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찬송의 이중주 야고보서 5:13
기도와 찬송의 이중주
야고5:13
야고보서 5장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은 고난의 때에 기도 한다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위기를 닥치면 기도를 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기도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환경이나 조건에 흔들리지 않아야 된다라고 하는 거죠. 혹독한 고난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며 기뻐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믿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폭풍우 같은 어려움이 몰아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참 그리스도인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팔레스타인에 있는 고대 묘지에 아주 특이한 유물이 하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눈물병이었는데 대개 이 병은 얇은 유리로 만들어져있고 병의 바닥은 넓고 몸뚱은 호리호리하고 깔때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은 이 병들은 한 가정에서 누가 심하게 아프거나 죽으면 모든 친척이 눈물병을 하나씩 가지고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며 흘리는 눈물들을 모두 그 병에 모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눈물병은 성스러운 것이 되었고 그 사람이 죽으면 유해와 함께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시편 56장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이 고백.
이런 기도의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 잠언 중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천국의 한 모퉁이는 기도할 수는 없어도 올수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는 있다 라고 말이죠.
비누로 몸을 씻고 눈물로 마음을 씻는다는 말도 있죠.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라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절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죠.
근데 우리 눈물병에는 과연 눈물이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는 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믿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응답해주신다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어떤 변화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눈물병을 들고 주님께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간절히 드리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면 어떤 역사가 나타나는지 한번 살펴보면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 번째로는 나 자신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국의 유명한 주석가인 메츠 헨리 목사님이 하루는 골목길을 가다가 강도에게 죽도록 맞고 정신을 잃었다고 하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집에 돌아오니까 온 식구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때 이 메츠 헨리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하나님 목숨을 살려주신거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저를 때린 강도와 같이 될수 있었을텐데 강도가 되지않고 목사가 되게 하신것 감사합니다. 모든 것 다 잃어도 천국을 갖게 하신것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마음이 평화를 찾은 메츠 헨리 목사님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이처럼 감사의 조건을 찾아 엎드려 기도부터했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기도는 사람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불평과 원망을 감사와 찬양으로 바꿔 놓죠.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빌립보서 4장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렇게 간곡히 권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환경에 요동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옆에 지킬 힘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기도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죠. 기도하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변화되면 그다음에는 사건이나 문제에 대처할 힘을 주시죠. 고통을 감당해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신다라고 하는 겁니다. 물이 아무리 깊어도 헤어쳐갈수 있게 해주시죠.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에 직면했을때 먼저 기도할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고요. 그것이 바로 축복받는 비결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변화 받지 못하고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고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욕심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때로 기도의 응답이 더딜 때가 있죠.
그런데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마다 쉽게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금방 응답해주시면 내 기도가 멈출 텐데 하나님께서 쉬히 응답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매달렸다. 어떤 때는 30년을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며 기도하는 성품을 얻게 되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응답보다 더 귀한 것은 기도하는 성품이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느냐가 중요하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여러분들을 변화시켜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화되면 그때부터 축복의 문이 열린다라고 하는 것 꼭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는 환경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곳에서 구두 수선하는 가난한 청년이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가죽 살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게 되었다는 거죠. 이 청년은 앉아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멈추고 런던에 있는 교회당으로 달려가서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마침 그 시간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청년의 기도를 들은 한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 신사는 기도를 마친 청년이 교회를 떠날 때 뒤따라 가서 그의 가게를 알아두고 후에 많은 가죽을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청년은 그 가죽으로 많은 구두를 만들어 팔았고 마침내 사업이 번창해서 사랑하는 이와 결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죠.
근데 삼년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신사가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그랜드 스텐 이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미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거 만큼 현명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도 야고보는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기도와 찬송을 같은 비중으로 이야기 하고 있죠.
인생에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이 듭니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라고 하는 시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날실과 씨실처럼 슬픔과 기쁨이 교차해가며 짜여진 천과 같다.
아무리 불행한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에는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고달픈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 인생의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기쁨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고통도 우리에게 큰 위기 이기는 하지만 즐거움도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됩니다. 고통이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오면 자칫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런 거죠.
사사기 말씀을 보세요. 이방인들의 악재가 사라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는 거죠. 조금만 형편이 펴지면 기도하던 무릎까지 펴 집니다. 이제는 살만하다고 아예 발 뻗고 드러눕죠.
그런데 야고보서 기자는 경고를 합니다. 즐거운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라 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말씀은 즐거울때도 기도를 쉬지말다 라는 것이죠.
초대교회에는 찬송하는 교회였습니다.
폴리니 총독이라고 하는 사람이 트라이한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릴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합니다. 저들은 정한 날 정한 시간이 모여서 아침 저녁까지 찬양하는 것으로 시간을 마쳤습니다.
하나니 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듣고 보고 느끼고 감격하시는 하나님이시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찬양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간절한 기도와 영감의 찬양이 우리 속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와 찬양이 우리 삶이 전부가 될 때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지식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그 영혼이 항아리 속에 고인 물처럼 썪고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겁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을 아름답게 엮어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