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8.일 (주의말씀)
불편과 원망의 소리보다 분노의 소리보다 기도의 함성이 더 크게 울리는 이 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방과 족속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역대하 7장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기도 해야 할 때 바로 지금 인줄 믿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그러한 손길을 확실히 가며 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하나님께서 결단코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면서 천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음부의 권세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하나님께서 그 분의 교회와 그분의 백성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하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비록 희생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디모데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며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게 될 때 외적으로는 핍박과 박해가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사탄과 악령이 거짓된 가르침 이단을 끌어들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게 합니다.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합니다. 밖으로 안으로 사탄과 악령의 공격이 있는 것이죠.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사탄과 악령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수록 더 발악하고 더 흉폭한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으로는 핍박과 박해를 통해서 위협으로 나타납니다. 또는 교회 내부 내적으로는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양이 아니라노 야수 이리로서 주님의 포도원에 양떼에 침투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총체적인 영적인 전쟁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러한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일꿐으로써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직무를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목양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한 선교적인 지도자로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도인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 제자들을 말씀으로 훈련을 시키고 그들을 세워서 주의 백성들을 돌보게 하는 제자훈련과 제자 양성에 책임을 또한 맡았습니다. 사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빌립보 교회를 돌보게 하기도 하고 특별히 에베소 교회를 오랫동안 돌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맡겨 준 모든 책임 하나님이 주신 책임 모든 책무를 모두 충성스럽게 담당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치열한 영적 전쟁에 그 와중에서도 준비된 일꾼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능력 있는 일꾼으로 정직하고 깨끗한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사용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 5:46~6:18
12월이 되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에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 하죠. 구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겁니다. 구제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심히 고결한 행위죠 그러나 주님은 구제 행위라 해서 모두 의롭게 보시진 않습니다 행위보다 앞서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마음의 진실입니다 마음의 진실 동기의 순수성이 믿음의 세계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세상은 실적과 결과를 중시하지만 진리의 세계는 동기를 중시합니다. 이것이 신앙적인 진실이죠. 이 진실은 사람들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 속에서 행할 때 이루어지고 또 이런 선행은 행하면 행할수록 내적 기쁨과 삶의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씀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신 곳에 내 눈길도 함께 머물고 나보다 못한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그런 복된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증거
로마서 5:8
로마서 5장
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https://diane.tistory.com/m/1206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이사야 9:6
이사야 9장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누가복음 2장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러가자 하고
보러가자 디아에르코마이
디아 통과하다 관통하다
에르코마이 가다 오다
두 단어의 합성어
에르코마이는 주체자의 결단이 담겨있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마치 뭔가를 얻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여 돌진한다는 뜻이 함축되어있는 것입니다.
디아 여러가지 어려운 난관과 어떤 사정들을 통과하고 해쳐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당시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그들을 분명 가로 막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단한 것이죠. 가서 그 이를 예수님을 만나야겠다고 말이죠.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디아에르코마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통과해야 되는 거죠. 통과.
올해 대림절 대강절 디에로코마이 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갑시다.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들과 산적해 있는 해결해야 될 일들이 있지만 그걸 다 통과하고 주님께로 나아가 보십시다.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뭍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있었다는 것이죠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기 위해서 많은 그런 역경들을 넘어서야 했듯이 신앙이라는 것은 주님을 그저 그냥 오시니까 내가 오신 은혜로 만난다 이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그 어떤 이상일 때가 많습니다. 환경을 나를 묶으려는 그런 결박들을 또 여러 가지 이유들을 다 넘어서야 온전히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신앙 일 때가 종종 있죠.
이번 성탄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가로막고 있고 우리를 묵고 있고 결박하고 있는 영적 중력 장들을 돌파하고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것이 죽을 것 같은 겨울이지만 결코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나의 생명이 하루가 더 연장되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짐을 찬양입니다. 어제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어제의 낙망을 일으킬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또 어제 기쁨을 연장할 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에게 오는 모든 일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때로 버거운 일이 다가와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가 나를 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 당황스러운 일이 와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안에 새로운 유익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그 상황 속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순간에 아버지를 찬양할 것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은혜를 주시는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죽음을 넘어 부활을 살다 책
유럽의 유서 깊은 예배당 천장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는 모자이크화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판토그라토르 전능의 주라고 합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이레네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 성당은 381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리스 공의회를 소집해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한 그런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건물은 15세기에 이슬람 세력에 넘어간 이후 병기구로 쓰였고 지금은 무기 박물관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일은 판토크라토르가 있어야 할 그 예배당 중앙천장에 각종 무기 그림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힘과 무기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인간의 지배 욕망과 미움과 증오 위에 세워진 것 같지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주님의 보좌를 받들고 사랑과 신실이 주님을 시중 들며 앞장서 갑니다.
시편 89장
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도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것 같은 순간에도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이것이 세상에 여전히 비참과 눈물이 있지만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이유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 믿음으로 성탄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말합니까 이런 질문 아마도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일 겁니다
사실은 본인이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페로독스 역설입니다.
우리가 밥을 놓고 주님께 기도를 마무리해 보십시오. 그 밥이 입에 들어갑니까? 우리가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열 번 스무 번 씹어야 넘어가지 주님께 이 밥이 내 위에 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죽는 날까지 기대해도 응답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밥은 누가 준비한 것입니까? 쌀이 재배되어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 그 역사적 과정은 주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깨달음이 깊어지고 깊어지면 어머니 뱃속에 있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준비하셨구나.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은혜구나 하는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정복은 누가 했습니까? 가나안 정복까지 그 긴 역사적 과정은 주님이 준비하셨지만 실제로 가나안 사람들과 싸운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인 것이죠. 하나님이 다 준비하셨고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완성은 주님께 달린 것이 맞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세스 그 과정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태도중 하나가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할 일까지 해주는 분이 아니죠.
이때 맡겼다는 무엇을 맡긴 걸까?
비행기 탈 때 짐을 맡기죠. 그 짐을 무사히 되찾기까지는 내 책임이 아닙니다. 항공사의 책임이죠.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일한 결과를 책임져준다는 의미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죠. 어떤 결과든 상관없이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가 수습실에 들어가면서 수술이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나서 매스를 놓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죠. 의사는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하면서 절대 게으름을 피울 수 없습니다. 졸린다고 잠깐 쉬고 올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죠. 수술을 마칠 때까지 헌신을 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거죠.
목회자들은 주일 아침까지 설교를 고치고 또 고칩니다. 그리고 강단을 설 때 원고를 가지고 올라가지 않습니다. 물론 원고를 가지고 가는 분들도 많지요.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최선을 다하지만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거죠. 나의 최선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아침까지 고친 원고대로 설교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니까 자유롭습니다. 설교에 대한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잘 될 때 우월감에 빠지고 안 될 때 열등감에 빠지겠죠. 하지만 결과를 주님께 맡기면 내가 최선을 다하는 과정도 기쁨이고 결과도 기쁨일 것입니다.
이 대림절의 은혜 시간에 하나님이 특별하게 안아 주실 줄 믿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시편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시편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실 수 있는 큰 품을 가지신 하나님이라고요. 스위스 루이스가 한 말이죠.
하나님께는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도 하나님께 아 뢸때에 하나님은 다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다. 우리 연약함도 받아주시고 내 속에정말 별 볼일 없는 모습들도 받아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그래요 그분이 없습니다. 우리 그 분께 안 기시는 복된 시간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