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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성도 갈라디아서 5:1~15

by diane +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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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성도

갈라디아서 5:1~15

갈라디아서 5장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가 누릴 자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절에서 바울은 두 가지를 확증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를 줬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율법에 저주를 당하시고 허락하신 자유의 길을 가라는 말씀이지만 스스로 자유하려고 종교적 규율이나 의식을 행함으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은 다시 율법에 종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시기 때문에 진리를 통해 자유케되리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믿고 주님이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1절 종의 멍에란 율법이 부과한 멍에 입니다. 할례는 율법의 종이었다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죄사함 받고 율법에 자유함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7장
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말씀은 율법의 모든 조항은 하나도 빠짐없이 항상 행해져야만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것은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종교 교육개혁자 마티 루터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죄악을 씻어버리고 성당 계단을 무릎으고 올라갔었습니다. 그러자 로마서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로마서 1장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으로 루터는 인간의 의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 진리를 포기하고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살아보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능함과 저희들은 사실만 발견할 뿐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죄악과 죄를 이길 힘이 부족한 무능함을 깨닫는 동시에 이런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깨닫는 믿음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죄의 사함을 받고 은혜의 길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죄를 깨닫고 은혜로 죄 사함받는 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 안에서 의롭게 되는 종교 생활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도덕적인 삶을 탁월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5절부터 9절
갈라디아서 5장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바울은 복음 안에서 신실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를 말씀 합니다.
첫째는 구원의 소망을 기다리는 삶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구원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을 주님 부르실 때까지 힘을 공급하셔서 능력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바로 그 힘은 사람으로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신분이나 지위는 무력합니다. 할례를 받았냐 못받았냐는 율법의 기준으로 보는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만이 구원의 위업을 얻는 진리를 믿는 자에게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날마다 자신의 몸을 쳐서 이신득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신앙을 끝까지 경주하고자 힘썼듯이 여러분도 날마다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주님을 위한 영적 싸움을 끝까지 잘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8절에서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순종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설득은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이 계속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갈라디아 교회에 거지 형제 곧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위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즉 그들의 수는 적고 또한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 주의가 현재는 미미하지만 악마적 힘은 무서운 팽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그 역량이 전 교회에 미칠것이기 때문에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엄청난 전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십자가의 걸림돌은 신앙의 장애물을 의미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를 꺼리끼는 이유는 그들의ㅣ 메시아관이 이 세상에서 큰 권세로 능력으로 행할 자라고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천하게 살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메시아 자격을 믿지 못하고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를 믿어서 박해를 받아도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즉 인간이란 전적으로 탈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을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와 공로를 의지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을  구원을 거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가르침과는 철저히 단절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자유를 빼앗겨 산다면 그것은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는 그리스도인이라도 그가 율법 주의로 돌아가면 그는 다시 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란 마음대로 죄를 범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억압에서부터 해방된 자유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의 신분이면서도 섬기시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억압에서 해방된 자가 형제를 섬기는 종이 될 때에 성도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사랑 여러분 형제를 섬기는 종이 됨으로써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맛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사도 바울은 14절
사랑하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쫓는 성도의 삶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하여금 율법의 도덕적 표준들을 지키도록 능력과 도움을 주십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자유만을 주장하여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대립적인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피차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성도들 간의 분쟁이나 다툼을 피하고 사랑으로 섬김으로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 안에서 자유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도록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자유로부터 억압 받고 있는 북녘의 동포들을 십자가의 권능으로 보호하시고 위로하사 참 자유를 누리는 복음 통일의 그날이 속히 한반도에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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