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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하나님의 이미 마가복음 14:3~9

by diane +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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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미
마가복음 14장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 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 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 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 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8절
분명히 이 사람은 예수님 머리에 부었어요. 근데 예수님이 몸에 부었데요.
머리나 발에 향유를 붓는다는 건 환대와 존경의 표시로 붓는 것인데, 몸에 붓는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를때 붓는 차이가 있는데.
예수님은 머리에 부은 것을 몸에 부었다고 내 장례를 위해서 부었다고 확대 해석하신 거에요.
 
그러면 정말 이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은 사람은 내가 에수님의 장례를 먼저 부어야지 하고 결심하고 부었을까요?
그냥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너무 감사해서 너무 사랑해서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드렸던것 뿐이에요. 다른 이유 목적 없었고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머리에 부은 건데.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최상급의 믿음, 온천하가 복음이 전해질때마다 이 믿음을 본 받게해라. 최상의 믿음이라고 칭찬하신. 확대해서 해석하신 거에요.
 
계획을 이뤄달라는 능력을 부어달라는 소원도 바라지 않았고 내 고난을 가져가 달라고하지 않았어요. 찬양만 했어요. 그냥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넌 나의 가장 큰 기쁨이야. 너는 나에게 원하는 모든걸 다 준거야. 내가 완전한 계획을 다 이뤄줄께. 네 고난을 다 가져가줄께. 너를 통해서 내가 전해지게 할께. 내 작고 짧고 별거 아닌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감사를 영원한 은혜와 전능한 능력으로 그것을 볼 수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봐주신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인정해주신다는 거에요.
 
예수님의 시선의 특징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은 모든 걸 증폭해서 보세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큰 산을 옮길 수 있다. 증폭하셨어요. 적은 떡과 물고기를 오천명이 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보셨어요.작은 자 만명에게 천만명에게 해야 나에게 한거야 라고 하지 않고 작은 자 한명에게 한게 우주를 만든 가장 큰 나에게 한거랑 똑같은 거야. 이렇게 작고 별볼일 없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바라보고 계세요. 늘 증폭 하세요.
 
그런데 죄도 증폭하세요. 미워했는데 살인한 거래요. 음욕을 간음한 거래요. 죄를 심각하게 크게 보세요. 얼마나 큰지를 하나님 잘 알고 계셔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거에요. 그 죄 때문에 우리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대로 보신 거세요. 증폭의 시선은 정확한 시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증폭해서 바라보세요. 어떤 걸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예배하고 그냥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그냥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그냥의 믿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는데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함과 선한 인도함을 이루는데 증폭할 겁니다. 
 
예수님이 오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또 하시는데, 사람들이 향유 부은걸 보고 또 놀래요. 이 사람의 믿음이 훌륭해서 놀란게 아니라, 이렇게 비싼걸 왜 허비하지? 비효율적인거 아니야, 당신 실수한거야. 가난한 자 도우면 더 좋을 걸.
 
이 얘기를 듣고 예수님이 그만해라. 나는 늘 함께 있지 않아.
 
예수님 답지 않지 않나요? 예수님도 가난한 자 도우라 하셨는데. 헷갈립니다.
 
이 말씀은 기회를 잡으라는 거에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거에요. 지금 하라는 거에요. 하나님 찬양은 지금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 찬양의 고백, 말씀의 순종, 전심의 예배는 나중에 하는게 아니라 지금 하라는 거에요. 이게 영원한 찬양입니다. 영원한 찬양은 나중에 하는게 아니라 지금 하는 거에요. 그 지금이 모여서 영원이 되는 거에요.
 
시간이 날 때만, 상황이 될 때만, 그 영속성이 훼손되겠죠. 영원한게 아니겠죠. 하나님은 영원하셔서 우리는 영원히 찬양해야 돼요. 하나님이 잠깐 계시면 잠깐 찬양해도 돼요. 근데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기에 영원히 찬양해야 돼요.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끊임 없이 찬양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은혜를 가끔 주시면 우리도 가끔 찬양해도 돼요. 근데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잠깐 있으면 잠깐 찬양해도 되는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과거에만 있는게 아니라, 내가 잘났을때만 있는게 아니라, 영원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승리하심이 어쩌다가 한 번 있는게 아니라 영원히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찬양도 계속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영원한 찬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찬양하는 거에요. 승리와 은혜와 사랑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영원히 우리에게 흘러오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이란 계속 사랑한다는 거에요. 한 순간도 빠짐없이 모든 때가 사랑받는 상태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어떤 모습에도 이미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영원한 사랑이니까. 영원한 승리는 계속 승리한다는 겁니다. 계속 승리한 상태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한 상태에요. 
 
지금 고난에 진 것 같고  죄에 진것 같고 상황에 진 것 같은데 영원한 승리 계속된 승리 끝나지 않는 승리를 나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미 승리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그 승리를 누리고 그 승리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 되는 거에요.
 
런닝 이미 10분을 뛸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5분 밖에 못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두려웠던 거에요. 겁이 났던 거에요. 그냥 뛰면 되었던 건데. 
 
마태복음 11장 24절
받을 줄로 믿는 믿음이라 생각했는데, 받은 줄로 믿는 믿음도 있더라. 이제 주실 줄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이미 주신 줄로 믿는 믿음. 하나님은 이미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이미 받은 거라고 믿는 거에요.
 
우리가 필요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필요가 채워질 것을 믿는 것도 좋은데 필요가 이미 채워진줄로 믿는 거에요. 왜냐면 하나님은 영원한 공급자이니까. 이미 받은 거에요. 앞길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제 선한 길로 인도하실꺼야. 믿는 것도 좋은 믿음인데. 이미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 것도 좋은 믿음이에요. 하나님은 영원한 목자시거든요.
 
그래서 이미 우리는 선한 길로 걷고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받은 줄로 믿으라는건 믿기만 하라는게 아니라 이미 믿은것 처럼 받은 것처럼 이미 산다는 겁니다. 그게 이미 믿고 있는 거거든요. 이미 승리했다고 믿으라는건 승리한것처럼 지금 기뻐하고 지금 담대하고 지금 안심하라는 거에요.
 
그러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면 승리할 것이다. 뜻을 이룬줄로 믿으라는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것처럼 지금 평안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거에요. 그러면 그대로 되리라.
 
18년 동안 몸이 구부러진 사람,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이미 병에서 놓였다고 하시는데 그때 몸이 펴져요. 몸이 펴진 다음에, 나았다고 하는게 맞는 순서인데,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그 사람은 이미 몸이 펴진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은혜를 받았고 승리했기 때문에 지금 찬양할 수 있고 지금 찬양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선하시고 이미 완전하세요. 나중에 상황이 좋아져서 감사하고 예배하는게 아니라 지금 감사하고 지금 예배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고 계시기 때문에 변화가 있어야만 평안하고 감사하지 말고 기도대로 되어야만 순조하지 말고 해결 되어야만 따르지 말고 이미 이루신줄로 믿고 지금 감사하고 지금 순종하는거 이게 영원한 찬양의 시작입니다.
 
성경에는 영원이란 말과 영생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는 최대치의 표현이 영원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최대치의 표현이 영생이에요. 영생은 우리가 하나님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 나라에 삶이라고 교리라고 알고 있지만 영생을 하게되는 구조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실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너무 좋으셔서 우리와 떨어지기 싫으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영생이라는 거에요. 영원히 사랑하셔서 영원한 선물을 주신 영원히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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