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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나를 드러내고 회복시키고 인도하는 묵상! 요한복음 1장 48절

by diane + 202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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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내고 회복시키고 인도하는 묵상!
요한복음 1장 48절
요한복음 1장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를 드러내고 회복시키고 인도하는 묵상
성경은 묵상을 읖조린다 표현, 히브리어 하가, 뜻이 중얼거리다 되뇌다 속삭이다.
머릿속만이 아니라 입술로 마음으로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수아 1장 8절
여호수아 1장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아멘.
묵상은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되뇌고 다시 말하고 붙들고 있는것.
 
시편 1장 2절
시편 1장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즐거워하여,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게 되죠.
말씀이 즐거워지면 그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조용히 반복적으로 말씀이 내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수년 전에 나는 커다란 뼈다귀를 무척 좋아하는 개를 키웠다. 녀석은 뼈다귀를 뜯으면서 이리 뒤집었다 저리 돌렸다 하며 빨아 대고 물어대고 했다. 때로 우리는 나지막하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녀석은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고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여유롭게 두 시간 정도 그렇게 뼈를 뜯고 나면 그것을 파묻었고 그 다음날 다시 와서 또 작업을 했다. 평균적으로 뼈다귀 하나가 일주일 정도갔다.
 
으르렁거린다, 위협 아닌, 조용히 읖조리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터그 놀이 장난감을 들고 흔들면 으르렁 거리는데,
공격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내는 소리입니다. 그런 소리였을지 모릅니다.
 
말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붙들고 되뇌는 소리. 그것이 묵상입니다.
말씀을 읖조리며 마음에 붙들고 사는 사람 나다나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 말씀을 알고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는 나다나엘,
이 반응은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의심도 포악함 아닌 신중함에서 나온 말, 그만큼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신중함이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태도가 되어 버립니다. 그 기준이 굳어지면 하나님을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판단하게 되죠.
 
놀라운 것은 그를 보시고 틀린 아닌,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하십니다.
왜? 그의 완벽함 아닌 진실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 기준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었던 경험.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실거야 단정하고 있지 않는가.
 
나다나엘이 가졌던 편견의 모습을 묵상하며..
나는 할 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의 방식까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다시 낮춧고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도 알고 신앙도 알고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하나님을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셔야, 이 방식이어야, 내가 아는 방식 안에 가두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다린 사람, 말씀을 알고 있던 사람,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기준 밖에서 일하기 시작하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그당시 그 자리는 단순히 쉬는 자리만은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혼자서는 골방과 같은 자리, 말씀 붙들고 하나님을 찾는 묵상의 자리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자리, 그러나 하나님만 아시는 자리였습니다.
 
나다나엘은 그곳에서 자신의 고민과 갈망을 하나님께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아 네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이미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다나엘이 잡고 있었던 견고한 기준과 편견이 무너집니다. 아, 이분은 나를 아시는구나. 이분이 내가 기다리던 그분이구나. 이 말은 단순히 그의 위치를 아심이 아닌, 외로움 질문 눈물까지 다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보았다.
 
무너진 시간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혼자 하나님 앞에 앉아있었던 시간,
눈물의 기도의 시간, 
왜 하나님은 바꾸시지 않으시지? 하나님만 아시는 자리.
 
요한복음 9장 1~3절
요한복음 9장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누구 때문이다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를 말씀하셨다.
 
무너지는 시간이 아니라 훈련시키고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시는 시간이시구나. 말씀이 시선을 바꾸고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무화과 나무 아래 하나님만 아시는 자리, 하나님을 찾던 자리,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던 자리.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을 찾던 그 시간을 알고 있다. 무너진 자리도 보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아닌, 이미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나다나엘을 통해 묵상이 주는 영적인 유익?
1. 하나님께서 나를 드러내시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이해하고 정리하고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묵상이 깊어지면 방향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나를 보기 시작합니다.
시편 139장 23절
시편 139장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다윗의 고백, 하나님 나를 좀 봐주세요. 그 말에 내가 꽉 붙들고 잇었던 것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내 고집 시선 내가 옳다고 생각들 내 안에도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던 벽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묵상은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는 이유는? 나의 잘못된 부분을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고쳐주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를 다만 보여줄 뿐입니다. 묵상이 그렇습니다.
 
2.하나님께서 나를 회복시키시는 시간입니다.
내가 너를 보았다, 이 한 마디에 나다나엘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이해받지 못해서 외로운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안다 그 시간도 마음도 눈물도 내가 다 안다 말씀하십니다.
 
하갈도
창세기 16장 6절
창세기 16장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세기 16장 11절
창세기 16장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하갈의 고백
창세기 16장 13절
창세기 16장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광야에서 버려진 자리에서 아무도 찾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보았다.
나를 하살피시는 하나님
묵상은 이미 나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닫혀있던 마음이 감정이 관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회복이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3.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시간입니다.
시편 139장 24절
시편 139장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내 기준 감정 시간표대로 살아가며 자주 길을 잃죠.
묵상의 자리에서는 내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기 시작합니다.
 
성경에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시편 119장 105절
시편 119장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묵상은 내 인생을 하나님의 길 위에 올려놓는 시간입니다.
 
이 세가지 은혜는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구나.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단 한번도 멈추지 않으셨다는 사실
나다나엘 말씀도 알았고 기준도 명확했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논리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의 영혼 깊숙한 곳을 향해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이 순간을 상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울부짖던 자리, 사람들은 몰랐던 하나님만 아는 자리, 
예수님이 나는 안다 하시던 그 시간 그 마음 나를 찾기 전부터 나는 너를 보고 있었다.
그를 붙든모든 기준이 무너집니다. 상황 마음이 들키고 이해 받았습니다. 더이상 묻지않고 그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알고 계셨다. 아무도 몰랐던 그 자리, 버틴 그 순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세가지 일을 행하십니다.
나를 드러내고 회복시키시고 인도하십니다.
 
묵상의 자리의 시간, 무화과 나무 아래 시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열매로 드러납니다.
 
묵상은 반드시 무엇이 바뀌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무엇인가가 쌓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어느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알고 그 시간을 보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말씀 붙들고 하나님 앞에 앉아계십시오. 결코 그 시간이 헛되지 않습니다.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48~50
요한복음 1장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아멘.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 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운명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 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무화과 나무 아래 우리의 시간까지 아시는 주님 말씀안에서 우리를 드러내시고 회복시키시며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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