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히시고 먹이시고 재우신다
이사야 20장 1~6절
이사야 20장
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2.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5.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6.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아이들은 하루에 질문을 300개나 한데요. 그 질문으로 창의성이 늘어나고 지식이 자라게 되는 거죠.
어른이 되면 질문을 20개 한데요. 근데 그 20개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게 오늘 저녁 뭐 먹지? 이거래요.
또 많은 질문이 어디에 살아야 되지? 뭘 먹고 어디사는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의식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늘 궁금했습니다. 입는거 중요하죠. 근데 먹는 것과 사는것 만큼 중요할까?
실제로 창조하실때
창세기 2장 16절
창세기 2장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동산 살 곳과 각종 나무의 열매 먹을 것을 주셨는데
25절
창세기 2장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옷은 안 주셨어요. 필요성이 없었던 거에요.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어 쫓겨나게 됩니다. 이 식의 법칙을 어기니 주의 법칙이 깨졌습니다.
음식은 내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주는 내가 어디 안에 머물것인가에요.
내 안에 들어가는게 내가 어디 안에 들어가는가를 결정합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으면 은혜 안에 거하게 되고 내 안에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거하게 되고 허락하시지 않은 것이 내 안에 있으니까 허락하신 곳에 있지 못하는 거에요.
에덴 동산 안에 들어가지 못한 거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과 믿음과 거룩이 ㅇㅆ을때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할 수 있는 거에요.
인류 최초 죄를 짓고 제일 처음 한게 하나님 따라하기. 자신들이 창조합니다. 옷을 지었어요.
죄를 짓고 느끼는 수치심과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릴려고 하나님이 아니라 나무잎을 의지했던 우상을 만든 것.
이때 하나님이
창세기 3장 21절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연약한 나뭇잎 의지하지마. 가죽옷 만들어줄께. 내가 보호해줄께. 그러니까 나만 의지해.
창조가 끝나고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것도 옷이에요. 지켜주실려고.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거죠.
하나님이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는건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켜줄께. 나만 생각하고 나만 의지해야 돼. 나만 널 지킬 수 있어.
에덴 동산에서 집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았습니다. 쫓겨나서 불편한 곳에서 살게 됐어요.
이제는 고생을 해야만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식과 주가 불편한 상황에서 보충해 주신게 옷이었던 거에요. 에덴 동산에서는 보호해줄 옷이 필요없는데 이제는 고생을 해야하는 인생을 살아야만 하니까 옷을 주신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옷을 입고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증표가 될 수 있어요. 보호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증거에요. 이걸로 나 기억해. 내가 널 지켜주는 거야. 옷을 입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할 수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 옷이 너는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내가 입혀주는 존재야. 내 자녀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는 증표.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내가 지켜줄께 함께하고 있어. 입혀주신 옷을 벗기신데요.
이사야 20장 4절
이사야 20장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옷을 벗기셔서 수치를 느끼게 하신다.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위협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데 이집트를 의지한
그랬더니 이집트의 미래를 알려주신 거에요. 망하게 될거야. 너희도 그렇게 될거야. 그럼에도 이집트 의지할거야? 이 뜻이에요.
이 때 아무도 안 믿어요.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가 옷을 벗은채로 등장합니다.
이사야 20장 3절
이사야 20장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너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으니 이사야를 시청각 교재로 쓰신 거에요. 3년이나 벗은채로 다닌 거에요.
그 당시 노예나 전쟁 포로의 모습이었어요. 이게 너희의 미래야.
가죽 옷은 지켜주심의 증표였는데 벗긴 옷은 치심의 증표였어요.
그런데 이사야가 옷을 다 벗고 있지만 입고 있는옷이 있는데, 순종의 옷,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요. 3년이나 벗은 채로 살아야 돼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이것까지 해야 돼요?
2절
이사야 20장
2.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그가 그대로 하여
수치를 감당하기로 했어요.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게, 어렵고 안되는 것 같아서 어렵다 하는데, 이사야는 어떻게?
이사야는 자신이 옷을 벗었다는 수치보다 더 괴로운 수치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삶이 이사야의 수치였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게 너무 큰 수치여서 이런 수치는 견딜 수 있었던 거에요.
초등학생은 수치심, 중학생은 외로움, 고등학생은 불안감과 싸운다고 합니다.
입시가 불안해서 공부를 열심히하고, 외로워서 친구 관계에 목을 메는 행위가 나오고 초등학생은 수치심을 느끼기 싫어서 선생님께 인정받기 우한 행우를 한데요.
근데 어른이 되면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데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결정할때가 많이 있어요.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뒤처지면 창피한데 남들이 보기에 미련해 보이고 달라보일까봐 두려워요.
그러니까 살아야 하는 그 삶을 향해서 핸들을 꺾어야 하는데 부끄러움을 피하는 길로만 가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 있는데 그대로 못사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수치심을 느껴야 할 때가 있어요.
해야하는 걸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껴야만 합니다.
개그맨이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은 못 웃겼을 때입니다. 축구선수는 골을 못 넣었을 때.
내 목적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다 하지 않는게 수치가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내 목적을 다 하는걸 가치라고 합니다.
가위가 종이를 자르지 못하면 가치를 잃은 거에요. 목적을 잃으면 수치고 목적대로 살면 가치인 거에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수치는 마땅히 해야할 것을 못하는게 수치인데 수치를 느껴야 하는 것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게 수치가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게 수치가 되어야, 화합하지 않고 헐뜯는게 수치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수치를 못 느껴요. 성공을 못하는게 수치고 남들보다 뒤쳐진게 수치라 생각해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감사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을 때 수치심을 가져야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성경이 말하는 수치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때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그게 수치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치의 방향이 다르죠. 틀렸죠. 죄를 짓는게 수치스럽지 않다면 가치를 잃은 거에요.
아무리 내가 가치있게 사는 것 같아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가치를 잃은 겁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수치를 당해도 하나님의 자녀로 명예를 지켜가며 말씀을 지켜가며 살아간다면 그건 가치있는 삶입니다.
하니님의 다스림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수치를 당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큰 가치의 삶이고 가장 영광스럽다 인정 받을 수 있는 삶이에요. 바뀌면 안돼요.
내 영광, 내 성취, 내 주장이 가장 소중하고 큰 가치가 되는게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
하지만 내 영광, 내 성취, 내 생각을 수치로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성취를 위해서 살아가는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큰 가치와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
무가치 무의미 우리의 삶이라는게 그래요.
단 번에 무한한 가치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히브리서 12장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수치를 당하셨데요.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에게 무시당하고 배신당하고 못박힘 당해서 죽으셨어요. 너무 큰 수치죠. 우리가 당해야할 수치였어요.
거룩하고 흠 없는 분이 우리를 대신 당하셨는데 게의치 않으셨데요. 수치스럽지 않으셨데요. 그게 하나님께 가장 가치 있는 일이셨데요.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 수치를 참을 수 있어야 돼요. 말씀대로 사는게 가치가 되어야만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수치를 느낄줄 아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죄를 짓는것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 사랑하지 않음에 수치를 느낄 수 있어야 돼요.
돈의 옷, 명예의 옷, 관계의 옷, 성취의 옷을 옷이 벗겨질때는 수치심을 못 느끼고 믿음의 옷을 벗는 것에서 알몸인 것 같은 수치를 느껴야 돼요.
로마서 10장 11절
믿음의 옷을 입고 있는 자라면 다른 옷을 벗어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데요. 믿음의 전신갑주가 우리를 보호하고 이기게 해준다는 거에요.
세상이 주는 수치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서 수치를 느낄 수 있을까?
수치는 상대적입니다. 누가 보고 있어야 돼요. 누가 보지 않으면 수치를 못느낍니다. 시선때문에.
믿음의 삶은 누가 보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그러면 나도 남들 시선이 없으니까 신경을 덜 쓰게 됩니다. 이 때 필요한게 양심이에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옳음을 선택하게 하는게 내 안의 양심이에요. 양심이 없을수록 잘못이 아니라고 느끼잖아요.
양심은 내면에 들리는 내 목소리래요. 근데 믿음의 양심은 내 안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내가 혼자 있을때 하나님이 내 생각을 통해서 외치시는 소리가 늘 켜져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을 꺼놓을때가 많아요. 하나님께서 순종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찬양하라 외치시는데
정의로운 일, 선한일, 하나님 위하는 일 같지만 들여다 보면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일때도 있다는 거에요. 양심을 잃은 거에요. 믿음의 양심이 있어야 이런 실수를 안하는데.
이사야는 믿음의 양심상 말씀을 안 따르는 수치가 옷이 벗겨지는 수치보다 더 괴로웠어요. 믿음의 양심대로 따랐어요.
양심이 당신을 움직이고 있나요?
하나님의 자녀가 진짜 근본의 정체성이 되어야 합니다. 옷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몸을 보호해주는 기능도 있는데 옷에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의사 학생 선수
노숙자에게 사성장군의 옷을 입혔는데 부탁도 들어주고 사진도 찍어주는데.
다시 노숙자의 옷을 입히니 피하고 부탁도 안 들어주고.
쓰러지는 척을 했는데 장군일때는 1분 만에. 노숙자는 10분이나 걸렸다.
옷에따라서 정체성과 신분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눈에 띕니다. 그 사람의 기도가 크게 들리고 그 사람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늘 가죽 코트를 입고 나오는데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옷을 입는데 전쟁 같은 삶 속에서 무가치함에서 자신을 지켜줄거라 믿는데.
우리는 어떤 역할에 처해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해요. 입은채로 해야 해요.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의 사람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어야 돼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고 믿음으로 드러내는 옷을 입고 살아가야 돼요.
우리는 어떤 옷으로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려면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다.
같은 옷, 같은 팀, 같이 싸운다, 함께 한다는 거. 예수님과 같은 팀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싸우고 같이 이룬다 같이 뛴다는 거에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옷, 그리스도의 옷, 믿음의 삶, 사랑과 거룩과 순종과 믿음의 옷을 입어서 예수님과 같은 팀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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