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믿음의 근거
히브리서 11장 8~11절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요즘에 어 유튜브가 재미가 없어졌어요. 왜냐면 맨날 뜨는 영상만 떠요. 맨날 보던 것만 보니까 좀 흥미가 떨어져 가지고 좀 지루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맞춤 동영상을 누르면 내 알고리즘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추천해 주는 새로운 영상들이 뜨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낚시 게임 바둑 스포츠 이런 영상들이 나오더라고요.
이 키를 누르기 전에는 유튜브는 마치 세상에 영상의 종류가 그것 밖에 없는 것처럼 그냥 제가 보던 것만 계속 나왔고.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 인지하지 못했던 거예요. 유튜브 세계에서는.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요.
내가 경험하고 내가 보고 내가 듣는 것이 내 세상의 전부가 돼서 그 이상의 다른 것이 있다? 내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고여서 살아가는 거예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만.
내 삶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삶을, 그 이외에 사는 삶을 살 수 있다 또는 살아야 한다라는 어떤 가능성이나 상상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게 하실 새 삶이 내 삶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내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오는데 둘 다 모두 다 상상하지 못했던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그 삶을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땅으로 가서 모든 걸 버리고 이제 출발했어요. 그동안 아브라함의 삶은 내 가족 내 고향 내 집 내 소유가 아브라함의 세계의 전부였는데 거기에 머물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새로운 세계 다른 세계를 향해서 나아갔어요.
히브리서 11장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사라는 어떤 삶이라는 그 틀에 갇혀 있었냐면 90살까지 자녀가 없었어요. 이게 사라의 삶의 틀이에요. 난 자녀가 없다. 90살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삶.
그러면 90살까지 아이를 못 낳으니 자녀가 있는 삶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 삶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전혀 다른 삶이 있어 다른 세계가 있어.
사라는 새로운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낳게 됐어요. 둘 다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꿈꿨고 아예 다른 삶이었어요. 내가 살고 있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이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전혀 다른 국면의 세계에 우리가 도착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말씀으로 이루어진 거래요. 그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래요. 지금 우리의 벌어지는 모든 현상들이. 어떤 나타난 것들 현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말씀으로 지어진 거래요.
그러니까 믿음이 있으면 그것을 볼 수 있대요. 믿음은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말씀으로 이루어진 그 세계도 볼 수 있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그걸 볼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11절
히브리서 11장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다 믿음으로 인해서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보게 됐고 살게 됐고 그 세계에 도착하게 됐어요.
믿음은 하나님이 만드신 내 진짜 삶을 우리가 찬양했던 것처럼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는게 중요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데 믿었다는 거예요. 모든 걸 다 버리고 인도하심을 신뢰할 만큼의 그 믿음을 가질 근거가 될 만한 기적을 체험한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믿어서 엄청 성공한 것도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을 믿었어요. 근거 없는 믿음이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걸 정도라면 인생을 바꿀 정도라면 정말 확인하고 확인해야 되잖아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되잖아요.
직장 들어갈 때도 1차 서류 전형 2차 면접 3차 면접도 있는 경우도 있어요. 검증하고 확인해야 되니까 근거가 있어야 되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 직장 들어가서 일을 얼만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확인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결혼을 할 때도 이 사람이 평생 나와 함께 할 만한 사람인가? 계속 확신이 들어야 되잖아요. 근거가 있어야 되잖아요. 삶을 걸 정도면 엄청나게 확실하고 많은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근거가 없었어요. 다 처음 하는 일들이었어요.
근거가 없어도 믿어야 믿음이래요. 보이는 거 없어도 하나님을 믿어야 진짜 믿음이래요. 기도가 응답되고 확실한 음성을 듣고 많이 갖고 근거가 있는 다음에 믿는게 아니래요.
예전에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에 부흥회를 하는데 강사님이 병 고치는 치유를 하셨어요. 우리 교회에 다리를 저시던 분이 계셔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그 기도 한 번에 다리가 싹 낫았어요. 걷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그다음부터 모든 예배 안 빠지고 계속 나와요.
근데 몇 달 있다가 갑자기 교회를 안 나오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다시 다리가 불편해졌대요.
그러니까 그분의 교회를 계속 다니려면 다리가 꼭 나아야 한다라는 근거가 필요했던 거예요. 하나님을 계속해서 섬기려면 내 자리가 계속해서 온전해야 된다라는 근거가 필요했던 거죠.
만약에 성경에 나오는 혈루증을 고침받은 그 사람이 나중에 암에 걸렸다면 믿음이 흔들렸을까요? 안 흔들렸을까요?
만약에 예수님이 눈 뜨게 해 주신 맹인이 나중에 사고로 크게 다쳤다면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몰라요. 어떻게 할지는.
그런데 근거가 있어야 믿는 자들이었다면 원망했을 거예요. 흔들렸을 수도 있어요.
근거가 없어도 되는 믿음을 가져야만 해요.
밤새 물고기 잡이에 실패한 베드로는 아무 근거가 없는데 예수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물고기를 잘 잡는다는 근거가 없었어요.
물고기 많이 잡히는 기적을 경험했고 어부로 살던 베드로가 제자 베드로라는 전혀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됐어요. 근거 없는 믿음을 통해서.
병치유 기도 응답 어떤 사람의 친절 마음의 위로가 믿음의 시작일 수는 있습니다. 이걸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될 수도 있고 이것으로 하나님을 전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믿음에 계속되는 근거가 되면은 안 되는 거예요. 믿음의 시작이 될 수는 있지만.
다시 병들고 응답이 없고 사람이 변하고 평안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근거가 없어도 되는 믿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더 이루지 않아도 남들보다 더 같지 않아도 응답이 없어도 아무 근거가 없어도 우리가 믿음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기 위한 근거가 있어요. 근거 없는 믿음을 위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걸 알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의 약함입니다.
나는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안 찾으면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무지한지를 알면 하나님이 보일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연약해요. 약함이 영원합니다. 강해질 예정이 없어요. 약함의 영원함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거든요.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계속 붙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약하다라는 건 불행 같은데 굉장한 다행입니다.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으니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무한한 동력이 되거든요. 우리의 영원한 약함이라는게.
그런데 누구나 연약함이 있고요. 한계가 있습니다. 믿어도 상처가 있고 실패를 해요. 많은 걸 가진 사람도 꿈을 다 이룬 사람도 그들만의 나약함이 있고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모두에게는 똑같이 무한한 이유로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잘 살든 못 살든 약함은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늘 알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요. 이게 아무 근거 없어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믿음의 근거가 돼요.
근데 우리는 늘 약해요 그리고 모두 다 약해요. 그러니 이게 무한한 근거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약하다라는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데 도움이 안 되고 믿음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의 나약함은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선명하게 합니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보이고 이런 모습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라는 것을 우리가 더 알 수가 있거든요.
오늘 말씀 8절을 보면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세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여기에 아브라함이 근거 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간 것 같지만,
여기에 아브라함의 약함이 들어 있어요.
뭐냐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대요. 몰랐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자신의 지혜로는 자신의 경험으로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되고 어떤 길을 가야 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 모른다라는 약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절
히브리서 11장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사라 이야기가 나와요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여러분 노약한 사라는 자신의 그런 늙은 몸으로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늙은 몸이라는 연약함, 그의 늙음이라는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함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 몸으로는 할 수 없다. 내 삶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어요.
그 모두의 연약함이 근거 없는 믿음의 근거가 됐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으려면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늘 알아야만 합니다.
근데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르죠.
저는 안경이 없으면 운전을 하지 않아요. 한쪽 시력이 안 좋거든요. 약한 시력이라는 근거가 늘 안경을 찾습니다. 안경을 의지합니다. 안경이 없으면 운전을 하지 않아요.
우리도 하나님이 없으면 내 앞길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갈 수 없어요. 약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비오면 뭐부터 찾아요? 우산부터 찾죠. 나는 비를 피할 수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우면 에어컨부터 켜요. 나는 더위를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바로 하나님이 생각날 수밖에 없어요. 바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 근거도 없어도 내 약함이 근거가 돼서 무한하게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게 교만이에요. 왜냐면 꼴보기 싫어서가 아니에요. 교만하면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 안 찾거든요.
그래서 교만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교만한 모습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예요.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인 거예요.
감정의 평안도 결국은 끝납니다. 성공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것들 다 짧아요. 금방 끝나요.
하지만 약함은 길어요. 끝나지 않습니다. 이게 믿음의 근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약함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근거가 없어도 하나님 믿게 될 수 있습니다.
근거 없이 하나님 믿게 하는 근거가 또 하나가 있는데 이 근거도 약함이랑 비슷해요.
영원해요. 그래서 믿음을 유지하는 좋은 근거가 됩니다.
오늘 말씀 6절을 보면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대요.
그런데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냐면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 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상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근거가 없어도. 하나님을 믿게 하는 근거가 뭐냐면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아브라함은 갈 곳을 모른다는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어요. 자신의 나약함에 하나님만 따라가는 근거가 됐습니다.
동시에 8절을 다시 보면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갔어요. 어딘지는 몰랐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이 있다는 것은 알았어요. 그걸 믿은 거예요.
아브라함이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한 근거는 약함과 약속이었어요.
사라는 늙음이라는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했을 거예요.
동시에 11절
히브리서 11장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사라의 믿음의 근거가 됐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그것을 그 약속을 이루실 만한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사라는 알았기 때문에. 늙은 몸으로 아이를 잉태한다라는 것만큼 근거 없는 믿음이 어디 있어요. 근거 없는 믿음이죠.
그런데 사라가 이런 믿음 갖게 된 건 내가 정말 약하다라는 것과 이 약한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이루신다라는 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데도 믿었다라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거 없어도 확실하게 결정된 거 없어도 근거 없이 믿어야 하는데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하는 근거는 나의 약함과 주님의 약속입니다. 내 약함이 영원하듯 하나님의 약속도 영원합니다. 감정 성공 평안은 영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걸로는 믿음을 유지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내 약함과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해요. 그래서 믿음을 유지하는 무한한 동력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약속은 하셨다고 하는데 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뭐지 어떤 약속하셨지, 어디로 인도하실 거고, 뭐가 되게 하실 거고, 누구 만나게 하실 거고, 언제 이루실지 몰라요. 하나님이 안 알려 주셨어요.
그러면 이 약속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음의 근거가 될 수가 있을까요? 모르는 약속인데?
우리가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뭘 선택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요.
그런데 사람은 늘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죠. 내가 오늘 저녁으로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난 고기만 먹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선택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하는 건 편견을 가질 수도 있고 늘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선택 가지고 사람을 안다라는 건 한계가 있지만, 그 사람이 정말 결정적인 순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는 선택을 본다면, 그 사람이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죠.
우리나라의 연애 예능 있잖아요. 하트 시그널, 환승 연애, 이게 원조가 이미 20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더라고요. 미국의 한 예능이 연애 예능이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좀 더 매운 맛이에요. 최종 커플이 이렇게 선정되잖아요. 그 두 사람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눠 줘요. 하나의 봉투에는 1억 5천이 들어 있고요. 하나에는 빵원이 들어 있어요. 한 명이 그 봉투 받는 거예요. 돈 봉투. 그리고 선택하게 합니다.
이 돈을 반절로 나눠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혼자 먹고 헤어질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나중에 해 보세요
여기 커플들 보면 돈을 선택했다고 치면, 이 사람은 얼마나 결정적인 순간이에요. 돈이랑 사랑을. 그런데 돈을 선택했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관계보다는 이득에 더 편향된 사람으로 알 수 있고, 관계를 선택한 사람은 관계가 이득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편향된 사람이라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겠죠.
예수님도 굉장히 중요한 순간에 생명이 걸린 문제로 선택의 기로에 서셨어요. 그때 하나님한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고난, 내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 주세요. 생명이 걸린 문제예요.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 순간에, 이런 기도를 하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로 결정하셨어요. 선택하셨어요.
가장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은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는 선택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이 어디에 편향되어 있는지? 이 십자가의 은혜를 완전히 증명하신 거예요. 죽는 것까지 해서 날 살리시는 일만 하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다 날 살리는 쪽에 편향되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파악할 수가 있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실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건 너를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라 너를 망하게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너를 살리려고 하는 선택이야. 너를 위한 선택이야. 이것을 십자가로 증명하신 거예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날 위해 모든 걸 다 하실 수 있고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하신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이 나를 위한 거구나. 선한 약속이구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라는 거죠.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대요. 날 살리려고 생명도내어 주셨는데 뭔들 안 해 주시겠느냐 이 말이거든요.
이제부터 내가 보여 주는 건, 다 너를 위한 거야. 이해 안 되는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너를 위한 일로 편향된 일들이야. 너도 나를 신뢰하는 삶으로 편향될 수 있니? 라고 우리에게 늘 물어보시는 거예요.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대요.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대요.
그 정도라면 하나님의 약속이 뭔지는 몰라도 나를 살리고 나를 지키고 나를 위한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검증하고 확인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에 강한 근거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약속이 영원하대요. 이 약속이 변하지 않는대요. 끝이 없대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을 아무 근거 없이 믿게 하는 무한한 동력이 되는 거예요.
약속을 몰라도 무조건 선할 것이라는 근거로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약함을 허락 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약함을 허락하셨어요. 생명을 내어 주실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게 뭐냐면? 내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거거든요. 그래서 약함을 허락하신 거예요. 나약하고 무너지고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 찾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약함을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은 최상의 모습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도록 지음받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지으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거든요.
그런데 약함이 그 모습을 찾게 해 주거든요. 약함이 하나님을 더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거든요. 지으심의 목적을 회복하게 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최상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함을 허락하신 또하나의 다른 이유는?
그 약함을 들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에요. 주님의 강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살게 하시기 때문에 약함을 허락하신 거예요. 약하다라는 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신다라는 뜻이에요.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해 줄게, 내 보호와 내 지킴으로 내 인도함으로 살게 해 준다라는 하나님의 뜻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고 영원한 것이 믿음의 근거가 되게 하셨어요. 금방 끝나는 평안, 늘 있지 않는 기적, 가끔 있는 성공이,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나의 약함과 하나님의 약속이 믿음의 근거가 되게 하신 거예요. 영원히 흔들리지 말라고.
우린 계속 약할 겁니다. 잘 믿어도 해결 안 되는 상황들이 있을 거고요. 무너진 자리에 또 그 자리에서 또 무너질 수 있고요. 또 우리는 연약해질 겁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찾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 없으면 안 된다고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약속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날 살리는 쪽으로 늘 편향되어 있어요. 늘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이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의 믿음의 근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약함과 약속이 근거가 된 근거 없는 믿음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의 근거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뜻을 이루시고요. 그 믿음을 보시고요. 그 능력을 행하시고요. 그 믿음을 보시고 대신 싸우시고 선하게 인도하시기 때문이에요.
이 근거 없는 믿음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일들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의 근거가 될 수가 있어요. 그 믿음을 신호로 하나님이 일하시고 싸우시기 때문에.
이게 여러분의 삶이 우리가 살아야 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하고 우리가 만나야 하는 새로운 삶이에요. 이 삶을 살아야 돼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삶, 이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진짜 새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이 넘기실 다음 페이지의 이야기가 있어요. 다음 페이지의 삶이 있어요.
그 페이지는 내 약함과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믿는 자들만 넘길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요. 사라도 그랬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근거 없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다음 페이지의 이야기에 닿게 됐습니다.
보이는 거 없고 이루어지는 거 없고 아무 근거가 없어도 영원한 약속과 영원한 약함이 근거가 되는 흔들림없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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