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요한복음 10:1~3
이름
요한복음 10:1~3
요한복음 10장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근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름에 대해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름이 한평생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믿는 반응하구요. 이름에 대해서 큰 관심이나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이름은 부르기 좋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반응이라는 겁니다.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을 좌우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름을 지을 때 작명소라든지 또는 유명한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름을 짓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이런 현상은 우리 옛 사람들이 이름을 지을 때 뜻을 많이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 아닌 가라고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서도 이름에 관한 말씀과 이름으로 인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은 이름과 관련된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은 모두가 개인의 이름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이렇게 천명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가운데 제 3계명에서
출애굽기 20장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고 계시죠.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하고 거룩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겁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각각 자신들의 고유한 이름을 소유하기를 바라고 계심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창세기 말씀 보면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아담에게 두 가지 특별한 사명을 주시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라고 하는 부정적인 사명이죠.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각종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신 긍정적 사명입니다.
창세기 2장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각각 저 마다의 독특한 이름을 갖도록 하셨다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름으로 각각의 특성을 나타내고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서 그 가치를 지니고 살게하셨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믿는 사람조차도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 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가 자기만의 이름을 갖고 존엄한 존재로 살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며 이름을 지은 사람이 우리 중에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라고 하는 거죠.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의 한 사람의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경우가 얼마나 되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손길이 느껴지고 있느냐라고 하는 거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각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이 고유한 존재로서 존중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두번째 성경에서 이름은 그사람의 인생을 나타냅니다.
최초의 순교자로 불렸던 아벨의 이름은 공기 또는 호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공허하고 허무한 생명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이름이죠. 그는 자기 이름대로 허무하게 자신의 형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사랑함이리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의 삶의 모습을 보면 때로는 초라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와 은총을 늘 덧입으며 살았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모세는 밖으로 끌어내다라고 하는 마사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그 이름처럼 본인이 나일 강의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한 위기에서 건져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동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삶을 살지 않았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노아의 이름을 위로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 역시 자기 이름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셔서 물로 심판하는 그 혼돈의 시대에 유일하게 자기 가족을 이끌고 방주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고 하는 의미인데 그 시대의 민족을 구원했을 뿐만아니라 구원자라로 오실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또 특별히 우리가 살펴봐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과 에녹인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라암입니다. 존귀햐 아버지란 뜻으로 한 가정에 국한되는 좁은 의미의 이름이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많은 국민의 아버지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그 이름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에녹은 그 이름의 뜻이 따르는 자라라고 하는 의미인데
창세기 5장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늘 하나님을 따라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바로 에녹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름은 함부로 지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름 짓는 작명가를 찾아가서 한 자의 의미를 따져가면서 기복적으로 이름을 지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름지을때 아무 생각없이 짓지말고 이름을 지을때 마다 내 아이가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지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아이가 자기 삶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는 것 중요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를때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꼭 불러줄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이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담기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님이 이름값을 하게 하실 거라 그렇게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실 때 개인의 이름을 불러 가며 부르신다라고 하는 겁니다.
출애굽기 3장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런가 하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사무엘상 3장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을 부르실 때 늘 이름을 부르셨다라고 하는 거죠.
바울을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9장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이 부르심 이후에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하나님의 위대햐 종으로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헌신된 종으도 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을 찾으실 때 꼭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 할수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느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돌로 인도해 내 놉니다 청취 학력은
자기 이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 바랍니다. 내 이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인의 이름이 되어서야 되겠느냐라고 하는 거죠. 내 이름이 불효자 이름이고 사기꾼 강도의 이름이 되어서야 되겠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이름은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 담기는 존귀한 이름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칭송받는 또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불러 주시는 이름이 돼야 된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의 이름이 그런 이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번째로는 우리 이름은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나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세상 사람들은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여러 방면을 통해서 이름을 남기려고도 하고 애를 쓰고 노력하더라고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은 소중하고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책에 기록되어도 좋고 하다못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좋은 의미로만 남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역사책의 이름이 남기고 사람들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하는 겁니다. 주가 지옥에서 부르짖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 남겨진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하는 거죠.
사람의 이름은 이 세상 어디에 남아 있지 않아도 하나님의 생명책에 만큼은 그 이름이 남겨져야 된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된 소중한 이름이 되어야 되겠죠. 이 이름을 위해 믿음이 중요하고 믿음 안에서 자기 이름을 가치 있게 빛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이름은 어디에 걸려 있을까요? 우리 이름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생명책입니까?
자기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서 생명책에 기록되고 하나님께 불리는 이름이 될수 있는 거룩된 복된 이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