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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흘러가자 사도행전 9장 32~35

by diane +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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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자
사도행전 9장 32~35
사도행전 9장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물은 생명과 관련 있죠. 생명을 지켜주는 일들을 하죠. 불을 끕니다. 이것도 생명과 연관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물을 생각하면 좋아요. 우리가 사람과 사랑에 목말라서 죽어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립니다. 죄로 더렵혀진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씻겨줘요. 내 삶의 탁하고 흐리게 했던 죄와 욕심을 없애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물 같아서 불 같은 염려와 불안을 꺼줘요. 하나님의 은혜는 물 같아요. 나를 살리고 온전하게 거룩하게 살게 합니다.
 
기도할 때 잘 살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잘 살게 하는건 은혜에요. 은혜가 필요해요.
기도할 때 인정 돈 능력을 구하는게 아니라 은혜 달라고 구해야 돼요.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에 꼭 있어 말씀을 지키며 거룩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살아나고 살아집니다.
 
그런데 물이 생명과 연결되기 위한 조건이 흘러야 돼요.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썪어 생명을 살리지도 못해요. 흘러와야 생명이 되죠. 더러움을 씻어내요. 흐름이 흐름을. 흐르는 물이어야 생명과 연관됩니다. 바위가 있어도 유유히 흘러갑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흘러갑니다. 산을 깎아 버리면서 흘러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물과 같습니다. 내 실수 형편 상관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물 같아서 내가 가야할 길이 없다면 길을 냅니다. 그 길을 가다가 산과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깎아버려요. 
 
물은 약한 것 같지만 진짜 강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강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해있으면 내가 어떠하든 내가 만난 형편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이루어져요. 가장 강하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흘러가야 돼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흘러가야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흘러가야만 합니다.
 
흘러가면서 산다는 건 무력함도 아닌 무대책도 아닌 이 자리에 오게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는 거에요. 무력함 아니에요. 
 
그리고 나를 다 아셔서 완벽하게 맡겨진 가장 완벽한 계획이 세워진 삶이에요. 흘러간다라는건. 
 
어부였던 배드로는 하나님의 이끄는 대로 살아서 제자라는 베드로가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목동이였던 다윗은 하나님의 흐름대로 살아서 왕이라는 다윗이 꼭 가야만 하는 자리에 갔어요.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다른 삶의 흐름이 나타날 때 그걸 내 마음대로 바꿔보려는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내가 모르는 내가 정한대로 산다는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내가 뭘해야될지 뭘 알아요?
 
내가 길을 낸대로 흘러간다? 너무 위험하죠.
나를 다 아셔서 내게 좋은 것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사는게 가장 안전하고 가장 지혜로운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만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인도하심 생각하면 지시하심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세 줄기의 흐름이에요.
 
막으시거나 지시하시거나 두루 다니게하시거나 
이 세가지 흐름 오늘 말씀에,
 
평탄한대로 계속 가게 해주시면 좋겠는데 내가 정한대로 가게 해주시면 좋겠는데 막으실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을 막으실까?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인도하심이 있는데 내가 뭘 하길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이 정확하게 지시하실 때가 있어요. 누구에게 명확하게 지시하실까? 
막으시지도 않고 지시하시지도 않고 여기저기 가게하시고 이것저것 하게하실 때가 있어요. 누구에게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이런 인도하심을 제때 제때 적절히 섞어서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대로 흘러가는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인거에요.
 
바울이 다메섹에 가고 있었는데 열렬한 유대인이여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다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고 다메섹에 가던 길이었는데 거기가 바울이 가야할 목적지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자기가 생각한 인생의 흐름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막으세요.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나 네가 핍박하는 예수야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음성으로 소개를 하시는데 내가 예수야. 바울이 믿었던 신념과 목적과 완전 반대 되는 말씀을 하나님이 하고 계신 거에요. 하나님이 바울의 신념과 목적을 막으시는 거에요.
 
우리는 잘 되다가 실패하면 막히면 잘못된 건가? 잘 못 온건가? 내가 실수 했나? 
하나님 없이 혼자와서 막혔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왜 막으셨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울에게 잠재된 새로운 가능성이 있었어요. 그걸 열어주시려고 막으신거에요.
 
사도행전 9장 15절
사도행전 9장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사람은 가능성이 있다. 잠재된 목적이 있다.
이제는 예수님 믿음을 전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삶이 열린 거에요.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회당에 들어갔어요. 새로운 삶이 열렸어요. 이것 때문에 막힌 거에요.
 
막힘으로 잠재된 새로운 가능성을 주셨어요. 막힘도 인도하심이에요.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예비된 자를 막으심으로 인도하신다 기억하세요.
베드로의 어부의 삶을 막으셨어요. 멈추셨어요. 두번이나. 왜? 제자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시려는 거에요.
모세는 목동으로 살았어요. 막으셨어요. 새로운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새로운 계획이 있었거든요.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계획이 있으셨거든요.
나중에 바울은 계속 막으셨어요. 마게도니아 라는 계획이 있으셨거든요. 마게도니아로 가서 유럽을 선교하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막으셨어요.
 
우리가 잘 가다가 막히면,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잠재된 능력이 발견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게 하나님의 의도거든요.
 
그러면
바울의 이전의 삶은 무의미할까요? 새로운 삶만 의미있고?
 
하나님은 그 시간도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삶을 반성했는지 하나님을 열심히 전할 수 있었고 전도하면서 
난 원래 엄청난 극성인 유대인이었는데 이런 나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다 라는 말의 논리로 전도를 합니다.
예전의 삶이 지금의 삶의 연료가 된거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사용한거에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의미 없는 시간이 없다는 거에요. 막힘의 시간도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막히기 전에 헛되게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막으면 막히는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막힘은 멈춤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는 인도하심 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실때가 있어요. 명확하게. 누구에게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실까요?
하나님이 나 어디로 인도하실까? 콕 찝어 인도하시면 좋겠는데.
 
하나님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궁금합니다.
 
지시하심이 분별하는 방법?
이런게 궁금하신 분께 궁금한게, 지시하심을 알려주셨어요 명확하게. 그걸 우리가 원했죠. 그런데 내가 정말 가기 싫은데면 갈거에요? 
 
지시해달라면서요. 갈 준비되고 지시해달라는 건가요? 진짜로? 
마치 하나님이 지시하시면 크고 좋은 곳 알려주실것처럼 생각해요. 근데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할거에요?
 
바울 이야기에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 명확한 지시를 하셨어요.
사도행전 9장 11절
사도행전 9장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그때 아나니아가 바울 모르세요? 그리스도인 잡으러 온 놈이에요. 그 사람한테 왜 가나요?
사도행전 9장 15절 17절
사도행전 9장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바로 순종합니다. 공포가 있었을텐데 갑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일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나를 보면 됩니다. 내가 순종할 준비가 됐는지 보면돼요.
하나님이 전부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내 뜻과 반대여도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지시하세요. 순종을 준비해야 돼요.
하나님은 부르심을 따라갈 사람에게 지시하십니다. 순종을 지시할 사람에게 지시하십니다.
 
인도하심은 이끄심과 나의 따라감의 합입니다.
아무리 이끄셔도 내가 따라가야 돼요. 근데 따라간다는건 억지로 어쩔수 없이가 아닌, 자의를 써서 따라가라는 거에요. 
하나님 따라가기를 선택하는 거에요.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시하심에 흐름대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조건이 너무 많아요. 왜?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 내 위주의 믿음의 태도가 많아요. 중심이 나에게 있다는 거에요. 나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하나님 쪽으로 기울려면 이쪽에 굉장한 무게의 납득이 있어야 돼요. 확인 받아야 돼요. 이해가 돼야 되고 좋아야 돼요. 그게 무겁게 있어야 간신히 쫄릴까 말까에요. 얼마나 많은 과정이 시간이 필요해요. 하나님께 조금 기울어지는 것도 굉장한 에너지가 쏟아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은혜를 못 받죠. 
내 위주만 버리면 되는 건데. 내 중심에서만 벗어나면 되는 건데.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 쪽으로 쏠릴 수 있는데 너무나 명확한거, 너무나 확인된거, 확실 이성적인거를 하나님께 요구해요.
 
이거 다 충족되면 하나님께 쏠려볼께요. 하나님 설득 좀 해보세요.
 
근데 순종한다는 건 이유가 뭐가 되어야 되냐면 이성적 확인된 명확한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 자체여야 되요. 그게 순종이에요.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할때 멈추고 가라할 때 가는 순종이 준비됐더니 지시하심이 눈에 보일만큼 명확하게 인도하심으로 온다는 거죠.
 
하나님이 말씀이 순종을 해야하는 유일한 이유인 자들에게 하나님은 명확하게 지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벽함을 알기 때문에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지시하세요. 순종함으로 지시하심을 받으시는 사람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9장 32절
사도행전 9장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여기저기 이것저것 목적지가 확실하지 않게 돌아다니게 한번에 가게하지 않으셨다. 헤매는 것 같은 시간을 가지게.
왜? 두루다니게 하시다가 헤매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하시다가 
막는 것을 찾는 방법,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찾는 방법이?
 
적절함을 하나씩 켜 봤어요. 켜 보지 않고는 몰라요.
나에게 가장 맞는게 뭐지? 잘하는게 뭐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없어요.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나에 대해서 몰라요.
우리는 너무나 간을 봐요. 확실하면 하려고해요. 직접 경험해야 나에 대해서 알아요.
 
하나님이 여러가지 두루 다니게 하시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 해야하는거 잘하는거 잘 맞는거 찾을 수가 있거든요.
간보는 걸로는 몰라요. 알려면 해보는 것 밖에.
 
베드로는 
사도행전 9장 32~33절
사도행전 9장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가야할 곳, 만나야할 사람을 해야할 일을 맞는 일을 찾게 됐어요. 
두루 다니는게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헤매는게 아니었어요. 사방으로 두루다녀도 하나님과 함께하면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야할 곳 만나야 할 사람 해야할 일 다 인도함 받았어요. 그런데 막으심 지시하심 두루다니게하심 세가지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가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땅에 이르기 위해서 단번에 가지 않았습니다. 기근 실수 다툼 때문에 계속 헤맸는데 아브라함의 길을 찾는데 사용하셨어요.
헤매는게 믿음이 아닌것 같을 때가 있어요.
 
시간 낭비 같이 보이나, 단번에 가는 방향에만 하나님이 계신게 아니에요. 모든 방향에 다 계세요. 사방에 계세요. 사방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거 하나님이 내게 부여하신거 발견하는 시간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뭘 할지 목표가 흐릿한 시간은 목표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게 돼요. 하나님 바라보기 좋은 시간이에요. 명확한 목표가 있으면 우리는 믿음이 오히려 흔들려요. 하나님 바라보라.
 
베드로가 그렇게 했어요. 목표가 없는 동안 하나님 바라보는 훈련하라는 거에요. 이거 해야 그 방황의 시간에 해야 헤맴이 헤맴으로 방황이 방황으로 끝나지 않고 찾아가고 끝나는 거에요.
 
찾아내는 시간이 되는건 내가 헤매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
나에게 목표가 없어도 잘하는거 없어도 뭘 해야 될지 찾지 못했어도 나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를 통해서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찾아내는지. 방황하고만 끝날지를 알수가 있어요.
 
하나님 안에서의 헤맴은 돌아감이 아니라 찾아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뭐든 해보세요. 뭐라도 해보세요. 하고싶은거 해보세요. 그렇게 찾도록 만들어두셨어요. 헤매도 돼요. 방황해도 돼요. 하나님 안에서라면 돌아가는 것 같아도 맞는줄 믿습니다. 
 
 
자리가 틀리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 돼요.
자리가 틀리면 헛되게 돼요. 내가 가야할 자리에 가야돼요. 가는 길 하나님이 알아요. 가는 방법 흘러가는 거에요.
하나님 인도하심따라 막으시든 지시하시든 두루다니게 하시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내가 가야할 길을 찾는 방법이에요.
하나님의 그 흐름이라는 인도는 한가지 아닙니다. 이 방법을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세요. 우리는 흘러가는거 하나만 하면 되는 거에요.
 
순종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순종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명확하게 지시하실 거에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줘야 하는 사람은 막으심으로 인도하세요. 막힘은 멈춤이 아니라 실패 아니라 인도하심이에요. 막혔을 땐 새로운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잘하는 것과 맞는것을 찾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두루다님으로 인도하세요. 헤맴은 방황은 두루다님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인도하심입니다. 지금 헤매고 있다면 찾아야 하는걸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이 시간동안 하나님께 더 집중하면서 뭐든 해보세요. 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흘러가는 방법이에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물과 같습니다. 흘러가요.
근데 물은 늘 아래를 향해 흘러가죠. 경사가 빠를수록 속도가 강해지고 빨라져요. 하나님께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물과 같아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낮아질수록 강하고 빨라요. 
 
물의 흐름이 끊어지는 조건은 평평함입니다. 내가 내 삶에 하나님처럼 내가 주인공되려하고 내가 왕이 되려하면 인도하심이 멈출 수도 있어요. 
 
낮아져야 돼요. 가장 큰 은혜는 낮아졌을 때 경험할 수 있어요.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요. 하나님의 위대하고 큰 뜻은 낮은 곳으로 가야 만날 수 있어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유행 아닌, 욕심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흘러가서 지금은 냇물 같아도 바다라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다로 흘러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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