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둘것이 있습니까? 시편 126:5~6
거둘것이 있습니까?
시편126:5~6
시편 126장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그 농사짓는 과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어느 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의 아버지는 주로 마늘 농사를 지었는데 그 당시 목사님의 아버지가 폐결핵 말기의 몸으로 고통 가운데 짓는 농사였으니 잘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근데 늘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땅을 빌려서 마늘을 한 700 평 정도 심었다는 거죠. 폐결핵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퇴비도 마늘에 제일 좋다고 하는 닭똥을 왕겨와 함께 섞어서 넣었고 겨울에는 얼지 않도록 짚도 두툼하게 깔아주기도 하고 봄부터는 김도 열심히 메워주었다는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렇게 정성을 기우렸더니 마늘이 아주 잘 자라게 되었다는 거죠. 대가 굵직굵직한 것이 마치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근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제 마늘을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계속해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라는 거죠. 그래서 그만 마늘을 뽑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 몇 날 며칠 뒤 비가 그치긴 했는데 그때는 이미 마늘 주위가 물에 다 썩어서 마늘을 뽑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 마늘 하나하나를 호미로 캐낼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것도 밑이 썩기 전에 빨리 캐내어야 했기에 삵을 주고 일꾼을 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해에는 본전은 거녕 씨앗 값도 건지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때 목사님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거죠. 적자본 것은 둘째라도 창피해서 동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둘 수가 없다라고 말이죠.
이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당시의 목사님은 아버지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또 아버지가 성치 못한 몸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창피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농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농부에게 있어서 꼭 있어야 될 결실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샘 하게 됐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밭을 일구었던 농부로서 결코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가져야 될 열매를 얻기 위해서 힘써야 될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씨를 부리되 많은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되겠죠. 봄에 심지 않고 가을에 거둘 수가 없지 않습니까. 요즘 우리의 사회적인 병폐가 무엇인가 하면은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그래서 요즘 청년들이 너무 비관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벼락 거지라는 말도 있고요. 한순간에 빠르게 돈을 얻을수 있을까 말이죠. 그런데 일확천금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있는 것은 다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는 사람이 많죠. 설령 속된 말로 한두 번 대박이 터진다고 해도 그렇게 얻은 재물이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씨뿌리고 땀 흘려 얻은것 만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할수있고 내게 기쁨을 줄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사회에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죠. 기도도 헌신도 봉사도 주일성수도 하지 않으면서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 말이죠. 많은 성도가 천국 열매를 위한 씨앗은 뿌리지 않구요. 일주일에 교회 한번 나와주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앞서 말한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선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또 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좋은 씨앗을 뿌려야 되겠죠.
씨앗의 종류가 같다고 해도 좋은 씨앗이 있고 그렇지 못한 씨앗이 있습니다. 종자로 쓸수 있는 씨앗이 있고 그렇지 못한 씨앗임있죠.
농부들이 수확을 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내년에 다시 밭에 심을 종자를 선별하는 일입니다. 농부는 가장 실하고 알찬 알곡들만을 골라서 따로 보관을 했다가 그것을 이듬해에 밭에 뿌리게 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좋은 것으로 심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심을 믿음의 씨앗도 그런겁니다. 우리가 심는 믿음의 씨앗이 복음의 순수성을 잃는 것이라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씨앗처럼 결코 좋은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없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을 거꾸로 뒤집어보면은 우리가 어떤 것을 심었는가라고 하는 것은 장차 그 열매로서 판가름이 나게 되지 않을까라고 이렇게 여겨집니다.
마태복음 7장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된 것은 좋은 씨앗으로 심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 그런 말이 있죠.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구요. 심은 대로 거두게 되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리가 있는데 악한 것으로 심게 되면 악한 열매를 거두게 되고요. 선한 것으로 심게 되면 선한 열매를 얻게 된다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죠 차량 대로 교사로 청소로 주방일로 청지기로 심방으로 이처럼 맡은 직분에 따른 일들이 많은데 자원하는 마음 없이 억지로 감당한다면 좋은 열매에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또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도 결코 좋은 열매 맺을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때때로 억지로 하니까 될때도 있지만 그 마음의 진실함이 온전치 못하면 주님께서 받으시겠냐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화려한 곡식을 많이 준비해서 드린 가인의 제사는 양의 첫 새끼 한 마리로 드린 아벨의 제사보다 훨씬 풍성하고 화려해 보이고 멋져 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외모로 보지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아니하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어요. 아벨이 좋은 것으로 진실된 것으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는 인내함으로 심기를 힘써야 됩니다.
오늘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내일 당장 그 열매를 딸수는 없겠죠. 씨앗을 뿌리고 2개월이나 3개월 후면 수확을 할 수 있는 채소가 있는가 하면 한 해를 기다려야 되는 곡식도 있고요. 수년을 기다려야 되는 과실도 있는 겁니다. 이 모두가 씨를 뿌려서 얻게 되는 수확이기에 모두 귀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채소를 얻는 기쁨보다는 들녘에서 수확하는 기쁨이 더 크고 수년을 기다려서 얻게 되는 과실의 수학의 기쁨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보면 성질 급한 사람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오늘 기도하고 내일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올해 이만큼 봉사의 씨앗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축복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조금 기도 하다가 기도하기를 포기하고요. 조금 봉사하다가 봉사하기를 포기하고 힘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게 되더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열매를 수확하지 못한다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다고 할지라도 인내하고 씨를 뿌리면 반드시 그 풍성한 인내의 결실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히려 응답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기도가 하늘나라에 금향로에 쌓이게 되고요. 열매 맺지 못하는 씨앗처럼 보이는 우리의 믿음의 씨앗들이 하늘나라의 상급 창고를 풍성하게 할것이라는 사실을 꼭 깨달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인내할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 영적 상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때 믿음의 씨앗을 심되 좋은것으로 심기를 결심할 수 있기 바랍니다.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심어서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맺어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