까지 돌았던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손수건 앞치마 만져서 병 낫는 일들이 일어나요. 그니까 소문이 거기까지 났던 거예요.

하나님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믿음은 최초의 믿음입니다.
누구도 안 해본 믿음 할 수 있을까요? 못 하죠. 이미 기도 예배 헌신 이미 누군가 다 시작하고 우리는 그거 따라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억에 남는 그런 예배 그런 기도 그런 믿음 가질 수가 있을까요?
누군가 안 했던 걸 하는게 아니라요. 내가 안 했던 걸 하는 거예요. 절대적 최초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대적 최초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정말 많아지죠. 내가 그동안에 감사 이만큼까지 했어요. 감사 안 한 거보다 한게 더 적어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실만큼 감사할 거리를 많이 주셨어요. 그러면 우리가 감사를 더 하면 할수록 그 순간순간들은 다 최초가 돼요. 하나님께 기억되는 순간이 돼요. 기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기도한 거보다 더 많죠.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 맡기는 거예요. 그럼 맡기는 순간 최초가 돼요.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들을 따라가면 다 최초예요.

혈류증 여인을 따라해서 옷자락을 만져서 병고침 받은 자들도 그 믿음은 그들에게서 최초였을 거예요. 처음 해보는 거였겠죠.

그러면 하나님께는 얼마나 강렬한 기억일까요?
처음 교회 다녔던 기억 처음 진심으로 기도했던 기억 처음으로 찬양을 하고 처음으로 말씀을 보고 처음으로 했던 순종을 했던 적이 있을 거예요.

하나님은 그때를 늘 그리워하고 계세요. 그때 진짜 좋았는데 그때 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2장 5절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나님은 그때를 늘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매번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더 따라가고 더 간절해지고 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그 순간 순간들이 하나님께 너무나 좋고 너무나 강렬한 기억의 순간들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더 믿고 더 따라가고 더 사랑한다라는게 뭘까요?
여러분 우리가 더 믿는다라는 건 그동안 이해할 수 있는만큼만 믿었지만 이제는 이해가 안 돼도 믿는 거예요.

믿음의 뭐 뜨거움을 올려라 뭐 그게 아니에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믿는 거예요. 예전에는 결과를 보고 믿었다면 이제는 결과를 보지 않고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거예요. 더 따라간다는 건 뭐냐면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순종만 하다가 이제는 내 뜻과 달라도 하지 못했던 순종을 하는 거예요. 방향을 잘 잡아야 돼요.

더 사랑한다라는 건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다가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도 사랑하는 거예요. 이게 제일 어렵죠.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따라가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게 진짜 어려워요.

그래서 예수님이 쉬운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 사랑해라 이게 첫 번째 계명이야. 그다음에 둘째 계명이 있어. 그것도 똑같은 크기인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라.

왜 굳이 몸이라는 말씀을 쓰셨을까요? 여러분 가끔 나 자신이 미울 때 있죠. 막 실수하고 막 후회할 짓하고 막 아 진짜 왜 이렇게 못 하지 왜 이렇게 못했지 실수했지 내가 미울 때가 있어요.

근데 미울 때 배고파. 나한테 밥 줘요 안 줘요? 밥 주죠. 나 미운데 나 미워 죽겠는데. 추워 따뜻한 옷 입어요 안 입어요? 입어요. 졸리면 재워요. 내가 아무리 미워도 나는 내 몸을 챙겨요.
예수님이 미운 사람 있어도 내 몸처럼 사랑을 하는게 이거예요. 우리는 그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어떤 감정적으로 심정으로 사랑하려고 하니까 어려워요. 시작도 못 해요. 근데 먹을 거 있으면 주고 불편해 보이면 챙겨 주고 그것도 사랑하는 거라는 거예요.

우리가 내가 미운데 나를 배고플 때 먹이고  졸려할 때 재워 주는 거는 그래도 날 사랑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배고픈 자 먹여주고 추워하는 자 입혀 주는 것만 해도 사랑하는 거야. 물론 심정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해야 되겠지만 그것부터 하라는 거예요.

더 간절하라는 거 기도가 이루어지길 간절한 것도 좋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게 살기를 간절하라는 거예요.

우리가 더 믿으라는 건 어떤 단순히 많이 하라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수치로 더 많이 믿는 것을 정하잖아요. 한계가 있어요. 하루에 24시간이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방향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건 한계가 없어요. 방향을 잘 잡으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새로워지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찬양 고백 간절함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셨다가 가장 좋은 때에 내 기도 내 고백 내 예배 기억하셨다가 가장 좋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되는 건 삶에서 가져본 적 없는 믿음 가져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믿음과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시게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간신히 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길을 쓰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 아니에요. 믿음 흔들리려고 하는 거 그때마다 막 억지로라도 예배드리고 길을 쓰고 막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고 하고 우리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인 거예요.

여기가 최선인 거 같은데 어떻게 더할 수가 있을까요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으면 이미 하고 있어요. 못 해요. 더 못 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근데 어떻게 더 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요 이미 우리에게 못하는 것만 요구하세요. 하나님 다 아세요. 못하는 거 다 아시고요. 못하는 것만 골라서 요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기 할 수 있어요? 항상 기뻐하기 할 수 있어요? 우리 다 알잖아요? 못 하잖아요? 하나님도 알아요. 못 하는 거 알아요.

베드로에게 배 버리고 바다를 걸으라 하십니다. 이것만큼 무리한 요구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할 수 있어요? 그 상황 되면 못 하지.

여리고성 함락해야 되는데 하나님 좋은 작전 좀 알려 주세요. 그냥 돌아.

무기는요? 나팔 불고 소리 질러. 이거 할 수 있어요? 너무 무리한 부탁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못하는 것만 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보게 하하시려고 우리에게 자꾸 못하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물을 걷게 하시고 여리고 무너지게 하심을 보여 주시려고 너 이거 못 하지. 난 이거 할 수 있어.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그러니까 네가 하면 안 돼. 네가 하려고 하지 마. 내가 하는 거야. 나에게 맡기는 걸 하면 돼.

여러분 나에게 맡겨진 일 내가 이겨야 할 싸움은 애초부터 우리가 못 이기고 못 이루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내 스케일이 아니라 누구 스케일이란 얘기예요? 하나님 스케일이란 얘기예요.

애초부터 내가 못 하는 일이에요. 그러면 누구만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하나님. 근데 누가 하려고 해요? 내가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두렵죠. 그러니까 못 할 것 같죠.

뭘 해야 돼요? 맡기는 걸 해야 돼요.
근데 자꾸 이게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서 내가 하려고 해요. 하나님 스케일이라서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거룩하신지를 보여 주시려고 그걸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부탁하신 거예요. 보여 주시는만큼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지를 보여 주시는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더 믿어서 그 모든 순간들이 최초의 믿음되라는 거예요. 하나님 모습 보고 본만큼 더 믿고 더 간절하고 더 의지해서 그때 그때마다 최초의 믿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은 원래 못하는 걸 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걸 하는 건 믿음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건 내 능력으로 하는 거지. 믿음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못하는 걸 하는 것부터가 믿음이에요.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어요. 그런데 믿음은 가능합니다.
나는 나를 평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가능해요.
나는 내 앞에 있는 골리앗과 같은 어려움 이길 수 없어요. 근데 믿으면 이길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거 이해되는 거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따르는 건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은 못하는 걸 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에서부터 믿음이에요. 못한다고 하는 것부터가 믿음이에요. 믿음으로 구원하고 평안하고 승리할 수 있으니까. 못한다고 하는게 믿음입니다.

못한다고 하세요. 하나님 내 힘으로 못 믿어요라고 하세요. 하나님 저 하나님 없으면 안 돼요. 하나님 저는 안 돼요. 그래서 하나님밖에 없어요. 이게 믿음이에요. 더 기도가 안 되고 더 사랑이 안 되고 더 간절해지지 않는 건 정말 할만큼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진짜 할만큼 한 거예요.

우리가 최대치로 악을 쓰고 길을 써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우리는 원래 거기밖에 못 해요. 잘 온 거예요. 믿음 흔들리고 고백했던 거 잊어버리는 거 그거 원래 그런 거예요. 우리의 죄성과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무능이 원래 그래요.

하나님을 의지할 때가 온 겁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가 된 거예요. 못함이 시작되면 하나님 차례가 된 거예요. 하나님이 내 믿음을 잘하게 하실 때가 된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잘하게 하실까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계속해서 그 잘하는 지점마다 최초의 믿음을 갖게 해 주실까요?

한 그룹은 다이어트를 하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긍정적인 글을 읽게 했고요. 한 그룹은 다이어트를 안 하면 병 걸리고 스트레스가 늘어난다라는 부정적인 글을 읽게 했어요.

긍정적인 글을 본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했고 부정적인 글을 본 사람들은 소금이나 지방 같은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안 먹으려고 했어요.

긍정적인 글을 본 사람들은 성취와 발전을 추구하는 쪽을 선택했고 부정적인 글을 본 사람들은 예방과 회피를 추구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져요. 자기가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하게 되어 있어요.

혹시 유관순 열사의 사진 봤어요? 진짜 어린 소녀예요. 유관순 열사가 나라를 잃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좀 그런 생각해 봤어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겠다. 그때 나이가 고등학생 나이래요. 나라를 안 뺏겼다면 그냥 착실하고 좀 훌륭한 그냥 평범한 어린 학생이었겠지.
상황에 따라서 이런 말이 있더라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상황에 따라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오늘 말씀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 안 하냐고 물어봅니다. 금식은 그 당시에 죄에 대한 회개와 슬픔을 표시하는 거였거든요.

그때 예수님이 15절에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지금 혼인 잔치의 상황이다. 슬퍼할 상황이 아니야. 잔치야 그래서 기뻐해야 되지. 울 상황이 아니야.

상황을 하나님이 어떻게 세팅하셨는지 지금 알려 주신 거예요. 지금 울 상황이 아니야.

근데 요즘 결혼식 보면 다 울죠 신부도 울고 신랑도 울고 신부 부모님도 울고 신랑 부모님도 울고 막 친구들도 울어요. 결혼식이 아니라 울음식 같아 다 울어요.

그래서 우는게 되게 자연스러워요. 이해가 되죠.
근데 제가 예전에 남자 선배 결혼식 축가를 여자 청년이 해 주는 걸 봤거든요. 근데 그 여자 청년이 축가하다가 울더라고요. 좀 이상하잖아요?

예수님이 이거 말씀하신 거예요. 울 상황이 아니야. 요즘 결혼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울 상황이야 잔치야 너무 좋은 거야

무슨 말이냐면 지금 슬픈 상황이 아니야. 지금 하나님 나라가 임했잖아.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있잖아. 기쁜 상황이야.

상황에 맞춰라는 얘기거든요. 상황은 사람을 만들어요. 그런데 그 상황은 누가 만들까요? 하나님이 만드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초의 믿음을 가지게 하시려고 뭘 하시냐면 새로운 상황을 만나게 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믿음이 새롭게 대처할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이전에 가지지 않았던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 상황에 맞추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제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오늘은 기다리게 하실 때가 있어요. 어제는 붙잡으라고 하셨어요. 근데 오늘은 내려놔도 돼라고 하실 때가 있어요. 멈추라고 하실 때가 있고요. 가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세요. 불을 피하게 하실 때도 있는데 가끔 불 속에 들어가서 거기 안에서 지켜 주실 때도 있어요. 하나님의 방식이 늘 달라져요.

아브라함에게 길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라는 거예요. 새로운 믿음을 가지라고 한 거예요. 그 믿음을 기억하신 떠나라고 해서 떠납니다. 그 믿음을 기억하셔서 약속의 땅에 가게 하셨어요.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죠. 비천해 처할 줄도 알고 나는 풍부해 처할 줄도 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상황에 따라서 맞추는 믿음을 난 가지고 있다.

그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 어떨까요? 새롭겠죠. 최초의 믿음이겠죠. 그 바울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님에게 강렬한 기억이겠죠. 우리가 느껴본 적 없고 해 본 적 없는 걸 경험하려면 뭐라 하면 되냐면?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돼요. 모든게 다 새로워요. 모든게 다 새로운 느낌이에요. 새로운 상황이 새롭게 해요.

혈류증 여인이 왜 옷자락을 만졌을까요? 아프지 않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아픈 상황을 만났어요. 이전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어요. 그래서 그 상황에 맞춘 믿음을 예수님께 보여 드렸던 거예요.

마태복음 9장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 포도주라는 새로운 상황이 안다면 새 부대라는 새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믿음을 페어링해야 된다. 이게 진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이전과 다른 방법 어제와 다른 상황을 우리에게 던져 주실 때가 있어요. 믿음을 거기에 페어링하라는 거예요. 대처하라는 거예요. 맞추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새포도주하고 옛포도주하고 뭐가 더 맛있을까요?
숙성된 포도주가 더 맛있었어. 그 당시에도 그거 더 선호했어. 내가 보기엔 예전의 상황이 더 좋아 보일 때가 있어요. 옛포도주가 더 좋아요. 그것 선호해요.

하나님이 새롭게 제시하시는 그 상황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어요.
근데 무슨 말이냐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 경외하고 하나님 찬양하고 하나님 엎드리라는 거예요. 그렇게 대처하라는 거예요. 그게 최초의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 믿음을 기억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을 보여 주셨다면 내 믿음이 성장할 때가 됐다는 얘기예요. 거기에 대처해서 하나님께 새로운 믿음을 보여 드릴 때가 됐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강렬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믿음을 드릴 때가 됐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새로운 상황에서도 하나님 따라가는 믿음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런데 일상이들 똑같은 경우도 있어요. 새로운 일이 안 일어나요. 늘 반복될 때가 있고 아무 변화가 없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고 계신지를 어제랑 오늘이 똑같아서 간음이 안 돼요. 그럴 때도 있습니다.

상황이 변하면 그거에 맞춰서 믿음이 변할 텐데 새로워질 텐데 상황이 안 변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이 이때는 어떻게 해 주시냐면 상황을 바꾸시는게 아니라 나를 바꾸세요.

미국인과 한국인은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린이와 어른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직장인과 학생은 관점과 시각과 생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신분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져요. 하나님은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 내 신분을 바꾸셔서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내 믿음이 변화되게 하세요.

제가 중고동부 전도사 때 겨울 수련회의 기간에 서울을 가로지르는 미션 게임을 했거든요. 조를 세 개로 나누고 목적지는 양재역 쪽에 있는 대한성서공회예요. 거기서 그 성서 박물관 가서 막 견학하는게 목적이고 출발지가 영등포인데 세 개조로 나눴어요.
한조는 명동 가서, 이게 유행이었어요 프리허그 하던 거. 그래서 몇 명 목표 인원을 주고 그거 다 끝내면 오는 거예요. 한 주는 지하철마다 구세군 냄비 어느 역에 냄비가 있는지 다 찾아서 거기에 다 기부하고 오게 했어요. 그리고 한조는 반절은 눈을 가렸어요. 반절이 손 잡고 걔네들 데려가서 오는 거예요. 다 나름의 핸디캡들이 있었어요. 빨리 오는 순서대로 피자 치킨 주고 참치 김밥이랑 컵라면 주고 꼴등은 그냥 김밥 주고

근데 눈가리게 한 이유가 뭐냐면? 얼마나 불편한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한번 경험해 보라고. 시각 장애인들이 다니기에 얼마나 불편할까? 모두가 편한 세상이 되려면 뭘 하면 좋을까?를 한번 느껴보라는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안 보이는 채로 몇 시간을 이동했거든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했더라고요.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어요. 이렇게 위험한지 몰랐어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잠깐 다른 신분이 됐는데 완전히 바뀐 거예요.

여러 가지 옵션 바꿔서 할게 아니라 그냥 내가 바뀌면 그냥 다 바뀌는 건데 내 삶을 새롭게 하려고 하면 바꿔야 할게 너무 많아요. 바꿔야 할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근데 나 하나 바뀌면 다 달라져요.

우리가 바뀌어야 하는 내 신분이 뭘까요? 내 상황이 안 바뀔 때 하나님이 내 신분을 어떻게 바꾸라고 하실까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상황의 변화가 없을 땐 정체성이 바뀔 때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돼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요 관점이 바뀌어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흔적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그거 발견할 수가 있어요. 그전에 그게 안 보였다. 하나님이 안 주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충분하지 않은 거예요.

이스라엘의 광야는 몇 년 동안 반복됐을까요? 40년 동안 반복됐어요.

매일 똑같은 자리 헤매고 매일 똑같은 거 먹었어요 안 바뀌어요 반복됐습니다. 어제 오늘이 같아요.
그때 하나님이 그 시간을 통해서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죠? 신분을 변화시키셨어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켰어요. 상황은 그대로인데 신분을 바꿔 주셨어요.

그랬더니 그들의 관점이 어떻게 됐을까요? 이건 헤매는게 아니라 인도하심일 거야. 이건 나는 우리는 버려진게 아니라 함께하심이야. 방황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이야라고 변했을 거예요.

더 거룩해지고 더 간절해지고 더 겸손해져서 하나님께 처음 보여 드리는 최초의 믿음을 갖는다는 건 나는 못합니다. 못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은 관점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관점을 보기 위해서 해야 되는 건 뭐냐면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점을 보는 건 응용 문제예요. 그 응용 문제를 풀려면 정석을 알아야 돼요. 말씀대로 살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게 하나님의 자녀거든요.그래야 우리의 삶에서 찾아오는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가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하려고 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관심이 없고이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뭐지? 하나님의 뜻하심은 뭐지? 그거 발견할 수 있는 팁은 뭐지? 팁이 없어요.
말씀대로 살다 보면 믿음의 실력이 그렇게 늘어나다 보면 모든 응용 문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로 도약하는 지점마다 하나님께 강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될 겁니다.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최초의 모습이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같은 일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고 같은 일인데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는 믿음을 가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영화 중에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의 필이라는 성적이 고약한 사람이 하루가 무한하게 반복되는 타임프에 걸리거든요.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이 일어나요.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을 갔어요. 다음 날이 되면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목숨을 잃었는데도 다음 날이면 자기 침대에서 일어나요. 그럼 반복되는이 일상에 갇혀 버린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필이 결심해요. 수없이 경험한 날들이니까 그 하루에 무슨 일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거든요.

성격이 고약했던 필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가 매일 떨어져요. 그 아이를 매일 구합니다. 질식사하려는 사람 구해 줍니다. 타이어 펑크한 사람 도와줍니다. 매일 반복되던 똑같은 날들 속에서 필이 바뀐 거예요. 그리고 다음날 라디오에서 다른 멘트와 다른 노래가 나왔어요.

드디어 내일이 된 거예요. 이렇게 말해요. 오늘이 내일이야. 바뀐 날을 보고 한 번도 하지 않은 최초의 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반복이 멈추고 모든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 나의 정체성이 바뀌어야 돼요. 내 시선과 생각이 바뀌어야 돼요. 그러면 상황이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합니다.

혈류증 여인의 몸을 고치시면서 예수님이 안심하라고 하셨어요.
안심하라.
어디를 고치신 거예요? 마음을 고치신 거예요. 병 고치면서 안심해도 된대요. 그리고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몸도 고치셨고 마음도 고치셨는데 내 영혼이 구원받았다 영혼의 병도 고치셨어요. 몸과 마음과 영혼 모든 걸 다 새롭게 하셨어요.

뭘 보시고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을 보신 거예요? 최초의 믿음 하나님께 너무나 강렬했거든요.

이렇게 구원받은 혈류증 여인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했겠죠. 구원받았으니까. 그래 그녀의 관점과 생각과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예요. 이제는 병의 굴래에서 반복되던 병의 군래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자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보면 믿음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되게 좋을 때가 있죠. 너무 막 은혜 충만하고 막 은혜 예배드린 거 너무 좋고 막 하나님의 동행하심도 느껴져서 하나님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막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벅찬 시기가 있거든요.

그때 우리가 해야 되는 건 뭐냐면? 거기에 머물지 않는 거예요. 정말 좋아서 이게 딱이야 이대로면 좋겠어 하는 순간부터 믿음은 경직되기 시작해요. 새로운 색깔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믿기로 했다면 믿음의 목적은 더 잘 믿는 것이 되어야 돼요. 믿어서 너무 좋잖아요.

그때부터 우리가 뭐 해야 되냐면? 못하는 걸 해야 돼요. 그동안에 내가 못했던 것들을 하나님께 해 드리고 내가 못했던 감사와 못했던 기도와 못했던 사랑을 해 보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 경직되지 않는 방법이에요.

그래야 하나님께 모든 순간을 최초의 기억으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겨 드릴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 만족하고요. 눈에 안 보이는 건 만족하지 않아야 하는데 거꾸로 합니다. 내 소유 내 형편 눈에 보이는 건 하나님이 땅 맞게 주셨으니까 만족해야 되는데 내 실력 내 성품 내 믿음 눈에 안 보이는 건 만족하지 않고 성장해야 되는데 거꾸로 할 때가 있어요.

실력과 믿음은 만족하고요. 안주하는데 형평과 소유는 만족하지 않고 더 갖기를 원해요.

지금이 좋사오니 하면 안 돼요. 베드로가 예수님하고 모세하고 엘리야 그 세 명이 같이 있는 걸 보고 모세가 예수님 여기 너무 좋아요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 여기서 같이 살아요

그때 예수님이 그냥 그 산을 내려가십니다. 여기서 안주하면 안 돼.
그리고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세요. 여기서 안 주하는 거 아니야. 계속 나아가야 돼.

우리가 믿음의 삶이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한 것 같고 은혜가 충만한 것 같을 때 거기에 안주하면 안 돼요. 더 나아가야 돼요. 하나님께 계속해서 좋은 기억들을 남겨 드려야 돼요. 하나님께 그 기억이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남겨 드리는 기억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는 걸 잘합니다. 하나님 힘을 더 주세요. 하나님 더 도와주세요. 하나님 더 은혜 주세요. 하나님 더 이해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더 알게 해 주세요. 더 보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 이미 받고 있는게 많은데 그걸 발견만 하면 되는데 자꾸 더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뭘 더 드리고 있을까요? 하나님 오늘은 바빠서요. 하나님 오늘은 마음이 안내켜서요. 하나님 오늘은 너무 지쳐서요. 어제보다 하나님 생각 잘 못하고 어제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못 사는 거 이해해 주세요. 오늘 내가 좀 형편이 그렇게 안 돼요. 더 구하는 건 잘하는데 더 드리는 건 잘 안 해요.

우리의 믿음이 어느 쪽에 있을까요?
여러분 믿음은 얼마나 더 받았는가가? 아닙니다. 왜냐면 이미 최대치로 받았어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받아서 내 믿음이 더 좋다 이거 아니에요.

왜냐면 저 사람이나 나나 받은 거 똑같아요. 최대치로 다 받았어요. 생명 받았어요. 은혜 받았어요 이미 받을 수 있는 거 다 받았습니다.

그니까 믿음은 더 받았는가 척도가 될 수 없어요 다 똑같아요.

그래서 믿음의 기준은 얼마나 하나님께 더 드렸는갑니다 하나님 그거 보세요 그거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거 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드린 거 기억하세요.

다 똑같이 주고 계시니까 하나님께 어제보다 더 사랑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어제보다 더 순종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어제보다 더 거룩하시고 사랑을 더 보여 드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까 찬양했던 것처럼 좋을 때만 기쁠 때만이 아니라 슬플 때도 안 좋을 때도 광야에서도 은혜의 자리에서만 아니하라 광야에서도 깊은 골짜에서도 하나님께 더 드려야 돼요. 하나님은 그 첫사랑의 때를 늘 그리워하세요.

여러분 얼마나 되셨어요? 그 처음의 믿음 하나님께 보여 드린 때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 순간들이 다 하나님께 강한 기억으로 남게 돼요.

그때의 기도 그때의 고백 그때의 간절함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모으셨다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하나님이 기억하셨던 그 믿음을 사용하세요.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시는 그 기도를 사용하세요.

오늘이 예배가 이전과 같은 예배가 아니라 이전과 같은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께 강렬하게 기억되는 예배 오늘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되는 찬양과 기도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더 원하고 하나님을 더 구하고 하나님께 더 드리는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상황을 새롭게 하시고 정체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더 새로워지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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