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바이블/지혜의 말씀

귀신을 쫒아내신, 혈류병 걸린 여인의 믿음

diane + 2024. 11. 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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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하나교회 조칠수 목사님
마가 5:6~ 강해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역에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그러한 내용의 말씀으로 시작되어 집니다.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그 사람은 무덤에 살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덤과 우리나라의 무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덤은 분봉식으로 되어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덤은 사람이 아니라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습니다. 동굴처럼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살고도 있습니다.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또한 나병에 걸려서 격리된 사람들이 이런 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집트 빈민가는 어둠과 쓰레기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더러운 귀신에  억눌려서 무덤에 살면서 자신의 몸뿐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잠잠해 지면 그에게 쇠고랑을 채워 묶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이 그 속에서 활동하며 쇠고랑까지 끊어버려서 도무지 사람들이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귀신들린 사람이 고함치는 소리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돌을 가지고 자기 몸을 치거나 문지르면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곳을 지나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라사 지역에 가셨을 때에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갑자기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마가복음 5장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찬양하고 공경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더러운 거라사 지역에 오는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 주님께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갖은 말을 동원해서 아첨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귀신의 이 말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여기 군대라는 뜻은 원래 로마군대에서 사용되는 그러한 말로 내기온이라는 단어로서 군단을 가리킵니다. 그 당시에 이 군단은 약 6000명 이상이 모여서 한 개 군단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는 말은 귀신이 용맹스러운 해병대나 공수부대같은 군대라는 말이 아닙니다. 6000마리 정도 되는 엄청나게 많은 귀신이 그 사람을 억누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군대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할 뿐만아니라 그라사 지역에서 쫒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대 귀신은 거라사 지방에서 보내지 말라고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사람의 영혼을 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시자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2000마리나 되는 수많은 돼지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귀신이 들어간 돼지들이 미친 듯이 비탈길을 내리다가 갈릴리 호수에 빠져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귀신에 의해 점령당했던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돼지 1000마리를 희생시킴으로 이 사람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을 내어 쫓아주셨습니다. 이제 군대 귀신에 들렸던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그래서 벗어던졌던 옷도 입었습니다 그처럼 날뛰던 광인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라사 주민들의 반응은 심히 유감스러운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라고 했을까요? 귀신들린 자가 고침받아 새로운 사람이 된것보다 죽은 2000마리 돼지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고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 보다 이 세상의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우리도 주님을 자신에게서 떠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돼지 1000마리가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계속 거라사 땅에 머물면 더 많은 경제적인 손실을 당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이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께 자기도 함께 예수님을 따라 다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마 이 청년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기를 고친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와서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여 예수님을 따라 나서고자 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는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옆에서 주님의 사역을 돕고자 하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한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어떠합니까?
마가복음 5장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예수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곧 그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큰 일 행하신 그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간청을 거절하고 자신이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받은 놀라운 은혜를 자기 가족들에게 알려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가만히 혼자 간직하지 말고 받은 만큼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 이히 여기더라



이어서 25절에서 34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
마가복음 5장
25.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아가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혈류증 환자였습니다. 이는 생리적인 출혈이 아닌 그 밖에 다른 이유로 출혈하는 병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당시로서는 난치병을 앓았습니다. 12년동안 이 병을 앓았습니다.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해 왔습니다.

그 당시 혈류증에 걸린 사람은 정결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를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혈류성 여인은 더 이상 자기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했을 때에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소문을 그리고 소문 듣고 난 후에 어떻게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5장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소문을  듣는  자마다 운명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만져주시거나 안수하여주지 않아도 자기가 만지기만 해도, 예수님의 옷에 대기만해도 병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니 그 혈류의 근원이 마르고 그 불치의 혈류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리고 살짝 빠져나가 다시 무리들 틈에 섞이려고 하는 이 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게 바쁘게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면서 주위를 돌아보시고는 뒤돌아보면서
마가복음 5장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 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인의 은밀한 행동과 그 고통과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사실상 이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에 닿기도 전에 예수님은 미리 그 여인의 마음을 느끼고 계셨고 그리고 손이 옷을 만지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남모르는 아픈과 슬픔 그리고 그의 애절한 소원을 알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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