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버텨야 하나요 하나님
출애굽기 35장 10~19절
출애굽기 35장
10.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11.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12.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장과
13.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14. 불 켜는 등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15. 분향단과 그 채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문의 장과
16.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17.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문의 장과
18.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19.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
우리가 나의 확고한 의지를 나타낼 때 이런 말 많이 하죠?
반드시 결단코 확실히 진짜로 이런 말 많이 하죠.
하나님도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실 때 반드시 이루리라. 정녕 함께하리라.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이런 말들로 하나님의 의지와 결단을 나타내셨는데
오늘 말씀도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가 나타나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이런 단어가 하나도 안 보여요. 확고히 결단하고 어 맹새코 이런 말 안 나오는데 말로 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말씀은 성막을 만들려고 하는 명령인데 성막으로 하나님의 진짜 의지를 정말 크게 강조하셨어요.
성막은 하나님의 의지가 제일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성막이 뭘 하는 곳이냐면? 내 죄를 대신하는 희생 재물을 통해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던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이게 성막이에요.
그러니까 성막에는 하나님의 어떤 의지가 담겨 있냐면? 반드시 너를 용서해서 내 자녀로 거룩하게 하겠다. 내 자녀로 만들겠다라는 의지가 있고 반드시 임재하시니까 반드시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는 의지가 잔뜩 들어 있어요.
성막에 들어가면 번제단이 나와요. 여기에 재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그다음 가면 물두멍이 나오는데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어서 정결하게 하는 곳이고 그다음에 텐트가 하나 나와요. 성소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성소에는 향을 피우는 분양단, 불을 켜 놓는 금초대, 빵을 놓는 상 이런게 성소고요.
그다음에 커튼이 하나 있는데 커튼을 지나면 거기가 지성소예요. 지성소에 언약궤가 있어요. 하나님이 명령하신 열 개의 명령 그 십계명이 그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가 들어 있어요.
성막이 왜 하나님의 의지가 강조되어서 담겨 있냐면? 이 성막 만드는 방법을 하나님이 진짜 자세하게 알려 주세요.
출애굽기 27장 16절을 보면 정말 디테일합니다.
뜰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세 홍색실과 가늘의 꽃 배실로 수호와짠 스스무규빗의 휴장을 잊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오 받침이 넷이며 재료의 종류, 재료의 크기 만드는 방법 다 나와 있어요.
성경에 구조물들이 몇 개 나오거든요. 근데 현대에 와서도 근접하게 재연할 수 있는게 유일한게 성막이에요. 그만큼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그러면 왜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 주셨을까요?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대요. 옆에 친구가 있는데 구조대가 올 때까지 친구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라고 했는데 할 줄 모른대요. 그래서 그 전화 통화로 하고 있던 그 구급 요원이 정말 자세하게 옆에 있는 것처럼 어느 위치에서 어느 세기로 어느 빠르기로 어디에서 압박을 해야 되는지 어떤 자세로 해야 되는지 옆에 있는 것처럼 자세하게 알려줬대요.
그 구조대를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말을 했대요. 신발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신발끈을 매는 법을 알려 주는 거 같았다. 그만큼 자세하게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왜? 살려야 하니까.
하나님이 이런 심정이었을 거예요. 자세하게 알려 준다는 건 꼭 정석대로 만들어야 돼. 왜?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주실 수 있고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으니까. 그 열망이 있기 때문에 정말 정교하게 한치에 오차도 없이 만들려고 우리를 살려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막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뭐부터 만들려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늘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만드시거든요.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생명책에 가장 중요한게 빛이잖아요. 빛이 있으라. 빛을 가장 먼저 만드셨어요.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갈 때 성전에 기초도 놓지 않았는데 뭐부터 만들려고 하시냐면 재단을 먼저 만들려고 하세요. 제사를 드려야 되니까.
노아는 홍수가 끝나고 가장 먼저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재단을 세우는 일부터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게 하셨어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거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예요. 왜냐면 거기서 피를 뿌려서 죄가 사해지고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거기가 제일 핵심이에요. 거기부터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근데 이건 건축학적으로 틀려요. 가장 안에 있는 걸 만드는거 건축적으로 일반적으로 맞지 않아요. 가장 겉에 있는 거부터 만들죠. 틀부터 만들죠. 근데 하나님은 가장 핵심적인 거, 가장 안에 있는 것을 만들려고 하셨어요.
왜 그러냐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가장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다른 거 하다가 안 되면 그때 하나님 찾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과 같이 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군선교를 할 때 직장 생활을 했거든요. 직장 생활을 독서 지도사를 했어요. 아동이랑 노인들을 대상으로 독서 지도라는게 있었는데 그때 이런 동화책이 있었어요. 알을 못 낳는 닭이 있었는데 다른 닭들이 맨날 놀려요. 너만 알 낳는다고. 길을 가다가 되게 큰 알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이거 가져다가 집에 가서 열심히 품고 있는데 다른 닭들이 좀 너무 크다. 좀 이상하다. 좀 위험한 거 같다. 갖다 버려라. 그랬는데 애들이 질투해서 그런 줄 알고 내 알이 제일 크다면서 막 꺼드록 떼다가 열심히 부화시켰거든요.
근데 닭이 아니라 악어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악어에게 잡혀 먹힌다라는 그 충격적인 결말이 있는데
이 동화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그 주는 교훈이 뭐였냐면?
뭘 품고 있느냐가 진짜 중요하다라는 거죠.
내 안에 뭐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겉에 화려한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 안이 중요하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내가 소중히 품고 있는게, 나에게 어떤 결과를 줄지 모르고 품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품잖아요. 그 욕심에게 잡아 먹힙니다. 죄를 품고 있잖아요. 이 죄를 끄집어내지 않잖아요. 그러면 그 죄가 나를 잡아 먹습니다. 나에게 가장 내 핵심의 자리에 뭐가 있는가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실 때 언약궤를 가장 먼저 알려 주신 건,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가운데에 계셔야 된다. 우리의 핵심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 된다라는 거예요. 언약궤는 성막의 핵심이었어요. 성막은 언약궤를 품고 있어야 성막이었어요.
하나님이 내 핵심이 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 품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핵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된다는게 아니에요. 우선 순위가 되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어디에만 두냐면 시작에만 둬요.
그다음부터 하나님 없어요. 그다음 순위부터는 다른 영역이에요. 처음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지금은 없어요.
하나님이 핵심이 된다는 건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된다라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중심이잖아요. 하나님 가운데만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있잖아요. 미래에 대한 걱정, 어떤 관계 중요한 문제에만 하나님이 있고 변두리에는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중심이다. 라고 하면 그렇게 살아가면서 나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셔라고 착각해요.
일은 일의 영역이고 돈은 돈의 영역이 돼요.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에만 하나님이 있고 그 가운데 벗어나면 그것은 그냥 그것들의 영역일 뿐이에요. 내 맘대로만 살아가요. 하나님 거기에 없어요.
만약에 이런 가정이 말도 안 되지만 하나님 안 계시다면 하나님이 계신 그 자리를 뭐가 차지하게 될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믿으면 내가 변화된대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믿으면 내가 평안해진대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믿으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대요. 이게 나에게 하나님의 의미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없으면 그 평안과 의미와 변화의 자리를 뭐가 차지할까요?
어떤 좋은 가정, 좋은 만남, 많은 소유, 여행 다니기, 아니면 좋은 만남을 많이 하기, 아니 돈 많이 벌기 뭐 이런 것들일까요?
하나님이 핵심인 사람은 이 질문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야 돼요.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야 돼요.
하나님 아니면 의미가 없는 삶이 하나님이 핵심인 삶이에요. 하나님 없으면 하나님을 대신할 다음 순위가 없어야 돼요.
이게 하나님이 핵심인 삶입니다.
하나님이 핵심인 삶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입니다. 내 삶을 내가 사니까 내가 주인공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과 모든 사건이 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일의 기준이 뭐예요? 나에게 좋으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의 기준도 나에게 나쁜 일이면 나쁜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공인 사람은 하나님께 좋은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이에요.
하나님께 나쁜 일이 나에게 나쁜 일이에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도 사랑해야 되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내가 긍휼히 여겨야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의 해석이 이렇게 바뀝니다. 하나님 저의 계획을 잃어 주세요. 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나를 써 주세요로 바뀌어요.
하나님이 주인공이면 하나님 나와 같이가 주세요. 에서 하나님이 어디로 구하고 계시지? 하나님의 방향은 어디지? 내가 그 길을 따라가야 되는데로 바뀌어요.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내가 뭘 하기를 원하실까?
주체가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모든 관심과 시각과 해석이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내 것이 없어지고 나는 주인공의 자리에서 빠지고 조연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라보게 돼요.
그러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하나님이 주인공이면 나는 그냥 주변인으로만 살라는 걸까요? 아니, 하나님이 나에게도 나만의 길을 주셨고 나만의 달란트를 주셨고 나만의 삶이 있을 텐데 나도 그거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혹시 아저씨라는 영화 보셨어요? 어떤 걸로 유명했냐면 남자들이 여자친구랑 같이 보면 안 되는 영화 1위였어요.
원빈이 주인공이서 영화 끝나면 남자 친구가 오징어로 보인다. 제가 이걸 아내랑 같이 봤거든요. 저도 갑오징어가 됐습니다.
아저씨의 주인공은 원빈 극중 이름이 차태식이에요.
영화의 모든 초점이 차태식에게 맞춰 있어요. 차태식의 과거, 차태식의 현재, 차태식의 싸움 실력, 차태식의 외모 다 거기에 맞춰져 있는데 정작 차태식이
영화에서 뭐에만 집중하는지 아세요?
가끔 놀러오던 솜이라는 꼬마아이가 있는데 얘가 납치됐어요. 이 아이를 찾고 이 아이를 위해서 싸우고 이 아이를 위해서 위험을 무릎 쓰는 것만 해요. 영화는 차태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정작 차태식의 인생은 소에게만 쏠려 있어요. 소미를 잡아가려면 소미를 이길게 아니라 차태식을 이겨야 돼요. 근데 차태식을 이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제일 잘 싸워요.
하나님이 주인공이라서 내 삶이 희미해지거나 나만의 개성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또렷해집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계시거든요. 우리에게만 집중하시거든요.
나를 구하고 하나님이 주인공이면 그 주인공인 하나님이 뭘 하시냐면? 나를 살리고 나를 구하고 나를 위해서 싸우고 죄와 고난에 납치대하는 나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에요.
이것만 아세요? 하나님께는 나이가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을 살면 내가 흐려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또렷해져요.
내 삶이 분명해집니다.
성막에는 금이 1톤이나 들어가고 은이 3.5톤이나 들어간대요. 근데 성막을 만드는 곳이 어디였냐면 광야 한복판이었거든요.
그럼 도대체 은이 3.5톤 금이 1톤이나 들어가는데 광야 한복판에서 어떻게 구했을까요?
출애굽기 12장 35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폐물과 의복을 구하매
은과 금의 출처가 어디였냐면 이집트였습니다. 급하게 탈출할 때 집집마다 찾아가서 금 받아 가지고 탈출했어요.
여러분 광야인데 금이 중요해요? 밥이 중요해요?
밥이 중요하잖아요. 광야는 시장도 없어요. 금 가지고 뭐 살 수도 있는 것도 아니에요.
급하게 나와야 돼요. 왕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라요. 근데 언제 집집마다 찾아가 가지고 금과음을 달라고 합니까?
무거워서 짐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정도 많은 양이면 그 왜 하나님은 금과음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 걸까요?
하나님은 빵보다 금과 음이 더 중요했어요.
성막 때문에 성막을 통해서 만나 주시려고 성막 만들려고 금과음을 그렇게 중요하게 가져오라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필요한 빵이 아니라 성막을 위한 근과 은을 더 챙겼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들에게 그 시점에서 하나님이 주인공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생각대로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금과은 하나님이 주인공이셔서 내가 중요한 것을 챙긴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챙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더니 광야에서 필요한 다른 것들을 하나님이 다 채워 주셨어요. 빵이 중요해 보였잖아요. 만나 매추리로 먹을 것을 주시고 반석에서 물 나오게 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어요.
하나님이 주인공이면 그 주인공이 뭘 하냐면 나를 책임지고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호합니다. 나에게만 집중합니다.
나는 뭘 하면 되냐면?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되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집중하는 거. 이게 하나님이 핵심인 삶이고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삶에 누가 주연입니까?
내가 주연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연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은과 금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습니다. 성막에 들어간 금이 1톤, 은이 3.5톤인데 지금 돈으로 하면 한 2,억 정도 된대요. 진짜 많이 들어가죠. 근데 놀라운 건 여러분 다른 신전에 비하면 이거 적은 양이에요.
심지어 이집트 왕 있죠? 인간의 왕의 무덤도 이거보다 많이 들어갑니다.
저는 이걸 보고 이해가 안 됐어요. 아니 하나님인데 왕 중에 왕이고 신 중에 신인데 창조주신데 이거보다 더 화려하게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나님이 가장 높으신데 왜 더 화려하게 짓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 은과 금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성막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성막을 가치 있게 하는 건 은과 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거든요. 이 성막에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게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말하는 은과 금보다 하나님께는 더 귀했어요. 그래서 다른 보물이 필요가 없었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사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해지는게 하나님께 가장 귀하고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이고 가장 큰 보물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보물을 드리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 다른 말로 하나님이 나의 삶의 핵심이 되는 것.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시는 거.
그 삶을 드리는게 하나님께 가장 큰 보물인데 우리는 뭘 드리고 있을까요?
이런 삶 드리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주인공인 이야기.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우리가 등장해야만 합니다.
아멘.
그 이야기에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을 살면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일하시고 나를 위해서 싸우시고 나를 위해서 구하시는 일만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아저씨라는 영화를 보면 차태식이 소미가 있을 거라고 예상된 곳에 갔거든요. 근데 거기에 소미가 없고 소미처럼 납치된 아이들이 모여 있었어요. 소미가 없다고 차태식이 그냥 간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범죄 조직을 다 싸워서 이겨서 그 아이들을 풀어 줬어요.
소미를 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도 구하게 됐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내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면 내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면 하나님이 내 일에 참여하시는 분으로만 되거든요. 그냥 내 계획을 이루고 내 소원을 이루시는 일만 하시는 분이 돼요. 나에게.
근데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을 살잖아요. 내 삶이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의 무대가 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엄청난 일에 내가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만 구하시고 나만 지키시는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나를 구하시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도 구하세요.
내 삶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는 가장 귀한 일의 도구가 됩니다.
어떻게 되냐면? 하나님이 날 위해 하시는 일들을 다른 이들이 목격하게 하시거나, 아니면 내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증언하게 하시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로 내 변화된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게 하시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내 주변 사람들을 직접 구하시거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에 내 삶이 도구가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 미디안의 제사장인데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그 과정을 통해서 여리고에 있던 라합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내 삶에서 일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나만 구하시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일들에 동참하는 삶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정말 멋진 일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는데 가장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돼요. 그냥 내 작은 소원 이루는 그게 목적이었던 삶이 아니라 엄청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그 흐름에 타게 되는 삶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공이면 주변인이 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주인공인 사람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구원하시는 그 어떤 사람보다 가장 귀하고 빛나는 일에 중심에서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주변인이 아니라 그 일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영광에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이야기에 하나님이 장하는게 아니라 구원과 승리와 평안과 회복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정말 모세는 언약궤를 가장 먼저 만들었을까요?
오늘 말씀 12절
출애굽기 35장
12.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장과
언약궤 만드는 장면이에요.
근데 11절
출애굽기 35장
11.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이것은 언약궤가 만들어서 들어가는 지성소라는 구조물을 만드는 이야기예요.
언약궤보다 지성소를 먼저 만들고 있어요.
순서가 틀어졌어요. 언약궤가 두 번째입니다.
안보다 밖을 먼저 만들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 지성소는 나무 골조 위에 덮개를 두 개나 덮어요. 그다음에는 순양 가죽을 덮어요. 그다음에는 즐긴 해달 가죽을 또 덮어요. 사중으로 덮어요. 지붕만 덮는게 아니라 전체를 다 덮습니다.
두 개의 덮개와 두 개의 가죽을 덮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광야는 혹독한 환경이었어요. 그 혹독한 환경 속에서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한 거였습니다. 언약궤가 가장 중요하니까
언약궤를 보호하는 것부터 만들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이 순서를 허용하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허망하고 힘든 일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렇게 기대해요.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연결이 나를 지켜 주기를 기대합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버티기를 기대해요.
그런데 힘든 일이 찾아오면 그 상황을 믿음으로 버티는게 아니라 진짜 중요한 건 그 상황에서 믿음 자체를 버텨야 돼요.
믿음이 그 상황에서 나를 지켜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 그 힘든 상황에서 그 믿음을 내가 지켜내야 돼요. 이게 진짜 중요합니다.
그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믿음을 유지해야 돼요. 부족해도 감사해야 되고요. 흔들려도 순종해야 돼요. 불안할수록 기도해야 되고 사랑하기 어려울수록 사랑해야 되고 겸손하기 어려워도 낮아져야 되고 예배하기 어려워도 예배해야 돼요. 믿음 꼭 꼭 끝까지 지켜야 돼요. 그렇게 지켜낸 믿음이 나를 지켜 주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휘둘리는 믿음이라는 건 날 지킬 수가 없어요. 힘들어도 믿음을 지킨 자가 그 믿음으로 그 상황을 이기게 되는 겁니다.
아멘.
건강함이 몸을 지키죠. 근데 건강을 지키려면 우리의 몸으로 열심히 운동을 해야 돼요. 건강이 몸을 지키는데 몸이 건강을 지켜요. 그렇게 지켜낸 건강이 몸을 지켜 주는 거잖아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잘 유지되는 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이 진짜 필요하다는 거예요. 의지가 전방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 얼마나 깨지기 쉽습니까?
자그마한 변수에도 흔들리는게 우리 믿음이잖아요. 날개랑 같아요. 깨지기 쉽잖아요.
얼마나 잘 보호해 줘야 될까요? 얼마나 잘 지켜 줘야 될까요? 근데 이 연약한 믿음을 의지해요.
우리가 이 믿음부터 키워야 되는데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응답을 받아서 믿음 자체가 자라기만을 바라지 마세요.
성막의 가장 바깥을 덮었던 해달 가죽은 볼품 없고 칙칙한데 광야의 모래바람과 추위와 더위로부터 성막 안에 가장 그 거룩한 언약궤를 지켜줬어요. 이
해달 가죽 같은 질긴 의지가 있어야만 합니다. 질긴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건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믿음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무리없고 배고프고 춥고 위험해지면 하나님 원망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고 우상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못 지킨 자들은 광야에서 헤매다가 죽게 됐습니다.
믿음을 못 지키니까 믿음이 못 지켜줬어요.
말씀을 못 지켰거든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못 지켰거든요. 다 깨버리려고 했거든요.
자신의 고직과 생각만 지키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해야 되는 건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사수하는 것입니다.
아멘.
편하게 믿지 말고 억척스럽게 믿어야 됩니다. 그게 믿음을 지키는 방법이고 그렇게 지켜낸 믿음이 나를 지켜줍니다. 기도해야 된다는 거 알아요. 맡겨야 된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잊어요.
어디로 이끄시든 신뢰해야 된다는 거 알아요. 근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흔들립니다.
믿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믿기로 결단을 해 봐도 흔들립니다.
근데 여러분, 이거 정확한 건 믿음이 흔들리는게 아니에요. 의지가 흔들리는 거예요. 그냥 안 한 거예요. 다 알잖아요.
믿음은 있어요. 그냥 안 한 거예요. 그렇게 하기 힘들고 귀찮고 안 내키고 불편하니까 안 한 거예요.
믿음이 흔들려서 그래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걸 구하는지 아세요?
더 믿기 위해서 하나님 더 알아야 되고 더 강한 체험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가 그동안 받은 은혜가 약해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진게 아니잖아요.
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고 계시잖아요. 하나님이 안 보여 줘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린게 아니잖아요.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여 주셨잖아요. 실시간으로 엄청난 은혜를 우리에게 주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말씀을 몰라서도 아니고 말씀을 못 들어서도 아니고 누가 방해해서도 아니잖아요.
믿음이 없어서 그래라고 하면 더 알아야 되고 더 체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거 다 이미 했는데 그냥 의지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강한 체험하고 아무리 뭐 좋은 예배 드려도 의지력이 그대로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다시 돌아가요. 의지력을 키워야 돼요.
질긴 의지가 없는 거예요.
성막을 하나님이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뚝 떨어뜨려 주신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순종해서 아주 작은 부품도 다 만들어야만 했어요.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완성해서 우리에게 주시는게 아니에요. 우리가 해야 될게 있어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애굽기 35장
18.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여러분 언약궤가 제일 중요했지만 별거 아닌 것 같은 말뚝과 줄이 없으면 광야의 바람과 추위를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말뚝과 같은 의지가 필요해요. 꽉 붙잡고 있어야 돼요. 말뚝을 밧줄로 단단히 묵듯 믿음을 지키며 기도하고 순종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노력이 그 믿음이 나를 지켜줍니다.
여러분, 얼마나 연약하냐면 이 의지가 강해지는 것조차 성령님께 구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연약해요.
성령님께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내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더욱 질기고 더욱 억척스럽고 더욱 단단하고 더욱 잠잠하게 해달라고 수시로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께 묶여서 끌려가야만 합니다.
성령님께 묶인게 풀려 버리면 우리의 의지는 다 흐물거리다가 다 주저앉게 됩니다.
내 힘으로 하는게 아니에요. 더 은혜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지를 강하게 해 달라고도 하나님 날 붙들어 주세요. 내가 흔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의지를 강하게 해 달라고 성령님께 강하게 의지해야만 합니다.
이게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핵심이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있도록 믿음을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더 믿을 수 있도록 더 강한 은혜와 눈에 보이는 일들만 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 의지를 키우려고 하는 노력은 없고 하나님 더 보여 주세요. 하나님 더 체험하게 해 주세요. 더 좋은 일 만나게 해 주세요. 이런 것만 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삶이 힘들어도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마음이 흔들려도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믿음을 더욱 지키시길 바랍니다. 믿음이 나를 지켜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믿음을 더욱 지켜야만 합니다. 그 믿음이 나를 더욱더 경고하게 하고 단단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성막에 상세한 설계도를 주셨던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성막의 설계도를 주셨어요.
에베소서 2장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제는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날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는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을 사는 나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유일한 재료래요.
하나님과 나와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 성령이 임하시는 처소가 된대요.
하나님과 함께 서로가 함께 하나님이 주인공인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도와주는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바이블 > 지혜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예수님 요한21:1~19 (0) | 2026.10.15 |
|---|---|
| 시간 관리의 핵심 마태복음 6:33 (0) | 2026.10.15 |
|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48:1~4 (0) | 2026.10.15 |
| 인생의 지뢰밭 히12:14~17 (0) | 2026.10.15 |
| 바위 안의 교회 마태복음 16장 18절 (0) | 2026.10.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