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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지혜의 말씀

예수따라 살기 요한복음9:1~5

by diane +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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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따라 살기
요한9:1~5
요한복음 9장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스팩 어느 면을 봐서도 스팩이 정말 화려하고 뛰어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인물도 괜찮고 좋은 학교도 나왔고 정말 유능하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고 돈도 많이 벌고 믿음도 좋고 매너도 좋은 친구고 또 자그마치 2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근데 노총각입니다. 그래서 친구로서 마음이 쓰이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를 소개해달라는 말도 전혀 없는 아주 순수하고 따뜻한 친구입니다.
근데 이 친구에게 핸디캡이 일반적으로 보기에 선을 보거나 누구를 만나도 나오는 이야기가 키가 작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외모를 보고 쉽게 판단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수있죠.
외모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취하고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경험하는 그런 아픔이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겠죠.

오늘 본문에도 그런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하게 됩니다. 완전히 잊혀지고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고 정말 인간 대접 사람 대접 한번도 받지 못해 본 사람,  이 사람은 장애 때문에 그가 가진 태어날 때부터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그렇게 버림받고 소외되고 따가 그런 인물입니다.

요한복음 9장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앞 못 보는 장애인을 보고 예수님께서 멈춘 것은 이 사람을 향한 예수님 안에 있었던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 그 한 가지 때문에 그랬겠죠.

제자들은 다릅니다. 이 사람을 만나 제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어요.

제자들은 무엇을 보나요?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봅니다. 이 사람의 겉모습을 봅니다. 이 사람의 장애를 보는 겁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의 장애나 고난은 결국 죄로 인한 것이라고 제자들은 추측하고 그렇게 판단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죠.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뭘 잘못해서 이런 사람이 벌을 받은 걸까 말이죠.

어려움을 당할 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가장 먼저 원인에 관심이 갑니다. 이 사고의 원인이 뭘까? 이 사람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거기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다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의 관심의 차이 촛점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이 본문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자들은 어떤 상태의 그 원인을 찾고 설명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현재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 거기에 관심 두고 계십니다.
또 제자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관심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에 미래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의 장애만 외모만 보았다면 예수님 그 사람의 마음과 또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시죠.

예수 따라 사는 삶, 내가 정말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따라가는 그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에 어떤 부분이 어떤 요소가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이런 부분들이 아니겠어요. 내가 예수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봐야하는것들이 그런것들이 거든요.

하나님이 일하심을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여전히 일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는 고백할 수 있어야만 되겠죠.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보신것처럼 그 사람의 미래를 볼수있어야 되겠죠. 또 그사람의 외모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이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 그사람의 마음을, 그 사람의 속 사람을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갖는 편견이나 호기심 이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고난에 대한 해석은 사실상 하나님의 몫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불행이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과 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몰라요. 그 과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경우도 사실 굉장 많습니다.

그 때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것이든 그 사람의 과거를 의심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라 할까요? 현재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경우가 어찌나 많은지 모릅니다. 과거에서 내가 출생한 지역 내가 태어난 가문 내가 자라온 환경 내가 졸업한 학교, 다 과거잖아요.

우리 멋대로 상황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자신에 관한 것이든 남에 관한 것이든 그렇습니다. 내가 더 요한복음 수 없는 것도 내가 더 가질 수 없고 더 누릴 수 없는 것도 운이 나빠서 재수 없어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조상 탓하고 여건 탓하고 환경 탓하고 성격 탓하고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문제는 뭘까요? 이렇게 생각할 때 문제는 뭘까요? 이렇게 믿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늘 우울하고 늘 어두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우울한 생각 어두운 생각밖에 거둘게 없는 겁니다. 그 속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고 그 속에 어떤 열매가 있겠어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를 만나면 이게 달라 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 분의 생각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되고 특히 나에 대한 그 분의 생각 그분의 마음 성경에서 표현하는 바 설명하는 바를 우리가 알아야만 됩니다. 지금까지 내 생각 따라 살았고 내 느낌 따라 살았고 주변 사람들 생각 따랐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현재 이유는 더 이상 과거에 있지 않습니다. 과거가 나를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게 바로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인 줄 믿습니다. 제자들이 그랬어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남자를 놓고 이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지요. 현재 이유를 자꾸만 과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에게 물어보는 과거가 이유라고 대답하겠죠. 내 팔자가 사나와서.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식이로.

하지만 예수님이 싹 정리를 해주십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다 너희는 그걸 모르지만 너희는 그걸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걸 느끼지 못하지만 이 사람을 통해서 비록 장애를 가진 사람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지만 이 사람을 통해서 이 사람의 이 현재 상황을 통해서 여전히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이 있다. 왜 그것을 보지 못하냐고 꾸짖는 겁니다. 예수님은 버려진 인생 같아 보이는 그의 현재 이유를 미래에서 찾아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인생 속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들어와서 살게 된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분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우리 안에서 들어와서 사는 거거든요.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과거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오늘 내 존재 이유는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죠.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는 오늘과 내일의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겁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얘기하잖아요.

혼혈 문제될 게 없습니다. 혼혈을 핸디캡으로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거든요. 나의 상황을 걸림돌로 볼 수도 있지만 디딤돌로 볼 수도 있거든요.

예수 따라 사는 삶은 어떤 삶 입니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는 거죠.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성별도 관계없습니다. 과거와 상관이 없어요. 이제는 기준이 하나님 나라거든요. 이제는 기준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거든요. 이제는 기준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거든요. 이제는 기준이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이거든요. 내가 하는 일이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내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내가 믿고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인줄 믿습니다. 그 사람은 뭐가 달라요? 미래가 다릅니다. 그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바라보는 관점도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하는 태도도 달라요.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어떤 일을 풀어가는 방법도 주어진 일을 헤쳐 나가는 방식이나 삶의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오늘도 그렇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서로의 물론 과거도 보이고 상처도 보이고 다 보이겠지만 이왕이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 사람의 현재와 또 미래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 사람의 외모 겉모습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것들을 보기전에 그 사람의 마음 하나님이 보시는 속 사람을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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