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비유 겨자씨 비유 마가복음 4:26~
씨 비유 겨자씨 비유
마가복음 4:26~
(조철수 목사님의 마가 복음 강해 설교)
마가복음 4장
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것을 해석 하시 더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린 것과 같다고 말씀 합니다. 씨앗은 생명의 원리로 성장합니다. 땅에 묻힌 씨가 발아하여 새싹이 돋아난 광경은 언제 보아도 신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린 농부가 이 모든 것들을 아무리 살펴보려고 해도 그 현장을 계속 지켜볼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모르는 순간과 깊이에서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뿌린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곡식이라
여기서 강조점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그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열매를 낸다고 할 때에 바로 이 스스로가 헬라어로 아우토마토스라는 단어입니다. 오토매틱의 어원이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이 스스로 식물을 싹트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8에서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의 곡식을 충실히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니면서 신앙생활하는 그 모든것들이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성장해 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알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순간은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때그때 맺어야할 열매를 얻도록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니까 나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단계마다 살아야 합니다. 부여된 하루하루를 가득가득 채워 가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 결국 스스로 이 땅에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이어서 겨자씨 비유입니다.
마가복음 4장
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을 가르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씨는 다 작지만 겨자씨는 특별히 작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 눈을 뜨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입니다. 겨자씨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이제 이것이 3m에서 4m까지 자랍니다. 본문 32절
마가복음 4장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되느니라
씨는 겨우 눈에 보일 정도로 작습니다. 줄기는 씨에 비하여 수천 수만 수십만배의 그 이상으로 큽니다. 모양도 완전히 다릅니다. 두 가지를 서로 연결해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변해서 거대한 줄기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매일 매순간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기적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들이 차고 넘칩니다. 이런 것에 눈을 뜬다면 다른 일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 생명 안에 있는 자는 스스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공동체 안에서 그런 것들을 날마다 우리에게 경험 되어지도록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안에 하나님 있는 자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우리가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씨는 작고 초라합니다. 그러나 줄기와 열매는 화려합니다.
지금 우리를 포함한 세상은 씨와 같습니다. 아직 생명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생명의 완성이 곧 예수님의 부활 입니다. 그를 믿는 우리는 생명의 완성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아직은 씨처럼 볼품이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풍성한 꽃이나 열매 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런 삶의 능력이 우리에게 잘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씨에만 머물러 있어서 그렇습니다. 꽃과 열매는 씨에 은폐되어 있어서 신앙의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극복하려면 일단 씨를 보지 말고 씨의 미래를 봐야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약속된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4장 35 절 이하에 나오는 이 말씀은 풍랑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여기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쉬운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풍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또한 가정 생활 속에서 직장과 사업 속에서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대로 살려고해도 때때로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풍랑을 만날 때에 우리는 어떻게 이 풍랑을 극복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 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떠나서 그라사의 땅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이제 배를 타고 건너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불어옵니다. 배가 침몰해서 죽을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풍랑의 위기도 오히려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주님을 배에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제자들에게 풍랑이 불어 닥치고 파도가
기적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풍랑의 덮쳤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예수는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속에도 풍랑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수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 풍랑이 주는 의미는 믿지 않은 사람들과 형태 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풍랑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풍랑을 해결할 아무런 대책이 없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풍랑이 주는 의미는 죽음과 멸망이 아니라 훈련과 연단임을 깨달아 거룩한 신앙으로 성숙하며 변화된 삶과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게 하는 도구 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날 저물 때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자라는 씨 비유와 겨자씨 비유를 하신 그러한 날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날입니다.
이런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저녁이 되었는데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마가복음 4장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예수님을 지금 제자들의 배를 타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른 배들은 예수님이 타신 배를 따라 함께 항해하고 있습니다.
주무시는 주님과 함께 풍랑 속에 있는 것이 주님이 계시지 않는 무풍질에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인생의 풍랑은 밝고 평탄할 때 들었던 진리의 말씀을 어둡고 고통스러울 때 얼마나 잘 적용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저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모시고 간다고 항상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풍랑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훈련의 과정에서 풍랑을 그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통하여서 미래를 변혁시킬 인물을 만들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해서 훈련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