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바이블/지혜의 말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요한계시록 21:1~5

diane + 2025. 2. 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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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요계21:1~5

요한계시록 21장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세 가지 단어만 여러분이 기억하시면 됩니다.
외침 역설 환멸

우리의 삶 속에 누구에게나 어떤 내면의 외침이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떤 외부의 영향으로 때로는 여행을 하다가 또는  독서를 하면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또는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내면의 외침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외침은 우리가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것이 있어요.
새해의 계획 결단 다짐한것들 소원 있을겁니다.
내면의 외침에 반응 하는것들도 있겠죠.

어떤 분들은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어느 공부가 될 수도 있어요 사진 공부가 될 수도 있어요. 음악 공부가 될 수 있어요 미술 공부가 될 수 있어요. 여러 형태의 다양한 여러 종류의 그런 공부를 계획하는 분들도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금 더 그 관심의 폭을 넓힌다 그럴까요.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그러한 어떤 내면의 외침에 대한 반응들은 나 자신을 위한 나의 발전을 위한 그 부분들도 중요하죠.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떤 분들은 올해는 이러한 내면의 외침에 한 번 반응해 보자. 지금까지 내가 전혀 도전해보지 못했던 그런 일들에 한번 모험을 해보자. 시도를 해보자.
어떤 분들에게 있어서는 그 일이 선교 여행을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멀리 단기 선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선교 여행에 도전해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면은 위치 네 반응하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에게는 자신의 어떤 재능이나 경험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사회에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찾기 위해서 또 그러한 내면의 외침에 반응하는 그래서 그런 관심의 폭을 이렇게 넓혀나가는 그런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그런 내면의 외침 들에는 우리가 사실 뭐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일 수도 있어요. 반응할 수도 있고 뭐 그냥 외면하고 그 외침에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는 내면의 외침이 있는데 그 외침 들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는 그러한 내면의 외침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관계에 대한 외침 또는 친밀감에 대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관계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경험할 수 없는 의미가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똑같은 관계가 때로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케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후회하게 만들고 증오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하는 이러한 경험들도 아마 대부분 해보셨을 겁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설이 있다는 것이죠.

그 관계가 정말 필요해요. 그 사실을 내가 느끼고 인정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 관계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그런 순간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죠.
조금씩 스토리는 상황은 환경은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그러한 역설이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피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겠죠.

요한계시록 21장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이 세상을 또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시고 또 선포하십니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지금 우리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 되겠죠. 새로움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겠죠.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이겠죠.

여러 형태의 관계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처럼 그 관계는 어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가 경험하고 누리는 순간들도 있지만 너무나 마음 아픈 순간들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아이러니 이자 또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멸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환멸은 뭔가요? 달리 말하면 우리의 환상이 깨지는 걸 환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누구나 어떤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관계에 대한 환상도 분명히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쩌면 현실에서 현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환상을 우리가 쌓아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근데 정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그런 관계를 우리가 경험하고 누리기까지는 그런 환멸을 느낄 수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이 깨지는 거죠.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하나님이 되어줄 수 없고 그 사람도 상대방도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닫는 거죠.

내가 상대방에게 완전한 그런 만족감을 줄 수도 없고 완전하게 보호해줄 수도 없고 완전하게 기쁨을 줄 수도 없다는 사실도 상대방도 나에게 그러한 기쁨이나 만족감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죠.

처음에는 그런 깨달음이 우리에게 아픔이 되겠죠. 슬픔이 되겠죠.
하지만 그 진실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오히려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 줄 수 있는 또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관계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읽은 것처럼 눈물이 있는 세상입니다. 슬픔이 있는 세상입니다. 울음이 있는 세상입니다. 아픔이 있는 세상입니다. 죽음이 있는 세상입니다. 결코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멸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죠.

결혼하기 전에 상담을 어느 어르신들로부터 받았어요. 연세가 지긋하신 아주 지혜로우신 분들이십니다. 한시간 정도 상담을 받은후에 숙제를 나주시는데 숙제가 당신들이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곧 결혼을 하게 될 텐데 남편은 아내에게 기대하는 바를 또 아내는 남편에게 기대하는 바를 10가지씩 노트에 적어오라는 얘기입니다. 근데 서로에게 보여주면 절대로 안 되고 다음 주 정해진 시간에 우리를 만날 때 와서 그 숙제해온 적어 온 내용을 나눌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그 어르신들을 다시 만났어요. 숙제해 왔습니까? 해왔습니다. 한 가지씩 읽어 보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한 가지씩 다 읽어서 10가지씩 다 읽었더니 그 분들이 뭐라고 하시냐면
요약하자면, 지금 장난치냐?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겁니다. 꿈에서 깨라는 얘기죠. 환상을 깨라는 얘기죠.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관계를 경험하고 누리기까지는 우리의 환상을 깨는 작업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사실이 매일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힘이 되어야 된다는 이야기죠. 우리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한계가 있지만 안타까움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그 분이 힘이 되어줄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질문이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차이는 많지만 생각의 차이도 많고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이상, 한 몸을 이루는 이상, 서로에게 베푸는 모습이 있어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주십시오. 우리가 이기적인 것 교만 한 것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 아직 환상이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덜 깨졌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우리 안에 있는 거죠.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절 이하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는가를 설명해주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으라는 내용으로 5절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한계를 반드시 느끼지만 어려움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계를 어루만져주시고 터치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도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그 소망이 우리 안에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왜 이러한 일을 허락하시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목사님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차라리 그러한 딸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거라면 또 1년 2년 밖에 살지 못할 그런 딸을 우리에게 주실 거라면 차라리 우리에게 그 아이를 주시지 않은 것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목사님께 희미한 음성이 처음 듣는 음성이었데요. 마치 하늘나라로 간 그 딸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그 딸아이의 음성처럼 들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 딸아이의 음성이 어떻게 들려왔냐면 아빠 절대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빠 절대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가 있는 이 천국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겠어 또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저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분명히 저희에게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올거라고 믿어요. 아빠 절대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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