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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이블/말씀

교회에 가다 빌레몬1:10~18

by diane + 202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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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가다

빌레몬1:10~18

빌레몬서 1장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13.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15.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고
18.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교회가 우리가 같이 이렇게 모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또 해야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핵심이 되고 가장 중심이 되는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

여러분이 여기 왜 오셨겠어요?
하나님을 만나러 오잖아요. 예배를 위해서 오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삶 속에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그 예배, 삶이 예배가 되는 것 그런 내용을 저희가 다뤘습니다.
그래서 만남에 대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만남이지만 서로를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왔어요. 그런데 그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잘 만나는 것 중요합니다. 성숙한 예배자가 되는것 중요하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는 우리가 그 분을 정말 잘 만나고 잘 알기를 원하시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서로를 또 이웃을 제대로 만나고 잘 만나고 깊이 만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서로를 만나면 만날 만날수록 깊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이렇게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겠고요. 누구를 깊이 알아가면 사귀면 사귈 수록 나를 짜증나게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고요. 어떻게 보면 거울이잖아요.  상대방을 보면서.

우리가 소그룹 모임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  마주치면 부딪히면서 그 속에서 내 안에 어떤 영적인 성장이 있을 수 있고 영적인 하나님이 원하시는 찾으시는 변화가, 혼자서 예배 드리면 편할순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찾으시는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나 인격이나 그런 모습이 혼자서 만들어질순 없잖아요.
소그룹 안에서 같이 삶을 나누면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그런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나다보면 상대방을 알아가고 만나고 보게 되면서 실망시키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게 얼마나 많아요. 우리를 평소에  좀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고 실망시키는 일들 또 실망시키는 사람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빌레몬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관계를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를 이 세상의 모든 관계를 그 분 안에서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이 등장하죠. 바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바울이 아는 빌레몬 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빌레몬의 종이였습니다. 주인에게 소중한 어떤 것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너무 황당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배신감 느끼죠.  내가 얼만큼 이 친구를 아껴 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기꺼이 줬는데 기회를 줬는데 불쌍히 여겼는데 괘씸한 거죠 용서가 안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게 돼요. 그런 사람이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펜을 들고 주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 우리가 지금 읽은 이 짧은 편지글입니다. 그래도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라는 내용의 편지글 이죠.

우리말 성경에는 11절에 과거엔 그가 당신에게 무익한 사람이었을지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유익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그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라도 지금은 커다란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변했다. 그렇게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거듭났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12절에도 우리말 성경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그는 나의 심장과 같은 이런 표현이 아니라 그는 나의 심장입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다시말하면 그가 없으면 나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있으나마나다. 그 정도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칭찬해주고 있고  그를 받아주고 다시금 기회를 주라는 글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주와 종 이런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 영원한 친구로 그를 환영해주고 맞이해달라는 부탁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도 물론 성경 속에서 구약이나 신약에서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공동체로서의 삶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규모도 작았습니다. 실제로 가정에서 모이는 경우가 아마 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가정 교회로 이렇게 모이는 곳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교회를 다녀도 예배를 나와도 서로를 우리가 특별히 성경공부를 같이한다든지 봉사를 같이 다닌다든지 소그룹을 같이한다든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잘 모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죠. 노력하지 않으면 친해지기도 그만큼 쉽지 않은 겁니다.

목사님을 만났는데 이 분이 말씀하시는 그 역사적 사명이라는게 우리가 회복해야 할 역사적 사명은 웃는 문화를 회복하는 거라는 말씀을 하신.

우리가 오늘의 교회로서 오늘의 살아가는 교회 구성원들로서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하고 그래야 될 것들이 뭐 한두 가지겠어요. 굉장히 많이 있지만 그 분 생각에는 그 중에 하나 정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웃는 문화를 회복하는 거다.

교회는 대부분 어둡고 차갑고 무겁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물론 우리가 슬플 때도 있고 진지할 때도 있고 그래야 되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정말 얼마나 기쁜지 성경에서 가르치는 핵심중의 하나도 기쁨의 원리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기쁨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회 구성원들로서 그런 기쁨을 웃음을 그런 문화를 회복하고 나눌수 있는지 중요한 역할 가져야할 사명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 말씀을 제가 듣는 가운데 그 분 이야기가 웃는 문화가 중요한데 그것도 연습이 훈련이 필요하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새 소망이 있다면 우리 안에 새 노래가 있다면 그런 기쁨이 우리 안에 있다면 기쁜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겠죠.

최근에 제가 터키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이  무슬림입니다. 그 사람 이야기가 한국 사람들 너무 좋아한대요. 또 한국 음식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얘기하는데 그러면서 그 사람이 알쏭달쏭한 게 한국 사람들은 무표정이라는 거예요. 표정이  읽어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행복한 건지 기분이 나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그래서 제가 뭐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생각나는 게 없어서 뭔가 그래도 꾸며서 그 순간에 즉석에서 뭔가 만들어 내야 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워낙 깊이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 그런 거다. 우리는 공기에다가 밥을 먹고 국을 먹는데 그거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생각이 이 만큼 깊기 때문에 그런 거다.

웃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서로 삶을 이렇게 나눌 때 그런 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거고요. 또 교회를 만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같이 놀고 먹고 또 웃고 울고 이런 기회들 이런 시간들을 가질 때 우리가 서로를 좀 더 깊이 만날 수 있겠죠. 예수를 만나면 그래도 좀 달라야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기쁨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어요?

소그룹 올 때도 공부도 해야겠지만 나눔이 먼저 있어야 되겠죠. 우리의 모임들 속에서 먼저 강조돼야 할 것은 지식보다 내면의 변화이고요. 또  인격의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적인 웃는 문화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사명이 있는데 학교에서도 놓치고있는 많은 것들 교육 지식 이런 걸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사람 다운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 어떤 인성 교육, 인격이 있는 인격체로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대하고 만들어 가는 이런 교육이 좀 부족하지 않나?
때로는 가정에서도 우리가 엄마 아빠 부모님들로서 이런 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쩌면 우리 부모로서도 그런 경험이 없고 그런 걸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또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들에게까지 충분히 그 아이들을 깊이 만나주고 대화해주고 대화를 하고 또 어떤 질문들을 들어주고 도전해주고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만큼은 그래서 교회에서라도 그 일을 우리가 교회로 서 감당해야 되지 않겠다.

우리가 때로는 부흥을 생각하면 그런 어떤 숫자적인 개념 그런 이해만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 목사님들 조차도 말이죠 근데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부흥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변화가 어떤 것일까요? 우리 인격의 변화 잖아요. 내면의 변화잖아요. 관계의 변화거든요.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런 것들을 찾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사진 하나를 저에게 보내줬는데요.
tell me your story I will give you 1dollor.  당신의 이야기를 말해주는데 1불을 주겠습니다.  물론 뭐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이 사람은 들어주겠다는 겁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 내가 1불을 주겠습니다. 큰돈은 아닐 수 있어요. 큰돈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야기가 있고 여러분에게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여분의 삶 속에서 만들어가시는 이야기가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 이야기를 또 우리가 나눠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들어야할 책임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나눌수 있는 또 들어줄수 있는 그런 영혼의 친구가 우리에게 있느냐는 이야기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우리 가까이에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데도 결코 적지 않는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또 그 사람의 이야기 상대방의 이야기 하나님이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그 이야기를 또 들어줘야 할 책임이 공동체로서 교회 가족으로서 책임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속으로 해서든 일대 일이든 가정에서든 자녀들에게든 정기적으로 그것을 나누고 계신가요? 정말 영혼의 친구가 저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06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 내용 중에 주인공이 넘어지면서 심하게 다치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인만큼 친한 친구한테 연락을 해보니까 이 친구가 자기가 지금 마사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계단에서 굴러서 다쳤는데 못 가겠다. 이건 친구가 아니잖아요. 근데 이 사람이 그 자기 집에서 일을 하던 스페인 계열의 가정부한테 연락을 하니까 이 사람은 차도 없이 쉽게 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돕는 그 집에 주인이 다쳤으니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른 갑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기 위해서 간 거죠. 산드라 블럭이 그렇게 찾아온 자기가 위기를 만났는데 그 어려운 가운데 있는 자기를 어렵게 찾아온 그 가정부를 너무 고마워서 끌어 안으면서 you're my best friend.

이런 영혼의 친구가 우리에게 있느냐는  거죠. 이 교회안에서 이런 영혼의 친구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것에서 끝난다면 적어도 성경적인 의미로서의 교회가 될수 없어요. 친밀함도 개인적인 터치도 솔직히 영적인 어떤 성장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중에
사도행전 2장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저들이 삶을 나누면서 집집마다 집에서 이렇게 떡을 떼며 같이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죠. 같이 음식을 나눴어요.
한 가정에서만 모인 것도 아니고 집집마다 돌면서 가정을 돌면서 같이 생각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이렇게 그 속에서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런 어떤 영성 훈련이 저들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죠.

음식을 그렇게 같이 먹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러면서 또 그런 고민거리를 알아가게 되고요. 어떤 기도 제목이 있는지 어떤 필요가 있는지 자녀들을 위해서 내가 어떤 기도를 해줄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하지만 그런 만남이 없다면 그런 만남에서 우리가 단절된다면 제대로 알 수가 없죠. 깊이 알 수가 없죠. 교회는 또 다른 가족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자꾸만 대형화되면서 놓치게 되는

한 사람이에요
그게복음의 의 핵심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만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같이 먹고 또 마시는 거겠죠.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 또 깊이 있는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대인공포증 이런 거 말고요.
일반적으로 그냥 사람들이 평소에 깊이 있는 사귐이나 만남을 소홀히 한다든지 기피한다든지 두려워하는 이유들이 있다고 하는데
네다섯 가지만 제가 짧게 말씀드릴 건데요. 여기에 여러분이 해당되는 부분이 한 가지라도 있는지  생각하면 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이유
1. 시간이나 자유를 빼앗길까봐.
나에게 있는 어떤 시간적인 여유 자유 이런 걸 빼앗길까 두려워서 더 깊이 만나지 못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생각해보죠. 정말 내 시간인가요? 내 자유인가요? 정말 빼앗기는 걸까요? 아니면 얻게 되는게 그 만남을 통해서 더 많은 걸까요?
2. 우리가 그런 만남을 기피하는 이유는 지적 받기 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조언해주고 상담해주고  충고해주고 이런 거는 괜찮아요. 하지만 거꾸로 내가 그 자리에 있기는 싫다는 이야기죠. 지적 받기 싫고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있는 만남은 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내 문제에 대해서 간섭받거나 지적받기는 싫다는 얘기죠 왜요 그건 자존심 상하니까요.

3. 세 번째 이유는 삼처받을까봐.
상대방이 나의 모난 부분 나의 약점에 믿음 없음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과거에 나를 너무 누군가를 믿고 신뢰하고 오픈했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나를 오픈하지 않겠다.
4. 도전 받기 싫어서.
어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어떤 어떤 삶의 방식에 도전 받고 싶지 않은 걸 귀찮은 거죠 피곤하기 때문에 싫다는 겁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알아가게 되면 내가 배우고 얻어갈수 있는게 있는데 깊은 관계를 누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니까 기피하는 거죠.
5. 마지막으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나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렇게 되기가 쉽죠.

그럼 어떻게요? 우리가 친밀한 관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공동체의 삶을 경험하려면 이런 것들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분의 지혜를 힘입어서 이런 부분들을 뒤집을 수 있어야 되겠죠.
누구를 만나서 내가 내 스토리를 알게 되고 내부족함을 알게 되고 그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꺼이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이었지만 나는 이런 이런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기 그거를 우리가 나눌 수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특별히 교회 가족으로서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고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공동체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영혼의 친구를 만나야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영혼의 친구가 되어줘야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내용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다려줘야 합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죠. 또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윤년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부터 태양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태양력에 맞추면 일 년이 한 365.251이 된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나면 지금 5시간 48분 46초 느린셈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구가 더 빨리 돌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 보셨나요? 오늘도 지구가 일분 지각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나요? 불평한 사람 없습니다. 지구를 고발하는 사람도 없고 지구가 늦는다고 지구를 떠나는 사람 혹시 보셨나요 없습니다.
그냥 어떻게 해요? 우리는 기다립니다. 뭘 기다려요? 4년에 한 번씩 2월이 되면 달력에 하루를 끼워 넣습니다. 그걸 기다리는 거예요.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면서 사는 겁니다.

영어 단어 중에 accommodate 우리말로는 수용하다라고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맞추다 맞게 하다 차이를 극복하다 배려하다 자리를 만들다 수용하고 적응하는 거죠.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도록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 이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서로 다릅니다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 달라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기다려주고 내가 먼저 수용하는 거 그게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 사랑을 안다고 할수있겠어요.

이런 교회 한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이 오늘을 살아가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오늘도 하나님이 보실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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