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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득의 갈라디아서 2:11~18

diane + 2024. 9. 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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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11~18

갈라디아서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베드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 예루살렘 교회 대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면서 순회하면서 전도를 하였는데 소아시아 지역의 내륙 지방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여러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유대인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만나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한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께서 임하시고 이집안 모든 식구들이 받는 것을 보고 세례도 베풀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께서 성령 부어주신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예루살렘 공회에서도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확정하는 공을 세웁니다.

이 다음부터는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이방인과 교제하고 식사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한 가족이 되어서 같이 둘러앉아서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어떤 유대인이 이방인이 기독교를 믿으려고하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 유대인과 교제해야 된다는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게바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슬며시 자리를 피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율법주의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비굴하게 몸을 피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과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자기의 믿음대로 자기 신앙 양심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외식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가 이런 행동을 하고 떠나고 나니까 다른 유대인들도 슬슬 눈치를 보며 다 떠나버리고 심지어는 바나바도 떠나버리고 신앙 양심을 내버리고 위선적인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외식이란 헬라어는 영어의 히포크라시 위선이란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한사람의 지도자가 행한 옳지 못한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것으로 여기지말고 오직 그에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로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우리는 무명의 사역자인 바울이 대사도인 베드로를 꾸짖는 것이 너무한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만 바울이 이렇게 단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베드로가 두려워하는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에게 굴복하여 율법을 행하게 될 것이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뤘다는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십자가를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는 것이 되게 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로서는 어쩌쩔수 없이 이러한 사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 베드로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책망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베드로도 경성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바로 잡을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베드로의 외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행위가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되는 그릇된 행위임을 분명히 알고 그의 잘못된 행위를 따르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공개적으로 성도를 책망하고 징계 하는 이유는 그릇된 길로 가는 성도를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징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성도들로 두려워 하여 그 성도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권증을 했던 것입니다.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5 육과 16 절에서 바울은 다시 한 번 구원의 진리를 정리합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신즉의의 교리를 정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본래 유대인으로서 율법으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결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이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편 51장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즉 하나님은 신약시대뿐아니라 구약시대에서도 마음의 저사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율법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다함을 얻었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죄인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무엇에 집착하였습니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만약 외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써 되어지는 일이라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되는 줄 알고 율법의 속박을 벗어나려 했던 자들은 죄인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이처럼 예수를 죄인 중에 죄인으로 만드는 무서운 범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을 그처럼 혹독하게 율법주의자들을 비난하여 교회안에서 율법주의를 몰아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8 절에
갈라디아서 2장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주의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아 죄인되었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킨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또다시 율법의 정죄를 받게 하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나 변함없이 수많은 성도들의 모습은 율법적이고 혹은 윤리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항상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많은 성도들이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죄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우선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모든 죄가 사리지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늘 율법적인 생각에 자신을 판단하게 되고 죄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또한 그 죄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의를 쌓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전쟁 중에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혀 있던 전쟁이 끝나서 자유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 여전히 수용소에 남아 탈출용 땅굴을 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확신하게 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고 확신하게 하옵소서. 북한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들어가서 행위로 자신의 의를 입증하려는 모든 사상 체계를 이신득의의 기독교 신앙 체계로 바꿔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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