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으라 요한복음 14:1
하나님을 믿으라
요한복음 14:1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성경은 우리에게 근심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성경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 우리가 듣고 받고 기억하기는 하나 이것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가질 수 있지요.
그러나 신앙과 현실은 결코 분리될 수가 없고 영과 육은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실천되어야 할 현장이 세상이요 현실인데 어떻게 신앙과 현실을 분리해버리고 영적인 삶과 세상의 삶을 어떻게 떼어서 생각할 수 있나요?
마치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행함으로 옮겨놓지 못하니까 믿음은 믿음이요 행함은 행함이라고 따로 떼어서 우리 피차 편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그런 논리가 되고 많은 것이지요.
우리 신앙과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이 갈등 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왜 이런 갈등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가?
도대체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 해결에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성경의 가르침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을 치료하는데 우리는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증상의 해결의 관심보다 그런 증상을 만들어낸 그 원인을 해결하는데 주님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이 육을 지배하는 이 전인적인 원리에서 우리 인생이 겪는 모든 고통의 현실을 접근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왜 우리가 근심하는 이 문제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어라라고 말씀을 하시는가?
이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직접적인 해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쯤에서 다시 읽어보면 왜 내가 이 문제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는지를 우리는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근심의 처방으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가?
그것은 뿌리를 찾아 근심의 증상을 해결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접근 방법입니다.
여기서 우린 히브리어 11장으로 돌아가 믿음의 선진들을 만나보면 이 말씀이 훨씬 더 쉽게 이해가 되어 집니다.
히브리서 11장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근심에 쌓일 수 있는 훨씬 더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들이 살았다라고 성경이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근심에 묶이고 시험에 넘어지고 그러지 않고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격한 삶에 부딪치며 살았는데도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어요.
히브리서 11장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갈등하지 않았다고 말해요.
시험을 받았을 때에 그들 앞에 당면한 그 상황에 웅크림과 웅추림이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히브리서 11장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한순간에 누릴 수 있는 찾아온 절호의 기회와 그 환경과 조건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
우리와 똑같은 상황을 아니 우리보다 더 심한 상황을 살면서도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1장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이런 특별난 근심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이런 삶을 산 것이 아니고 이걸 말하자면 시간이 부족하고 입이 아프단 말이죠.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았으나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걸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비결이 뭘까?
이게 우리의 관심입니다. 그게 뭐였는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
히브리스 11장을 펴면 매 절마다 또 매 인물들마다 그들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그들이 겪은 사건을 기술할 때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가?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들이 믿음으로 이겼다는 거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겼다는 그 믿음이 11장6절에 그들은 이런 믿음을 가졌다라는 거죠.
히브리스 11장6절이 요한복음14장 1절과 동일한 내용의 다른 표현 아닐까요?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들이 믿었듯 너희도 그 하나님을 그들처럼 믿어라. 그리하면 세상이 너희한테 가져온 근심을 너희는 이길 수 있다. 이런 공식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지금 근심을 당하고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어라고 말씀하는 거죠.
이것이 우리에겐 뜬금없는 이야기요. 생뚱맞은 이야기요. 우리는 현실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 하나님을 믿는 것과 이게 어떤 관계가 있느냐? 그러니 신앙이 내게는 커다란 도움이 못 된다. 신앙은 신앙일 뿐 현실은 현실이다. 라고 쉽게 생각을 해버리는데
이쯤에서 생각하면 왜 하나님의 처방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믿음을 언급하는 걸까에 대한 조금은 이해가 돼요.
돌아가셨다가 사셨다고 하는 이 사건적 실제를 믿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되고 그 사건적 실제가 지금 현존한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여러분이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를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이 험악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험악한 세월의 끝자락에 이제 죽음의 그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 죽음의 시간에 그가 자녀들을 축복했어요. 그리고 그 기력을 다해 혼자 몸뚱아리를 가누지 못해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하나님을 경배했다.
이게 뭘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실존하신다. 내가 죽어 자식들과 나와의 문제가 끝나버린다고 생각하고 내가 죽는 죽음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실존하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경배 할 이유가 없고 그 자식들의 미래를 하나님께 의탁 할 이유가 없었겠죠.
여기 그 자녀들을 축복했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실존하시는 그 하나님이 약속한 그 약속이 이들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서 그들에게 그 약속을 전달한 행위란 말이죠. 그러니까 야곱은 죽음의 순간에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창세기 28장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어떻게? 창세기 28장 16 절에서 야곱은 이미 하나님은 실존자 이다라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척박한 광야로 내쫓기면서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낄 때 그는 광야 들판에 혼자인 듯 버려진 듯 그렇게 두려움 가운데 그 밤을 지새는데 그 밤에 하나님을 만난 거죠 그때 야곱이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네 하나님은 내가 도망가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네. 하나님은 실존자이시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어떤 시각 어떤 장소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현존자이시네 라고 하는 것을 야곱이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인생이 숨넘어가는 그 시각에도 현존하시는 그 하나님 실존자 하나님께 그 자녀들을 의탁하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에도 기력 없어 가눌수 없는 몸뚱아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몸을 지팡이에 의존해서도 하나님을 경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실존자이십니다. 현존하십니다. 지금 이곳에도 여기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경 속의 그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거죠. 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1장
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 믿음의 우리 선진들을 보고 한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방인들이 우리를 보면서 그래 너를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 같애.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네.
여러분 이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방인도 이 사실을 확신하는데 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져야 근심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거죠.
증상에 관심을 두지 말고 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우리의 믿음에 우리가 관심을 둘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실존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에요.
이승희목사도 실존 해요. 지금 그러나 저는 영원 하지 못해요.
근데 하나님은 영원자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고 조물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하세요. 영원은 유한을 다스립니다. 근심은 유한한 영역에서 발생합니다.
지금 이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죠. 제자들이 이 근심이 어떤 이야기입니까? 주님이 죽으시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라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이 죽음이 근심이 된 거 아닙니까?
이 죽음은 유한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근심하는 것을 다 유한한 상황에서 발생되어져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아버지의 집을 연결시킵니다.
요한복음 14장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지금 제자들은 주님이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라고 질문하니까. 주님이 그들의 근심을 무엇과 연결을 시킵니까? 하늘에 있는 아버지 집 영원과 연결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영원이 유한을 이긴다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믿는 그 실존의 하나님은 유한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유한한 세계에서 발생하는 근심을 이길 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라 라고 하죠. 그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을 이길 수 있다.
실존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때문에 우리의 근심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거지요.
아브라함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이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자식을 죽이라고 하는 요구를 받았지요. 그런데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이야기합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탁월했거나 아니면 아브라함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이지요.
히브리서 11장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어요?
유한하고 제한된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그 유한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 그리고 유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는 믿었다는 거죠.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낙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는 죽음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을 가지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겁니다. 이삭을 드렸다는 말은 근심하지 않았다는 거죠. 근심을 이겨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히브리서 11장
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때 이들이 믿은 믿음은 뭘까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안 믿었으면 홍해를 어떻게 육지처럼 건넙니까?
세상에 돈다고 성이 무너지는 법이 천지가 어디 있나요? 그럼에도 이들이 돌았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라면 돌아서 무너질 수 있다. 이걸 믿은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환란 날에는 내게 부르짖으라 부르짖으면 니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그랬어요.
예레미야 33장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알지 못하는 그 말은 니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여기 상이라고 하는 이 말이 미스터 포도텍스라고 하는 이 단어는 대가를 지불하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보상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근데 이 보상은 절대적인 보상이에요.
어떤 보상인가?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무엇을 보상하느냐? 하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그 찾음에 대한 보상을 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더 쉬운 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이야기예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신다. 그 찾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음에 대해 보상해주는 하나님을 찾음에 대하여 그 대가를 지불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찾다라고 하는 말은 애쓰다 그런 이야기예요. 세상을 붙들고 애쓰면 우리의 근심을 해결할 보상을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붙잡고 애쓰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애씀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 주신다는 거. 보상해주신다는 거죠.
그것을 성경은 상주시는 이라고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 믿으시죠?
그래서 성경이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라 이 말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근심의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구하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상주시는 하나님이 니가 그 애쓰며 찾는 그 찾음에 그 기도에 그 메달림에 하나님이 보상해주신다.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근심이 기대와 소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근심에서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요. 그러나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근심에서 한 걸음 훌쩍 뛰어 버립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이 주실 보상! 기대의 자리로 우리가 위치 이동을 하게 되고 희망의 자리로 우리는 옮겨 앉을 수 있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근심은 우리에게 근심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근심의 상황은 내 앞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겠지만 그 근심의 상황이 나를 근심으로 묶어둘 수 없어요.
이런 찬양 아십니까?
기도 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이 말은 무슨 말이에요?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어라! 그 말입니다.
찾는 자들에게는 찾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주시는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보상해주시는 그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염려하고 왜 근심하는가?! 그런 이야기지요.
우리가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왜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는가
이 말씀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